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74화 후회할지 모른다
“아재, 좀 와보소.”
젊은 총각의 말에 대머리 아저씨가 인상을 썼다.
“어린놈의 새끼가…….”
그 순간, 젊은 총각 뒤에 있던 사람들이 떼로 얼굴을 찌푸렸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당장이라도 멱살 잡고 두들겨 팰 듯 보였던 것이다.
그때 부동산 삼촌이 나섰다.
“니는 몇 살이나 처묵었는데?”
“뭐?”
“내가 오이 용띠다. 니 오팔 개띠는 되나?”
대머리 아저씨가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부동산 삼촌은 나긋나긋한 말로 조졌다.
“환갑도 안 된 놈이, 아가리가 참 걸다. 머리 벗겨졌다고 다 어른 대접 받으면, 여기 니 조상님만 한 다스다. 이~ 새꺄!”
“아니, 제가…….”
“마! 비싼 밥 먹고 개소리 하려면 방구석에서 좆 잡고 하고, 동네 좆같으면 좆 자르고 나가라고.”
어이쿠. 저 점잖은 부동산 삼촌이 흥분할 정도면 심각한 거였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직업이 직업이니, 이 동네 구석구석 안 돌아다닌 데가 없었다. 게다가 본인도 삼십 년 토박이였고 이 일대 상가들 계약을 거의 도맡아서 했다.
단지 그뿐이 아니었다.
비록 정식은 아니지만, 간단한 법률 상담이나 동네 이웃들 일도 조율했다. 진짜 이 동네 터줏대감이 부동산 삼촌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배산회 모임 내에서도 은연중에 어른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동네 욕을 들었으니 어찌 참겠는가?
“이 영감쟁이가 돌았나?”
대머리 아저씨가 갑자기 정장 재킷을 벗어 바닥에 팽개치더니 소매를 어깨까지 걷었다.
거기 아래로 시커먼 문신이 있었는데, 무슨 칼 든 도깨비 같은 거였다.
“씨발, 내가 누군 줄 알아? 팔성파야!”
그러면서 부동산 삼촌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
아무래도 보스(?)를 제압해야 일이 풀린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강형우가 빨랐다.
터업.
일단 두 손으로 양쪽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손에 힘을 적당히 줬다.
대머리 아저씨가 움찔하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뿌리치려고 힘을 줬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강형우의 손길대로 얌전하기 몸을 돌리기까지 했다.
“아저씨, 제가 녹음한 건, 싸우자는 게 아닙니다. 혹시나 했던 거죠.”
“무, 무슨.”
“다 들으셨잖아요? 전 연락을 드렸고, 마음대로 하래서 법대로 처리한 것뿐입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럼. 제가 잘못한 겁니까? 다시 틀어서 확인시켜 드려요?”
대머리 아저씨는 인상을 찌푸렸다.
동네 욕하는 거 한 번 더 틀면 진짜 동네 사람들한테 맞아 죽을지도 모르니까.
“그, 그건 아니고. 그래도 견인 전에 전화라도…….”
“폰 꺼져 있어서 연락 못 한 겁니다. 그건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안 맞습니까?”
강형우가 동의를 구하자 동네 사람들이 저마다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이렇게 되자 대머리 아저씨는 그저 분한 듯 씩씩거렸다.
“아니, 씨발. 내 차… 으으윽.”
강형우는 작정하고 손에 힘을 더했다.
순간 대머리 아저씨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느껴지는 감각이, 힘 더 주면 진짜 뼈가 바스라질 것 같았다. 이대로 손을 놓으면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강형우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어쨌든 완전히 기를 죽였다는 확신은 들었다.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강형우는 손을 풀고, 아주 친절하게 대머리 아저씨의 소매를 천천히 내려줬다.
그런 뒤, 바닥에 떨어진 재킷을 주워 팡팡 털어서 공손히 입혀주기까지 했다.
“차나 찾으러 가세요.”
“이… 씹…….”
대머리 아저씨가 입을 다물었다. 강형우가 손을 들어 눈앞에 가져다 댔던 것이다. 그리고 주먹을 말아 쥐는데, 우드드득! 소리가 났다.
“아니면 진짜 한번 해볼래요?”
***
“별 거지 같은 새끼가…….”
강형우는 대충 상황을 정리했다.
처음에는 통화 녹음 같은 건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제대로 한 끼가 주방까지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오픈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지은 죄도 없고 당당하니 못 깔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그건 그만큼 떳떳하다는 거였다.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하니 문제 될 게 없었고, 괜한 시비도 피해갈 수 있다는 거다.
거기에 강주혁이 한마디를 보탰다.
“난 성선설이니 선악설이니 안 믿어. 그리고 우리 업계 쪽에는 진상의 법칙이라고 있거든.”
손님 천 명 중에 한 명은 손놈이고, 그 손놈 열 명 중에 한 명은 개란다. 그리고 그 개새끼 열 명 중에 하나가 가게를 망하게 하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해서 오래 장사하려면 가능하면 손놈을 줄이는 게 정답이라고 했다. 좋은 손님들이 많아질수록 가게 수명이 늘어난다는 거다.
“문제는 그 새끼가 손놈인지 개새끼인지, 정말 패 죽이고 싶은 씨발 새끼인지 겉으로만 봐서는 모른다는 거지.”
가게 오픈할 때마다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게 그래서란다.
물론 가게 입구에 그런 사실을 적어놓는다.
사고 치면 법대로 처리하겠다고.
하지만 카메라만으로 한계가 있으니, 통화 녹음은 필수였고 실제로 가게 곳곳에 마이크도 설치했단다.
적어도 그것만으로 진상 비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나?
하긴 녹화되고 녹음되고 있다는데 대놓고 사고 칠 새끼들은 확 줄어들겠지.
“어쨌든 장기적으로 손놈은 줄이고, 손느님을 늘이는 게 중요해.”
강형우가 통화 녹음을 자동으로 설정한 게 그래서였다.
역시나 만일을 대비한 습관이 효과를 보였다. 물론 약간의 억지가 있기는 했지만.
여기에 강주혁의 황당한 조언까지 있었다.
“음식 장사는 도인이 수련하는 심정으로 해야 하거든. 진짜 세상의 별의별 잡놈들이 많은데, 그걸 다 일일이 상대해야 한다는 거지.”
그러다 보면 마음 수련이 되고, 어느 순간 달관이 경지에 이르게 된단다.
“그러니까 도인이 되는 길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니까? 장사만 몇십 년 무탈하게 하면, 성인군자는 그냥 되는 거지.”
어이없지만, 최근에 겪은 무수한 진상들을 보니 틀린 말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어쨌든 강형우는 통화 녹음 덕에 그럭저럭 큰 사고 없이 일 처리를 할 수 있었다.
이후 동네 사람들한테 정중히 사과하면서 간단히 설명을 했다. 주차 문제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이다.
그때 부동산 삼촌이 그랬다.
어떤 미친놈이 소리 지르면서 막 돌아다니기에 뭔가 싶어 나와본 거란다.
근데 형우 멱살을 잡고 있어서 나선 거라고 했다.
그건 대부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괜히 고마웠다.
이래서 사람이 인망을 쌓아야 하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사실, 이웃 상가 사람들과는 처음부터 친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철물점 사장님 덕택에 인사를 다녔고, 배산회 모임을 나가면서 안면을 트게 됐다. 그러면서 새로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면 나눠주면서 의견을 물어봤던 것이다.
그렇게 쌓인 정이 일여 년.
얼마 안 된 기간이지만, 진짜 이웃사촌 같았다. 그랬기에 다들 나서준 것이다.
근데 부동산 삼촌이 돌아가면서 한마디 하더라.
네가 어디 가서 맞을 일은 없는데, 혹시나 사람 팰까 봐 왔다는 것이다.
괜히 동네 살인(?) 사건 나면 집값이 떨어진다나?
농담이지만, 역시나 부동산 삼촌다운 말이었다.
소란은 이것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황당하게도 뒷이야기가 또 있었다.
구청 직원이 찾아와서 친절하게 알려줬는데, 알고 보니 그 차가 신고당한 대포차란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는데, 결론은 이거였다. 경찰에서 압수를 했다는 것이다.
하긴, 그러니까 그 대머리 아저씨가 광분을 했겠지.
어쨌든 이 일은 이걸로 끝이었다.
***
“그러니까 정식으로 해볼 생각 없냐고?”
강주혁의 얼굴을 보니 진심이었다.
대체 이 형이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만든 어설픈 음식에, 그리고 돈 버는 것에 자만하지 말란다. 그러면서 주변을 좀 돌아보며 공부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궁금했던 형님네 버거 일을 도왔고, 여차저차해서 화끈 오뎅과 제대로 한 끼 오픈부터 도우면서 일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말로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걸 조금씩 지성분식에 적용을 했다.
쌀 도정기를 들였고, 주방의 소소한 시스템을 변경했다.
그 덕에 가게 확장 발이 떨어져서 서서히 줄어나가던 매상이 안정적으로 유지됐던 것이다.
물론 아직도 바꿀 게 많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여기 일 정리하고 돌아간 뒤였다.
그런데 강주혁이 제안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형네 회사에 취직을 하라는 거죠?”
“어.”
진짜 단호박 같았다.
말 끝나기 무섭게 대답하는데, 다른 선택은 생각도 하지 말라는 투였던 것이다.
“에이. 형! 저도 제 가게가 있는데…….”
“그래, 근데 그걸로 어떻게 하려는 건데?”
“그야 몇 가지 정비하고, 메뉴 좀 더 늘리고… 어느 정도 확신이 서면 더 큰 번화가로 나가려고요.”
“그다음에는?”
“글쎄요? 몇 가지 생각한 게 있기는 한데, 봐서요. 차근차근 확장해야죠.”
그 말에, 강주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뜬금없이 피식 웃었다.
“하긴, 그게 너다운 거겠지.”
“어쨌든 죄송해요. 딱 이번 주까지만 할게요. 대신 절대 농땡이 안 부립니다.”
“크큭, 그러든가.”
강주혁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신나게 웃어댔다.
그게 좀 찜찜했는데, 어쨌든 슬슬 마무리할 때였다.
사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지성분식을 나갔지만 정작 손님 받는 일은 거의 못 했다.
새벽에 공지혜를 도와서 밑 준비를 하거나, 필요한 자재들을 구입하거나 정산 같은 것만 하다가 출근했으니까.
하지만 최근 한 달은 정말 보람됐다고 볼 수 있었다. 보다 넓은 세상을 겪고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근데 너. 후회할지도 모른다!”
“예? 왜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다.
3주치 일했는데, 통장에 무려 240만 원이 들어왔다.
***
“후우, 역시 내 가게가 최고다!”
강형우는 진짜 동트기도 전에 출근했다.
그런 뒤, 오늘 할 일들을 우선적으로 점검했다.
오전 일찍, 정수기 영업 사원이 오기로 했다. 추가하려는 게 아니라 비데 상담을 받기 위해서였다.
확실히 무식한 촌놈이 신식 문화를 겪으니 놀라웠다.
강주혁이 기린 빌딩을 사고, 제일 먼저 한 일이 그거였단다.
건물 화장실 전체에 비데를 설치한 거다.
그냥 휴지로 닦으면 개운하지 않다고, 습관이 되다 보니 이게 필수라는 거다.
무엇보다, 비데 하나에 여자 손님들 숫자가 달라진단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
사실 이 근처 상가들 중에 비데가 있는 데는 거의 없었다. PC방에도, 호프집, 분식집, 당구장, 노래방에도 설치된 걸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때문일까?
옆 건물에서 여직원들이 기린 빌딩 화장실을 몰래몰래 사용하기도 했는데, 강주혁이 그랬다.
그냥 모른 척하라고.
어쨌든 제대로 한 끼에서 일하면서 써보니 정말 좋았다.
해서 강형우는 상담을 받았다.
온수까지 나오는 비데가 한 달 요금이 19,900원이었다. 근데 정수기 쓰고 있으니 9,900원만 더 내면 된단다.
어차피 화장실은 하나에 변기도 하나였으니 부담 가는 금액도 아니었다.
오전 상담, 오후 바로 설치였다.
테스트해 보니, 쯔릿쯔릿한 게 정말 좋았다. 특히 수압이 강하니 묘한 쾌감까지 느껴졌던 것이다.
쓰읍, 변태는 아닌데…….
사실 할 때마다 좋기는 했다. 왜 이런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는지 아쉬울 정도로 말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일단 드세요.”
강형우는 간만에 한우집을 회식 장소로 잡았다.
만장일치로 소고기를 먹고 싶다고 해서였다.
공지혜가 그랬다.
소고기는 맛있게 먹으면 절대 살 안 찐단다.
글쎄다? 한 2㎏ 먹으면 못해도 1㎏는 찔 것 같은데?
어쨌든 다들 맛있게 먹고 배 두드리는데, 살짝 겁이 나긴 했다.
앞자리가 무려 4였다.
그 뒤에 자릿수는 차마 볼 수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특히 가장 미운 건 이강석과 백창호였다.
운동 좀 시켰다고, 몸보신하겠다고 마시듯이 한우를 흡입했으니까.
그렇게 전초전을 끝낸 뒤, 강형우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말이 끝나자마자 공지혜가 화들짝 놀랐다.
“예? 월급 주는 걸 바꾸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