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161화 완전 개판이네
“흐음.”
설마 싶어서 근처 편의점을 다 들려봤다.
고작 10분 거리에 네 곳이나 있었는데, 다 그랬다. 손님들이 여유롭게 먹고 갈 수 있게 테이블과 의자가 전부 있었던 것이다.
특히 마지막 편의점은 정도가 심했다.
공간이 남아돌아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전체 면적의 절반 가까이가 테이블이었다.
그것도 2인짜리가 무려 열 개나 됐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건 뻔했다.
공급이 있으니 수요가 있다는 것!
즉, 저만큼이나 되는 테이블이 어느 정도 이상은 찬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인근 편의점 네 곳이 다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한산한 편이었다.
“가만?”
시간을 보니 거의 8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편의점 아저씨가 눈치를 살피는 게 보였다.
강형우는 재빨리 소화제 하나를 계산하고 먼저 나왔다. 그러자 곧 편의점 문이 잠기고 아저씨가 어딜 다녀왔다.
아무래도 화장실 같았는데 그러면서 담배까지 피우고 온 모양이었다.
이후, 강형우가 예상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갑자기 학생들이 편의점으로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라면과 삼각김밥, 도시락들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고 금세 자리가 꽉 찬 것이다.
심지어 네 개나 되는 전자레인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학생들이 식사를 하고 편의점을 나가기까지, 거의 십여 분이 걸렸다. 그리고 편의점 아저씨는 묵묵히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분리수거를 하고, 테이블을 닦고, 의자를 정리하고.
동작이 능숙한 걸 보니, 아무래도 항상 이런 식인 것 같았다.
“꼭, 학교 매점 같네.”
진짜 고등학교 다닐 때가 생각나는 광경이었다.
쉬는 시간은 고작 10분.
선생님이 조금 일찍 마쳐주면, 땡 소리와 함께 질주가 시작된다. 남들보다 빠르게 도착하기 위해 다리가 미친 듯이 움직이는 것이다.
매점에 들어가 라면을 외치면, 나오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미리 삶아놓은 면에 라면 국물이 부어지면 끝.
그걸 후후 불어서 식혀가며 먹고 나면 쉬는 시간은 4분이나 남아 있었다.
이후, 달달한 코코아 하나를 뽑아서 느긋하게 마시고 들어가면 딱이었다.
고작 10분이지만, 한창때의 학생들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돌도 소화시킬 나이라 그런지 그렇게 먹고도 오히려 배가 고팠을 정도였으니까.
“딱 분위기가 그러네.”
강형우는 근처 상가를 돌면서 다시금 자신의 판단을 확인했다.
정말 학생들이 많았다.
그 맛대가리 없던 떡볶이집조차 절반 가까이 손님들이 차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한차례 학생들이 몰려왔다 사라지자 가게들이 한산해졌다.
강형우는 그중 한 곳인, 김밥 마을로 들어갔다.
뒷정리가 한창인지 주방은 조금 바쁜 듯했고, 서빙을 보던 아주머니는 허리를 펴고 있었다.
한쪽에 자리를 잡은 강형우는 메뉴판부터 살폈다.
그냥 흔한 김밥천국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가격은 김밥이 이천 원에 라면이 삼천오백 원 수준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강형우는 손을 들었다.
“저, 여기 김밥 한 줄 주세요.”
“김밥? 한 줄만?”
아주머니는 뚱한 표정으로 정말이냐고 묻고 있었다.
결국 강형우는 라면까지 추가로 시켜야 했다.
잠시 후, 라면이 먼저 나왔는데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5분 남짓, 게다가 면도 다 익지 않아 뭉쳐 있었고 계란은 반도 안 되어 보였다.
물 뜨는 척하고 주방을 쳐다보니 단번에 답이 나왔다.
한쪽에 있는 통에 중탕 식으로 데워진 물이 보였다. 게다가 지저분한 PT병 안에 계란물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조리 과정은 이럴 것 같았다.
데워진 물을 냄비에 넣고 화력을 올리면, 불과 30초 만에 끓는다.
때문에 바로 스프와 면을 투하한다.
잠깐 다른 일 하면서 몇 번 젓다가, 마지막에 계란물 한 바퀴를 돌리고 파와 야채를 넣어주면 끝.
이건 의외로 많은 가게에서 쓰는 방식이었다.
특히 손님 몰릴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경우에는 무척 효과적이었다.
강형우는 일단 국물부터 맛을 봤다.
라면스프에 설탕과 조미료 약간, 그리고 후추로 냄새를 가린 그런 국물 맛이었다.
예상대로, 없으니 먹는다 정도의 맛이었다.
“여기 김밥.”
서빙 아주머니가 턱 하고 김밥을 놓고 가는데, 진짜 손이 가지 않았다. 참기름 바른 부분에는 윤기가 있었지만 아래쪽은 김이 말라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손님이 와서 주문받고 마는 게 아니라, 미리 말아놓은 거였다.
그런 김밥이 거의 열 줄 이상이 쌓여 있었다.
그래도 맛이나 보자는 심정으로 먹어보니, 밥이 깔깔했다.
특히 끝부분은 너무 말라 있어서 라면 국물에 적셔야 겨우 들어갈 정도였다.
“심하다.”
강형우의 진심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라면이고 김밥이고 하니, 그럭저럭 들어가기는 했다.
하지만 끝내 다 먹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먹을수록 참기름 냄새와 오래된 나물 냄새가 더해져서 느끼하고 더부룩했던 것이다.
중요한 건, 이 가게만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이다.
***
“완전 개판이네.”
강형우는 모니터 속의 지도에 표시를 했다.
지난 사흘간, 아파트 상가 근처에 자리 잡은 식당들 열다섯 군데를 들렸다.
정말이지 하나같이 맛이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음식 장사를 하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들어보니 망하지는 않는다더라.
그럴 만했던 것이 기본적으로 학생 숫자가 많았다. 인근에 아파트 단지만 다섯 개였고, 학원들이 밀집된 동네라 그 숫자가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막힌 상권이 문제였다.
제법 먹을 만한 음식점들은 지하철 입구 근처나 큰 대로변에 있었다.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치킨집, 롯X리아, 그 외 만두집 같은 분식집들이 대부분 거기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거기까지는 가는 데만 10여 분이 걸렸다.
왕복으로 치면 20분에 식사시간까지 치면 거의 3, 40분 정도였다. 결국 지리적 한계 때문에 학생들이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음식 맛이 개판이라도 장사가 되는 게 그래서였다.
“진짜, 배짱 장사네.”
상가 관리소 아가씨가 그랬다.
아파트 단지 안쪽에서 입구까지만 5분에서 10분 이상 걸린다. 거기서 역까지 10여 분을 걸어서 나가려면, 무지하게 귀찮다고 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집에서 라면이나 끓여 먹고 말지.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었고, 피치 못할 사정상 식당을 이용해야 했다. 그런데 정말 먹을 만한 집들이 거의 없단다.
물론 차를 이용하면 해결되지만, 이 역시 주차가 문제였다.
지하철 역 근처에 공간이 없어서 뺑뺑이만 한참을 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오히려 더 스트레스가 된다나?
“이야, 이건 진짜 막힌 상권 최악의 케이스네. 동네 사람들이 짜증 내는 게 이해가 돼.”
강형우라면, 차라리 이사를 결심할 거다.
정말 그만큼 음식들이 형편없었다.
미리 만들어놓은 김밥은 말라붙어 있었고, 라면은 초등학생이 타이머 맞춰놓고 끓이는 것보다 못했다.
돈가스는 냉동실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누린내가 났고, 떡볶이나 튀김은 전날 만들어놓은 걸 데워서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또, 슬쩍슬쩍 들여다본 주방은 개판이었다.
청결하지 못하다 정도가 아니라, 더러웠다. 당장 신고 전화를 넣어볼까 싶을 정도로 찌든 때가 가득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한 통은 했었다.
찌개에 검은 깨 같은 게 있어서 봤더니 초파리였다.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주방을 봤더니, 그런 게 수십 마리가 날아다녔다.
분명 오래된 음식물 찌꺼기가 발효 숙성(?)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쓰레기만 잘 버리고 매일매일 바닥 물청소만 해줘도 되는 건데 그런 기본조차 안 한다는 증거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형우를 질리게 한 건 따로 있었다.
너무 불친절했다.
아저씨나 아주머니들은 반말이 기본이었다.
주문, 더 안 시켜? 얼마.
거의 이런 식이었다.
또, 나이 좀 되는 손님이나 단골이 아닌 경우 그냥 툭 하고 음식을 놓고 나갔다.
뭐, 바쁘면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그게 계산할 때까지 이어졌다.
현금으로 내란다.
기계 고장 나서 카드 안 받는다고 여러 군데서 그러는데, 진짜 울화가 치밀 정도였다.
강형우도 음식 장사를 하기에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한 달 카드 수수료만 수백만 원을 내봤다. 자동으로 매출로 잡히기 때문에 세금도 몇 배나 더 붙기도 하는 것이다.
그게 싫어서, 아니, 그 돈조차 악착같이 벌어가려고 현금을 강요하고 있었다.
물론 사람마다 판단의 기준은 다르다. 때문에 잘하느니 못 하느니란 말은 하기가 어려웠다.
중요한 건, 그게 불법이라는 것!
따지면 대놓고 탈세하겠다는 말과 같은 소리였던 것이다.
“하아~ 이제야 알겠다.”
왜 아파트 동 대표 아주머니가 간곡히 부탁을 했는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게다가 알아보니 인근 시세보다 월세가 한참이나 저렴했다.
뭘, 차려도 돈을 버는 위치였다.
때문에 들어온다는 사람이 많아서 200만 원 이상은 받는 자리란다.
“문제는 아직 걸리는 게 있다는 건데…….”
전 주인이 입원했다고 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려서 여러 합병증이 왔다는 것이다.
권리금을 시설비만 받고 넘긴다는 게 그래서였다.
물론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하지만 그 자리에 지성분식 3호점을 차리면, 분명 비슷한 일을 겪게 될 게 분명했다.
그게 유일하게 걸리는 거였다.
강형우는 꼼꼼하게 몇 번이나 계산을 반복했다.
냉정하게 따지면, 여긴 노다지였다. 게다가 주혁 형이 그러지 않았던가?
혼자라도 살아남으면 그게 성공이라고!
***
“흐어, 귀엽다.”
강형우는 진짜 심장이 쿵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140일 됐단다. 그런데 정말 인형 같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아직 몸도 돌리지 못하고 바닥을 꾸물거리는데, 어찌 이리 귀여울 수가 있는지.
“형님, 어떻습니까? 저 많이 닮았죠.”
김민석이 딸을 끌어안고 촐싹거리는데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전체적으로는 윤다정의 느낌이 있었지만, 눈매와 코는 김민석을 빼다 박았다.
웃으면서 눈이 가늘어지는 것도 녀석이 아부할 때와 비슷했고.
“솔직히 인정하긴 싫지만, 닮은 건 맞네. 아무래도 돈 많이 벌어놔야겠다.”
“지금도 열심히 저축하고 있습니다. 여기 전세로 들어왔으니까 악착같이 모아야죠.”
아무래도 말뜻을 오해한 모양이었다.
사실, 이대로 크면 조금은 곤란하다 싶었다. 한때 양아치 짓을 하던 녀석인지라, 여자애가 그 눈매 그대로라면 남자 꽤나 팰 것 같았던 것이다.
해서 혹시나 모를 원망에 대비하기 위해 수술비 적금이나 들라는 거였다.
“어, 형우 와 있었네?”
덕수 형과 형수님이 아기 용품들을 주렁주렁 들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직후, 혁기 형이 기저귀 한 박스를, 창주 형과 현우 형도 이런 거, 저런 걸 들고 찾아왔다.
맞다.
오늘은 집들이 겸, 소박한 백일잔치였다.
날짜는 한참이나 지났지만 여기 전셋집 이사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원래 김민석은 바로 이사를 하려고 했는데, 집주인한테 문제가 생겼다.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무려 한 달을 입원하게 됐던 것이다.
때문에 이전 세입자 이사도 늦어졌고, 도배, 장판 같은 일들도 미뤄지고 말았다.
하지만, 김민석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녀석이 그러더라.
자신이 번 돈으로 얻은, 첫 보금자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