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24화 해도 해도 너무했다
“그게…….”
“그거고 저거고, 씨발! 왜 안 망하냐고~~ 약속이 다르잖아! 받아간 돈이 얼만데?”
조성기가 막무가내 반응을 보였다.
김 부장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화풀이를 받아주었다.
“처음에는 이거다 저거다 하면서 몇 천씩 가져갔고, 건수마다 천만 원씩 받아갔잖아요”
“그건 이미 저희 쪽에서 충분히 설명드렸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조 사장님이 계속 일을 추가하시면서 지출이 늘어난 겁니다.”
김 부장의 조곤조곤한 말투는 설득력이 있었다.
어차피 조성기도 다 알고는 있는 상황이니 딱히 반박할 말도 없었다.
“아, 됐고! 빨리 다른 방법이라도 내놔 봐요. 다른 가게는 몰라도, 저 분식집은 제대로 망해야 한다니까요.”
김 부장은 조성기의 억지에 화가 났다.
하지만 귀하신 돈줄인 이상, 적당히 무르익을 때까지는 참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뭐,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사장님, 아시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계획대로 잘 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조성기는 인상을 찌푸렸다.
눈앞의 김 부장은, 정말 운 좋게 소개받을 수 있었다. 잠시 울컥해서 화를 내긴 했지만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름 김용철, 나이 36세.
컨설팅 업계 8년 차로 몇 개의 굵직굵직한 건수를 해치웠다고 들었다.
제일 먼저 망미역 고가도로 아래 커다란 순대국밥집이 자신의 작품이라고 했다.
일단 그 건물은 크고 화려했다.
손님들도 많았고 인터넷 블로그 같은 걸 보면 호평도 제법 올라와 있었다. 직접 가서 보니, 맛은 모르겠지만 장사는 그럭저럭 잘되더라.
게다가 김용철이 인사하자 사장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외에도 자신의 성과라고 말한 가게들이 몇 있었는데, 검색해 보니 상당히 유명했다.
그랬기에 비싼 금액을 불렀음에도 지불했다.
첫 수수료는 5,000만 원이었다.
그 외에도 자잘하게 지불한 돈은 전부 1억에 가까웠다.
사실 그 돈은 아깝지 않았다. 자신을 대신해서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해 주었으니까.
먼저 김용철은 건물을 매입했다.
가격은 12억.
도로가 인접한 땅이었지만 관리가 잘 안 되어서 시세보다는 저렴한 편이었다.
여기에 조성기가 가진 돈 2억과 은행 대출 7억을 더해서 지금의 기린빌딩을 올리기로 했다.
지하는 일단 조성기의 의견대로 PC방을 넣기로 했다.
1층에는 지성분식을 상대할 김밥천왕.
화끈 오뎅을 내보낸 자리에는 조가네 떡볶이가.
그런 뒤, 흥화반점을 입점시켰고, 거기에 더해 요즘 확장을 시작한 엄마 버거와 제휴했다.
그다음은 반경 2㎞ 내에 없는, 하지만 돈이 확실히 되는 브랜드였다. 그래서 비싼 돈을 들여 프랑스바게트와 9900원으로 유명한 번개치킨을 넣은 것이다.
김용철의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여섯 개의 가게에서 나오는 월 수익은 무려 3,000만 원이 훌쩍 넘었으니까.
하지만 조성기는 만족하지 않았다.
이자로 나가는 돈만 2,000만 원이 넘었다. 은행 이자에 대부업체 이자를 더해서 그 정도나 되는 것이다.
은행은 건물 올릴 때, 대부업체는 가게들 입점시킬 때 돈을 빌렸다.
그때 김용철이 그랬다.
상가만 전부 입주시킬 수 있다면, 그 보증금으로 대부업체 빚을 갚는 것이 가능하다고.
실제로 이 층 호프집의 경우 보증금만 오천이었다.
지하는 삼천 정도로 잡았고, 2층 한 곳하고 3, 4층만 나가면 단번에 몇억이 들어오는 셈.
거기에 월세 수익까지 더해지면 대출금 갚는 건 일도 아니었다.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정작 중요한 김밥천왕이었다.
장사는 잘되는데 수익이 나지 않았다. 가져가는 건 겨우 자기 인건비 몫의 200만 원 정도였고, 요즘에는 음식에 대한 불평도 들리고 있었다.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지성분식이 곧 문을 닫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파리조차 안 날릴 정도라 강형우 성격까지 거칠게 변했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여친하고도 헤어진 모양이었다.
그렇게 계획대로 모든 게 잘 풀릴 듯했는데, 갑자기 일이 꼬였다. 지성분식에 손님이 넘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씨발!”
조성기가 버럭 욕설을 내뱉었다.
화들짝 놀란 김용철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뇨. 갑자기 열불이 나서.”
정말 속이 타는지 조성기는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그러다 사래가 걸렸다.
“컥, 크헉. 켁켁, 쿨럭. 켁.”
“자, 잠시만요.”
김용철이 다시 물을 떠오고, 조성기가 급히 받아 마셨다.
이번에는 딸꾹질이었다.
“뜰끅, 끄윽, 딸꾹, 끼윽…….”
조성기의 몸 개그가 끝난 건 무려 5분이나 지나서였다.
***
“참 골치 아프네.”
김용철은 김용철 나름대로 머리가 아팠다.
조성기의 집착은 병에 가까웠다.
처음, 지성분식을 무너뜨려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황당했다.
가장 친한 친구 가게란다.
그래서 일부러 술을 먹였다.
소주, 맥주에 이어 양주까지 먹였더니 술술 불더라.
이야기 들으면서 김용철은 연이어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그건 너무 좋게 봐준 거였다.
그래서 똥으로 정정했다.
아니, 똥은 비료라도 되는데, 조성기는 아니었다.
저건 폐기해야 할 방사능 덩어리였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말라죽는 발암물질인 것이다.
솔직히 세상에 저런 또라이가 다 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의뢰는 의뢰요, 돈은 돈이었다.
해서 김용철은 일을 받아들였다.
사실 평범한 분식집이면 벌써 자빠뜨리고 남았다. 실제로도 몇 번 해봤고,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계획대로라면 두 달 뒤 폐업예정!
한데, 강형우는 살아남았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이미 김용철은 많은 정보를 쥐고 있었다.
지성분식 자리가 얼마짜리이며, 매달 인건비가 얼마나 나가고, 음식 원가에 수익 비율까지 철저하게 계산을 마쳤다.
그것을 바탕으로 김밥천왕의 음식을 그렇게 만들었다.
지성분식의 맛을 죽이기 위해서.
그래서 고용한 사람이 주방장 황갑주였다.
한때 덕천로타리 최고의 중식당이라는 홍해의 주방장이었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사고로 쫓겨났기에 취직이 쉽지 않아 뒷세계로 흘러든 거다.
조미료를 잘 다루는 그를 고용한 뒤에도 공작은 끝나지 않았다. 뒷돈까지 더해서 프로인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려 죽이기를 시작한 것이다.
보통 이 정도 되면 다들 백기를 든다.
매출이 줄고 재료가 남게 된다.
수입이 줄어들면서, 직원을 자르게 되면 음식 질도 나빠진다. 당연히 손님이 줄게 되면서 통장 잔고가 메말라 가니 장사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어묵국밥이라…….”
김용철이 보기에 이건 단발성이었다.
하지만 계절의 특수성과 지금까지 없었던 메뉴, 거기에 노하우가 깃든 맛의 깊이와 이학수라는 행운이 더해졌다.
그 때문에 지성분식의 수명이 서너 달 연장됐다.
“이쯤에서 포기해 주면 좋을 텐데.”
그 상대는 강형우가 아닌 조성기였다.
하지만 그의 집착을 알고 있었기에 절대 그럴 리 없다고 판단했다.
“일단 한 번 더 해보고 고민하자!”
김용철은 지성분식을, 아니 강형우를 흔들기 위해 계획 하나를 세웠다. 그리고 조성기의 협조를 얻어 진행시켰다.
***
“역시나 예상대로군.”
이 미친놈의 날씨는 정말이지 제멋대로였다.
11월부터 한파가 찾아와서 좋아했더니 황당하게도 12월은 포근했다.
덕분에 오뎅 매출은 주춤했고, 어묵국밥도 그 영향을 받고 있었다.
거기에 근처 경쟁자들이 추가되었다.
슈퍼에서도, 편의점에서도 오뎅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붕어빵 아줌마도 오뎅 가판을 시작했고, 군고구마 고삐리들도 냄비에 오뎅을 가져와 팔았다.
사실 원래 이 시기에는 다들 팔긴 했다.
“문제는 화제성이 다 됐다는 건데.”
강형우의 판단은 놀라웠다. 나름 컨설팅 업계의 전문가와 비슷하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묵국밥은 아직도 매출 1위였다.
하지만 서서히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학생과 강사들이 다른 음식에도 만족하다는 점이었다. 미끼상품으로 끌어들였지만 이제는 당당히 고객층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 정도라면 당분간 월세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문제는 이걸로는 한계가 있다는 거야.”
박혜숙과 박첨기의 말대로 장사는 길게 봐야 한다.
하지만 지성분식이 자리 잡기 위해선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강형우는 메뉴판을 쳐다봤다.
라면+김밥=지성세트1
어묵국밥+김밥=지성세트2
제육덮밥, 오징어덮밥, 불닭덮밥에 야채와 김치볶음밥이 있었다. 거기에 사골떡국, 만둣국과 사골해장라면이 추가되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메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하나 공들여서 만든 레시피였고, 음식 퀄리티도 높아 손님들도 만족했다.
“하아, 답답하긴 하네.”
“왜요? 메뉴 더 늘리려고요?”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은 봄 메뉴 없어?”
부산 날씨를 생각하면 거의 2월부터 봄이었다. 즉, 어묵국밥의 수명은 그때까지란 거다.
물론 어찌어찌 이어 가면 5월 초까지는 가능하긴 했다.
그때는 사람들이 반팔 입고 돌아다닌다. 그러니 뜨끈한 어묵국밥이 하루에 몇 그릇이나 팔리겠는가?
지금도 박리다매식이라 수입이 나는 거다.
하루 열 몇 그릇 만들기 위해 육수를 우리는 건 오히려 적자인 셈.
물론 냉동 보관하면 되기는 하다.
하지만 분식집 냉장고는 크지 않았고 사골육수만으로도 비좁은 편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는데, 공지혜가 노래를 중얼거렸다.
“봄,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우리들…….”
“정신 사나워! 그리고 아직 겨울이거든.”
“봄이라고 생각해 보라면서요?”
“생각만 하라고 그랬지 누가 노래를 부르라고…….”
딸랑~
한가로운 오후시간의 적막이 깨졌다.
지성분식에 들어온 건 한 무리의 양아치들이었다.
하지만 손님이라 생각하고 일어나려는데, 그중에 정장 입은 한 사람이 먼저 말했다.
“강형우 씨, 본인 되십니까?”
“예? 아~ 예. 제가 강형우입니다만…….”
정장 사내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강형우에게 건네었다.
“저는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게 뭔가 싶어 보는데, 황당했다.
<무조건 대부>
회수팀 팀장 이해일.
***
“조성기, 이 씹새끼!”
욕이 안 나올라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걸려 온 전화를 일부러 무시했다.
이번에는 반대였다.
벌써 열 번 넘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않았다. 김밥천왕에 찾아가니 어딜 다녀온다며 한동안 출근 안 한다고 했다.
결국 아버지 조원무에게 전화를 하려다 아차 싶었다.
지금은 겨울이다.
해마다 해왔던 일을 생각하면, 어떤 암자에 계실 게 분명했다. 당연하게도 통화불가의 산속일 테니 확인하려면 얼마나 걸릴지도 몰랐다.
“희애한테 전화해야 하나?”
조성기의 여동생 조희애, 하지만 끝내 통화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사실 몇 년 전의 일 때문에 조금 어려웠다.
게다가 고3인 아이에게 이런 일로 전화한다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며칠이 더 지났다.
이해일은 여전히 양아치들을 데리고 가게를 찾았다.
“예. 저희는 적법한 절차대로 채권을 사들였습니다. 업체의 특성상 방문확인은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까, 확인을 좀…….”
“나흘이나 드렸습니다만?”
“아니 그게…….”
솔직히 미치고 환장하겠다.
이것 때문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며칠 동안 실수도 종종 있었다.
조성기, 이 개새끼가…….
진짜 해도 해도 너무했다.
같이 동업하기로 하면서 녀석이 투자한 2,000만 원.
그 차용증을 사채업자한테 팔아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