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57화 (57/251)

# 57

57화 이거 접어

“설마설마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었다.

강형우는 가게 입구 카운터 뒤편에 달린 낡은 에어컨을 쳐다봤다.

10여 년이 훌쩍 넘은 고물 에어컨이었다.

공사할 때 바꾸라고 듣기는 했는데, 그럭저럭 잘 돌아가서 가스만 충전해서 그냥 쓰기로 했다.

문제는 실내 평수가 넓어졌다는 거다.

그걸 커버하려면 하루 종일 틀어놔야 하는데, 덕분에 가게 마칠 때까지 쉴 새 없이 돌려야 했다.

그다음은 추가로 들어온 냉장고였다.

오픈 주방 말고, 안쪽 주방에 업소용 대용량 냉장고가 한 대가 더 들어왔다.

그건 리모델링 기념으로 분석이 형이 선물한 건데 가격은 안 알려주더라. 그냥 회사 냉장고 교체하고 남은 거라면서 보내준 것이다.

그게 전기세를 좀 많이 먹는다고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게 제일 중요했다.

7월에 접어들면서 더위가 찾아왔고, 그만큼 강형우는 바쁘게 보내야 했다.

바로 신 메뉴 보강 때문이었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어봤는데, 그러다 집에 가기 귀찮아서 그냥 가게에서 잤던 것이다.

사실 공사 전이라면 방에서 자겠지만, 확장을 하면서 뜯어버린 터라 옷 갈아입을 작은 공간 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체격이 큰 강형우가 눕기는 불가능했다.

다행이 홍태구가 이사하면서 접이식 침대를 얻어왔고 홀 한쪽에 그걸 깔고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열대야라는 게 문제였다. 덥고 습하고, 끈적거리는 날씨 때문에 또 에어컨을 돌려야 겨우 잘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하루 종일 겔겔 대던 녀석이 야간에도 움직여야 했으니 전기세가 폭증할 수밖에.

“그게… 대충 열흘 정도나 되네.”

손가락을 꼽아보니 작년에 비해 에어컨만 두 배 이상으로 돌린 상황이었다. 누진세를 감안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금액이었던 것이다.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돈 더 들더라도 해버리는 건데.”

공사할 때 삽장 형님이 그랬다.

가게 크기에 비해 전기가 작은 것 같은데 괜찮겠냐고.

그래서 견적을 물었더니 승압하는 데 이것저것 추가하면 대략 100만 원 정도면 될 것 같단다.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배선 공사 일부는 다시 해야 한다는 거다.

다행인 건 사업자등록증이 있기에 상업용으로 바꾸는 건 쉽다고 했다.

또, 막상 하고 나면 전기세가 과도하게 많이 나오는 일이 적단다.

하지만 사실 썩 땡기지는 않았다.

여름 삼 개월, 돈 십만 원 정도 더 내고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해버릴걸.”

한마디로 아끼다 똥 된 격이었다.

강형우가 자책하는데, 이강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니까, 쓸 때는 쓰라고요.”

***

“벼엉~ 신.”

강주혁이 피식 웃는데 속이 쓰렸다.

“형까지 왜 그래요?”

“야! 아무리 초짜지만 너무 몰라서 그런다. 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장사 시작한 거냐? 하기 전에 기본적인 건 알아보고 해야지.”

“당연히 저도 알아볼 만큼 알아봤어요. 근데 음식 장사니까 음식 위주로만 집중한 거죠. 솔직히 전기세는 진짜 예상 밖이었거든요.”

강형우는 열심히 투덜거리면서도 변명을 이어나갔다.

“근처 가게도 다들 비슷하게 나오고, 처음 인테리어 할 때도 큰 문제가 없었다고요. 그리고 작년에도 대충 삼십 얼마 선이었는데…….”

한참을 듣던 강주혁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세상에 믿을 놈 없다. 처음 공사할 때 업자가 별말이 없었다는 건, 너한테 돈 나올 구석이 없다고 봐서야.”

“예?”

“보나마나 뭐 아끼고, 뭐 아끼고 그런 식으로 했겠지. 그러니 이 사람한테는 더 벗겨 먹을 게 없겠구나 싶어서 이야기 안 한 거라고.”

그러면서 설명을 하는데, 들어보니 그럴 만했다.

지성분식 처음 했을 때는 정말 빠듯했다. 워낙에 오래된 건물이기도 했지만, 화장실과 구조 변경에 꽤나 돈이 많이 들어갔던 것이다.

때문에 주방 쪽은 뭐 한 게 없었다.

어차피 냉장고나 주방 기구 들어오면 안 보일 거라 생각해 대충 때운 게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경고장 같은 거 안 왔어? 보통은 전기 갑자기 많이 쓰면 연락이 오든가 할 텐데…….”

“그게…….”

오긴 왔었다.

근데 하필이면 공사 끝낸 직후였고 한창 바쁠 때라 듣고 잊어버렸다.

결론은 내 불찰이었다. 한전 직원과 통화 후 바로 인정한 게 그래서였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강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장사가 힘든 거야. 특히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사장 혼자 하는 경우가 그래. 하나에서 열까지 뭐라도 빠뜨리면 안 되거든.”

“그야, 그렇기는 하죠.”

이번 일로 깨달은 게 적지 않았다.

확실히 음식 솜씨 하나만 가지고 장사에 뛰어드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음식 부분만 해도 신경 쓸 게 엄청 많았다.

일단 손님 받고 나가는 데까지만 해도, 자재 구입, 조리 기구, 접시, 테이블, 의자, 수저, 청소, 설거지, 음식물 처리까지의 과정이 필요했다.

그 하나하나를 사장이 직접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해야 했고, 직원들은 그저 맞춰서 따르는 식이었으니까.

다행이 식당 경험이 많은 순이 이모가 도와준 덕에 그럭저럭 맞춰갈 수 있었다.

또, 가게만 봤을 때, 전기, 수도, 정화조, 인테리어, 동선, 장식 등등이 있었다.

이 역시 홍태구의 도움이 컸다. 이래저래 전화를 해서 물어봐 알음알음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여기에 세금으로 들어가면 더욱 복잡해진다. 종합소득세에 연말 정산에, 카드 결제 대금에 수수료에…….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장사가 힘들다고 하는 게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네.”

“예? 뭐가요?”

“나 아는 곳에 이번에 전기세 폭탄을 맞았거든.”

강주혁이 씨익 웃는데, 왠지 섬뜩했다.

거래처 중에 정말 악독한 PC방 사장이 있었다.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정한 방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자기가 사장이라면서 마음대로만 하려고 하니 이래저래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특히 공사비 결제 때마다 시간 끌기 일쑤라, 일정 딜레이가 많이 됐단다.

게다가 본사 방침을 어기고 표준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으니 알바 관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 역풍을 고스란히 맞았단다.

“한 달 전기세가 삼백만 원 넘게 나왔다더라.”

“헐, 그게 가능해요?”

“당연하지.”

PC방이라서 전기 공사비만 몇 백이었다. 승압도 최대한 했고 적어도 본사에서 해줄 건 다 해줬단다.

하지만 워낙 의심이 많아서 야간 알바로 아들을 썼는데 그게 문제였다.

분명 본사에서 전기 지침을 파일로 만들어서 준다.

특히 여름철 전기 관련 때문에, 시간별로 에이컨 체크하고 온도 유지 노하우 같은 걸 가르쳤는데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려 PC만 80대였다.

업소용 40평대 대용량 에어컨 두 대가, 한 달 24시간을 쉬지 않고 풀로 돌아갔다는 거다.

“적절히 관리하라고 했는데, 귀찮았던 거지.”

규모가 있어서 원래 120만 원 전후라고 했다.

하지만 사장 아들이 별생각 없이 계속 돌린 에어컨 때문에 두 배가 넘게 나온 거다.

“뭐, 그 사장에 그 아들이지.”

한마디로 자업자득이란 소리였다.

그 결과, 대판 싸움이 났는데 열받은 아들이 가출해 버렸단다.

“에이, 그래도 그렇지.”

“니가 몰라서 그래. 돈에 환장한 사람 중에 일부는, 아들이라고 예외 없어! 죽을 때까지 한 푼도 안 쓴다고.”

“설마요? 그래도 가족인데……”

강주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식에게 돈 쓰는 경우는 딱 하나야. 말년까지 재산을 지키려면 혼자서는 불가능하거든. 그럴 때는 역시 혈육이 최고지. 그래서 교육시키고 키우는 데만 돈을 쓴다고.”

“형, 너무 나갔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려구요?”

“니가 세상 덜 살았구나. 세상에 더한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면서 뉴스 좀 보라고 했다.

사회를 혐오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경각심 정도는 가지고 살아야 한단다.

그래야 당하지 않으니까.

“그건 그렇고, 전기세 나간만큼 성과는 있었어?”

“아! 그게요. 잠시만요.”

강형우는 그제야 강주혁을 부른 용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때문에 주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어서 내왔다.

일명, 푸짐한 고기 한 상이었다.

***

강주혁의 말대로였다.

비싼 전기세를 쓴 만큼, 성과가 있기는 했었다.

사실 개고생을 한 건 이유가 있었다.

미묘한 지성분식의 정체성 때문이었다.

현재 파스타의 기세는 한 풀 꺾인 상태였다. 길 건너 맞은편에 생긴 집에서 일부 손님들을 흡수해 갔던 것이다.

궁금해서 홍태구에게 부탁을 했다.

먹어본 후의 감상평은 이랬다.

우선 퀄리티는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쪽은 이쁘장한 여자 알바 한 명에 젊은 사장, 이렇게 둘이서만 한다는 것이다.

일명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파스타 집이었다.

음식도 늦게 나오고, 잦은 실수가 있지만 가격이 깡패였다. 단돈 5,000원에 마늘 바게트와 파스타, 여기에 양배추 샐러드까지 나온다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가 싶었더니, 되긴 되더라.

알바가 사장 여친이고, 건물은 아버지 거였다. 그러니 인건비도 조금 들고 월세도 없었던 거다.

어쨌든 운이 좋았다.

파스타가 매상의 상당수를 차지했다면 타격이 컸겠지만, 현재 메인 메뉴는 돈가스였다.

매출 일등공신이었고 이것만 팔아도 될 정도로 호응까지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현재 지성분식은 돈가스가 매출의 50% 수준이었다.

여기에 파스타가 30%였는데, 그 역시 세트 메뉴 때문에 나가는 정도였다.

그 외 라면과 김밥, 그리고 덮밥과 일부 손님만 찾는 사골육수로 만든 떡만둣국 정도가 전부였다.

한마디로, 전체 비중이 양식 쪽이 컸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근처의 누군가가 돈가스집을 시작한다면 매출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 장사 더럽게 어렵다.

누가 뭐 좀 한다고 하면, 그래서 잘되면 비슷한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긴다는 게 거짓이 아니었다.

때문에 고민을 했고, 창주 형과 친구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얻었다.

특히 강주혁의 충고가 주효했다.

무조건 가격은 그대로 하되 원가 비율을 올리란다. 그래야 유사품이 생겨도 단골 이탈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성분식에서만 먹을 수 있는 돈가스.

그걸 어필하라는 것이었다.

돈이 더 들더라도 고기를 바꾼 게 그래서였다.

제주 무항생제 흑돼지였다.

등심 부위 가격만 무려 15% 정도가 더 비쌌는데 막상 해보니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돈가스 전체 원가에 비하면 몇백 원이 오른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광고한 덕에 손님들이 더 몰렸다. 가게 확장하면서 걱정했던 빈 테이블에 대한 우려가 확실히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돈가스는 돈가스였다.

누가 따라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으니 다른 메뉴 보강은 필수였던 것!

원래 첫째 후보는 김밥과 라면이었는데 과감히 포기했다. 현재 상황에서 맞지 않았고, 업그레이드 해봐야 특색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라면과 김밥에 대한 애착이 없을 수는 없었다. 지성분식의 초창기를 먹여 살린 일등 공신이었으니까.

게다가 들인 공도 적지 않아 많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과감하게 포기한 건 이유가 있었다. 다른 메뉴에 확 꽂혀 버린 것이다.

해서, 고생해서 준비했다.

하지만 평가 첫마디가 이거였다.

“이거 접어.”

“예?”

“네가 장사 잘된다고 눈이 돌아간 모양이네.”

“아니… 왜요?”

강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고 보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주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거 팔면 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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