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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 리얼갑부-178화 (178/251)

# 178

178화 그만해, 그만

“너, 잘 생각해! 세상에 지혜만 한 애 없다!”

“그야 뭐…….”

“이미 알고 지낸 지 십 년 넘었고, 같이 붙어 살다시피 한 게 삼 년이라면서?”

약간의 오해는 있지만, 그만큼 같이 일한 건 맞았다. 그런데 홍태구가 왜 이리 열을 내는지 모르겠다.

“야, 십 년 짝사랑해 줬으면, 나라면 감사합니다! 하고 평생 모시고 살겠다. 세상 천지에, 너 같은 곰탱이 좋아해 주는 사람이 또 누가 있겠냐?”

아무리 생각해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홍태구는 지혜와 나를 이어주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지혜 인기 많아. 다이어트 성공해서 진짜 예뻐졌잖아. 그래서 그런지 노리는 놈들도 많다고 하더라고.”

“뭐? 어떤 새끼가!”

순간 흥분해서 밥상을 잡았다. 으직 소리와 함께 손자국이 남고 말았다.

다행히 취했는지, 홍태구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야, 성구가 그러더라. 지혜, 아침마다 가게 왔다 간다면서?”

“그야…….”

현재 공지혜는 나를 대신해서 본점과 2호점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금고를 확인하고 입금하는 것부터 해서, 모자란 자재들이나 여러 가지를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외에 직원들 펑크 나면 대신 일하기도 했고, 그런 식으로 두 가게를 조율하고 있었다.

내가 회사 일에 전념할 수 있는 것도 지혜를 믿고 있어서였으니까.

“마! 잘해라. 내가 듣기로, 지혜한테 연락처 물어본 새끼들만 스물이 넘는다더라.”

“뭐?”

“진짜라니까. 요즘 철거한다고 뜨내기들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 줄 아냐? 그 새끼들이 껄떡대고 다니는데 장난 아니다.”

동네 상권이 바뀐 건 알았지만, 분위기까지 바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안 그래도 부동산 삼촌이 무지하게 바쁘다고 했다. 사무실 일 있을 때도 바로 내려주고 움직였을 정도로 정신이 없다고 했던 것이다.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

순이 이모가 말한 것처럼 동네 사람들 자체가 물갈이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 때문에 원룸 쪽 경쟁률이 장난이 아니란다. 쪽방이라도 들어오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게 맞기는 했다.

철거부터 완공까지 대략 4년 동안 일을 한다. 큰 사고 없이 꾸준히 하면 목돈까지 쥘 수 있다는 소문까지 났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지성분식 맞은편에 인력 사무소가 두 개나 생겼다고 들었는데.

“옛날에 우리가 살던 동네가 아니야. 진짜 많이 변했어.”

갑자기 홍태구의 눈빛이 흐트러졌다. 이제 슬슬 술이 오른 모양이었다.

반대로 강형우는 점점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약간 흥분해서 호흡을 했더니 마음이 안정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가라앉은 건 아니었다.

“솔직히 지혜 정도면 연예인 해도 되지. 얼굴 이뻐, 키도 크고, 관리도 잘했지. 게다가 씩씩하고, 일 잘하고… 마! 전에 네가 술 마시고 그랬잖아?”

“뭐라고… 했는데?”

“너 인마, 망하면 지혜가 먹여 살리겠다고 했다면서?”

“아!”

분명히 그런 말을 했다. 덕분에 회사 차리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지기도 했으니까.

“새꺄. 지혜가 나 결혼하는 거 도와줬다고 이러는 거 아니다. 진심으로, 친구 위해서, 인마! 하는 거야.”

“고맙다.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

홍태구는 혀가 살짝 풀렸고, 아까보다 눈이 더 돌아가 있었다.

딱 보니 슬슬 보낼 때가 되었다 싶었다.

강형우는 콜택시를 부르고 홍태구를 태워 보낸 뒤, 연희한테 전화를 했다.

오늘 일 도와준다고 고생했다고.

자기가 상담할 게 있어서 술 좀 마셨으니까 뭐라고 하지 말라고 말했다.

다행히 연희도 알겠다고 대답했다.

가만? 내가 왜 전화를 한 거지? 이거 결혼 생활, 정말 좋은 거 맞나?

***

“예,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생각을 정리하면서 쉬나 했더니, 창주 형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 사무실로 가구가 배달된다는 것이다.

결국 강형우는 출근을 해야 했고 사무실이 모습을 갖춰가는 걸 확인했다.

사무실로 쓸 공간 두 칸 중에 한 곳에, 책상 여덟 개가 놓였고 컴퓨터가 설치되었다.

동시에 인터넷 기사가 왔고, 업자들이 네트워크 공사까지 한 번에 해버렸다.

그 외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더라.

“그래도 갖춰놓으니까 때깔은 나네.”

책상 크기도 넉넉했고 파티션까지 쳤다. 벽에 책장들이 들어섰고 캐비넷도 무려 다섯 개나 되었으며, 의자까지 제법 비싸 보였다.

그 집기들은 창주 형이 처리한 거였다. 위약금 사천만 원(?) 일도 있고 해서, 괜히 미안한 마음에 자비로 구입했다는 것이다.

이거 회계 처리가 어떻게 되려나 몰라?

“아오, 그런데 사람이 할 짓이 아니네.”

업자들이 큰일은 다 해주고 갔다. 또, 중간에 평석이 형네 회사 사람들이 찾아와 도와주고 가기도 했다.

대형 거래처 서비스라나 뭐라나?

그랬음에도, 자잘한 건 강형우의 몫이었다.

다행히 덕수 형이 먼저 왔고 그다음 창주 형과 혁기 형이 오니 일 처리는 그만큼 빨라졌다.

마지막으로 현우 형이 왔을 때는, 거의 마무리 상태였다.

“형우야, 미안하다. 일찍 온다고 왔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덕수 형이 달려들었다. 또다시 벌칙을 가장한 스트레스 해소용 구타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한차례 매타작을 당한 현우 형은, 그제야 사무실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었다.

“오오~ 멋있는데? 근데 우리 자리는 어디냐?”

사무실 구조가 애매해서 입구 좌우로 두 자리씩 끊어져 있었다.

현재 책상 주인들은 나와 공지혜, 그리고 사총사 형들과 김민석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자리는 경리 직원의 몫.

그렇게 설명하니 다들 알아서 자기 자리를 골랐고, 당연하게도 김민석 부장님 자리는 제일 구석탱이가 됐다.

어쨌든 사무실 정리도 일단락되자, 창주 형이 먼저 말했다.

“오늘 와이프한테 허락받았거든. 내가 살 테니까 말만 해라.”

“오~ 진짜? 그럼 우리 족발 먹으러 가자. 망미 시장 안에 기막힌 곳이 있는데…….”

현우 형이 군침을 다시는데, 덕수 형이 손을 저었다.

“어허, 여기서 넘어가면 꼼장어 유명한 데 있거든. 돌판에 구워 나오는데, 다 먹고 밥 볶아 먹으면 죽인다~”

그렇게 형들이 메뉴 가지고 옥신각신하는데, 창주 형이 정리했다.

“야. 오늘 제일 고생한 게 형우거든. 메뉴 선택은 우리 강형우 대표님이 하는 걸로, 어때?”

반대할 이유가 없으니, 당연히 다들 찬성했다.

해서 강형우는 딱 한마디만 했다.

“한우요.”

그 말에 창주 형이 카드를 도로 집어넣으려고 하더라.

다행히 세 형들이 그걸 막았다.

역시나, 이럴 때는 합이 착착 맞는 걸 보니 전생에 원수(?)끼리 만난 게 틀림없었다.

***

“근데, 형들. 결혼하면 좋아요?”

“당연히 좋지. 이거 안 해본 사람은 몰라. 군대도 갔다 온 사람들만 아는 거처럼…….”

창주 형의 대답은 이상하게 섬뜩(?)하게 들렸다.

그 직후 덕수 형도 한마디를 했다.

“집에 들어가면 곰 같은 마누라가 얼마나 잘해주는데. 전에 코피 한 번 쏟았더니 한약도 한 재 지어왔고, 몸에 좋다고 장어즙도 짜왔더라. 진짜 나 생각해 주는 건, 우리 마누라밖에 없더라고.”

그러면서 씨익 웃는데, 뭔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혁기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용돈 이십… 읍, 읍…….”

소신 발언은 거기서 끝났다. 창주 형이 고기쌈으로 입을 막아버렸던 것이다.

“하여간, 좋아~ 인마!”

“그래. 마누라 차려주는 밥만 먹으면 행복해서 눈물이 다 나온다.”

“그럼 맛이 얼마나 없는지 내가 가게에서 차려먹… 읍, 읍읍.”

이번에도 혁기 형은 입이 터져라 쌈을 물어야 했다.

그 직후, 창주 형이 손을 저었다.

“새끼가 겁이 없어. 어디 감히 마눌님 흉을 보려고 그러냐?”

“하하하. 너네는 그렇게 사냐? 난 우리 마누라가 왕처럼 모시고 산다. 남자는 하늘이래, 여자가 땅이고.”

뭔가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덕수 형이 갑자기 소주를 벌컥 들이켰다.

그런 뒤 모기 목소리만 하게 중얼거리더라.

“역시 땅값이 비싸지. 하늘은 미세먼지뿐이고.”

다들 그걸 들었는지, 애잔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정말 결혼 생활 괜찮은 거 맞나 모르겠다.

어쨌든 형들이 한마디씩 하는데, 유일하게 조용한 사람은 현우 형이었다. 신애랑 두어 번 만났다고는 들었는데, 그 이후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강형우도 눈치가 있어 조용히 있는데, 현우 형이 뜬금없이 말했다.

“진짜 결혼하니 좋냐?”

잠시 멈칫하던 세 유부남들이 동시에 말했다.

“당연하지.”

“해봐라. 해보면 안다.”

“비상금만 안 들키면 평화롭… 읍, 우웁.”

혁기 형은 이미 배 터지도록 한우를 먹었음에도 아직 부족한 모양이었다. 두 형들이 친절하게 번갈아가며 쌈을 싸주는데, 말도 없이 꾸역꾸역 씹었던 것이다.

역시 제일 먼저 갔으니, 그만큼 더 잘 알 터.

그런데 갑자기 손을 마구 내저었다.

“야이, 미친놈들아. 그만해, 그만.”

너무도 격렬한 반응에 다들 멈칫했다.

혁기 형은 소주 두어 잔을 연거푸 마시더니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나 돈 많이 벌 거야. 그래서 죽기 전에 타임머신 개발할 거라고.”

“뭐?”

“조용히 들어. 과거로 가서, 우리 와이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할 거라고. 하지 마, 씨발! 그냥 하지 말라고!”

그 말에 창주 형과 덕수 형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눈빛이 왜 아련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혁기 형의 애잔한 고백이 이어졌다.

“하루 한 시간, 일 끝나고 잠깐 게임 하는 건데… 이혼하기 싫으면 계정 삭제하래.”

“헐.”

“애 태어나면 돈 들어갈 때 많다고, 아이템 다 팔라더라고. 크흑, 그게 어떻게 맞춘 템인데. 미스릴 비키니 세트 맞추려고 잡은 드래곤만 천 마리다.”

진심으로 슬퍼하는데, 어느 정도 공감이 됐다.

옛날에 조성기가 게임 할 때, 형들을 꼬셨다. 아이템 맞춰줄 테니까 같이하자고 했던 것이다.

그게 얼추 칠팔 년 전이었다.

지금이야 다들 할 시간이 없어서 그만뒀다. 이후 혁기 형만 틈틈이 한다고 들었는데, 만렙을 찍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형수 왈.

빨리 정리 안 하면 컴퓨터 내다 판다고 했다.

이미 아버님한테 허락까지 다 받았다나?

지금 그것 때문에 냉전 중이라고 했다. 아까 했던 말들이 진심인 게 그래서였던 것이다.

그날 회식은 혁기 형의 한마디로 정리가 됐다.

“내 중화반점~”

그게 형이 애지중지 키운 만렙 캐릭터 이름이었다.

***

“인생 뭐 있냐. 쉴 때 쉬어야지.”

강형우는 진심으로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그동안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머리가 왕창 빠지고 있었다. 샤워하고 욕실 정리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가득 나왔던 것이다.

여기에 직원들이 피로감까지 호소를 하니 에라 잘됐다 싶었다.

29일 일요일 정기 휴일.

30, 31일 월화.

그리고 새해 1월 1일이 휴무였다.

해서 한 나흘을 내리 쉬기로 결정했다. 그것도 그냥 쉬는 게 아니라 30일부터 1박 2일로 팬션을 잡아서 놀기로 한 것이다.

망년회 겸 MT였다.

장소는 송정으로 잡았고, 귀찮게 고기 구워 먹고 하는 일 없게 식당 예약까지 끝내 버렸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준비를 했는데 그러면서도 고민이 많이 되더라. 정말 이게 맞는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던 것이다.

결국 천경 어르신의 말을 믿기로 했다.

불혹!

스스로 유혹에 흔들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었다. 그러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었으니까.

오히려 걱정은 다른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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