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53화 그럼 해보게
“아, 진짜 더럽게 맵더라고요. 순간 열이 확 뻗치는데…….”
이 자식이 또 발작을 하려는지 씩씩댔다.
강형우가 노려봤다.
“니가 이빨 보일 상황이냐?”
“아! 죄송합니다, 형님.”
“죄송이고 나발이고, 진짜 확~”
강형우가 손을 번쩍 들자 남자의 몸이 바로 쭈그러졌다.
그러면서 변명이라고 하는데, 기가 막혔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셨다. 그 때문인지 아침에 거시기가 영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여친이랑 대판 싸웠는데, 그거 풀어 주려고 맛있는 거 먹자고 나왔단다.
그런 상황에서 돈가스가 너무 매웠다. 그런데 남자가 그것도 못 먹냐면서 자존심을 긁어 버리니 울컥 화가 났다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거시기까지 차이니 눈에 뵈는 게 없어지더란다.
그래서 홧김에 주먹을 휘둘렀다나?
하지만 상대는 강형우였다.
결과는 당연히 처발린 거고, 가게 안에서 버팅기다 머리끄덩이 잡힌 채 주방 뒤편까지 질질 끌려 나온 상태였다.
“야이~ 미친 새끼야. 내가 그걸 이해해 줘야 하니?”
감정이 실렸는지 강형우의 눈에서 진짜 살기가 나갔다.
남자는 발작하려다 다시 쪼그라들었다.
“아닙니다.”
“됐고. 민증이나 까 봐.”
“예?”
“민증 까 보라고.”
남자가 주저주저 하자 강형우가 손을 들었다.
동시에 지갑이 열리고 민증이 튀어나왔다.
“이름 김민석, 90년생이면 스물셋인가?”
“예.”
“집은… 주소가 바로 요 뒤편이네?”
지성분식과 끝자리 몇 개밖에 차이가 나질 않았다. 게다가 원룸 이름이 떡하니 박혀 있으니 어딘지를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폰도 꺼내 봐.”
강형우는 폰까지 받아서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번호 확인까지 끝낸 뒤, 민증과 폰을 돌려줬다.
“너 똑똑히 들어. 지금 무슨 상황이냐면… 일단 쌍방 폭행이야.”
그런 것치고는 한쪽 상태가 심하게 좋지 못했다. 탱크로 경차를 밀어 버린 것 같이 일방적으로 찌그러졌던 것이다.
“그리고 영업 방해지. 너 때문에 점심 장사 망쳤잖아.”
녀석이 손님들에게 달려들려는 걸 강형우가 막아서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몇몇 손님들이 불쾌하다고 나갔고, 결국 돈을 안 받기로 했다.
“그리고 기물 파손. 의자 다리 하나 나갔고, 테이블도 멀쩡한지 봐야지. 마지막으로 벽에 금 갔는지도 확인 다 할 거야!”
“아니, 그걸 왜…….”
“벽을 내가 쳤냐? 니가 쳤지. 그리고 수저통 날아간 거, 숟가락 휘어진 것 하나하나 다 찾아서 손해배상 청구할 거니까 그렇게 알라고.”
“무슨 씨…….”
김민석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정말 열이 받았는지 강형우가 멱살을 와락 붙잡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김민석은 까치발로 겨우 서 있어야 했다.
“너 죽을래? 진짜 누가 화를 내야 하는지 몰라?”
그나마 이성이 있으니 이 정도에서 그치는 거다.
솔직히 일 년 넘게 장사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어떤 사람이 네온사인 간판을 할부로 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걸 설치하고 광고까지 받으면 가격이 더 저렴해진다면서 구매를 권유한 것이다.
혹시나 해서 알아보니 신종 사기였다. 카드로 결제를 하면, 깡처리가 되고 다음 달부터 몇 백만 원을 독박 쓰게 되는 거다.
또 한 번은 중소기업 제품 좋은 게 저렴하게 나왔다면서 업소용 휴지를 판다고 했다.
확인해 보면 종이 질이, 똥 닦다가 치질 걸리게 생겼다.
칫솔을 떨이로 판다는 사람도 있었고, 황당하게도 분식집에 때타월을 팔러 온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강형우는 끝까지 인내심을 놓지 않았다.
웃으면서 거절했고, 뒤탈이 생기지 않게 친절하게 내보냈었다.
차라리 고등학생들끼리 일진 놀이하면서 주먹질 하는 건 오히려 더 편했다.
일단 애들이 싸우면 주방 뒤편으로 끌고 갔다. 그런 다음 어디 학교, 몇 학년 몇 반, 누구인지를 물어본다.
어차피 거의 한동네 애들이었다. 창주 형이나 배산회 멤버들에게 전화하면 형, 동생에 부모님 호구 조사는 금방이었던 것이다.
부모님 부를까? 학생 주임쌤이 누구라고?
너네 형이 내 후배인데?
거의 이 선에서 90% 이상이 정리가 된다.
거기에다가 다음에 그러는 거 눈에 띄면 가만 안 두겠다고 한 뒤에, 적당한 각목 하나를 손날로 날려 버리면 끝이었다. 애들 눈빛이 달라지면서 고분고분한 양이 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까다로운 게 어르신들이었다.
이분들은 절대 주먹질은 하지 않는다. 그냥 서로 멱살만 잡고 고래고래 고함만 지르는 거다.
그러니 건드릴 수도 없고 사이에 끼어서 난처한 상황만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공지혜가 경찰을 부르면 겨우 해결이 된다.
시간은 평균 15분에서 20분 정도였다.
그 동안 장사 못하는 거 생각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르신들한테 돈 내어 놓으라 할 수 없으니 속만 타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무수한 난관을 겪으면서도 폭력은 참았다.
하지만 이 새끼는 아니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또라이 스타일이었던 거다. 그래서 대처가 늦었고, 손님들 보는 앞에서 실수하고 말았다.
그냥 열불 나서 무자비하게 패버렸으니까.
갑자기 강주혁의 조언이 생각났다.
“야. 너 아까 뭐라고 그랬냐? 분노조절 장애?”
“예. 병원에서 그러던데요?”
“그럼 정신병이네?”
“그, 그건 아니고요. 그냥 욱하는 성격이라…….”
“그럼 아니네?”
김민석은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강형우는 피식 웃으면서 손바닥을 털었다.
“아는 형이 그러더라고. 그런 병은 없데. 금방 고칠 수 있다면서 병도 아니라네.”
“예?”
“한 번 더 폭발해 봐. 욕하고 시비 걸고 주먹 휘둘러 보라고. 진짜 조절 장애가 생기나 보게.”
“그게 아니라…….”
김민석이 한없이 쪼그라드는데, 강형우가 결정타를 날렸다.
“아니면, 불돈가스 다시 먹어 볼래?”
***
장애는 개뿔.
결국 만만한 상대 앞에서만 개지랄 떠는 거였다. 그걸 주변에서 받아 주니 그렇게 포장하고 다닌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강형우가 눈앞에서 손으로 벽돌 한 장을 쪼갰더니 바로 깨갱 하더라.
애초에 그런 병이 없었다는 듯, 지극히 예의 바르고 공손해진 거다.
진짜 성질 같아서 죽빵이라도 한 방 날리고 싶었는데 혹시나 장례비가 나올까 봐 관뒀다.
“진짜 별 거지 같은…….”
강형우는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담배를 물었다.
경찰 안 부르는 조건으로 영업방해와 기물파손에 대해 보상받기로 했다.
우선 이백만 원을 불렀다. 그리고 나중에 확인해 보고 전화해서 정확한 금액을 알려준다고 일단 보냈다.
당연히 이번에는 ‘발끈’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뒤, 주방에 들어섰는데 정말 분위기가 거지 같았다.
특히 이강석과 정은혜는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평소에는 농담도 잘하고 잘 웃는 사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방금 전의 광경이 너무도 살벌했던 것이다.
하긴, 사람이 걸레짝이 되도록 패버리고 질질 끌고 갔으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순이 이모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형우야. 걔, 보냈어?”
“예. 깨진 거 돈 받기로 하고 일단 보냈어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순이 이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구~ 몹쓸 놈 같으니라고. 장사 잘하는 남의 가게에 와서 행패는……. 하여간 그런 놈은 콩밥 좀 먹여야 하는데 말이야.”
“맞아요. 그래야 우리 같이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 보지 않죠.”
공지혜까지 순이 이모를 거들었다.
그러면서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솔직히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홀에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방금 전의 일 때문인지, 싸늘한 공기 때문인지 30분 동안 단 한 명도 들어오질 않았던 것이다.
강형우는 답답했다.
동네가 좁은 터라, 소문은 금방이었다.
지성분식 사장이 조폭이라더라. 원래 전과자였는데, 장사를 시작했다더라.
손님 한 명을 두들겨 패는데, 무시무시했다더라.
등등의 이야기가 퍼지면, 영업에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괜히 과거 이야기가 퍼지기라도 한다면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이상해질 게 분명했다.
아직도 이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망미동 개릴라라는 별명은 정말 유명했었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강형우는 손으로 얼굴을 쳤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호사다마라고 했었다. 일이 잘 될 때는, 뭔가 꼬이는 일도 같이 따라왔던 것이다.
“그래. 액땜했다 치자!”
강형우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꿀꿀할 때는, 오히려 일을 벌이는 게 정답이었다.
안 그래도 생각해 놓은 게 있었다. 그 타이밍만을 보고 있었는데, 차라리 이번이 좋은 기회 같았다.
“자자! 이모하고 강석이는 주방 정리 좀 하고 오세요. 안 그래도 할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모두를 불러 모은 강형우는 의외의 말을 꺼냈다.
“오늘 장사 접고, 회식 어때요?”
***
“형우야. 그러니까 휴가 가자고?”
“예. 사실 전부터 이야기하려고 했거든요. 안 그래도 두 달간 다들 고생하셨잖아요.”
사실 두 달이 아니라 몇 달은 더 지난 것 같았다.
그만큼 바빴고 정신이 없었다.
다행인 건, 손님들 주문의 상당수가 하와이안 돈가스에 몰려 있다는 거였다.
때문에 미리 준비를 해두어서 제일 바쁜 시간에도 딜레이는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또 하나가 있는데, 제기랄!
전에 망한 김밥천국 자리에 작은 파스타 집이 생겼다.
정말이지 이럴 때는 강주혁의 통찰력이 놀랍기만 했다. 진짜 반년 안에 생기다니.
정말 짜증 나는 건, 거기 사장이 전에 주방 보조로 며칠 일했던 젊은 녀석이라는 것!
홍태구가 일러주길 그 건물주 아들이란다.
김밥천왕 때문에 망했는데, 거의 몇 달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가게 비워 둘 바에 자식이 뭐라도 하겠다고 해서 내줬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인 건, 지성분식의 메인이 돈가스로 옮겨갔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매출이 줄기는 했지만 아직은 나쁘지 않았다.
“이모, 제가 많이는 못 드리는데요.”
그래도 번 게 있으니 휴가비 겸 보너스는 넉넉히 주기로 했다.
공지혜와 순이 이모는 50만 원, 이강석은 30만 원이었다. 정은혜는 20만 원이나 준다고 하니 오히려 부담스러워 하더라.
사실 요즘은 일머리가 늘어서 잘하고 있었다.
그렇게 달래니까 겨우 수긍했다.
어쨌든 6월 말, 우리는 열흘 동안 휴가를 가기로 했다.
물론 강형우는 못 논다.
해야 할 일이 잔뜩 있었으니까.
“결심했구먼.”
“예.”
“그럼 해 보게.”
“감사합니다.”
역시나 쿨한 우리 건물주님.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 단번에 오케이였다. 게다가 공사비 견적이 200만 원 정도가 나온다니, 한 달 월세는 안 받겠다고 했었다.
해서 강형우는 공사를 진행시켰다.
사실 고민 많이 했다.
일전에 제안을 받았을 때는 확신이 없었다. 거기에 강주혁의 충고도 더해져서 확장을 미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때가 기회라는 생각이 강렬했던 것이다.
주방 뒤편에 방이 하나 있었다.
옷을 갈아입거나, 잠시 쉴 때 자는 용도였는데 현재는 절반이 창고 상태였다.
전에 살던 아줌마가 여기서 애들 둘을 키웠다니 신기했다.
하지만 막상 짐을 싹 치우고 보니 의외로 넓었다.
강형우는 여기와 사골 육수를 끓이던 뒷마당, 그리고 건물 뒤편의 담까지 확 뚫어 버리기로 했다.
그것 때문에 박첨기를 찾아갔고, 허락을 받아낸 거다.
사실 옛날 건물이 그렇다.
요즘처럼 땅 면적을 기준으로 많이 채워서 올리는 게 아니었다. 건물을 짓고도 땅을 경계로 담까지 치는 식이었던 것이다.
알아보니 구조 변경이 가능하다고 했다.
공사 기간은 대략 열흘이었다. 그 기간 동안을 휴가로 잡은 것이다.
그사이 자잘한 일들이 있었는데, 스타트는 공지혜였다.
원룸을 알아본다고 강영지와 돌아다니다가 황당한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인정둥이는 군대에 있었다. 그러니 여자 혼자 밖에서 살 바에야 집에 들어와 같이 사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
여기에 어머니까지 적극 찬성해서, 결국 여자 셋이서 지내기로 했단다.
당연하게도 이삿짐을 나른 건 강형우였다.
박혜숙이 말하길, 인정둥이가 휴가 나오면 아들 자취방에서 재우라나?
어쨌든 그렇게 일 하나가 끝나더니 또 하나가 생겼다.
김민석이 찾아와 무릎을 꿇었다.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요… 돈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