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166화 회사를 차리겠다고
“이 근처였던가?”
강형우는 해수탕 옆의 안락교로 향했다.
여기는 온천천의 제일 끝이고 수영강과 물줄기가 합쳐지는 동네였다. 때문에 얼마 전 새로운 산책 길이 연결되면 광안리까지 자전거 길이 이어졌던 것이다.
물론 수영강 건너편에 센텀시티라는 신도시가 서서히 자리 잡고 있어서이기도 했다.
“덕분에 가격이 많이 오르긴 했는데, 아직도 이쪽은 저렴하다고 했지?”
강형우는 산책 겸 주위를 둘러봤다.
안락교를 막 나오면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보인다.
여기서 직진하면 안락동과 도시 고속도로로 이어지는데, 강형우는 오히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동네는 대중교통도 없고 온천천과 수영강이 만나는 모서리였다. 게다가 동해남부선 철길 때문에 위쪽까지 막혀 있어 한쪽밖에 길이 없었다.
그 서쪽 역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으니 동네 자체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땅값이 저렴해 택배 차고지나 유통 회사같이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하는 회사들이 몰려 있었다.
사실 강형우도 이 근처에 오래 살았으면서 한 번도 이쪽으로 온 적은 없었다. 길이 막혀 있어서 굳이 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부산 사람들도 잘 가지 않는 동네였다. 때문에 듣기만 했지 정확히 어떤 구조인지는 잘 몰랐었다.
강형우는 안락 2단지 아파트를 지나면서 폰을 꺼냈다.
“어, 평석이 형. 형네 사무실 어디라고 했어요?”
-우리 회사? 왜? 무슨 일인데?
“아뇨. 겸사겸사 지나는 길인데 혹시나 해서요.”
-뭐? 야, 너 혹시 청바지에 회색 운동복이냐?
“예? 어, 어떻게?”
강형우는 당황해하며 주변을 돌아봤다.
그때였다.
빵, 빵~
저 옆 골목에서 냉동 탑차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딱 보니까 평석이 형이었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다 있다니.
“야, 타라.”
강형우는 망설임 없이 조수석에 오르면서 물었다.
“와. 형! 저 어떻게 알아봤어요?”
“야! 네 덩치를 생각해라. 동물원에서 곰이 튀어나왔는데 눈에 안 띄는 게 이상하지. 그런데, 이 동네는 무슨 일이냐? 여긴 식당 들어설 자리도 아닌데?”
“아, 그냥요.”
그 대답에 이평석은 피식 웃었다.
“마, 너 같은 일 중독자가 그냥이 어디 있냐? 솔직히 까! 그래야 서로 편하지.”
“그게, 그냥 뭐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는데, 전에 형이 이야기한 게 생각나서요.”
올 초에 회사를 확장하면서 이전했다고 들었다. 반여 농산물 도매시장과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면서 의외로 입지가 좋다고 했던 것이다.
그게 기억나서 발길을 움직였는데, 이렇게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이평석은 강형우를 재촉했다.
“그러니까 뭘 알아보냐고. 이 동네야 뻔한데.”
이상하게 바로 대답하기가 꺼려져서 강형우는 잠시 뜸을 들였다.
아직 회사 차린다는 이야기는 몇 명밖에 몰랐다.
같이하기로 한 사총사 형들과 공지혜, 그리고 신원이 형과 이은주, 순이 이모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3호점 때문에 돌아다닌다고만 알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평석이 형을 통하면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두 사람이 문제였다. 분석이 형은 시간은 있지만 의뢰가 남아 있었고, 주혁이 형은 일부 일이 겹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알려져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어느 정도 마무리 지은 뒤에 그랬으면 했다. 약간 걸리는 게 있었으니까.
“짜식, 그냥 우리 회사 구경 온 건 아닐 테고. 일단 내려. 다 왔다.”
“예? 벌써?”
“뭔 벌써야? 회사 코앞에서 전화 걸어놓고.”
피식 웃은 평석이 형은 바로 주차까지 해버렸다.
분명 넓은 도로인데, 뭔가 이상했다. 노란 줄이 그어져 있음에도 거의 대부분 길에 주차를 했던 것이다.
“이래도 돼요?
“되지. 여긴 단속 안 나와. 주차 공간 없거나 통행에 장애가 되는 데나 단속 돌지. 여기까진 올 이유가 없어.”
보니까 도로 옆으로 대는 차는 몇 대 없었다. 상가를 보고 전면주차한 차들도 많았고, 아예 후면주차를 한 뒤 도로에서 짐을 내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 재개발하려면 십오 년 걸린대. 사람도 없는 동네라서 그래.”
“아!”
천천히 돌아보는데 확실히 특이했다.
부산에선 보기 힘든 독특한 동네라고나 할까?
한쪽은 주유소고 그 옆은 카센터였다. 게다가 택배 회사가 두어 곳 보였고, 유통 회사와 식품 회사도 있었다.
또, 재활용 센터 옆으로 생수 사무실도 보였다. 대부분 건물들이 이 층이었고, 큼직큼직하고 널찍해서 마치 어릴 때 가봤던 시골 읍내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신기하지?”
“확실히 좀 그러네요.”
“그래도 이 동네 괜찮다. 우리끼리는 좀 그런 게 있거든.”
평석이 형이 실실거리면서 말하는데, 확실히 웃기긴 했다.
옆 생수 회사 가면 물은 공짜라고 했다. 유제품 대리점도 놀러 가면 우유는 그냥 마실 수 있다고 했고, 말 잘하면 택배도 천 원이면 된단다.
유통 기한 얼마 안 남은 건, 서로 돌아가면서 물물교환까지 하는데 대부분 그냥 준다는 것이다.
들어보니 분위기만 시골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도 서로 돕고 지내는 게 많단다.
한가하면 서로 짐 내리는 것도 도와주고 가끔 길에서 삼겹살 구워서 나눠 먹기도 한다나?
하여간 그런 동네라고 하더라.
“들어와라. 그래도 동생 왔는데 커피나 한 잔 먹이고 보내야지.”
이 층 사무실로 올라갔는데, 의외로 직원들이 제법 있었다.
이평석은 몇몇 사람들을 소개 시켜줬다.
“이쪽은, 우리 정 부장. 청과물을 담당하고 있고. 저기는 박 대리라고 정육 쪽이고, 여기는 우리 정숙 씨라고 경리 부장님 되시겠다.”
그 외에도 몇 명의 이름을 더 듣기는 했는데 솔직히 정신이 없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규모가 컸고, 나름 체계적이었던 것이다.
그냥 식당에 야채 납품하는 수준이 아니라, 한층 업그레이드된 전문 회사 같은 느낌이랄까?
“여긴 내 방.”
안쪽에 파티션으로 구분된 방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이걸 사무실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작은 난로 옆에 침대 매트리스가 보였고, 그 옆에 오래된 브라운관 TV가 있었다. 게다가 책상인지 식탁인지 알 수 없는 테이블에다가 냉장고에 작은 싱크대까지…….
“원래 밥 해 먹는 주방이었다더라. 돈 들이기 귀찮아서 이렇게 쓰는 거지. 그건 그렇고, 일단 그쪽에 앉아.”
강형우는 고민 끝에 매트리스에 앉았다.
그사이 이평석이 믹스 커피를 가져왔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자, 우리 깐깐한 동생이 그냥 왔을 리는 없고. 본론이 뭐냐?”
***
“회사를… 차리겠다고?”
“예.”
“흐음, 아무래도 단단히 결심을 한 모양인데… 너 그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알고 있죠. 그 전에 사무실부터 얻어야 하는데 이게 썩 마음에 드는 데가 없네요.”
강형우의 고백에 이평석은 피식 웃었다.
그 역시도 자신이 회사 차릴 때를 떠올렸으니까.
사실, 업자와 거래처는 적당한 친밀 관계가 중요했다.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져도 곤란한 것이다.
하지만 강형우는 예외였다.
원래 지성분식은 자신의 회사와 거래하기에는 기준 미달이었다. 고작 김밥 재료 납품하러 차를 움직이기에는 단가가 맞질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받아준 건, 정분석의 부탁 때문이었다.
또, 함께 일하기도 했으니 나중에 망하거나 하면 직원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덩치 값을 한다고 힘도 좋았고, 일도 부지런히 하는 성격이었으니까.
한마디로 탐나는 인재라고나 할까?
그 때문에 잘해준 것도 있었고, 요즘에 와서는 쏠쏠한 거래처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성장 가능성이 크기에 어느 정도 편의까지 봐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뜸 회사를 차리겠다니 놀랄 수밖에.
“어디까지 말해줄 수 있는데?”
“예?”
“뭘 알아야 돕든가 말든가 할 거 아니냐?”
이평석이 생각하는 사이, 강형우도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커피 마시고 잠시 견학(?)의 시간이 생겼다. 이평석이 전화를 받고 갑자기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해서 따라다니면서 구경했는데, 이 회사는 아까 봤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납품하는 식당만 무려 백여 개가 넘었다.
그중에는 강형우가 알 만한 유명 맛집도 있었고, 어떤 프랜차이즈의 경우 부산 지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 취급 물품도 어마어마해서 김밥천국 메뉴의 두 배는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위탁 판매까지 치면 서너 배 이상은 넘었던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올갱이국에 매생이도 취급했고 심지어 복국까지도 판매한단다. 그리고 몇몇 맛집과 제휴해서 인터넷 판매와 식당 판매까지 병행하기도 한다는 거다.
B22
어쨌든 예상보다 큰 규모였다.
마치, 일반인들은 모르는 외식 업계의 이면을 본 듯한 기분이랄까?
물론 이 역시도 평석이 형이 일부러 그런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아까 전화를 받는 게 너무 어색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작 거래처 사장한테 회사 구석구석까지 보여준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위생이나 청결 같은 걸 따질 수도 있었고 납품 단가가 공개되는 위험도 있었으니까.
그게 무척 고마웠다. 그만큼 자신을 믿고 있다는 뜻이 되는 거다.
강형우는 고민을 끝내고 입을 열었다.
“형, 제가요. 식품 회사까지는 아니고, 그냥 적당한 공간이 필요하거든요. 작게 사무 볼 수 있는 곳하고, 주방이 컸으면 좋겠어요. 냉동고도 한 대여섯 개 정도?”
“아니, 아니. 내가 묻고 싶은 건, 뭘 할 거냐고. 회사 차린다면서? 야. 그것도 종류가 한두 개가 아니다?”
“아, 제가 좀 앞서갔죠?”
“많이.”
이평석은 그렇게 말한 뒤 담배를 물고, 한 대를 권했다.
그걸 받아든 강형우는 잠시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언제부턴가 쉽게 믿기가 어려웠다. 진상 손님들에게 시달리면서 의심부터 하게 된 것이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닌 평석이 형에게 거리를 두다니.
이전이라면 진짜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시작은 일단 이렇게 할 거예요. 지성분식을 3호점까지 내고요. 거기서 하는 사전 준비 있잖아요?”
“육수 우리는 거?”
“그것도 있고요. 돈가스나 폭립 같은 건 미리 숙성하고 손질도 해야 하고…….”
강형우는 천천히 작업 과정들을 설명했다.
육수도 시간이 걸리지만, 주력 메뉴인 돈가스도 손이 많이 갔다. 이걸 가게에서 매일 하려니 순이 이모와 신원이 형한테 부담이 컸던 것이다.
“우선은 그런 작업들을 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거죠.”
“흐음, 대충은 이해가 가네. 가게가 셋이면 따로따로 작업하는 것보다는 한곳에서 해서 나눠 갖는 게 맞지. 실제로 라멘 체인점 같은 곳에서는 그렇게 하니까.”
“그리고 회사가 필요한 이유는요. 직원들 사대보험하고 이런 걸 확실하게 하려고요. 월급도 그렇고…….”
강형우가 설명하는 걸 들으면서 이평석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은 황당하고,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분식집 주인이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알바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회사를 차려서 같이 일하는 이들을 정식 직원으로 등록하겠단다. 사대보험에 보너스, 퇴직금까지 보장하는 식으로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이평석이 알기로 근로계약서조차 제대로 쓰지 않는 식당들이 많았다.
왜냐?
음식 장사는 경기에 큰 영향을 받는다.
장사가 잘될 때는 상관이 없지만, 그게 꾸준하게 이어지는 경우는 많이 없었다. 결국 매출이 줄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니 제일 먼저 직원들을 내보내는 것이다.
인건비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직원을 고용하면 그게 불가능하다.
잠시 고민하던 이평석은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