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58화 아오 쪽팔려
깔끔하게 놓인 밥 한 공기였다.
그 옆에 편으로 썬 마늘 여섯 쪽에 고추 하나, 작은 쌈장 종지가 있었다.
메인은 그 위에 접시였는데, 흑돼지 전지를 두툼하게 잘라서 비법 양념에다 콩나물을 더해 매콤하게 볶아낸 두루치기였다.
일명 불고기 백반이었다.
이걸 싫어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에 선택한 것이고, 그랬기에 결코 대충 하지 않았다.
이 맛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던가?
우선 부산에서 손꼽히는 초량동 불백 거리를 훑었다. 그다음이 온천장 불백이었고, 개미식당이나 기사식당 라인의 불백 맛집도 다녀봤다.
거기에 대학가 쪽의 유명한 두루치기 집들도 돌아다닌 끝에 결정을 내린 것이다.
양념은, 형수 배승희한테 배웠다.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기반으로 고춧가루 두 종류를 섞어서 숙성시킨 거였다. 고추장을 넣지 않고 만들어서 텁텁함이 덜했고, 오히려 매콤하면서 달달해 거의 밥강도 수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주혁은 절반쯤 먹은 상태에서 고개를 저었다.
“망한다고. 아니, 무조건 망할 수밖에 없지.”
순간 머리가 띵했다.
팔면 망한다니?
아무리 강주혁이 음식 앞에서는 냉정하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평가하는 경우는 없었다.
“맛이… 그렇게 없어요?”
“아니. 맛이 문제가 아니야. 너, 이거 얼마에 팔 건데?”
“그게… 원가를 생각하면 오천 원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대부분 기사식당에서 그 정도 가격이니까…….”
“그래서 망한다는 거야.”
강주혁은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더니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래서 더욱 답답했다.
“뭐가 문제인지…….”
“하긴~ 지금이 딱 그럴 때긴 하지. 가게도 확장했겠다. 장사도 잘돼. 돈도 매달 천만 원 넘게 가져가지. 직원도 더 뽑아서 주방에서 요리도 거의 안 하고 하니 몸도 편할 테고……”
이야기 하는데 틀린 게 없었다.
팩트로 명치를 꾹꾹 찌르다 못해 뼈까지 때리는데, 너무 아팠던 것이다.
강주혁이 수저를 놓더니 천천히 박수를 쳤다.
“그래. 그 자신감은 좋아. 성공에 도취되는 기분도 있어야지. 그게 장사하는 맛이니까.”
왠지 조롱하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에 발끈하려 하는데, 강주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넌 음식 장사가 뭐라고 생각하니?”
“뭐가요? 돈 벌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래. 맞아. 돈 벌려고 하는 거지.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
“그런데요?”
기분이 좋지 않아서인지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하지만 강주혁은 그런 건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장사에도 급이 있다는 거 아니?”
“급… 이요?”
“그래. 쉽게 분류하면 일류, 이류, 삼류가 있어. 처음 너처럼 겨우 가게 하나 운영해 나갈 정도면 일단 삼류야.”
설명을 들어보니 가슴이 욱신 아팠다.
매달 월세 걱정하고, 인건비 때문에 허덕이고, 어떻게든 비용을 줄여서 생활비를 가져가려고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는 게 삼류라고 했다.
그건 불과 반년 전, 강형우의 모습이었다.
“넌 일단 돈 맛을 알았어. 그래서 이류이긴 해.”
“돈 맛이요?”
“그래. 장사의 즐거움을 막 깨달은 상황이라고나 할까?”
강주혁은 몇 가지 예를 들었다.
장사는 힘들다.
새벽부터 일어나 밑준비를 하고, 칼을 쓰고 불 앞에서 요리하기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간간이 여유가 생기더라도 시간이 드는 음식을 준비하기 바빴다. 돈가스의 경우 밑간을 하고 숙성시키는 그런 작업을 미리 해두어야 하는 것이다.
휴일도 휴일이 아니었다. 강형우의 경우 몇 시간씩 육수도 끓여야 했으니까.
거기에 진상 손님들도 상대해야 했고, 이번 전기세 사건처럼 가게 외적인 것도 신경 써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힘겨움을 이겨낼 수 있는 건 바로 돈 때문이었다.
“솔직히 장사의 맛은 그거야. 가게 마치고 그날 들어온 돈을 셀 때! 진짜 박카스 링거를 맞은 것처럼 활력이 생기거든. 그러면 그 어떤 피로도 단숨에 사라져 버리지.”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실제로 강형우는 매출 계산을 할 때마다 다양한 상상을 하고는 했다.
돈다발로 방석을 만든다든가, 돈뭉치를 모아서 침대 매트리스로 써보고 싶다든가 하는 거 말이다.
“어쨌든 돈맛을 보게 되면 사람이 참 즐거워져. 손님 얼굴이 돈으로 보이거든. 어지간한 진상도 가볍게 넘길 정도까지 된다는 거야. 욕을 들어도 돈이 들어오니까.”
“그렇기는… 해요.”
농담이 아닌 사실이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매출이 나날이 신기록을 세우더니 무려 300만 원을 찍었다. 그러자, 지나가다 김민석과 마주쳤을 때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더라.
“근데 이류에 오르게 되면 함정에 빠지기 쉽거든.”
“함정… 이요?”
“그래. 한마디로 도취된다고 해야 할까? 일단 돈이 팍팍 들어오니까,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지.”
“그게 잘못된 건가요?”
“어!”
너무 단호한 대답이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강주혁의 눈빛을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우선 내가 잘못했다는 말은 분명 진심이었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선생님 앞에서 꾸중 듣는 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드는 게 아닌가?
“내가 며칠 전에 전화했잖아? 기억 안 나?”
“아!”
“전기세도 분명 한전에서 연락 왔다고 했지?”
“그, 그랬죠.”
“그전에, 삽장 형님인가 하는 분이 승압 하라고 조언도 해줬다면서?”
“예…….”
지적하는 순간순간마다 이상하게 몸이 움찔거렸다.
강주혁은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정곡을 팍! 찔렀다.
“왜, 안 들었니?”
***
“아, 내가 병신이었구나.”
결론은 그거였다.
공사 확장한 뒤에 장사가 어마어마하게 잘됐다.
지금 단계라면 월매출만 최하 5,000만 원 대였다.
쉬는 날도 있었고, 다들 월급 일부를 인상시켰다. 거기에 며칠 전 알바도 한 명 구했으며 그 외 기타 지출도 제법 늘어난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것저것 다 떼고, 세금까지 감안해서 뺀다 해도 순수하게 가져가는 게 대략 천오백만 원 선이었다.
연봉으로 치면 무려 일억 팔천만 원!
이대로 몇 년만 장사하면 건물 하나 올리는 건 금방이었다.
큰 문제만 없다면 집 사고, 장가가고, 영지 시집보내고, 해마다 어머니 여행도 보내 드릴 수 있었다.
그랬기에,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 듯한 기분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남의 말을 제대로 안 듣고 흘려 버린 건 그래서였다.
심지어 강주혁한테, 다음 달이면 대출 한 번에 다 갚을 수 있다고 자랑까지 했다.
그러면서 신 메뉴가 나왔으니 맛 좀 봐달라고 부르기까지 했던 거다.
“생각해 보면 정말 어이가 없는 짓이지.”
내게 그토록 자신감을 줬던 연봉은, 주혁 형한테는 월급도 안 된다.
몇백억, 아니, 몇천억의 자산가한테 돈 좀 번다고 오라 가라 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게다가 강주혁은 그렇게 부자임에도 티를 내지 않았고 대충 하는 법이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음식에 대해서만큼은, 아니, 외식 사업 앞에서는 절대 방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는데, 난 그렇지 못했다.
“아오, 쪽팔려.”
얼굴이 벌게지고, 진심으로 민망했다.
분명 강주혁은 호의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
먼저 좋은 소식부터 알려주었다.
바로 화끈 오뎅의 이전이었다. 조가네 떡볶이를 날리고, 옆을 뚫어 홍화반점과 합친 자리에 넣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밥천왕 자리에 뭐가 들어갈 것이다, 라고 전화까지 해주었다.
그랬는데, 그걸 잊어버렸다.
그 일 때문에 이 동네를 돌아다녔던 것인데…….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더니. 내가 그 짝이네.”
진짜 부끄러워서, 쥐구멍 파고 들어가고 싶다는 기분이 이해가 될 정도였다.
고작 돈 좀 만진 분식집 사장이, 가맹점만 수천 개를 가진 기업 사장한테 주제도 모르고 그 지랄을 했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 주혁 형이 크게 화를 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대신 조건을 달기는 달았다.
“휴우, 내가 미쳤지.”
내가 야심차게 준비한 푸짐한 고기 한 상.
이건 이대로 장사하면 100% 망한다.
왜냐면, 김밥천왕 자리에 들어서는 가게가 ‘제대로 한 끼’였으니까.
강주혁이 작년에 시작해 엄청난 자금을 퍼부은 브랜드였다.
우선 광고에 억대 몸값을 자랑하는 영화배우가 출연을 했다.
그 배우들과 가족 같은 사이란다. 황룡 초창기 때부터 알바로 부려먹던 친구들이라나?
어쨌든 그 광고에 힘입어 부산 경남에만 38호점까지 들어서 있었다. 게다가 꾸준히 지점이 늘어가는 추세였는데, 밑 작업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메인 메뉴는 고기 한 상이었다.
그건 강형우가 생각한 푸짐한 고기 한상의 초특급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일단 고기부터 남달랐다.
제주도로 대형 축산 유통회사와 정식 계약으로 가장 신선한 상태로 납품받고 있었다.
쌈채소 역시 농장과 위탁 계약으로 재배하고 있었고 밑반찬도 본사 공장에서 생산 중이라더라.
근데 대량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아낀 돈을 재료에 더 투자했기에 반찬 퀄리티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 끼 가격은 고작 4,000원이었다. 기본 가격이 저렴하다는 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식사 메뉴는 고작 셋.
주문을 하면 1인분씩 나무 트레이에 나오는데 정말 퀄리티가 어마어마했다.
일단 반숙 계란이 올라간 밥이 있었다.
그냥 밥이 아니라 흑미가 일부 포함된 건데 거기에 반숙 계란에 깨소금이 뿌려져 있었다.
그 위에가 메인이었다.
달달한 간장 불고기와 매콤한 고추장 불고기, 잘 삶긴 오겹살 수육.
이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그 옆으로 깻잎 장아찌와 김치, 무말랭이 식해가 있고 편 마늘과 고추, 쌈장이 놓인다.
마지막으로 밥 옆에는 정식 국이 있었다.
주로 미역국과 콩나물국이 나가는데, 이걸로 부족하면 천 원을 더 내고 찌개로 바꿀 수 있었다.
뚝배기 해물된장, 혹은 돼지고기 김치찌개였다.
구성만 보면 강형우가 생각한 푸짐한 한 상하고는 크게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 각각의 수준이 너무 달랐다.
특히 식해는, 저절로 엄지가 척 들릴 정도였다.
부산에서 수육 백반으로 세 손가락에 꼽히는 국밥집의 독보적인 반찬이 있었다. 그걸 참고로 비슷하게 만든 건데, 고기와 그렇게 잘 어울렸던 것이다.
“후우, 아찔하네.”
아무 생각 없이 신 메뉴를 고집했다면?
아마 90%는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을 거다.
더 저렴하고 맛있는 집이 옆에 있는데, 굳이 지성분식을 찾아와 먹을 이유가 있겠는가?
강주혁이 망한다고 한 건 그래서였다.
해서 물어봤다.
“형. 그렇게 장사하면 남긴 남아요? 왠지 그냥 막 퍼주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내 장사 철학이야.”
“예?”
강형우가 황당해하는데,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근데, 왜 저렇게 슬프게 보이는 거지?
“내가 좀 가난하고 찌질하게 살았거든. 천 원짜리 짜장면 한 그릇으로 하루를 때우고. 돈 없을 때는 오뎅 하나 먹으면서 국물만 대여섯 컵 마시기도 했어.”
강형우도 그런 경험이 있기는 했었다.
월급날은 이틀도 안 남았는데, 집에 돈 부치고 나니 수중에 땡전 한 푼 없었다. 회사에 붙어 있으면 밥은 나오지만 쉬는 날에는 나가서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결론은 편의점 사발면이었다.
근데 덩치가 있으니 그걸로 성이 찰 리가 없었다. 결국 주린 배로 그날 밤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돈 없어서 굶어야 하는 서러움.
강주혁은 그걸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었다.
“막상 돈 벌고 보니까 그때가 가장 슬프더라고. 정말이지, 배고픈 것만큼 아픈 일이 없더라.”
그래서 적게 남기고 많이 퍼주는 게 좋단다.
어차피 돈도 벌만큼 벌었으니, 안 남아도 가게 유지할 수준이면 충분하다는 거다.
물론 그렇게 퍼줘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많이 벌어간단다.
그러면서 던진 질문이 이거였다.
“넌, 장사 철학이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