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95화 어떻게 치킨을 남기냐
일이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강형우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처음에는 현우 형의 간절함 때문이었다.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 통닭은 부모님의 피땀이 어린 가게였다. 그래서 잘해보겠다고 하다가 판단을 잘못하는 바람에 망하는 코스로 향했다.
그걸 막아보고 싶단다. 여길 지키고 계속하고 싶다는 게 본심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목표가 돈 많이 벌고, 부자가 되고 그런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장례식 때 와준 많은 단골들한테 미안하단다. 그분들이 다시 즐겨 찾고 어머니를 좋게 기억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강형우는 그런 생각을 읽게 되었다.
일종의 통찰력이라고 할까?
해서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 간절함이 다시 돌아보게 했고, 많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국 공부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아! 이 형은 정말 많은 걸 모르는구나.
동시에 예전의 일도 이해가 되었다.
창주 형은 30년 전통의 화끈 오뎅을 바꾸겠다고 했다.
물론 튀김 종류를 새로 한 것에 불과했지만, 강형우에게 전적으로 믿고 맡겼었다.
나름 중식 장인인 혁기 형네 아버님도 자존심을 접었다. 강형우의 조언을 들어 일부 요리법을 더하고, 신메뉴를 내놨던 것이다.
때문에 인터넷으로 유명 맛집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중식당이 되었다.
그건 기본적인 맛이 있어서였다. 그러니 약간의 변화가 성공적인 변신으로 이어진 거다.
솔직히 여기서 강형우가 한 건, 일종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걸 정덕수가 증명하고 있었다.
처음에 밥버거조차 제대로 못 만들던 덕수 형이었다.
하지만 전자저울을 놓고 양 조절에 실패할 때마다 손등을 때렸다. 그렇게 터지고 피가 날 정도로 연습한 끝에 기본 맛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여기에 몇 번의 테스트를 거쳐 내용물의 적절한 조절로 맛의 균형을 잡았다. 그러니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동네 맛집이 된 거다.
결국 중요한 건, 기본이었다. 흔히들 ‘간’이라고 하는 중심이 잡혔기에 다양한 시도 역시 가능했던 것이다.
그게 안 되면 뭘 해도 이상해지는 것이니까.
현우 형이 딱 그런 케이스였다.
다른 음식은 해본 적이 없이 닭만 튀겼다.
치킨무도 받아썼고, 양배추 샐러드는 그냥 케첩 한 국자에 마요네즈 한 국자 반이었다.
양념조차 통조림을 덜어서 그냥 썼으니 조리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그 결과, 오래 일했기에 남들보다 숙달되어 속도는 빨랐지만 요리 실력이 늘지 않았다. 딱 그 수준이었기에 바꾸는 것에 겁을 먹었던 것이다.
사총사 중에 셋이 변화에 도전했음에도 현우 형만 끝끝내 사양한 게 그래서였다.
강형우는 그런 고인 물에 돌을 던졌다.
“형은 치킨이 뭐라고 생각해요?”
이 한마디는 김현우가 알고 있던 세계를 깨뜨리고 말았다.
***
“여기가 어디야?”
김현우는 조금 당황했다.
지하철 연산역에서 환승해서 도착한 곳은 장전동이었다.
부산에서 두 번째로 독특한 음식점들이 시작되는 곳, 바로 부산대학교 외각이었던 것이다.
이건 통계가 아닌, 경험이었다.
특이하거나, 독특하거나, 볼거리 가득한 음식.
보통 그렇게 말하면 노점상이나 가판대, 혹은 야시장을 떠올린다.
부산에서 그 시작은 첫 번째로 꼽는 관광지인 광복동, 혹은 남포동이라 불리는 그 동네였다.
부산 국제 영화제의 메카라고 보면 되고, 여기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깡통시장도 포함된다.
어쨌든 부산에는 그 외에도 많은 번화가가 있었다. 서면이나, 덕천, 동래, 광안리, 해운대 등등에 일부 대학가도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대부분 세가 비쌌다. 검증되지 않은 음식으로 식당을 열기에는 위험 부담이 무척 컸던 것이다.
하지만 부산대 외각의 장전동 라인은 세가 저렴한 편이었다. 그래서 특이한 음식으로 시작하는 가게들이 적지 않았다.
L백화점 라멘으로 유명한 이찌방도 여기서 시작했고, 퓨전 참치 주점 심이나, 부산 최초로 깐풍 치킨을 만든 집도 여기에 본점이 있었던 거다.
특히 굉장히 독특한 치킨집이 있었는데, 무려 30년이 넘었다.
부산대 학생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집.
바로 숯불 통닭이었다.
이 집의 영업시간이 되면 이 일대 많은 사람들이 군침을 흘린다. 진한 카레향에 치킨 튀겨지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력이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강형우가 김현우를 데려간 곳은 지하철 반대쪽 2호점 근처였다.
일명 유명 가게 바로 옆집이었다. 그 골목 안쪽의 으슥한 곳으로 들어간 거다.
“후아, 냄새 죽인다.”
김현우는 치킨집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군침을 꼴딱꼴딱 삼켰다.
이 강한 냄새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코가 마비된 사람이 유일할 듯, 그만큼 강렬했고 자극적이었다.
“근데 여기, 맛보러 온 거야? 아니면 일 배우러?”
현우 형은 입구에서부터 주눅이 들었다. 단번에 수준 차이를 느낀 것이다.
“견학이에요. 견학. 내가 무슨 용빼는 재주 있어서 이런 대단한 가게에 형을 집어넣어요?”
“그, 그렇지?”
“중요한 건, 형이 우선 많이 먹어보는 거죠. 기본 맛을 알아야 뭐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약간 자존심 상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강형우는 개의치 않았다.
특히 현우 형같이 기초도 없이 치킨만 튀겨봤던 사람들은, 망하기 딱 좋았다. 프랜차이즈 사장 중에, 그것 말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이들 상당수가 변화를 이기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강형우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제일 안쪽 방에 자리 잡았다.
여긴, 전에 강주혁이 한 번 데려왔던 집이었다.
맛이 하도 독특해서 기억에 남아 있었고, 일부를 제외하면 기본에 가장 충실한 맛집들 중 하나였다.
“여기 후라이드 하나 주세요.”
“예. 십오 분 정도만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종업원이 나가자, 김현우가 투덜거렸다.
“왜 맥주는 안 시켜? 치맥이잖아, 치맥!”
“일단 치킨부터 먹어봐요.”
강형우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왠지 그게 의미심장하다 느끼며 김현우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15분이 조금 넘었을까?
잠시 후, 사장님이 직접 커다란 접시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왔다. 카레향이 진동하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치킨이 그 위에 한 가득 있었다.
“흐어, 못 참겠다.”
“형, 잠깐…….”
강형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현우가 닭 다리 한쪽을 씹어버렸다.
결국 예상하던 반응이 나왔다.
“앗뜨~~~”
김현우는 치킨을 던지다시피 내려놓고 앉은 상태에서 엉덩이로 방방 뛰었다. 그러다 찬물을 벌컥 벌컥 마시더니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오. 그래서 말린 건데…….”
“미리 좀, 흐아아아. 흐어어, 말하지. 하오, 하후.”
입을 벌리고 손부채로 식히는데 그게 될 리가 있나?
딱 2분 정도 지나니 통증이 가라앉는 모양이었다.
“와. 진짜 이 치킨 뭐냐? 한 입 깨무는데 육즙이 그냥 팡 터지는데……”
“됐고요. 일단 조금씩 먹어봐요. 한 입 물고, 씹은 데 단면도 보고.”
강형우가 친절하게 설명하자, 그제야 김현우도 용기를 내었다.
큼직한 닭다리 살을 조심스레 물더니 살살 뜯었다.
입안에 넣고 사브작 사브작 씹는데, 표정이 꼭 영화에 나오는 뽕 맞은 사람 같았다. 그만큼 황홀한 모양이었다.
“후아, 이거 진짜 맛있네?”
“그렇죠?”
“어, 튀김은 바삭하고 살코기는 쫀득하고, 야! 여기 봐.”
김현우가 내민 건 뼈가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거기서 육즙과 기름이 배어 나와 뼈를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다.
“야. 진짜 맛있다. 이건 치킨의 신세계야.”
연신 감탄을 하자, 강형우도 큼직한 가슴살을 잡았다.
퍽퍽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모두가 꺼리는 부위였다.
하지만 갓 튀겨서 나온 걸 먹으면, 아주 촉촉하고 부드러웠으며 제대로 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둘이 말없이 서너 조각을 해치웠다.
“형, 감상이 어때요?”
“그게… 모르겠어. 그냥 맛있다 정도? 아니, 아주 맛있다는 것 말고는 표현할 말이 없네. 근데 형우야.”
“왜요?”
“맥주 시키면 안 되겠냐? 치킨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니까 이럴 때 한잔하면 딱이라는 생각이 간절하네.”
“형, 맞아요. 그게 정답이에요.”
강형우는 곧바로 벨을 눌러 맥주 500㏄를 주문했다.
또다시 안으로 들어온 건 사장님이었다.
그때 강형우가 정중하면서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사장님, 뭐 좀 물어봐도 되나요?”
“허허, 그러세요.”
“사실은 미리 말씀드릴 게 있는데, 이 형이 치킨집을 하거든요.”
그 고백에도 사장님의 표정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아! 혹시 강 실장님이 이야기하신 그분?”
“예. 저도 전에 한 번 왔는데…….”
“허허, 이제 알겠네요. 전에도 이 자리 앉으셨죠?”
“예.”
강형우는 공손히 대답하면서도 살짝 긴장했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사실, 미리 주혁 형한테 전화해서 부탁을 했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현우 형하고 한 번 가볼 것 같다. 그래서 실례가 안 된다면 사장님한테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그 말 했다가 쌍욕을 처먹었다.
어디 감히 남의 가게 비결을 함부로 물어보려 하냐고.
그건 며느리도 안 가르쳐 주는 거란다.
게다가 이제 2년 된 사장 놈이 노력할 생각은 안 하고, 어딜 건방지게 수십 년 장사한 분한테 가르쳐 달라고 하느냐고 구박에 타박에, 욕으로 타령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강형우는 몇 번이나 사정했다.
기초를 다지기 위한 도움 정도라고 봐달라고, 그러면서 이은주를 팔아넘겼다. 일전에 부탁 하나 들어주기로 한 걸 들먹이면서 간절히 말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돌아온 대답은 매정했다.
전화는 해준다. 아마 자신이 부탁하면 거절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결정은 사장님 몫!
그러면서 절대 기대는 하지 말란다.
그래서 잔뜩 쫄아 있는데, 사장님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 별거 있나요? 물어보세요.”
너무나 태연한 대응에, 긴장이 확 풀렸다.
그 직후 사장님은 알바한테 맥주 하나를 더 시키더니 자리에 털썩 앉았다.
“강 실장님이 전화 주셨어요. 하지만 부탁받았다고 다 말해줄 수 있는 건 아니고요. 궁금한 거 있으면 천천히 물어보세요.”
“예. 감사합니다.”
강형우가 고개를 숙이는데, 갑자기 현우 형이 무릎을 꿇고 절까지 해버렸다. 그만큼 절박한 심정이기에 행동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그걸 본 사장님께서 허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
“우와! 신세계네.”
김현우는 그렇게 말한 뒤, 곧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은 의외로 친절했다. 기대도 안 했는데 주방까지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주신 것이다.
안에 있는 건 특제 압력솥이었다.
한 번에 네 마리까지 튀길 수 있게 특제로 제작한 건데 그게 세 개나 있었다.
그 압력솥에 카레향 가득한 반죽을 묻힌 생닭을 넣는다.
뚜껑을 덮고, 위에 십자로 된 걸 돌려서 꽉 잠근 다음 12분 동안 튀기면 끝이란다.
정말 단순해 보이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강형우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노하우와 시행착오가 깃들어 있음을 말이다.
“일단 분석은 나중에 해요. 오늘 갈 데 많아요.”
“뭐? 또?”
김현우가 부른 배를 두드리는데,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그래서 적당히 먹으라고 했잖아요.”
“야. 맥주가 부르는데 어떻게 치킨을 남기냐?”
“그래도…….”
“마! 니가 나보다 더 먹었거든?”
그건 사실이었다. 어찌나 맛있는지 맥주 500㏄ 두 잔 만에 3, 4인분을 초토화시킨 것이다.
옆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분명 추가 주문했을 터.
“그런데 택시 잡자고? 어디로 갈 건데?”
“온천장이요.”
“거긴 또 왜?”
김현우는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피식 웃은 강형우는 택시를 잡으며 말했다.
“온천장 입구예요. 부산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최초의 후라이드 치킨집이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