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70화 나 좀 살려주라
“하하하, 나 대박 났다.”
김현우는 환하게 웃었다.
근데, 왜 우는 것처럼 보이는지 모르겠다.
“나 한 달에 오백만 원도 넘게 벌어.”
“진짜요?”
“그럼 뻥치랴?”
하루 평균 치킨 200마리, 주말에 손님 많을 때는 300마리 넘게 튀긴다고 했다.
배달도 안 하는데 그렇게나 많이 나가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될까 싶었는데, 들어보니 되긴 되더라.
“그러니까 두 마리 만 원이라 이거죠.”
“어.”
김현우는 갑자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 큰 통닭을 만이천 원에 팔았다.
부산에서 이름난 옛날시장 스타일이었다.
제일 유명한 집은 방송 많이 탄 깡통시장 거인통닭이었고, 그다음은 요즘 무서운 기세로 체인점을 늘리고 있는 동래시장 통닭이었다.
그 외에도 서면시장이나 거제시장 통닭 골목도 유명했다.
대충 어떤 식으로 나오느냐면, 통닭 한 마리가 만 원에서 만오천 원 사이였다.
근데 양이 잘 먹는 남자 3인분 정도 된다. 중국집 탕수육 대자 접시에 산처럼 쌓아서 나가는 거다.
김현우는 이런 방식으로 장사를 했었다.
가격 대비 푸짐하게, 마진은 술에서 남긴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이게 여러 시장들처럼 통닭 골목이 형성되고 외부에서 사람들 많이 오면 괜찮은데, 여긴 아니잖아.”
골목 한 블록만한 시장에 달랑 한집이었다. 동네 사람들만 오다가다 사가는 그런 가게였던 것이다.
그러다 직격탄을 맞았다.
조성기가 끌어들인 번개치킨 때문이었다.
번개치킨은 기본적으로 후라이드 한 마리가 9,900원이었다. 여기에 요즘 유행한다는 소스는 거의 다 갖췄다.
매콤하고 달콤한 양념치킨, 짭짤하고 달달한 간장치킨에 최근 유행하는 깐풍기 스타일 소스도 있었다. 그리고 다리, 날개, 봉 하는 식으로 부위별로도 팔았다.
한마디로 최신 트렌드가 거의 다 있는 셈이었다.
반대로 우리 통닭은, 통조림으로 파는 마트표 양념이 전부였다. 그런 구식 방식이라 상대가 될 리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가격을 낮추는 거였단다.
“처음에 만원에 팔 때까지는 괜찮았어.”
주저리주저리 장사가 얼마나 잘되고, 얼마를 벌었고 이야기하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답답할 뿐이었다.
어떤 가게든 가격 낮추는 건 한시적이거나 특별한 예외적일 때만 해야 한다. 오픈할 때나, 1주년, 3주년 기념이라거나 할 때만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행사한다고 5,000원짜리를 4,000원에 팔면, 사람들은 그 음식의 가치를 4,000원으로 본다.
홍화반점이 초반에 반짝하다가 내리막길을 걸은 게 그래서였다. 끝내 가격을 올리지 못해서 수익 구조가 악화되었고, 강주혁이 과감하게 없애 버린 것이다.
그건 의류 회사가 세일 많이 해서 망하는 거랑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었다.
“사실 고민 많이 했거든. 손님들이 계속 비싸다고 그러는 거야. 저 밑에는 만 원도 안 하고 할인도 많이 하는데, 여긴 왜 안 하냐고.”
“그거야 포지션이 다르니까요. 형네는 양이 많잖아요.”
번개치킨이 2인분이면 우리 통닭은 3인분이었다.
근데 김현우는 여기서 최악의 악수를 뒀다.
“맞아. 그래서 가격 맞추기 위에 닭 크기를 줄였어. 그래야 마진이 이전하고 비슷하더라고.”
“헐.”
특대 15호 닭이 중 사이즈 12호 닭으로 바뀌었다.
대충 300g 정도가 빠지면서 2.5인분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건 진짜 큰 실수였다.
양으로 승부하는 가게에서 양을 줄였다?
그건 망하자는 거다.
‘싸고 양 많고’ 가, ‘더 싸고 양 줄고’ 가 된 것이니까.
무엇보다 번개치킨과 같은 가격으로 경쟁한다는 건, 자신의 포지션이 가진 이득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수성전의 이점을 포기하고 같은 병력으로 공성전을 펼친 셈이었으니까.
“근데 한동안은 괜찮다가, 어느 순간 되니 손님이 팍 줄더라고.”
그건 당연한 결과다.
주 고객층은 많은 양 때문에 우리 통닭을 찾는 거였다. 그런데 양이 줄었으니 단골들 발길도 줄어드는 게 당연했다.
어째 시킬 때마다 통닭 개수가 늘어난다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그래서 나도 또 방식을 바꿨지.”
“또요?”
김현우의 고백을 들을수록 불안해졌다.
또 이번엔 무슨 삽질을 한 거지?
어째 선택을 해도 점점 안 좋은 방향을 고르는지,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었다.
김현우는 고량주 한 병이 다 비워진 걸 보고, 한 병을 더 시켰다.
그러면서 군만두도 추가해 버렸다.
“당시 소문이 들리는 거야. 모 프랜차이즈 업체가 망할 뻔하는 바람에 물량이 확 풀렸다네? 그러면서 아는 업자가 대량으로 싸게 주는 루트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두 마리 치킨으로 바꾼 거다?”
“그래. 한 마리 육천 원, 두 마리 만 원으로…….”
“허허허. 허허.”
하도 기가 차니 헛웃음이 나왔다.
이미 일부 상권을 제외하고 망한 아이템이었다. 적어도 부산에서는 말이다.
사실 강형우도 치킨 쪽으로 관심이 많아 그 쪽으로는 귀를 열어두고 있었다.
그 덕에 알게 된 건데, 부산에서는 다섯 개 업체가 두 마리 치킨 쪽으로 열심히 확장을 했었다.
그중 두 회사만 남고 다 망했다.
왜냐?
옛날 통닭 스타일의 두 마리 치킨은 유동인구 많은 번화가에서만 통했다. 일반 주택가나 배달 시장에선 수익이 나질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이런 소문도 있었다.
업계에서 나름 유명한 백중원조차 비슷한 사업을 진행하려다가 접었단다.
아무리 계산기를 뚜드려 봐도 남는 게 없다나?
어쨌든 현재 두 회사 빼고 다 철수했다.
한 곳은, 사람 많은 시장을 중심으로 술장사를 했고, 다른 한 곳은 차량 이동 판매 쪽으로 돌아선 거다.
물량이 남아돌아 가격이 저렴해진 게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걸 처리하지 못한 업자가, 현우 형을 꼬신 거였고.
“형,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그럼 버는 게 있는데… 에이 씨. 진짜 좆같아서.”
장사가 잘 되는데 왜 힘들어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들어보니 황당했다.
***
“망해가고 있다고?”
짧은 기간, 김현우의 너무나 많은 시도를 했다.
가격을 낮췄고, 양을 줄였다.
그 두 번의 변화에 단골들이 떨어져 나갔고 매출이 요동을 쳤다. 그러다 두 마리 치킨으로 바꾸고 나서 서서히 수익이 올라오더니 요즘 완전 대박을 쳤다는 것이다.
현재, 장사는 잘된다.
하지만 매상이 빠른 속도로 폭락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져서 생닭 주문량까지 확 줄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대박 난 게 아니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생겼던 것이다.
우선 경쟁 업체 번개치킨이 문을 닫았다.
원래 있던 걸 카피해서 운영한 거라, 본사 소송까지 들어온 상황이었다. 게다가 박리다매 형식으로 버는 건데 일이 하나 터졌다.
철없는 배달원이 폭주족 흉내를 내다가 교통사고를 크게 낸 거다.
보험처리 할 거 하고, 치료비 내주고 하다 보니 두 달치 수익이 훅 날아갔단다.
해서 강주혁이 과감하게 정리해 버렸다.
그 여파로 저렴한 치킨 가게는 우리 통닭만 남아 있게 됐다. 졸지에 반사 이익을 톡톡히 보게 된 것이다.
근데 그게 문제였다.
보통 낮 12시에 오픈해서 치킨 파우더를 만들고 이런저런 준비를 한 다음, 염지 닭 60마리 정도를 초벌로 미리 튀겨놓는다.
빠르면 오후 3시부터 손님이 오는데 이때부터 미친다고 했다.
저녁 10시까지 쉬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나?
치킨이 나가면, 나가는 숫자만큼 초벌로 튀겨야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알바까지 힘들다고 그만둬서 혼자 홀 서빙까지 하는 상황이란다.
한마디로, 김현우의 예상보다 과부하가 걸린 거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온갖 진상들을 만나게 됐단다.
두 마리 치킨으로 바꾸고 석 달 째인데 벌써 고혈압이 왔단다. 소화불량에 스트레스성 위궤양에 관절염도 생겼고, 수면 부족이라 신경정신병원도 다닌다고 했다.
오히려 하루에 한 번씩 시비가 안 일어나면 덜컥 겁까지 난다고 했다. 군대에서 그날 안 맞고 넘어가면 불안해서 잠 못 드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일하는데 매출은 오히려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흐름으로 봤을 때 길어야 두 달.
이 추세라면 길어야 반년 안에 문을 닫아야 될지도 모른단다.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갑갑하네.”
김현우는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걸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 통닭은 수렁에 빠진 상황이었다.
차라리 과감하게 접고 새로 하면 되는데 절대 그렇게는 못 한단다.
그러면 도움 줄 게 없다고 했더니, 이 형이 진짜 미쳤다.
“나 좀 살려주라.”
“예?”
“그러니까 정식으로 의뢰를 할게. 컨설팅 비용으로 오백만 원 주마.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아니, 왜 하필 저한테……”
“너 밖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 무엇보다, 내 사정 다 알잖아.”
눈빛에 광기까지 보일 정도였다.
정말 살려달라고, 그럴 수만 있다면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겠다는 심정이란다.
저렇게까지 매달리는데, 매몰차게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친한 형이기도 했고 ‘우리 통닭’에는 추억도 많았다.
진짜 스무 살 때, 돈 없어서 외상도 많이 했다.
군대 휴가 나오면 한 마리 시켜놓고 친구 여섯 명이서 소주를 마시기도 했고, 그러다 모자라면 현우 형이 어머니 몰래 반 마리 씩 더 튀겨주기도 했었다.
그때 이 형 별명이 ‘호구’였다.
적어도 우리한테는 말이다.
그랬던 형이 매달리고 있으니, 한편으로 마음이 아팠다.
강형우가 파악한 두 마리 치킨은, 말 그대로 박리다매였고 사람 인력을 갈아 넣어서 수익을 내는 구조였다.
그 끝은 두 개였다.
마음이 상해서 접든가, 몸이 아파서 접든가.
하지만 장사를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
지금 상황이 계속된다면, 가게보다 먼저 현우 형이 망가질 가능성이 컸다.
“일단 좀 고민해 보자.”
***
강형우는 약속대로 제대로 한 끼와 화끈 오뎅에 번갈아 가면서 출근했다.
먼저 제대로 한 끼는 이제 배울 건 다 배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실습 차원에서 새로 뽑은 직원들을 가르치는 역할까지 맡았다.
막상 그 입장이 되어보니 그 전에는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이렇게 가르치기 쉽다니.
정말이지 지성분식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처음 이강석을 가르칠 때는 거의 맨투맨이었다. 바로 옆에서 면이 익어가는 정도라든가, 돈가스가 튀겨진 색상을 확인한다든가 하면서 꼼꼼하게 일러줬던 것이다.
실제로 이강석이 강형우와 비슷한 수준의 맛을 낼 때까지 거의 일주일이 넘게 걸렸었다.
하지만 제대로 한 끼는 아니었다.
전자저울로 그램을 맞추고, 불을 켜고, 타이머 맞게 볶기만 하면 된다. 단 세 번 반복으로 거의 흡사한 수준까지 도달한 것이다.
가장 황당한 건, 라면밖에 끓일 줄 모른다던 알바생이었다.
무슨 공장에서 기계 만지다 왔다던데 단 두 번 만에 강형우와 거의 비슷하게 만들었다.
물론 숙련 부분에서 떨어져 시간이 더 걸리긴 했지만.
그 외에도 제대로 한 끼는 배울 만한 부분이 무척이나 많았다.
그래서일까?
강형우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그 시스템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이, 강 사장.”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왜, 좋기만 한데.”
김창주가 장난스럽게 말하는데, 강형우는 조금 뻘쭘했다. 부를 때마다 직원들이 쳐다보는데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됐고. 일이나 하죠?”
“그래. 일 좋~ 지.”
김창주는 요즘 신바람이 났다.
무엇보다 사람이 연애를 하더니 이전보다 훨씬 멋있어진 것 같았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까 화장실 가다가 지우 누나랑 몰래 뽀뽀하는 걸 봤으니까.
근데 이상하게 질투하거나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창주 형은 진짜 고생 많이 했었다.
그러면서도 동생들을 잘 챙겼고, 이웃이 어려울 때 도움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이건 짐작이지만, 아마 이 일대에서 가장 기부를 많이 했을 거다.
그러니 이젠 꽃길만 걸어도 좋으리라.
“야. 왜 웃어? 징그럽게.”
“그냥요. 근데…….”
갑자기 강형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건 고추 튀김 속으로 넣을 반죽 때문이었다.
“형, 이거… 버려야 할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