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153화 (153/251)

# 153

153화 가르쳐 주세요

어쨌든 결과는 좋았다.

맘 카페에는 몇 번이나 지성분식이 좋아졌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이전보다 분위기가 편해졌고, 사장님도 인상(?)보다는 좋은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퍼졌던 것이다.

특히 조금 안 좋다 싶은 글이 올라오면 편들어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

-지성분식, 요즘 많이 바뀐 것 같지 않아요?

-예. 서비스도 좋아졌고, 더 친절해진 것 같아요.

-거기 젊은 사장님이 하루 네 시간 자고 장사한대요. 한동안 음식에만 신경 썼다고 손님들한테 미안하다고 하네요.

-재료 떨어질 때까지 커피도 서비스로 내기로 했다더라고요. 근데 이제 못 마신다니 아쉽네요. 스벅보다 맛있었는데.

-진짜예요?

-의외로 커피 공부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모스모스 사장님한테 직접 받아온대요.

-헐, 그 집 대박인데.

-그래도 난 별루임. 손님 대하는 게 싸가지가 없음.

-난 님이 더 별루임. 반년 넘게 다녔는데 까칠하게 대하는 거 본 적이 없음.

-근데 애들 데리고 가기 불편한 건 사실이죠.

-가게 작아서 어쩔 수 없대요. 좀 불편해도 뒤쪽 주차장에 유모차 놓고 돌아서 오라는데, 알아서 선택할 일이라 생각해요.

-주차장이 있었어요?

-예. 거기 공간 있는데, 유모차만 따로 보관할 수 있게 해놓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마음에 안 듦. 애들이 먹어봐야 얼마나 먹는다고 뭐 시킬 때마다 돈 달라고 함.

-어린이 메뉴 만들었다고 하잖아요. 가격도 거의 반값이던데.

-다 상술이죠.

-전 님이 심술 부리는 거라고 봄.

게시판의 글을 읽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마 이전 같았으면 이렇게 마음 편히 보지는 못했으리라.

무엇보다, 곰 같은 덩치의 청년이 사장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전까지는 신원이 형이 진짜 사장이고, 강형우가 바지사장이라는 말이 돌았으니까.

그 외에도 변화가 생겼다.

“사장니~ 임.”

손님들이 이전보다 친근하게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덕분에 일은 더 바빠졌지만, 기분은 몇 배로 좋았다. 월말에 정산해서 돈을 셀 때보다 훨씬 말이다.

사실, 강형우도 사람인 이상 실수할 수도 있었다. 그걸 이번 일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깨달은 것이다.

무엇보다 다시 한번 자신과 지성분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

이제 홀 서빙은 강형우가 없어도 충분했다.

본점에서부터 실력을 다져온 공지혜가 있었고, 은선경도 그럭저럭 기본은 했다.

여기에 최민지가 가세하면서 어지간한 트러블은 다 해결해 버렸다.

확실히 아줌마라 그런지 화끈하다고 해야 하나?

가끔 흥분하면 사투리를 심하게 쓰기는 했지만, 의외로 그런 점에서 손님들이 좋아했다.

특히 미희네 아주머니 손님들하고 친했는데 이전부터 아는 사이라는 것이다.

몰랐는데, 최민지는 지성분식에 들어오기 전까지 광안시장에서 작은 식당을 했다. 할머니와 함께 국수와 김밥을 팔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할머니가 아파서 수술한 뒤로 장사를 접었단다.

임대료도 많이 올랐고, 이전만큼 매상이 나오질 않아서 결국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최민지가 생업 전선에 나선 건 그 때문이었다.

다행히 할머니가 아들을 봐주면서 집에서 부업을 하고 있단다. 어째 볼 때부터 생활력이 팍팍 넘친다 싶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여간 그때부터 강형우는 홀서빙을 떠나 주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파스타를 포기하고, 폭립에 매달려야 했다. 그리고 냉라면까지 메뉴로 내놓아야 했으니 끊임없이 음식만 집중해야 했던 것이다.

때문에 손님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역시 그게 문제였어. 음식 장사는 맛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닌데.”

이미 본점을 할 때 깨달은 거였다.

맛은 기본에 친절한 서비스는 필수였다.

그 외 여러 가지가 필요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인테리어에, 계절별로 입맛 땡기는 음식에, 무엇보다 손님들과의 소통과 교류가 중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2호점이 자리를 잡으면서 주방에 들어가는 바람에 그런 부분이 소홀했었다.

물론 공지혜도 잘하고 있었지만 사장과 홀 매니저의 입장은 달랐다.

홀 매니저의 경우, 말 그대로 서빙과 청소, 접객, 반응 등을 확인한다. 손님이 들어와서 계산하고 나가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원활하게 돌아가는가를 우선해서 관리하는 것이다.

반대로 사장의 경우, 만족도를 우선시해야 했다.

맛이 부족하면 합리적인 이해를 위한 설득을 해야 하고, 개선을 약속해야 했다.

청결이 문제가 되면 직원을 불러 지적해야 했고 손님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어야 했다. 그 외에도 많은 불만 사항을 들어주고 그 손님이 다시 왔을 때 고쳐졌음을 느끼게 해야 했던 것이다.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손님을, 이득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기준으로만 살폈던 거다.

강주혁이 지적한 게 그거였다.

“사람을 돈으로만 보지 마라. 네가 장사를 하든, 큰 기업을 운영하든, 커다란 사업체를 꾸려 나가든 결코 그걸 잊어서는 안 돼!”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때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해서 강형우는, 예정된 일정을 조금 미뤘다. 손님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

“그러니까, 요리 강습을 하자고?”

강신원은 몇 번이나 눈을 깜빡거렸다.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확신할 수 없어서였다.

“강습이 아니고요. 일종의 견학? 아니면 일일 요리교실? 뭐, 그 정도로 보시면 돼요.”

“아니, 왜?”

“가게 홍보 겸 다 미래를 위한 투자죠.”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연습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공지혜를 통해 접수받은 지원자들이 있었다.

1차는 미희 어머니와 친구들, 그리고 아파트 아주머니들이었다. 지성분식의 주방 구조상 딱 8명만 받기로 했던 것이다.

2차는 비교적 젊은 주부들과 근처 사무실 아가씨들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고 하니……

강형우는 얼마 전부터 홀에서만 붙어 있었다.

이제는 손님이 먼저 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말하려는 의도였다.

해서 손님들이 오면 최민지를 보내지 않고 직접 맞았다.

“백순일 씨, 오늘도 오셨네요.”

“아, 예.”

“주문 도와드릴까요?”

“예. 늘 먹는 걸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여기 라면 하나, 김밥 두 줄요.”

강형우는 주문을 하면서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얼마 전부터 우리 가게 단골이 된 애 아버지였다. 문제는 상당히 껄끄러운 상대라는 거였다.

맞다.

전에 무고죄로 고소한 그 여자(?)의 남편이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땐, 진짜 당황했었다.

문제는 경찰에서도 아무 연락이 없다는 거였고, 이병선 삼촌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애 때문에 우리 가게 들리기 시작하면서 단골이 됐던 것이다.

참 세상 희한하기도 하지.

잠시 후, 강형우의 사인에 맞춰서 라면과 김밥 두 줄이 나왔고, 돈가스 반쪽이 더해졌다.

“저기 사장님.”

백순일이 부르자 강형우가 달려갔다.

“예.”

“저기, 이거 돈가스 주문 안 했는데요?”

“어? 그러네요. 잠시만 확인 좀 하겠습니다.”

강형우는 모르는 척, 최민지를 불렀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어린이 돈가스 주문이 잘못 들어갔습니다.”

“그래요?”

강형우는 일부러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뒤 백순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이 실수한 모양이네요.”

“예. 죄송해요. 현기가 종종 시켜서 제가 주문을 잘못 넣었어요.”

최민지까지 미안해하자 백순일이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안 그래도 양이 좀 부족하다 싶었는데…….”

“이건 저희 쪽 실수니, 당연히 돈은 안 받겠습니다.”

강형우는 곧바로 말하고는 백순일이 뭐라 하기도 전에 공지혜에게 취소하라고 시켰다.

물론 전부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그 이유는 최민지가 잘 알 터.

사실 얼마 전부터 직원들에게 약간의 재량권을 줬다. 필요하다 싶으면 서비스 팍팍 줘도 된다고 했던 것이다.

매운 거 못 먹는 손님이 불돈가스 시키면 일단 주의를 주라고 했다. 그래도 시키겠다면 중간에 눈치껏 쿠울피스나 음료수 하나씩 서비스하라고 말해줬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 같아서 그냥 웃으며 넘기기로 했다.

그렇게 한 건 해결하고 돌아서는데 또 강형우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예.”

강형우는 쪼르르 달려갔다.

단골 중의 단골, 미희네 아주머니들이 불러서였다.

“저기, 전에 이야기해 주신 거 있잖아요.”

“예? 어떤 거요?”

“김밥에 쓰는 맛간장 만드는 거요.”

“아!”

이 단골 아주머니들은 가끔 음식 어떻게 만드는지를 궁금해할 때가 있었다. 특히 애들 맛있는 거 해주고 싶다고 물어보면 거절하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우리 다다음 주에 나들이 가기로 했거든요.”

미희 어머니가 그렇게 말문을 열자 곧 수다 포문이 열렸다.

“천태산에 호수가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아파트 부녀회에서 단체로 가기로 했는데요. 당일치기로 가서 도시락 먹고 오기로 했어요.”

“그런데 옆 라인에 1008호 아줌마가 있는데요.”

양쪽에서 번갈아 가며 이야기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결론은, 이거였다.

옆에 단지와 묶어서 부녀회 아주머니들끼리 당일치기로 안태공원에 가기로 했다. 번거롭게 고기 구워 먹기는 그렇고 각자 도시락 먹고 간단하게 놀다 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옆 동 아줌마였다.

인터넷에 유명한 요리 블로거라고, 외식은 건강에 안 좋다고 동네 식당들을 싸잡아서 돌려 깠단다. 게다가 조미료에 화학약품 투성이라고 애들 짜장면 한 번 안 시켜줬다는 것이다.

순간 발끈했다.

“아니, 애들이 정말 짜장면 한 번도 못 먹어봤다고요?”

“우리 딸애 친구인데 그러더라니까요? 남편도 족발 한번 편하게 못 먹는다고 반상회에서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맞아요. 시켜 먹는 음식들이 다 자극적이고 몸에 안 좋다고 어지간한 건 집에서 만들어 먹는데요.”

“헐.”

들어도들어도 남편과 딸이 불쌍하기만 했다.

외식은 일체 금지요. 야식은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이 만들어주는 것만 먹어야 한단다.

특히 맵고 자극적인 건 절대 반대해서 심심하게만 먹는다고 했다.

심지어 남편이 말하길 풀 뜯는 소로 진화하고 있다나?

물론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이고, 얼마나 잘난 척을 하는지, 우리가 이 집은 다르다고 했는데도 조미료 안 쓰는 집 없다고 하는데…….”

그 순간 강형우는 눈치를 챘다.

모든 손님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아주머니들의 말은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약간의 과장과 도발이 섞여 있는 경우도 많았고 선의의 거짓말도 적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한발 물러서서 냉정하게 들어보니 지성분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냥 음식에 까다로운 별난 여자 하나가 주변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경우에 불과했던 것이다.

해서 강형우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좋겠습니까?”

웃으면서 묻는데, 뭔가 한이 응축된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김밥 만드는 것 좀 가르쳐 주세요.”

***

긁적긁적.

강형우는 몇 번이나 머리를 긁어댔다.

김밥 만드는 걸 가르쳐 주는 건, 사실 일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굳이 할 이유도 없다는 거다.

괜히 번거롭기만 하지.

하지만 무시하고 넘기기에는 뭔가가 많이 걸렸다.

특히, 미희 어머니네 모임은 단골 중의 단골이었다. 손님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매너까지 좋았고, 맘 카페에서도 우리 가게를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그런 고마운 분들이 부탁을 하는데, 냉정하게 거절하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나쁜 것도 아니네?”

약간의 수고로움만 더한다면, 의외의 기회였다.

지성분식 홍보도 겸할 수 있었고 신원이 형을 보다 자연스럽게 내세울 수 있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