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79화 도와줄게요
누가 그러더라.
문제가 있다는 건 답이 있다는 거라고.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데, 실마리는 정말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오~ 단골 총각 또 오셨네? 오늘은 몇 줄이나 드릴까?”
김밥집 사장님은 오늘도 웃으면서 말했다.
하긴, 거의 이삼 일에 한 번 꼴로 다녀가니 오히려 얼굴 모르는 게 이상할 거다. 게다가 다른 손님들에 비해 유독 덩치가 크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원조 김밥 여섯 줄만 주세요.”
“예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애교 가득한 콧소리를 내며 김밥집 사장님이 준비에 들어갔다.
밥통에서 밥을 푸고, 한 번에 세 줄씩 말려는 듯 김을 깔았다. 비닐장갑을 끼고 밥을 펴고 고명을 올리는데, 일 분에 세 줄씩 뚝딱 나왔다.
“총각 동생들이 김밥을 많이 좋아하나 봐?”
웃으면서 묻는데, 순간 움찔했다.
아무래도 죄책감 때문인 것 같았다.
“예? 아… 예. 이 집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고, 고마워라.”
그러면서 비닐 봉투를 주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강형우는 주변을 돌아봤다.
기억하기로 오후 5시부터 저녁 8시까지는 손님들이 북적북적했다. 근처 원룸 사는 사람들이 퇴근하면서 김밥을 사 가지고 가기에 특히 그 시간에 많이 몰렸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해가 쨍쨍한 3시.
강형우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먼저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사실 저도 작은 분식집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음식 장사하는 사람들은 다 알았다.
같은 장사하는 사람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음식 사 가는 게 무슨 이유겠는가?
그럼에도 사장님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사실 부산 시내 어지간한데 다 다녀봤는데, 이 집 김밥이 제일 맛있더라고요.”
“호호, 고마워라.”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기분 나쁘실 수도 있지만요. 제가 여기 김밥 맛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강형우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한 뒤, 눈치를 살폈다.
근데 이 사장님도 제법 세더라.
“호호호. 그럼 이 맛, 못 만들면 계속 단골 되겠네요?”
“그, 그렇겠죠?”
강형우는 머리 두피가 열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거기서 땀방울이 몽글몽글하게 샘솟고 있었던 것이다.
삐질 하고 한 방울 떨어지는데, 사장님이 먼저 물었다.
“장사 어디서 해요?”
“저기 배산역 근처에서 돈가스 분식집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나, 꽤 머네? 버스로 열 정거장이 넘는데, 그럼 거기서 여기까지 계속 왔다 갔다 한 거예요?”
“예.”
일단 죄책감 때문에 다 이야기하긴 했는데,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주혁이 형이 말하길,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는 게 대부분이란다.
진짜 일이 잘 풀리는 경우는 돈 주고 배워 가라였고.
근데 여기 사장님은 의외로 깔끔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그래요? 별거 아닌 김밥인데.”
“그게… 사실 저도 김밥 팔고 있거든요. 주 메뉴가 돈가스에 라면하고 덮밥하고 팔고 또…….”
일단 말이 터지니 이상하게 계속 주절되게 되더라.
장사하다 망하기 직전까지 간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오뎅 국물에 밥도 말아서 팔아봤고,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파스타를 판다고 개고생도 해봤다.
돈가스가 잘되서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심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상권이 좁은 동네라 금방 비슷한 가게들이 생기고 경쟁도 무척 치열하다는 말까지 해버렸던 것이다.
사장님은 의외로 진지하게 들어줬다.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거려 주기도 했고 고생했다고 위로도 해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핵심을 푹 찌르더라.
“결국은 지금 파는 음식들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거네요?”
잠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그런가 했는데, 꼭 그런 게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강형우는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지금은 김밥이 그렇습니다.”
“호호, 젊은 총각이 그래도 순진하네.”
“예?”
“장사 오 년만 좀 더 해봐요. 그럼 내 말 알게 될 거예요.”
마침 다른 손님들이 찾아와 김밥 주문을 했다. 그러자 사장님이 앞에 앉아서 오뎅이나 하나 먹고 있으란다.
잠시 후, 손님들 김밥을 다 말아주고 나온 사장님이 커피를 건넸다.
“총각 이름이 뭐예요?”
“예, 강형우라고 합니다.”
“명함은 없어요?”
“그게, 그냥 작은 분식집을 해서…….”
“그럼 안 돼. 못 써. 엄연히 자기 장사하는 사장이 명함 하나 안 가지고 다녀?”
“죄송합니다. 제가 명함은 없지만 이거라도…….”
강형우는 그렇게 대답한 뒤 반사적으로 민증을 꺼내려고 했다.
사장님이 그걸 보더니, 갑자기 빵 하고 터지더라.
“호호호, 갑자기 왜 그래요?”
“그게, 경찰서 앞이라서 그런가요? 저도 모르게… 아~ 진짜 이상하네요. 지은 죄도 없는데 왜 이러지?”
당황해하는 행동과 어설픈 대답에 사장님이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조금 도와줄게요.”
“예?”
강형우가 어리둥절해하는데, 사장님이 물었다.
“그래서, 뭐가 제일 힘든 건데요?”
***
“이거예요?”
공지혜는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다른 이름으로 실험체 1호였다.
그 뒤로 2호와 3호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못 믿는 눈치였다.
“아냐. 테스트 다 해봤고, 하루 숙성까지 끝낸 거야. 게다가 희석도 다 한 거라고.”
공지혜는 못 믿겠다는 눈빛으로 주저주저하면서 간장 맛을 봤다.
그 직후, 눈을 번쩍 떴다.
“이거 맛있는데요?”
“그렇지?”
순간 공지혜의 뒤에서 실험체 2호 이강석과 3호 백창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 실수로 희석 안 된 걸 맛보는 바람에 미각을 잃었던 것이다.
“향도 꽤 좋아요. 마치 간장이 아니라… 무슨 양념 같은데요?”
“맞아. 생각해 보니까, 내가 맛간장에만 너무 집착했더라고.”
강형우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개코 공지혜의 1차 심사를 통과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김밥집 사장님의 조언은 단 한마디였다.
‘소갈비찜 양념.’
그걸 생각하면서 만들어보라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렇게 기준을 세워놓고 작업하니 의외로 속도가 붙었다.
사실 맛간장이라는 게 혀 속임이 가능했다.
일단 검은 색상 때문에 이것저것 섞어도 티가 나지 않았고, 특유의 짠맛이 여러 가지 냄새를 덮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몸에는 안 좋지만 맛을 내는 방법도 존재했다.
물과 맛술, 진간장을 동량으로 섞고, 국간장과 설탕을 조금 더한다. 거기에 멸치 액젓으로 풍미를 보충하면 나름 그럴듯한 게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 조미료가 펑펑 들어가서 섞이면 유명 맛집의 소스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문제는 이게 몸에 좋지 않다는 거였다.
맛을 위해, 정량 이상의 염분과 설탕이 들어가니까.
그래서 꽤나 고민했는데, 맛간장이 아닌 갈비찜 양념을 만든다 생각하니 방식이 달라졌다.
“오오! 이거 맛있어요. 짜지도 않고 달달하면서… 뭐지 무슨 향 같은 것도 나는데?”
이강석이 극찬하자 백창호도 용기를 냈다.
“와~ 이거, 그냥 밥 볶아 먹어도 맛있겠는데요? 여기에 김 가루하고 깨 뿌려서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렇지?”
공지혜까지 동의하자 강형우는 씨익 웃었다.
“만약에, 이 간장 양념으로 갈비찜을 하면 어떨까?”
“오! 그것도 맛있을 것 같음.”
“저녁에 해주십시오.”
백창호의 아부에 그렇게 해줄까 하고 잠시 고민했다.
“근데 이거 진짜 어떻게 한 거예요? 며칠까지만 해도 포기한 것 같았는데.”
“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강형우가 작업한 건, 간장이라기보다 육수에 가까웠다.
일단 간장과 물을 동량으로 커다란 냄비에 채운다. 여기에 기본 재료를 넣고 우선 우리는 것이다.
파, 양파 껍질, 무, 파뿌리, 북어 대가리 등을 먼저 넣고 팔팔 끓인 뒤 식힌다. 그런 뒤 다시마, 생강, 통마늘을 넣고 레몬도 한 조각을 추가해 이걸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장시간 우리면 된다.
이게 기본 베이스였다. 이걸 덜어서 그때그때마다 부족한 맛을 보충하면 되는 것이다.
왜냐?
과일의 단맛은 같은 양을 넣어도 일정하지 않았다. 제철에 따라, 강수량에 따라 당도가 다르기에 나오니까.
그 단맛을 매실청으로 보충하고, 혹시나 있을 잡맛까지 맛술을 끓여서 날린다.
여기에 참기름을 추가해 고소한 기름 맛을 더하면 비로소 요리에 쓸 수 있는 맛간장이 되는 거다.
물론 단순히 그렇게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역시도 몇 가지 나눠지는 단계들이 있기는 했다.
강형우가 계속 실패했던 원인은 거기에 있었다.
한 번에 맛간장을 만들려 했다.
편하게 하려고, 두고두고 쓰려고 완성품에만 집착해서 그랬던 거다.
사실 만능 맛간장이니 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걸 베이스로 음식에 맞게 여러 재료들이 추가되어야 진짜 제대로 된 양념이 된다.
어쨌든 이렇게 기본을 만들어놓으니, 선택지가 다양했다.
뭘 추가하느냐에 따라 쓰임새도 달라졌으니까.
일단 가다랭이 포라 불리는 가츠오부시를 추가하면, 조림에 쓸 수 있었다. 나물을 데치거나 두부를 굽거나 할 때 쓰면 향이 더해지고 일식 느낌까지 났던 것이다.
또, 베이스에 단맛을 더하면 찜이나 볶음에 딱이었다. 열이 가해지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달달한 맛이 한층 진해져 기름 맛을 잡아주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일단 이걸로 한 고비는 넘은 셈이었다.
그때 눈치도 없게 백창호가 물었다.
“그럼 이제 김밥은 다 된 거네요?”
“그게… 아니라. 이제부터 또 시작이지.”
“예?”
“이걸로 안정적인 맛이 날 때까지 계속 시도해 봐야 된다는 거야.”
그 말에, 애들 표정이 울상으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도, 김밥을 예상하는 모양이었다.
***
“이상하네. 왜 연락이 없지?”
강형우는 먼저 전화를 해볼까 말까 하다가 일단은 참았다.
지금 급한 건, 김밥이었으니까.
어쨌든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김밥은 거의 생각한 정도로 나왔다.
하지만 본인 입맛만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서 강형우는 보다 정확한 테스트를 위해 무려 50줄이나 만들었고, 이웃들에게 나눠주면서 반응을 물어봤다.
“이거, 집에서 만든 김밥 같은데?”
그건 화학조미료를 빼서였다. 과일과 야채에서 우러난 은근한 단맛과 감칠맛 덕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난, 밥맛이 좋더라고.”
갓 도정한 쌀에, 따로 만든 밥물로 밥을 지었다.
여기에 밥버거집에서 일할 때 터득한 몇 가지 방식으로 양념을 더했다.
미량의 감미료였다. 맛술과 간장 베이스를 희석해 분무기로 뿌려서 밥이 마르지 않게 했던 것이다.
“이게 씹는 식감이 살아 있네.”
우엉과 당근이 메인이었다.
과일 간장에 참기름을 더해서 살살 졸이듯이 볶았다. 그 조리법에 맞게 두께를 조절했기에 씹는 맛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향이 고소하네.”
이전에 쓰던 업소용 향미유를 과감히 포기했다.
실제로 삼겹살집에서 나오는 기름장이 이런 경우였다. 소량의 참기름에 식용유를 섞어서 향만 살리고 양을 늘린 게 이거였던 것이다.
그 대신 들기름을 받아와 다른 기름과 일대일로 섞었다. 그러니 향이 월등히 좋을 수밖에 없었다.
고작 김밥 한 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성을 들이니 맛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주변 상가분들이 호평을 했다.
김밥지옥 악몽을 꿨던 이강석도, 김밥 먹을 바에야 차라리 군대를 가겠다던 백창호도, 이제 인정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확신이 들자 강형우는 메뉴판을 추가하기로 했다.
동시에, 명함도 뽑을 계획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는데, 뜬금없이 부동산 삼촌이 연락을 해왔다.
“예. 삼촌.”
-형우야. 네가 전에 물어본 거 있잖아!
“예?”
-수영 로터리 안쪽에 말이다.
잠시 멍해 있는데, 주소를 들으니 가까스로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지성분식 2호점 자리였다.
“그럼, 거기 주인집에서 허락이 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