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160화 (160/251)

# 160

160화 해방이다

“헐.”

자칭 천하의 강주혁이었다.

요식 업계의 황금손이었고,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런 사람조차 고개를 흔든다?

그렇다면 확실히 심각한 거였다.

그럼에도 오히려 은근한 투쟁심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정말이지 생소한 감각이었다. 도전 정신이 미치도록 튀어나오려 했던 것이다.

내가 미친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었다.

그때 주혁이 형이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하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가성비로 치면 폭망이다. 금을 살 돈으로 똥을 사는 거니까.”

“그렇게나 문제가 많아요?”

주혁 형은 고개를 끄덕인 뒤 몇 가지를 이야기해 줬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조언을 덧붙였다.

“어. 나도 사람들을 안고 가자는 주의지만, 그건 내 식구한테만 적용하는 거야. 남한테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그야… 그렇죠.”

“근데 거기는 안 그래. 같이 살든가, 나만 살든가! 선택지가 그거밖에 없어.”

잠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주혁 형이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진짜 그래야 한다는 거다.

물론 그 방식은 알고는 있었다.

압도적인 자금력과 월등한 음식의 맛, 그리고 최상의 서비스로 경쟁 가게들을 몰락시키면 된다. 이후 일대를 독식하면 적어도 이삼 년 정도는 편안하게 장사할 수 있는 것이다.

“형우야. 근데 왜 거기로 가려고 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는 거냐?”

“그러니까, 그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혁 형한테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알아보려면 금방 알 테고.

강형우는 짧게 한숨을 내쉰 뒤, 그 과정의 일을 이야기했다.

***

“이게 일이 잘되려고 하는 건지 꼬이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네?”

지성 분식에 대한 글이 조회 수가 폭발했다.

댓글도 많이 달렸고, 그게 관심으로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김밥 판매가 폭증하기 시작했고, 예상 외의 주문도 많이 들어왔던 것이다.

이후, 강형우는 지난 며칠 사이의 일을 다시 올렸다.

손님들이 놔두고 갔던 물건들이 대부분 제 주인을 찾았습니다.

많은 사랑과 관심이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카페 회원님들의 성원은,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알고 더욱 열심히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정말 별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문제는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이었다.

블로그의 내용을 믿지 못하겠다. 혹시 돈 주고 올리는 게 아느냐?

또, 새벽부터 쌀을 도정해서 정성 들여 밥을 짓는다고?

고작 동네 분식집에서 그런다는 게 사기 같단다.

김밥이 김밥이지, 뭐 별다른 게 있느냐고… 그렇게 말하는 게 다 속임수라고 했다.

그런 글들을 보니 순간 발끈했다.

아니, 무슨. 동네 분식집은 그렇게 하면 불법인가? 열심히 정성을 들여서 만들었는데, 그게 잘못됐다는 식으로 말하니 울컥 짜증이 났던 것이다.

홧김에 그 이야기를 했더니 신원이 형이 피식 웃더라.

그날 저녁에 메일로 파일 하나가 왔다.

맙소사!

압축을 푸니 사진 파일들이 수천 개였다.

그건 신원이 형이 그동안 일하면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매일 밑 준비를 하면서 빠뜨린 게 없는가 확인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라는 것이다.

확인해 보니, 장사하는 날 새벽에 밥 짓는 사진은 거의 다 있었다.

강형우는 다시 맘카페에 사진 서른 장 정도를 올렸다.

그 밑에 매일매일, 짓고 있는 거 맞다고 사진 정보를 확인하면 날짜와 시간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카페 회원님들이 원하신다면 지난 반년치 사진도 올려보겠다고 했다.

그걸로 게임 끝이었다.

이후, 지성 분식을 사기꾼 비슷하게 몰아가던 이들은 대거 욕을 처먹었다. 심지어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신상까지 탈탈 털리기 시작했다.

강형우는 진짜 큰 충격을 받았다.

알고 보니 길 건너 분식집 사장에, 근처 칼국수 집 아줌마였다. 게다가 대로변 김밥 카페 주인도 있었고 돈가스 배달 전문점 사장까지 튀어나왔다.

다른 게시판에 교묘하게 홍보했던 것들을 들통 나면서 밝혀진 것이다.

그 외에도 부정적인 댓글을 쓴 사람들 대부분이 경쟁 업체와 관련이 있었다.

같은 업계 사람들이면 서로 응원하지는 못할망정, 어찌 인간들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지.

어쨌든 강형우는 또다시 감사의 글을 올렸다.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앞으로 평생 음식 가지고 장난치는 짓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다음 날 저녁, 가게 마칠 때에 전화가 한 통 왔다.

이야기 들어보니 미희 어머님네 아파트 부녀회장이란다. 그러면서 가게로 한번 찾아가면 안 되겠느냐는 했었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일종의 소개였다.

“그러니까, 아파트 부녀 회장이 자기 친구를 불러다 줬다는 거네?”

주혁 형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예. 그렇게 된 거죠.”

강형우도 솔직히 그날의 황당한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부녀 회장이 친구라고 데려온 사람이, 강형우가 갔던 그 아파트 상가에 엄청난 지분이 있었다. 2층 PC방과 호프, 그리고 3층의 학원이 자기 거라고 했던 것이다.

학원 원장임과 동시에, 바로 뒤 대단지 아파트 입주민 대표란다.

진짜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분의 의도가 이해가 되었다.

자기 동네에 믿고 먹을 음식점이 없단다. 올여름에만 해도 식중독 때문에 열 명 이상의 학생들이 입원했었고, 수업 이외의 일에도 큰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또, 근처에 장염에 탈수 증상 때문에 위급하게 실려 간 노인분도 있단다.

그런 상황에서 친구가 지성 분식을 추천했다. 그래서 맘카페에 올라온 글을 확인하고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결론은 이거였다.

아파트와 학원을 통해 손님들을 몰아줄 테니 자기네 상가에 식당을 할 생각이 없느냐는 거다. 안심하고 믿고 먹을 수 있는 가게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때는 진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직접 상가를 방문한 게 그래서였다.

“일단 잘된 거긴 하네. 나도 알지만 그 아파트 단지가 인근 상권에 어마어마한 영향이 있거든. 대충 40% 정도는 될 거야.”

“그렇게 커요? 다른 아파트들도 많은데?”

“그게, 사람 심리 때문이긴 한데… 너, 그거까지 알게 되면 인간 불신에 걸린다. 그냥 그렇다고만 알아둬. 그리고 바로 결정하지 말고 상권 분석 냉정하게 해라.”

“예. 그렇게 해야죠.”

결코 소홀히 할 생각은 없었다. 공부했던 것과 다른, 미묘한 현상들이 곳곳에서 보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주혁이 형이 신신당부를 할 정도라면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 싶었다.

“그리고, 월세를 확 깎아 달라고 해.”

“예? 이미 많이 내린 거라던데…….”

“입장이 다르잖아. 넌, 네가 하는 음식에 대해 인정받은 거라고. 장사하러 가는 게 아니라, 초빙받아 가는 거야.”

그러면서, 동유럽 모 국가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하나 말해주었다.

작은 도시의 시장이던 로벤은 어떻게든 도시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꺼낸 묘책이 미식 골목이었다.

로벤은 유럽의 유명 레스토랑의 요리사들에게 우리 도시에 와서 살아달라고 자필로 편지를 보냈다.

집을 주고, 시 재정으로 가정부까지 지원하겠다.

자녀가 있으면 학비 면제에 수당까지 지급하겠다.

만약 이 도시에서 정년을 맞는다면, 떠날 때까지 노후 보장 연금도 받을 수 있다.

그 외에 몇 가지 혜택을 시장 이름으로 약속했었다.

그 결과, 많지는 않지만 수십 명의 요리사들이 몰려들어 작은 식당들을 차리기 시작했다.

맛있는 식당이 생기니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그러자 실력에 자신이 있는 요리사들이 찾아와 식당을 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선순환이 이어지자 도시가 크게 발전했단다.

“오, 정말 그런 것도 있었어요?”

“물론 엔딩은 아름답지 않았지만 나름 의미 있는 시도였지.”

강주혁은 그렇게 말한 뒤 입을 다물었다.

결국 그 도시는 세계 2차 대전의 폭격으로 사라지고 말았으니까.

“일단 그런 조건이라면, 쉽게 망하진 않겠지. 네 성격이라면 돈 많이 번다고 해도 음식 대충 만들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야 당연하죠.”

갑자기 주혁 형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할지가 궁금해졌다.

물론 자신은 그렇게 못 할 거라는 걸 알지만,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형, 형이 만약에 그 상권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나?”

“예. 뭔가 방법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아서요.”

잠시 생각하던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대답은 정말이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 일대 건물들을 모조리 사들일 거란다. 그런 뒤, 식당들을 전부 내쫓아 버릴 거라고 했다.

논리는 이거였다.

“나 혼자 살아남으면, 그게 성공한 거지.”

***

2박 4일의 동남아 신혼여행이었다.

밤에 비행기 타고 날아가서 밤에 오는 코스라고 했다.

어쨌든 강신원과 이은주가 떠난 사이, 강형우는 이영제를 제물(?)로 삼았다. 보조를 자처하면서 이영제 혼자 대부분의 주문을 소화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확실히 노련미가 부족하긴 하지만 실력은 인정할 만했다.

여기에 경험만 덧붙여 주면, 보조가 아니라 정식 조리사로 채용해도 될 정도였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을 때, 강형우는 이영제를 불렀다.

“너, 월급 올려줄게.”

“사장님? 정말요?”

“어, 대신 나 따라가자.”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이은주의 압제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만으로 환호성을 질러댔으니까.

어차피 신원이 형도 주방과 홀에 설 테니 인력 부족은 문제될 게 없었다. 바쁘다 해도 두어 달만 버티면 일이 한결 쉬워지게 될 테니까.

강형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홍성구까지 끌어들이기로 했다.

물론 순이 이모한테 미리 물어봤다.

지금이라면 정은혜랑 둘이서도 주방을 감당하기 충분하단다.

오히려 매출이 많이 줄어든 게 더 걱정이라나?

강형우는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지금으로써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하나하나 준비하는 사이, 신원이 형이 돌아왔다.

강형우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이거였다. 이은주를 보자마자 깍듯이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러면서 말했다.

“형수님, 돌아오셨습니까? 제 선물은요?”

“끄아아. 해방이다.”

정말 이렇게 오래 자보기는 최근 몇 년간 처음이었다. 허리가 아플 정도로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서만 하루를 보냈던 것이다.

맞다.

강형우는 이제 출근을 하지 않았다.

인수인계는 완벽하게 끝났고, 본점과 2호점을 왕복하면서 확인하는 일은 공지혜에게 넘겼다.

명실상부한 지성분식의 2인자가 된 셈이다.

어쨌든 강형우는 오늘 하루 침대에서 뒹구는 것에 충실했다.

물론 그냥 논 건 아니었다.

명상을 하면서,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리고 오랜만에 장백호의 기억까지 살폈다.

확신은 못 하지만 이번 일이 기회 같았다. 돈을 벌고 못 벌고를 떠나서 인생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렬했던 것이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강형우는 해가 질 때가 되어서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강주혁의 말대로 상권을 확인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

“와, 맛없다.”

이건 진심이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나 할까?

떡볶이가 맵고 달기만 했다. 두 맛이 섞이지 않고 따로따로 놀았던 것이다.

게다가 떡은 짰다.

아무래도 오뎅 국물에 너무 오래 담가놨던 것으로 떡볶이를 만든 모양이었다.

적당히 익었을 때 빼놔야 하는 걸 까먹은 게 분명했다.

“에휴, 이러니 장사가 안 되지.”

강형우는 매슥거리는 속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갔다.

음료수를 고르면서 보니 의외로 가게가 넓었다. 안쪽에 손님들이 먹고 갈 수 있는 테이블만 무려 여섯 개나 보였던 것이다.

“가만? 다 이런 건 아니겠지?”

강형우는 고개를 갸웃거린 뒤 단숨에 콜라를 비웠다.

아무래도 근처 편의점들부터 돌아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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