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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 리얼갑부-163화 (163/251)

# 163

163화 무슨 생각 해요

진짜 얼마 만에 이렇게 환하게 웃는 건지.

괜스레 자꾸 미안했다.

따지면 공지혜한테 사귀자고 한 것도 나였고, 많은 부탁을 한 것도 나였다.

누구보다 믿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때문에 주방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공지혜가 알아서 홀을 관리했었으니까.

오뎅 판매와 더불어 어묵국밥에 집중했을 때도 그랬다.

또, 분식집 파스타의 영감을 준 것도 공지혜였으며, 돈가스 때문에 개고생할 때도 무려 5㎏나 찌고 말았다.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음식 실험의 피해자(?)가 되었다.

영지가 그러더라.

저렇게 열심히 다이어트하는데도 살이 안 빠지는 건, 다 오빠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니 그때 책임 지라 했던 게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우리는 지성분식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었으며 지금도 함께였다.

“오빠, 무슨 생각 해요?”

“어?”

“솔직히 말해봐요.”

“아니, 그냥… 이렇게 여행 가는 게 처음이다 싶어서 뭐, 설레고 그렇다는 거지.”

대충 둘러댔는데 공지혜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웃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피부 움직임이 미동이 없었던 것이다.

괜히 뭔가 잘못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먹을 거 생각하죠?”

“앵?”

“얼굴 보니까 딱 그런 거 같은데요? 어디 가서 뭘 먹고, 또 뭐 먹고…….”

“아니, 아닌데?”

“됐고요. 우리 여행 온 거예요. 며칠 동안은 가게 생각하지 마요. 알았죠?”

“어? 어. 알았어.”

아주 여행 시작부터 단단히 단속하는데, 그냥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편하겠지 싶었던 것이다.

강형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공지혜가 폰을 꺼냈다. 비행기 모드로 해놨으니 사진 찍는 건 괜찮다는 것이다.

그렇게 잠시 창밖을 보며 여유를 즐기는 데 어느 순간 제주가 보였다.

부산에서 제주까지는 체감상 한 시간도 안 되더라. 지하철 1호선 끝에서 끝까지보다 짧았고, 전혀 지루함도 없었던 것이다.

공항에 내린 둘은 잠시 걸어서 지정된 장소에 도착했다.

잠시 대기하고 있는데, 마을버스 정도 되는 승합차가 왔고, 그걸 타고서 렌트카 회사로 향했다.

간단히 수속하고 타려는데, 공지혜가 폰을 꺼냈다. 이런 건 확실히 해야 한다면 렌트카를 돌면서 사진을 찍어댄 것이다.

이후 강형우는 행선지 선택을 공지혜한테 맡겼다.

첫 번째는 유명한 고기국수 집이었다.

***

“대기번호 37번입니다.”

표를 받아 들고 돌아보니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인터넷에 알려진 유명한 맛집이라고, 줄지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빠, 기다려도 괜찮겠어요?”

“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데 가기도 그렇잖아.”

시간은 11시 25분이었다.

이동하면 점심시간이 지날 확률이 높았고, 거기서도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몰랐다.

다행인 건, 날씨가 참 적당하다고나 할까?

11월 중순임에도 햇살은 강했다.

하지만 선선한 바람 덕분에 덥지는 않았다.

단지 불편한 건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뿐.

강형우의 커다란 덩치와, 다이어트 성공한 공지혜 덕분에 힐끗힐끗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대기시간이 40분이면, 근처 한 바퀴 돌아보고 올까?”

“저기 편의점 가서 음료수 하나 마시면 되겠네요.”

“오케이.”

둘은 손을 잡고 조금 걷다가 신기한 걸 발견했다. 천혜향 주스, 돌하루방 빵, 감귤 셔벗 같은 특산품을 파는 가게가 보였던 것이다.

호기심에 천혜향 주스를 마셔봤는데 나름 특색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경험 삼아서 좋은 거지 굳이 찾아 마실 정도는 아니다 싶었다.

다시 가게로 돌아왔는데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성분식도 폭립과 냉라면 사태(?)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었다. 음식 만들고 손님 받는 데만 집중하느라 거의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다.

직접 이렇게 이십여 분을 기다리다 보니 확실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불편함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냥 넘기고만 부분이 적지 않았던 거다.

아무래도 돌아가면 그늘막 정도는 해놓는 게 낫지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가게 안에서 종업원이 나왔다.

“37번, 37번 손님.”

“어, 우리다. 오빠 들어가요.”

공지혜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는데, 왜 시간이 오래 걸린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가게는 좁았고 테이블도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거기에 다들 맛을 음미하는 건지 느긋하게 식사하고 있었다. 아강발이라는 족발까지 시켜놓고서 말이다.

당연히 회전이 느리니 오래 기다릴 수밖에.

다행인 건 기다리면서 미리 주문을 한 덕에 음식이 빨리 나왔다는 것이었다.

“이게 고기국수?”

강형우는 처음 보는 비주얼이 무척 생소했다.

뽀얀 돼지 사골 국물에, 두툼하게 썬 삼겹살이 여섯 점 올라가 있었다.

국물의 점성은 일본 라멘하고 비슷했고 맛은 예상보다 훨씬 진했다. 면발은 조금 얇은 짬뽕 같았는데, 그게 의외로 국물하고 잘 어울렸던 것이다.

강형우는 세 젓가락을 뜨고 나서야 어느 정도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사실, 부산에도 유명한 고기국수 집들이 있었다. 동래 시장 입구 쪽에 3년 가까이 장사한 집도 있었고, 부산대나 남포동 쪽에도 간간이 생기곤 했다.

하지만 경쟁력이 부족했고, 고기국수라는 음식에 익숙해지기에는 장벽이 많았다.

일단 가격이 돼지국밥보다 비쌌다. 두툼한 살코기가 들어 있다고는 하지만 고작 국수(?)를 육천 원씩이나 주고 먹는다는 게 거부감이 컸던 것이다.

심지어 맛도 돼지국밥과 큰 차이가 없었다.

주혁 형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면서 더한 게 있었으니.

“신기해서 먹는 건, 한 번으로 족한 거지. 손님들이 바보가 아니잖아. 그리고 꾸준히 잘 팔리는 음식은 나름 합리적이어야 해.”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확실히 맛은 좋았다. 국물도 훌륭했고, 면발의 탄력이나 씹힘 정도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딱 그 정도가 전부였다.

이 먼 제주도까지 와서 차로 30분이나 달려왔고, 주차한다고 20분이나 씨름을 했었다. 게다가 손님이 많아 40분 넘게 기다려야 했었다.

그런 과정을 포함하면 또 올 수 있을까?

글쎄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먹을 맛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오다가다 여유 있을 때 느긋하게 먹는다면 모를까, 힘들게 찾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빠!”

“어?”

“맛있는 거 먹으러 왔으면, 음식에 집중해요. 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는 거냐고요?”

순간 뜨끔했다.

아무래도, 이건 직업병 같았다. 사람을 병신으로 만드는 그런 병 말이다.

“와! 좋다.”

강형우는 진심으로 감탄을 터트렸다.

바다가, 알던 바다가 아니었다.

솔직히 부산 사람들 상당수는 바다 가는 걸 그리 어려워하지 않았다.

강형우도 소풍이다, MT다 해서 많이 다녔다.

가깝게는 광안리, 해운대, 송정이 있었고 어쩌다 친구들과 태종대나 송도를 가기도 했었다.

또, 락페스티벌인가 할 때는 다대포도 갔는데 정말 백사장이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하지만 제주 바다는, 부산과 달랐다.

일단 물빛이 너무 아름다웠다. 에메랄드색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맑고 투명했으며, 시선을 확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모래도 고와서 많이 걸어도 피곤한 것 같지가 않았다.

“한 번 들어가 볼래요?”

공지혜의 제안에 강형우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차장에서 슬리퍼로 갈아신고 나와서 걷는데, 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림같이 하얀 구름 너머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 아래 수평선부터 바로 앞까지 수십만 개의 보석이 뿌려진 것 같았다.

투명한 녹색의 바다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으니까.

두 사람은 잠시 백사장을 걸으면서 여유를 만끽했다.

물장구치기도 했고, 남사스럽게 뽀뽀하는 셀카도 찍었다.

또 강형우는 공지혜를 업고 바다로 들어가 살짝 내려놓기도 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바지가 좀 젖기는 했지만,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다.

정말, 몇 년 만에 이렇게 노는 건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군대 제대 이후, 처음 같았다.

아무런 고민도, 스트레스도 없이 뛰어본 게 생전 처음 같다는 느낌까지 들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진짜, 바쁘게 살았구나.

그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하아, 좋다~”

정말 다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냥 여유로웠다.

왜 사람들이 여행이 필요하다고 했는지도 이해가 될 정도였다.

두 사람은 바다를 나와 조금 걷다가 적당한 카페로 들어갔다.

음료를 주문하고 나니 공지혜가 영상 통화를 걸었다.

그 대상은 어머니하고 영지였다.

어차피 여행 가는 걸 알리기는 했는데, 아이고 어머니. 너무 나가셨습니다.

신혼여행 아니라고요.

어쨌든 오해를 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통화는 금방 끝이 났다. 박혜숙이 통화요금 많이 나온다면서, 바쁘다며 후다닥 끊어버린 것이다.

영지하고의 통화는 행운이었다. 일이 바쁜 건지, 무슨 약속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협박 몇 마디를 듣고 끊기고 말았으니까.

이후, 지성분식 식구들과 통화를 했는데, 순이 이모가 선물 같은 거 사올 필요 없다고 하더라.

왠지 꼭 사오라는 말처럼 들리는 건 착각이겠지?

“그런데 오빠, 들었어요?”

“뭘?”

“민지 언니요.”

순간 불안함이 살짝 느껴졌다.

최민지는 요즘 지성분식 홀을 장악(?)하고 있었다. 공지혜를 대신해서 카운터를 봤고 알바들까지 교육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강형우와 공지혜가 빠진 지금, 명실상부한 지성분식의 3인자였다.

일단 손님들과 친화력이 높아서 서비스 부분까지 완전히 맡겨놓은 상태였다. 음료수나 음식 그냥 나가는 건, 최민지의 판단에서 결정된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문제가 없는 건 서로 친해서였다. 은선경과 히토미가 언니처럼 따르고 있었고, 은주와도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지혜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걱정이 앞서는 건 사실이었다.

그사이에 잠깐의 일(?)이 있었으니까.

“언니~ 결혼할지도 모른대요.”

“푸합.”

마시던 주스가 뿜어졌다.

잽싸게 고개를 돌려 공지혜가 참사를 입는 건 막았지만,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아니, 대체 며칠이나 됐다고.

“그, 그때 그 손님… 맞지?”

“예. 맞아요.”

“근데, 너무 빠른 거 아냐? 아니, 얼마나 봤다고……”

손가락을 꼽아 보니 고작 한 달여 정도였다. 아무리 전례(?)가 있는 사람들이라 해도 이건 너무 과속인 것이다.

아니,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 수준의 사고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

“신원이 형, 내일 오니까. 오늘만 힘내자.”

“예. 사장님.”

이영제가 그렇게 대답하며 튀김 솥에 불을 올렸다.

오늘이 신혼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동시에 이영제가 새로운 주방장(?)으로 임명이 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날이었다.

예상대로 손님들이 몰려왔고, 이영제는 능숙하게 주문을 처리했다.

브레이크 타임도 지나 강형우가 어느 정도 마음의 결심을 할 때, 갑자기 일이 벌어졌다. 단골 손님 하나가 급하게 전화를 받더니 가게를 뛰어나간 것이다.

그것도 애를 놔두고서.

그때 최민지가 잠시 애를 봐주겠다고 했는데, 그 손님은 그날 돌아오지 않았다.

별수 없이 최민지가 자기 집에서 하룻밤 재우겠다고 했다.

단골손님 애랑 친하기도 했고, 별다른 방법이 없기도 했으니까.

그날 저녁, 강형우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병선 삼촌이 뜬금없이 연락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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