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80화 그러니 돌아가
약간 초조했다.
왜 사람이 그런 게 있지 않는가?
우연히 길을 가는데 무언가 시선을 확 끄는 게 있었다. 특별히 대단한 것도 아닌데, 그냥 지나치려니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호기심에 알아봤더니 또 별거 아니더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속 끌린다.
우연히 그런 이야기를 꺼냈더니 천경 어르신이 그러셨다.
그런 게 운명이란다.
딱 여기를 지나가다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새로 가게를 내게 된다면 여기서 하고 싶다고.
그래서 좀 알아봤다.
수영구 광안동 69X번지.
원래 주택이었던 걸 개조한 2층짜리 상가 건물이었다.
1층에 두 개의 가게가 있었던 듯 간판 달았던 흔적이 있었는데, 현재 제법 넓은 평수의 카페가 자리하고 있었다.
인테리어 한 지는 얼마 안 되어 보이는데, 놀랍게도 임대 플래카드가 보였다. 게다가 장사를 안 하는지 가게 문도 닫혀 있었고 조용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바로 결정하지는 않았다.
강형우도 장사를 해보면서 몇 가지 깨달은 게 있었다.
바로 입지 조건이었다.
일단 지성분식은 술집이 아니었다.
해서 인근에 학교가 있어야 했고, 원룸촌이나 빌라 같은 게 많으면 더욱 좋았다.
주택보다야 단위 면적당 인구밀도가 높았으니까.
물론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으면 더욱 좋았지만, 아쉽게도 그런 동네는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실제로 지성분식을 배산역 골목 안쪽에 얻은 것도 그래서였다. 잘 아는 동네이긴 하지만 돈이 부족해서 그랬던 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이다.
진짜, 번화가에서 지금 자리만큼의 크기를 얻으려면 월세 50만 원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최소 100만 원, 조금 괜찮다 싶으면 월세만 200만 원 이상이었다. 거기에 수천만 원에 달하는 보증금에, 그와 맞먹는 권리금을 생각하면 못해도 억은 있어야 된다.
하지만 현재 강형우의 수익은 월 천만 원이 조금 못 되는 수준이었다. 완전히 빚 청산을 한 다음, 꼬박꼬박 모은 돈도 있었지만 그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해서 조금 외각으로 눈을 돌렸다.
수영 로터리 근처, 거기서 주택가 쪽으로 한 블록 들어가는 동네였다.
강형우는 더 꼼꼼히 주변을 살폈다.
지하철 12번과 14번 출구 사이였다.
근처에 수영 초등학교가 있었고, 조금 멀지만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초등학교 하나와 중학교 두 군데가 있었다.
그건 학생들이 근처에 많이 산다는 의미였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따로 있었다. 가게 자체가 확 시선을 잡아끌었던 것이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일단 인테리어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전면은 검은 샷시였고, 가게 전체가 비싼 집성목으로 꾸며져 있었다. TV에서나 보던 강남의 고급 카페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독특한 외관이 이 동네의 다른 가게들과 이질적이어서 오히려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돌출간판 하나만 달아도 확 눈에 띌 정도로 색감 자체라 남달랐던 거다.
투박한 회색 골목에 알록달록한 상가들 간판이 있는 가운데, 묵직하게 톤 다운된 식당이 있는 느낌이랄까?
만약 여기서 지성분식의 돈가스를 판다 치면,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 온 듯한 느낌일 거다. 그런 생각에 쉽게 근처를 떠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부동산 삼촌한테 부탁을 했다.
역시 부동산 사람들끼리는 연줄이 다 있었다. 게다가 산 하나 넘는 아랫동네였으니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해줬다.
문제는 건물주가 좀 괴팍하단다.
진짜 얼토당토않은 조건을 걸어서 벌써 반년째 가게가 나가지 않고 있다나?
근데 직접 만나기 전에는 절대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해서 대략적인 조건을 물어봤는데, 확실히 근처 시세보다 많이 비쌌다.
가게 둘을 합쳐서 만든 카페라 무려 30평대였다.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가 100만 원이었다.
정말 과하다 싶었는데, 심지어 권리금이 4,000만 원이나 되었다.
해서 강형우는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조정이 가능하다면 한 번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는 했는데, 그게 이제야 연락이 왔던 거다.
“일단 건물주가 한번 보자고 하네. 언제 시간 나는데?”
부동산 삼촌의 목소리가 조금은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강형우는 개의치 않고 대답했다.
“이번 주 일요일요.”
***
“일단 계산을 해보자!”
당장 통장에 있는 돈은 삼천만 원 정도였다.
먼저 빚을 다 갚았고, 다음 달이 연말인 걸 감안하면 일 년 동안 거의 오천만 원을 넘게 모은 셈이었다.
거기에 음식 개발하랴, 이것저것 알아보랴 하면서 쓴 지출까지 생각하면 거의 억은 넘게 벌었으리라.
고작 스물여덟이란 나이를 생각하면 큰 성공이긴 했다.
물론 세금이나 이런 걸 감안하면 실제 수익은 훨씬 적어지겠지만.
어쨌든 지성분식은 현재도 매달 6~700만 원 정도가 꼬박꼬박 들어오고 있었다.
사실 제대로 한 끼 때문에 매출이 많이 출렁거리긴 했다.
하지만 거의 일 년 반 넘게 꾸준히 닦아놓은 게 있어서 크게 떨어지진 않았다.
여기에 김밥과 라면이 가세하면 수익이 크게 늘지 않아도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시기는 좀 타겠지만.
“어차피 당장 계약할 건 아니고, 만약의 여윳돈도 있으니 불가능한 것도 아니야.”
정 안되면 철진 기획을 들릴 생각이었다.
그때 빚 정리하는 데 팀장 이해일이 그랬다.
은행 대출이 번거로우면 언제든지 들려 달란다. 한 번 거래한 게 있으니 이자까지 맞춰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물론 대출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꺼림칙함으로 인해 좋은 기회를 날리는 것도 멍청한 짓이었다.
“그러니까. 젊은 친구가 장사를 한다고?”
“예.”
“허허, 이거 참~”
건물주라는 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살짝 기분이 나빴다.
이름은 강학희, 나이 예순넷, 직업은 모른다. 그런데 첫 대면에서부터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대뜸 반말을 하는 게 아닌가?
무엇보다 사용하는 말투의 투박함이 장난이 아니었다.
“집은 좀 사나?”
“결혼은 했고?”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
“돈 좀 있나 보지?”
무슨 호구 조사하는 것도 아니고, 여친 자취방에서 만난 아버지도 저렇게까지는 안 물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대뜸 하는 말이 이거였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집이 가난해서 중학교 다니다 때려 치워서 국졸이란다. 이후 공사판을 돌아다니면서 가족들 먹이고 재우고 이만큼 살아왔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 건물도 직접 지은 거라고 했다.
못 하나, 철근 하나까지 자기 손을 안 탄 게 없다나?
해서 큰 지진이 와도 거뜬할 만큼 튼튼하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뻥 같았다.
건물 디자인과, 건물주의 말투와 행동에서 너무 큰 괴리가 있었으니까.
“미안한데, 난 무식해서 어려운 말 몰라. 할 거야? 말 거야?”
“하고는 싶습니다만.”
“진짜 장사 잘할 수 있나?”
“예.”
대답하면서도,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가게 얻으려는 건물 2층이 자기 집이라고 했다. 그래서 튼튼하게 지은 거라는데, 그 말이 수시로 내려와서 볼 거라는 협박처럼 들렸던 것이다.
무엇보다 들은 게 있었다.
일전에 주혁 형이 말하길, 황룡 첫 가게 건물주 때문에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경쟁 업체에서 사주하는 바람에 강제로 내쫓겼다는 것이다.
물론 그 형도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골목 안쪽의 낡은 주택을 개조한 거였다. 그래서 임대차 계약서에 특약에 정해진 대로, 원상 회복 형식으로 껍데기랑 내부 장식까지 홀라당 다 벗겨 갔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진짜 건물주는 잘 만나야 된다고 했다.
살면서 워낙 거지 같은 일이 많다나?
그때 지성분식 건물주님을 만난 것도 큰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에 비하면 눈앞의 강학희는 정말이지 최악의 건물주가 될 가능성이 컸다.
그럼에도 강형우가 꿋꿋이 자리를 지킨 건 이거 때문이었다. 일단 끝까지 이야기해 보고 결정하자는 생각으로 버텼던 것이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보증금 조절이 가능하겠습니까?”
“얼마나?”
“그게…….”
지금껏 잠자코 있던 부동산 삼촌이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저희 쪽에 이야기하신 거 보니까. 보증금 오천에 월세 백만 원으로 되어 있네요?”
“그래서요?”
강학희는 또래로 보이는 부동산 삼촌에게는 반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조정이 어느 정도 가능하신지?”
그 말에 강학희가 고개를 돌렸다.
“자네. 돈 얼마나 있는데?”
“예? 그게 지금 통장에는 삼천 정도…….”
“그럼 그렇게 하지. 보증금 삼천, 월세는 백!”
정말이지 깜짝 놀랄 정도였다.
고민 1초도 없이 바로 대답이 나오는데 생각이라는 걸 아예 안 하는 것 같았다.
“그럼 권리금은요?”
“왜? 그것도 줄여달라고?”
툭 내뱉는데, 약간의 적의 같은 게 느껴졌다.
강형우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래 권리금이란 게 여러 개로 나뉘지 않습니까? 여기가 시장이나 번화가 상권도 아니니 바닥 권리금이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럼 시설물하고 영업 권리금인데, 장사도 반년 가까이 안 했으니 그건 없을 거고, 있다면 여기 인테리어 비용 정도일 텐데…….”
“그래서 사천이 많다?”
“그게 아니라, 전에 장사하던 분하고 이야기를 해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권리금은……”
아무래도 여기서 말 잘못 꺼내면 큰일 날 것 같았다. 표정도 심상치 않았고, 당장이라도 버럭 할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갑자기 강학희는 휴대폰을 매만졌다. 그러다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저었다.
“여기 장사하던 전 주인이 내 아들이야!”
“아! 그러시군요.”
대충 이해는 되었다. 그러니 대신 이야기하는 거겠지.
하지만 방금 전과는 반응이 너무 달랐다.
“권리금은, 사천에서 한 푼도 못 깎아줘. 그러니 돌아가!”
***
“대체 뭐가 그렇게 기분 나빴던 거지?”
아무리 고민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한 성깔 하는 것 같아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기분 나쁠 만한 말을 해도 표정 관리를 했고, 특별히 크게 실수할 만한 것도 없었다.
근데 강학희는 거의 문전박대 수준으로 내쫓았다.
완전히 파토난 거다.
“휴우, 진짜 아쉽기는 한데.”
보증금을 무려 이천이나, 그것도 잠깐의 고민도 없이 뚝딱 깎아줬다.
좋게 보면 화통한 성격, 나쁘게 말하면 일방통행이었다.
하지만 경험상 그런 사람일수록 뒤끝이 없었다. 호불호가 명확하기 때문에 딴지를 걸거나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덕수 형이 거의 그런 캐릭터였다.
물론 그 건물주보다는 많이 순화된 버전이었지만.
“아우, 그냥 사천 주고 들어갈까?”
제일 갈등하게 하는 건 역시나 권리금이었다.
말이 좋아 사천만 원이지, 근처 시세의 두 배였다. 같은 라인 대부분이 천에서 이천만 원 정도였고, 그 역시 에어컨이나 업소용 냉장고 같은 시설 권리금 정도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거기서 두어 블록 더 들어가면 아예 없는 곳도 있었다.
당연히 유동인구가 적어 장사가 안 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자리 잡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노력하면 지성분식만큼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기에 더욱 고민이 많아졌다.
“사천… 사천이라……”
강형우는 폰을 꺼내 양해를 구하고 찍었던 사진들을 살폈다.
“오! 이쁘다.”
“아이, 깜짝이야!”
강형우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범인은 공지혜였다. 육수 끓는 거 보라고 시켜놨더니 어느새 뒤에 있었던 것이다.
“오빠, 여기 카페 ‘날개’ 같은데요? 언제 갔어요?”
“언제라니? 어제 쉬는 날 잠깐… 아니 그게 아니라, 잠깐… 뭐라고?”
“카페요?”
“아니아니, 그 전에.”
강형우가 손짓 발짓 해가며 말하자, 공지혜는 겨우 이해했다.
“아~ 여기 카페 ‘날개’잖아요. 작년인가 되게 유명했는데, 사장님이 몸이 아파서 접었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면서 설명하길, 나름 이름난 가게였단다.
커피 맛은 모르겠지만 정말 조용한 카페였다. 게다가 사색하는 듯한 분위기가 좋아서 커플들이 많이 찾았다는 것이다.
“여기 봐요.”
한참을 검색한 끝에 블로그 몇 개가 나왔다. 사진을 보니, 진짜 강형우가 갔던 바로 그 가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