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128화 우와 대박
“역시 무서운 형이네.”
말로는 손님의 만족도를 위해 가격을 올리라고 했다.
하지만 술김에 이야기를 들으니 약간의 뒤끝 같은 게 느껴졌다.
해서 살살 꼬여서 물었는데, 충분히 그럴 만했다.
두루 컴퍼니는 가맹점을 내주는 절차가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그중 하나가, 지역 우선이었다.
기존 가맹점들이 없고 충분한 상권이 형성된 곳.
그러면서 향후 비슷한 종류의 식당들이 경쟁하기 어려운 동네를 중요시했다.
점주에게 단기간에 큰돈을 뽑아내는 게 아니라, 꾸준히 오래 상생하는 게 우선이라 그렇단다. 실제로 5년이 넘었음에도 폐업률이 0.5% 수준도 안 된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수치였다.
하긴, ‘제대로 한 끼’만 봐도 그런 느낌이 왔다.
실제로 주방 총괄 관리자로 고작 삼 주 일했는데, 240만 원이나 받았다. 그러니 점주는 못해도 1,000만 원 이상은 가져가겠지.
왜냐, 점주 기본급 자체가 이삼백이었다.
여기에 강형우가 받았던 것처럼 이익 배분까지 겹치면 오백 이상은 기본이었다. 그 역시 비용처리로 잡고, 남은 수익을 본사와 점주가 배분해서 가져가는 것이다.
강주혁이 말하길 막상 해놓고 나니 일본 편의점 시스템과 일부 비슷하게 됐단다.
때문에 점주가 손해 보는 일은 결코 없다는 거다.
그 덕에 가맹점 신청 대기자만 최소 50명이 넘는다고 했다.
희망국수만 그렇다고 하니, 다른 업종까지 포함하면 몇백 명이나 될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지역 우선으로 가맹점 신청을 받았는데, 그 두 사람이 그런 케이스였다.
하지만 완전 엉망이라고 했다. 교육 과정에서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두루 컴퍼니는 점주 교육을 엄청 힘들게 시킨다.
최소 한 달 코스로 주방 밑바닥부터 시작한다. 설거지 수료하면 청소를, 그다음에 주방 보조를 거치고 일정 수준이 되어야만 장사에 필요한 조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밑에 사람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나?
교육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동일 업종의 가게에 나가서 실습까지 해야 했다. 점주와 본사 직원의 평가로 합격을 해야 겨우 가맹점주 자격이 생기는 기이한 구조였던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가맹점 별로 맛 차이가 거의 없었고 시스템이 흐트러지는 일도 없었다.
애초에 교육 과정에서 수준 이하는 다 떨어뜨려 버리니까.
물론 교육비와 일한 만큼의 급여는 본사 직원과 똑같이 지급한다. 그리고 그 돈을 받은 뒤에 대부분 후회한단다.
고작 교육비가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으니까.
지금 그 두 가게 사장들이 그런 상황이었다. 다시 신청할 수 있게 해달라고 조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주혁은 단호하게 NO라고 했다.
처음부터 점주 하러 왔지 설거지하러 왔냐면서 시비를 걸었고, 그러다 둘 다 1차 경고를 맞았다.
한 명은, 조리 과정에서 꼼수를 부리다 걸려서 탈락.
다른 한 명은 실습 과정에서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점주와 싸움까지 벌어졌단다.
여기서 가장 무서운 것이, 점주는 실력을 보는 게 아니라 성격을 본다고 했다.
교육 과정이야 열심히만 하면 된다.
하지만 실제 손님을 받아보고 대하는 자세가 엉망이면 무조건 탈락이었다.
인성(人性).
이게 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쓰지 않는다. 그게 교육 과정의 진짜 목적이었던 것이다.
음식에 장난질 쳤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대로 한 끼 오픈했을 때 봤던 사람들 대부분 성격이 좋아 보였다.
인상도 푸근했고 나이 어리다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또, 전체 점주들 중 60% 이상이 수시로 자원봉사를 한다고 들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확실히 급이 다른 회사기는 하네.
어쨌든 마지막 한 명을 탈락시킨 게 며칠 전의 일이었단다.
역시나, 주혁 형이 상권을 줄줄이 꿰고 있었던 게 이해가 되었다.
그런 일이 있었으니 더욱 철저히 조사를 했겠지.
“그럼 가격을 올려야 하나?”
주혁 형의 말대로라면, 그게 두 사람한테는 더욱 가혹한 일이 될 터.
하지만 강형우는 그런 이유로 가격을 올리고 싶진 않았다.
마음이 끌리는 건, 오히려 다른 이유였다.
장사가 어느 정도 되는 가게가 적정 가격대의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는 것.
만약 지성분식이 이대로 계속 영업을 하면 인근의 작은 식당들은 상당수가 폐업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매달 이삼천만 원씩 벌어가는 게, 결국은 그들의 수익을 뺏어가는 거였으니까.
강형우는 지성분식 본점이 망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정말이지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
그걸 생각하면 조금 적게 벌어도 가격을 올리는 게 맞다 싶었다.
“일단 폭립부터 올려보자. 나머지는 상황 봐서 조절해야지.”
***
<신메뉴 개시>
하루 20인분 한정 판매합니다.
이걸 붙여놓고도 한동안 실행을 못 했다.
하지만, 이제는 가능할 것 같았다.
강형우는 POP 사장님한테 몇 가지를 더 추가로 맡겼다.
가장 메인은 이거였다.
<6월 3일부터 시작합니다.>
“우와, 대박!”
“야! 사진 찍어. 사진!”
“와, 진짜 크다.”
일단 비주얼부터가 압도적이었다.
강형우는 부전동 그릇 가게들을 돌면서 정말 큰 접시를 구해 가지고 왔다. 이틀을 걸려 탕수육 대자 그릇보다 더 넓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걸 찾아냈던 것이다.
여기에 폭립이 네 덩어리였다.
X자 형태로 나가는데, 중간에 적양배추와 마카로니 샐러드를 푸짐하게 놓았다. 또 고기 사이사이에 구운 파인애플과 파프리카 감자튀김을 적절하게 담았다.
마지막으로 폭립 위에 파슬리 가루와 흑깨, 참깨가 뿌려지는 것으로 플레이팅이 끝이었다.
막상 이렇게 해놓으니, 정말 비주얼이 대박이었다.
“이야, 이게 이만 원?”
“오빠, 이거 네 명이서 먹어도 충분하겠는데?”
“가까운데 친구 있으면 불러.”
몇 명은 친구들을 부른다 뭐 한다 난리였고, 서로 폭립 그릇을 앞에 놓고 사진 찍는다고 부산을 떨었다.
그만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사실,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원래는 크게 한 덩어리가 나가려고 했는데, 중량이 문제였다.
주혁형과 이야기한 걸 감안해 1인분 만 원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조금 비싼 것 같아서 중량을 약간 늘렸는데 그러다 보니 사이즈가 정확하게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돼지가 생물이기에 그런 거였다.
항상 같은 부위를 사도 뼈 숫자는 동일했지만 살집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결국 고민 끝에 덩어리를 나누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그걸 가지고 지성분식 식구들과 머리를 맞대어 지금의 형태가 완성된 것이다.
호의가 그 보답을 받게 된 결과라고나 할까?
덕분에 손님들은 아주 좋아했다.
“이거 SNS에 올려야겠다.”
“나도, 나도.”
그 스타트는 한 커플이었다.
하루 한정 20인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와서 돈가스를 먹던 커플이 그 문구에 호기심을 느껴서 시켜본 것이다.
결국 근처 친구 커플까지 불러서 불돈가스 하나를 추가해 해치우고 갔다.
“흐음, 양이 많은가?”
강형우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게 여자들은 극구 반대했다.
배가 빵빵하게 찰 정도가 되어야 만족감을 느낀다면서 저 정도는 되어야 한단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있었으니.
실제로 여자 둘이 가면 폭립 하나로는 모자란다고 했다. 괜히 샐러드나 파스타를 시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레스토랑 폭립은 1.5인분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성분식은 진짜 2인분이 맞단다.
“상대적으로 남자들이 조금 덜 먹어서 그래요.”
그게 공지혜의 해석이었다.
실제로 잘 먹는 남자 셋이서 시킨 경우가 있었는데, 라면이나 돈가스 하나 추가 정도면 딱이라고 했다.
그만큼 푸짐해서 마음에 든다나?
어쨌든, 폭립은 연일 매진이었다.
처음에는 비싸다고 했던 사람들조차 한정 판매가 아쉽다고 발을 동동 구를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폭립을 판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사이, 우리 가게 단골인 미희가 친구들을 끌고 우르르 왔다 갔고, 심지어 주말 예약까지 해버렸다. 시험 전 기운 충전용으로 친구들과 먹겠다는 것이다.
다음 날 미희 어머님들이 폭립을 시켰고, 그걸 본 회사원 아가씨들도 금요일 저녁 예약을 해버렸다. 그렇게 단골들이 하나둘씩 먹기 시작하자, 아예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은 폭립 예약이 다 차버렸던 것이다.
“정말 예상치 못한 상황이네.”
황당하게도 다음 주, 다다음 주 예약도 들어올 정도였으니 정말 대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
“헐, 이게 뭐야?”
강형우는 화들짝 놀랐다.
이른 점심을 먹고 오픈 준비를 하는데, 가게 처음 열었을 때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30분이나 남았는데도 줄이 서기 시작한 것이다.
에이~ 아니겠지 했는데, 맞았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금요일요.”
“그럼 다들 출근하잖아. 그런데 왜…….”
“오빠는 그것도 몰라요? 오늘이 키스 데이잖아요.”
공지혜가 그렇게 말하는데, 당황스러웠다.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 데이는 알았다.
그때 커플 못된 사람들끼리 모여서 짜장면 먹는 블랙 데이까지도 들어는 봤다.
저번 달에는 장미꽃을 준다고 했는데, 이번 달에는 키스를 하는 날이라니…….
“진짜 그런 것도 있어?”
“벌써 생긴 지 몇 년 됐어요. 오빠만 몰랐지.”
공지혜가 고개를 들고 빤히 쳐다보는데, 험험, 갑자기 며칠 전 생각이 나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건가?”
“그런 것도 있고요. 며칠 전부터 우리 가게 글이 포스팅이 많이 됐더라고요.”
“포스팅?”
“블로그 글 같은 걸, 게시판에 올리는 걸 말해요. 다른 건 모르겠는데, 몇몇 커뮤니티 같은 데 폭립 사진이 좀 올라온 것 같더라고요.”
순간 당황스러웠다.
방송을 타거나 하면, 인터넷으로 맛집 같은 게 많이 알려진다고 했다. 그 직후 손님들이 우르르 몰리면서 대박이 터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대상이 폭립이라는 거였다.
솔직히 약간의 영향은 있을지언정 사람이 저렇게 몰릴 줄은 몰랐다.
지성분식의 포지션은, 말 그대로 동네 분식집이었다.
저렴하거나 비슷한 가격에 퀄리티 높은 음식을 내는 식당 정도?
딱 그 정도 위치로 잡았기에 이런 일은 정말 예상치도 못한 것이다.
문제는 20인분 한정이라는 거였다. 그러니 줄 선 사람들 반도 못 먹을 것 같았다.
“이거 어떻게 하나? 급하게 더 만들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죠. 미리 나가서 예약을 받는 수밖에.”
공지혜가 그렇게 말하는데, 최민지가 아쉬워했다.
“아이고, 저게 다 손님이고 매상인데 놓치면 아깝잖아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음식이 준비된 게 없는데…….”
강형우는 아쉽다기보다는 난감했다.
손님을 돌려보내는 건, 한두 번 이상은 곤란했다.
그게 몇 번 반복되다 보면 가게에 대한 기대치가 떨어지고, 끝내 이미지까지 망가지니까.
그때 최민지가 의외의 제안을 했다.
일단 들어보니, 임시로 하는 거라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강형우가 고민하는데 공지혜가 나섰다.
“어차피 손해 볼 건 없잖아요. 대신 다음에 예약 먼저 받아준다고 하면 될 걸요?”
“그런 걸로 먹힐까?”
“일단 해보죠?”
결정은 역시 사장의 몫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강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정중하게? 알지?”
공지혜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메모장을 챙기고, 최민지의 손을 잡고 가게 문을 열었다.
강형우는 가게 안에서 흐뭇하게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