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151화 정말 죄송합니다
쿵.
진짜 무쇠 프라이팬으로 뒤통수를 한 대 제대로 후려 맞은 것 같았다.
그만큼 충격적이었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지 취급이라?
정말 그런 거였나?
사실 하면서도 약간 찜찜한 같은 게 있었다. 꼭 이런 식으로밖에는 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도 오래했던 것이다.
하지만, 달리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신원이 형이 점장으로 일하려면 그런 손님들은 어느 정도 정리하는 게 맞았다.
직원들 스트레스 역시 상당했고 자신조차 몇 번이나 욱하는 걸 느꼈으니까.
특히 폭립 같은 경우는 몇 번이나 예약 취소도 겪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손님이 그 손님들이었다.
결국 단골만 예약받는 걸로 돌린 게 그래서였다.
그 외에도 패악질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숟가락 젓가락 훔쳐가는 건 애교였다.
제발 생리대는 휴지통에 버려 달라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몇 번이나 변기가 막혔고, 결국 출장을 불러야 했다.
피 같은 생돈 7만 원이 대체 한 달에 몇 번이나 나갔는지…….
또, 주차장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자기 집 쓰레기를 버리기도 해서 CCTV까지 달아야 했다.
그 외에도 성질 긁는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태연하게 가게 입구에 주차를 하지 않나, 다른 손님들 있는 데서 애기 기저귀를 갈지 않나, 심지어 식사 다 한 뒤 노트북을 펼쳐서 영화 보던 학생도 있었다.
정말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행동들이었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짓말인 줄 알더라.
아무리 뇌가 장식인 인간들이 많다고 해도 정말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그런데 전부 실화였다.
강형우 본인이 겪었고, 공지혜와 은선경, 최민지가 일주일에도 여러 번 당했던 일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다.
그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맘카페에 버젓이 올라왔다는 거다.
소비자를 우롱하는 가게에 대한 복수란다.
강형우가 빡 돌아서 며칠 개고생하며 메뉴판을 바꾸고 음식을 새로 만든 게 그래서였다.
그때, 강주혁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형우야! 그 미친년들이 커피 안 시키고 후다닥 나가는 게 그렇게 보기 좋았냐?”
“그게…….”
“백번 양보해서, 그 손님들이 잘못한 건 맞지. 어디 할 짓 없는 미친년들이, 사람 목숨 걸고 장사하는 데 와서 깽판을 부려.”
“아니… 형.”
“썅년들이, 세상 편하게 살아서 그래. 자기밖에 모른다고. 장사가 얼마나 힘들고 개 같은지 직접 겪어본 사람들은 절대 안 그러거든.”
진짜 흥분했는지 강주혁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나도 그런 인간들 수십 트럭을 겪어봤어. 그년들이 보기에 그러겠지. 사장이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드립니다 하니까, 좆도 없는 걸로 보이겠지.”
순간 감정 이입이 되니까, 울컥했다. 주혁 형이 욕을 하는 게 오히려 시원하게 들렸던 것이다.
“게다가 지성분식은 냉정히 말하면 작은 가게다.”
“예.”
“개념 없는 애들은, 그 작은 가게가 얼마나 힘들게 유지되고 있는지 몰라. 그냥 쉽게 차려서 쉽게 번다고만 알고 있지 네가 음식에 들이는 노력과 부지런함을 보려 하지 않거든.”
“그건, 어쩔 수 없죠.”
“형우야, 나도 잘 알아. 이미 여러 번 망해봤거든.”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시작부터 잘 풀려서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강주혁이 피식 웃었다.
“야. 나도 사람이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한때는 하루 두 시간 자고 일하기도 했어. 돈 없을 때도 많았고 정말 찌질하게도 살았지.”
라면으로만 끼니를 때우다가 밥이 먹고 싶었단다.
결국 이천 원짜리 도시락 사서 반으로 나눠 하루 두 끼를 먹었다고 했다.
그러다 장염이 걸렸다. 병원비 아낀다고 사흘을 끙끙 앓다가 죽을 뻔했다는 것이다.
강형우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공감이 되었다.
분석이 형네 취직하기 전에, 집에 돈을 보내는 바람에 쉬는 날 굶어야 했었다. 그때 도시락 아껴 먹는다고 했다가 피똥을 쌌던 것이다.
“황룡 처음 할 때는 배달도 계획했다가 접었지. 가게 하나를 야간에 포차 식으로 바꿔서 영업하기도 했는데, 어쩌다 보니 미팅 술집이 되더라고.”
이야기를 듣다가 빵 터지고 말았다.
하필 급하게 땜빵으로 부른 알바가, 전직 나이트클럽 웨이터였단다. 손님은 몰려드는데 자리가 없으니 합석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그게 소문나서 동네 노총각들이 미친 듯이 밀려왔다나?
순간, 최민지의 기지가 생각이 났다. 폭립 때문에 손님들이 밀렸을 때, 딱 한 번 임시로 그렇게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유는 달랐다.
보다 많은 손님들에게 폭립이라는 음식을 경험해 주고 싶어서였다.
어쨌든 주혁 형은 한참을 실패담을 늘어놓았다.
황제 짬뽕에 대한 비화도 있었고, 어이없는 요리 대결도 해야 했으며, 홍보를 위해 간판 돌리기 묘기를 하다가 사고가 나기도 했다.
하필 비가 오는 바람에 점프 착지를 실패했고, 중요 부위를 크게 다치는 일을 겪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충격에 쓰러지던 장면이 크게 화제가 돼서 당시 뉴스에 나오기도 했단다.
“마. 지금은 괜찮아. 둘째 나오는 거 보면 몰라?”
“아. 예.”
“됐고, 술 따라봐.”
“옙.”
강주혁은 글라스 가득 채워진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 뒤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매운탕을 후루룹 했다.
“형우야. 잘 생각해. 한 가게의 사장은, 집으로 치면 가장이야. 직원들은 식구고 가족이고. 당연히 지킬 의무가 있는 거야.”
“예. 맞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은 그걸 몰라. 씨발! 우리 아버지 네가 온갖 욕을 처먹어가면서 힘들게 돈 버는 게 뭣 때문인데? 다, 자식 새끼 키우기 위해서 그러는 거잖아.”
갑자기 가슴에 커다란 대못이 박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도 그랬다.
아들놈 대학 등록금 때문에, 회사 마치고 대리 운전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깟 돈이 뭐라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해서 성질도 부리고 화도 냈었다.
하지만, 장사를 해보니 그게 정말 얼마나 어려운 건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지성분식이 망하기 직전에는 정말 손님 하나하나가 절실했다.
그런 생각을 읽었던 것일까?
강주혁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손님들은 몰라. 장사가 얼마나 좆같은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걸 알 의무가 없다는 거지.”
“의무가… 없다?”
“장사란 게 쉽게 나누면 이래. 손님은 돈을 내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사장은 돈을 받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게 기본이라고.”
“따지면, 철저한 비지니스 관계라는 거군요.”
강형우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서로 감정 상할 일은 없지. 애초에 그 관계를 명확히 하지 못한 건 네 잘못이야. 그리고 손님들은 그 어정쩡한 협의에서 이득을 얻어내려고 한 것이고.”
“그렇군요.”
“문제는, 그 이득을 얻어내려는 방법이 너무도 비상식적이라는 거지. 애초에 그런 손님들은 말이 안 통하는 인간들이기도 하니까.”
강주혁은 소주병을 들고 강형우의 글라스에 가득 채워줬다. 그리고 손짓으로 마시라는 신호를 보냈다.
강형우는 심호흡을 한 뒤, 단숨에 술을 비웠다.
이건 일종의 예방주사였다. 독한 이야기를 한다는 그런 의미였던 것이다.
“따라 해라. 좆같아도 손님이다.”
“예. 좆같아도 손님이다.”
“내 가족, 내 식구들을 벌어 먹이고 살리기 위해선… 좆같아도 참아야지.”
“예. 좆같아도… 참아야 한다.”
“그래. 그런 마음으로 손님을 봐. 입장도 바꿔서 생각하면 네가 택한 방식이 얼마나 치졸한지 알게 될 거야.”
잠시 생각하던 강형우는 갑자기 소주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글라스에 가득 채우더니 쭈욱 들이켰다.
“휴우, 형 말이 맞네요. 제가 돈으로, 손님들을 조롱한 거군요.”
커피값 오천 원이 뭐라고.
하지만 강형우는 그런 방식으로 나쁜 손님들을 내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효과는 볼 수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강주혁의 조언은 진짜였다.
“지랄 같은 인간일수록, 감정 상하는 일을 겪으면 가만있지 않거든.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가게에 피해를 주려 할 거야.”
“예?”
“방법이야 많지. 사장이 커피 팔겠다고 했으니까. 나라면 정말 악랄하게 그 가게 고사시켜 버릴 수 있거든. 하루 이십만 원 정도면 충분할걸?”
순간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떠올랐다.
아~ 난 역시 미숙했구나.
무엇보다, 눈앞의 주혁이 형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
이틀 간 폭우가 쏟아졌다.
여름 이후 비 소식이 없더니 추석 지나서야 장대비가 부산을 휩쓴 것이다.
덕분에 이틀간은 여유가 넘쳤다.
물론 사장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오히려 다행이랄까?
일단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되었다. 적(?)들의 계략을 알게 되었고, 주혁이 형을 통해 얻은 힌트 때문에 대응 방법까지 찾아내었다.
강형우는 바로 메뉴판을 바꿨다.
커피 판매를 하지 않습니다, 로.
“사장님, 카페도 하기로 했다면서요? 저희 커피 두 잔 주세요.”
여자 손님 둘이서, 점심 오픈하자마자 들어와 당당하게 요구했다.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며 뚜벅뚜벅 테이블로 걸어갔다.
“성함이, 김송희 씨 맞으시죠?”
“예?”
“저희 가게 단골손님이시잖아요. 전에 이벤트할 때 명함 받은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좀 더 신경 써야 했는데 죄송하게 됐습니다.”
순간 김송희와 일행들은 당황해했다.
강형우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저희 가게 사정상 커피 판매를 접기로 했습니다.”
“예? 아니, 열흘도 안 됐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강형우는 다시 고개를 숙인 뒤, 오만상을 찌푸렸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예?”
김송희가 당황해하는데, 강형우는 의자를 빼서 최대한 정중하게 앉았다.
그때 공지혜가 물병을 가져왔다.
강형우는 손님 수대로 컵을 놓은 뒤 물을 따랐다. 그리곤 자신의 물 컵을 잡자마자 단숨에 들이켜 버렸다.
“후우,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사실, 제가 장사 시작한 지가 이제 팔 개월째입니다.”
“아, 예. 그러시군요.”
“진짜 많이 힘들더군요. 오 년간 뼈빠지게 일해서 번 돈을 다 투자해서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진짜 겁도 많이 나고 그랬습니다.”
강형우는 진짜 세상 무너질 것 같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루 겨우 네 시간 자고 일을 한다.
손님들이 음식 클레임을 걸 때마다 고민했고, 몇 날 며칠 밤을 새워서 음식 맛을 개선했다.
또,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직원 교육도 다시 시켰고, 일부 배치도 바꿨다.
특히 중요한 건 이거였다.
“많은 손님들께서 커피를 요구하시더군요. 저희 가게는 분식집인데 말이죠.”
“아니, 그게요. 원래…….”
“예. 알고 있습니다. 이 가게는 원래 카페였습니다. 그런데 장사가 안 돼서 망했죠. 그 이후 제가 인수했습니다.”
순간 김송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장사가 안 돼서 망했다고요? 손님 많았는데요? 저희들만 해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왔거든요.”
“그게… 손님 많다고 다 잘되는 건 아니라서요.”
강형우가 씁쓸하게 웃자, 세 사람은 입을 열지 못했다.
물론 이건 연기였다.
하지만 강형우는 지성분식이 진짜 힘들 때를 떠올렸다.
그랬더니 감정 전달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제가 인수한 뒤에, 손님들이 많이 늘었습니다만 사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장사 접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장사 잘되는 것 같던데……”
“맞습니다. 이제는 직원들 월급 주고, 월세 내고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해 보니까 손님들이 너무 고마운 거 아니겠습니까?”
“아…….”
“예, 제가 커피 팔기로 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비싼 기계도 들였고, 원두도 정말 질 좋다는 걸로 준비한 겁니다.”
강형우는 슬며시 고개를 들고 손님들을 쳐다봤다.
확실히 밑밥을 뿌린 효과가 있었다. 뭔가 궁금하다는 표정들을 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