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69화 어, 여기야
“요리사로서 마음에 안 든다는 거지?”
“예?”
“그러니까, 음식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안 든다는 거잖아.”
“그건… 솔직히 그렇죠.”
강형우가 인정하자 고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해. 하지만 이걸 사업 개념으로 본다면 오히려 이게 확실한 거야.”
“사업이라… 하긴 음식 장사도 사업이긴 하죠.”
“그래서 경험해 보라는 거지.”
“확실히, 경험 측면에선 새롭기는 하네요.”
강형우는 다시금 만든 음식들을 쳐다봤다.
누가 봐도 맛있어 보인다.
달달한 간장 불고기에, 촉촉한 오겹살 수육. 그리고 매콤한 고추장 불고기.
밥도 100g에서 110g 사이로 맞추고 그건 반찬들도 마찬가지였다. 적당한 간에 맞게 정량이 정해져 있었고 딱 포만감이 느껴지도록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다.
정말이지 그 철저함이 무서울 정도였다.
무엇보다, 이걸 단돈 4,000원에 판다.
이 정도 퀄리티라면 부산 시내 기준으로 평균 5,000원 선이었다. 가격 대비 음식 잘나온다는 기사식당에서나 가능한 수준인 것이다.
솔직히 가성비가 무척 훌륭한 가게들도 적지는 않았다.
부산대의 고추장 불고기가 4,500원.
서면의 웰빙 뷔페가 5,000원대였고, 반찬 20가지가 나온다는 전주식당이 6,000원이었다.
따지면 이 역시 그에 못지않은 훌륭한 구성인 셈.
물론 그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시스템상으로 경비를 최대한 줄였다.
요리사의 비싼 인건비를 줄이고, 서빙 과정을 생략하고, 불필요하게 나가는 식자재도 없애 버렸다.
설거지 역시 90%는 기계가 한다. 사람은 최종 과정에서 확인만 하면 되는 것이다.
냉장고 구성도 마찬가지였다.
진공 포장 팩은 플라스틱 통에 날짜가 표기돼서 들어온다. 이걸 순서대로 넣고 1, 2, 3번 냉장고를 번갈아 가면서 쓰면 전혀 헛갈릴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인테리어도 청소가 쉽게 크고 훤하게 만들어 버렸다. 불필요한 장식을 배재한 채 포인트만 강조했던 것이다.
모든 게 이 한 끼 음식을 위한 선택이었다.
♪~ ♪♪
박차고 태어나서, 겁날 게 뭐가 있냐? 깨지고 박살 나도, 제대로 한판 붙어봐.
딱한 번 인생인데 기죽고 살지 마라.
갑자기 벨소리가 분위기를 깨버렸다. 어째 폰을 바꿨더니 소리가 무척 신나게 울려댔던 것이다.
범인은 강주혁이었다.
***
“하루 일해보니 어때?”
강주혁이 싱글싱글 웃는데, 진짜 놀림당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솔직히 충격 많이 받았죠. 정말이지 흠이 없다고나 해야 할까요?”
“오올~ 형우한테 칭찬받으니까 기분 좋은데? 좋다 내가 쏜다. 마음껏 시켜라.”
“여기… 서요?”
요즘 유행한다는 뻥구 비어였다.
안주 세트 다 시켜봐야 이만 원 수준.
역시나 이 형은 일관되게 짠돌이였다.
“그럼 통감자 튀김하고, 쥐포 튀김, 치즈스틱에…….”
“오케이, 딱 거기까지.”
“아직 남았는데요?”
“나 음식 남기는 거 싫어해. 먹고 모자라면 더 시켜.”
강주혁이 정색을 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역시나 사람이 안 변하네그려.
어쨌든 안주 주문하고 시원한 생맥주가 나왔다.
두 사람은 짠 하더니 단숨에 갈증을 날려 버렸다.
“후아~ 하, 좋다.”
“예. 진짜 시원하네요.”
“역시 여름엔 맥주지. 근데, 이거 딱 2도네.”
강주혁이 온도를 말하는데,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무슨 입구멍에 온도기가 달린 것도 아닐 텐데.
“진짜 2도 맞아요?”
“그럼? 원래 맥주가 가장 맛있는 온도가 2도야. 겨울에는 4도가 딱이고.”
“헐. 그걸 어떻게…….”
강형우가 황당해하는데, 강주혁은 씨익 웃었다.
“직접 다 해봤지. 더운 여름에 빵빵한 에어컨 아래서 테스트해 봤거든. 그리고 실제로 생맥주만 삼십 년 따르신 분이 그렇게 말하더라.”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역시나 이런 쪽으로는 이 형을 절대 이길 수 없었다. 꼼꼼하고, 치밀하고, 계산적이고, 철저하게 짠돌이고…….
“근데, 솔직한 감상을 듣고 싶거든. 그래, 가게 어땠어?”
“그야… 확실히 대단하긴 하더라고요. 그런 방식으로 음식점을 운영한다는 게, 뭐랄까, 너무 과학적인 느낌?”
“과학? 나 이차 방정식도 못 푸는데? 심지어 문과도 아니고 공과야.”
“예? 공과요?”
“그래. 공고 다니면서 쇠 깎다가 디자인과 들어갔거든.”
이걸 개그라고 하고 있으니 더욱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사람이 제대로 한 끼라는 가게를 만들었다니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이다.
“보자. 황룡, 희망국수에 퓨전 포차에 PC방 업체까지 치면 대충 다섯 개 정도인가? 아니지, 떡집까지 차렸으니, 제대로 한 끼가 일곱 번째 브랜드가 되겠네.”
저 떡집도 아주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메인은 약식이었다.
흔히 약밥이라 하는 건데 거기에 치즈 넣고 하는 식으로 만들어서 천 원, 천오백 원에 한 끼를 해결하게 한 케이스였던 것이다.
이걸 직장인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서 팔았다.
고작 2평 가게인데, 월 수익 최저 200만 원 보장이란다. 실제로는 그 몇 배를 벌어가는 가게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형은 진짜 사업에는 천재가 맞는 것 같았다.
“제대로 한 끼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거야. 재료부터 선별해서, 공장 라인까지 손이 안간 게 없다고.”
“예. 압니다. 알아요.”
지우 누나가 말하길, 인테리어까지 직접 다 했단다. 심지어 주방 동선에 냉장고 위치, 조리 타이머에 시선 방향까지 계산해서 설계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다 보니 두께 5㎝짜리 책이 됐다나?
실제로 본사에 그 책이 있다고 하더라.
“그래, 감상이 어때?”
강주혁의 눈빛은 진짜 아이들처럼 순진해 보였다. 마치 장난감을 만져본 소감을 묻는 듯했던 것이다.
“솔직히, 아주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그 시스템이 정말 효율적이거든요. 그리고, 그런 방식이라면 누구나 손쉽게 장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흐음, 글쎄요. 오늘 하루 일한 걸로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확실히 돈은 벌 것 같네요.”
강형우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일단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었다. 요리 무식자라도 라면 끓이는 정도의 능력만 있으면 음식 만드는 건 가능했다.
거기에 시간이 정말 짧았다.
강형우가 4인분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7분 정도였다. 라면에 김밥 나가는 시간하고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였고, 단일 주문이라면 5분 안에 5인분도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손실이 적으니 당연히 수익이 많을 수밖에 없죠. 비록 박리다매에 가깝겠지만.”
“브라보. 바로 그게~ 내가 원하던 답이었거든.”
강주혁은 박수를 쳤다.
그 반응을 보니, 꼭 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쁘다기보다 묘한 성취감이 든다고나 할까?
“근데,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투자금이 얼만데요?”
“보증금 빼고, 서른 평대 기준으로 일억 정도 될걸?”
확실히 저렴한 건 아니었다. 게다가 투자금을 생각한다면 수익도 많다고 하기에는 어려웠던 것이다.
“헐, 비싸다.”
“그건 니가 몰라서 그래. 본사 보증금 이천에, 나머지는 설비비하고 인테리어 간판 같은 거야. 거기에 교육비하고 기타 법적인 문제도 해결해 주고. 또…….”
들어보니 이해가 되기는 했다.
하긴, 불합리하다면 가게가 40호점이나 나올 리가 없겠지.
“근데 이게 제일 궁금한 건데요. 일 인분 팔면 솔직히 얼마 남아요?”
“전체 수익? 아니면 사장이 가져가는 거?”
“순수익이요.”
강형우의 질문은 진짜 호기심에서였다.
말이 좋아 박리다매지, 계산 실패하면 호구밖에 안 된다.
남는 것도 없이 마구 퍼주기만 하는 셈이었으니까.
“그게 보자. 공장에서 나가는 원가가 천칠백 원대 정도 되니까, 일 인분 팔면 사장은 팔백 원 정도 가져갈 거야.”
“예? 그거밖에 안 돼요?”
강형우가 황당해하는데, 강주혁은 씨익 웃었다.
“야. 하루 최소 삼백인분 넘게 나가거든?”
***
진짜 과학적이라고 해야 하나?
강형우는 실습 겸해서 또다시 음식을 만들었고, 몇 번이나 장사 시뮬레이션을 반복했다.
어차피 오늘까지였다.
그 이상은 의미도 없을뿐더러, 내일부터는 화끈 오뎅 일을 배우기로 했으니까.
근데 음식을 만들면서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하루 최소 삼백 인분.
본점 기준으로 점심 세 시간에 무려 이백 인분이 나간다고 했다. 테이블 기준으로 한 번에 육십 명씩 받는데 서너 번 회전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게 될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가능했다.
강형우 정도의 숙련된 조리사가 음식을 하면 6분 동안 10인분씩 만들 수 있었다.
5인분짜리 팩 두 개만 뜯어서 볶으면 끝이었으니까.
그사이 다른 직원이 트레이 세팅을 하면 된다.
이론상 한 시간에 백인 분, 이걸 하루 여덟 시간 하면 무려 팔백인분도 가능했다.
물론 그 전에 조리사가 파업을 하거나, 아니면 죽겠지.
가장 궁금한 건, 과연 이 동네에 그만큼 사람들이 몰릴까 하는 거였다.
근데 강주혁이 말하길 가능하단다.
오히려 왜 학생이나 젊은 애들만 올 거라고 보느냐고 구박까지 받았다.
주 고객층은, 혼밥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가만 보니 이 일대는 원룸이 정말 많기도 했다. 주택가라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저렴한 집값 때문이었다.
연산동이야 부산의 대표적인 유흥가라서 원룸 가격이 40만 원대였고, 반대편인 수영로타리도 거의 그 정도 했다.
하지만 그 중간에 있는 배산역 인근은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도 월세가 25만원 대였던 것이다.
“계산해 보면 맞기는 하네.”
강주혁은 삼백 명이 아니라, 오백 명 정도를 본다고 했다.
대충 계산하면 사장이 하루 이십오에서 삼사십만 원씩 벌어간다.
달로 계산하면 무려 육백에서 천만 원 사이였다.
무엇보다 본사에서 사업을 확신하기 때문에 최초 1년간, 월 오백 이하로 벌면 보전해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력 구성도 효율적이었다.
카운터 한 명에, 풀타임 조리 인원이 한 명, 하프 타임으로 두 명씩 쓰면 하루 오백 인분 정도는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단다.
또, 사장이 여유 인력으로 참여하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도 해줬다.
“확실히 그런 점에서는 새로운 경험이긴 해.”
지금까지의 강형우는 내 밥상과 지성분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철저하게 내실형, 그리고 압축형으로 장사를 했지 시야를 넓게 보지 못한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강형우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30인분을 뚝딱 만들었던 거다.
이걸 누가 다 먹느냐?
옆 화끈 오뎅 직원들 몫이었다. 거기에 인테리어 공사하는 사람들이 가세하니 단숨에 격파해 버렸다.
특히 인부들이 맛있다고 극찬을 했다. 그런데 양이 좀 적다고 아쉬워하다 갑자기 가격표를 보더니 박수를 쳤다.
둘이서 삼 인분 시켜서 먹으면 딱이라나?
생각해 보니 그런 구성도 가능할 것 같았다. 남녀 커플이 와서, 메뉴 세 개를 시키는 것도 말이다.
순간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주혁 형이 이것까지 예상한 건 아니겠지?”
생각해 보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어쨌든 오늘까지 일하면서 새로운 시스템을 대충이나마 알아갈 수 있었다.
문제는 저녁 늦게, 갑자기 울린 호출이었다. 우리 통닭, 김현우 형이 뜬금없이 불러낸 것이다.
“어, 여기야~”
손을 드는데, 이미 많이 취해 있었다.
장소는 황당하게도 태성반점이었다. 혼자 부추잡채를 시켜놓고 고량주를 마시고 있었던 거다.
“형,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이긴. 한잔하자고 불렀지.”
말투는 가벼웠지만 표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짐작 가는 바가 있어서 일단 같이 마시기로 했다.
강형우가 앉자 김현우가 고량주를 따라주고는 자신의 잔도 채웠다. 그리고 그 독한 걸 단숨에 들이켰다.
“크아~ 쓰다.”
“천천히 마셔요. 안주도 좀 먹고.”
“그래. 너도 먹어라.”
김현우는 부추잡채를 덜어서 한입 가득 먹더니,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맛있네.”
“당연하죠. 지금 주방에 혁기 형 들어가 있잖아요.”
“그래서 하는 말이야. 요즘 이 자식이 데이트한다고 빠져 가지고 뭐라 했거든. 음식에 독이라도 안 탔으면 다행이지.”
김현우는 피식 웃으며 또다시 강형우의 잔에 고량주를 따랐다.
그렇게 몇 잔 술이 오가고, 간단한 안부가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우 형네 닭집이 의외로 장사가 잘되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