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22화 학원 강사 이학수
“하늘도 돕는구나!”
지성이면 감천이다.
딱 그런 상황이었다.
강형우의 노력을 가상하게 여긴 건지 며칠 내도록 강추위가 찾아왔다.
덕분에 할인 없이 개당 500원을 받았음에도 불티나게 팔렸고, 계산해 보니 하루 평균 백에서 백오십 개 정도가 나갔다.
평균 수익은 7만 원 선, 한 달 대략 180만 원이 벌리는 셈이었다.
“흐음… 근데 원가가 비싸긴 하네.”
따로 주문 제작을 했기에 오뎅 가격이 조금 비쌌다. 개당 200원이 넘는 고급 제품이었던 것이다.
사실 오뎅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제일 저렴한 오뎅은, 꼬지 하나당 50원짜리도 있다. 시장에서 개당 200원에 파는 게 바로 이런 거다.
반대로 제일 비싼 오뎅은, 하드 사이즈 한 개가 무려 6,000원이었다.
장어살로 만든 제품인데 고급 호텔과 유명 일식집에만 들어간단다.
참나, 오뎅 하나에도 이런 빈부격차를 느껴야 하다니.
어쨌든 고급 노선으로 방향을 잡은 효과는 컸다.
근처 분식집보다 좀 더 크고 탱글탱글 하며, 야채까지 송송 박혀 있는 오뎅이었다.
때문에 가격이 비싸도 연일 매진 행진이었다.
게다가 학원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펴지고 있었다.
일단 오뎅이 맛있단다. 그리고… 국물이 예술이라더라!
그게 당연했다.
이게 원가가 얼마짜린데.
하루 치 육수 만드는 데 만 원이 넘게 들어간다.
오뎅 개당으로 계산하면 거의 100원 꼴. 그러니 하나 팔면 얼추 200원 남는다.
하루 3만 원이 조금 안 되니 공지혜 알바비 정도가 벌린다고 보면 되는 거다.
놀랍게도 화끈 오뎅의 경우, 하루치 국물 만드는 데 무려 5만 원을 쓴단다.
하긴 나가는 양이 어마어마하니 그럴 수밖에.
거기에 오뎅과 떡, 튀김, 순대 등의 매입 가격이 그 두 배 정도 되고 평균 매출은 50만 원 전후였다.
월 매출은 1,300만 원 선인데, 재료비만 거의 400만 원이 빠지고, 집세 100만에 직원 둘에 알바 하나 인건비가 450만 원 정도 나간다.
그 외 기타 공과금 내고 잡비를 제외하면 순수하게 가져가는 게 250만 원 정도였다.
그럼 많이 버는 것 아니냐 하는데… 글쎄다?
아침 9시 출근해서 밤 10시 퇴근한다.
주 1회 휴무일 때, 직원들은 쉬지만 창주 형은 일한다.
대청소를 한다던가, 평소에 쓸 재료를 준비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이걸 시급으로 계산하면 대략 6,400원 정도.
최저 시급이 4,300원이니, 많이 번다고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래도 결과는 좋네.”
강형우는 씨익 웃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노력한 걸 보상 받은 기분이었다.
사실, 드라마에선 음식 뚝딱 만들어도 순식간에 대박이 난다. 밑준비도 없이 만든 게 천상의 맛이고, 주인공이 만들면 냉정한 심사위원들도 녹아 버리는 거다.
역시 주인공은 뭘 해도 다 된다.
하지만 실제 과정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거다.
맛있는 음식으로 동네를 제패하고, 맛집으로 알려져서 멀리서도 찾아온다. 그러다 직영점을 내고, 프랜차이즈 등록해서 가맹점을 마구마구 모집하면 성공하는 건 우습다.
이렇게 설명하면 쉽게 보이겠지.
말 그대로 드라마 주인공이니까 초고속 과정 껑충이지 현실은 1단계부터 가시밭길이었다.
동네 제패는커녕 맛집도 못하고 평생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현재 중국집이 2만이요, 치킨집은 3만 정도다.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분식으로 분류된 가게는 무려 5만 곳이 넘는다. 술집 다음으로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곳이 이 바닥인 거다.
때문에 동네 맛집만 돼도 감지덕지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따지면 강형우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상황이었다.
오뎅은 결국 미끼 상품에 불과한 것이니까.
“참 이쁘게 잘 빠졌다.”
강형우는 택배 박스를 열고 현수막을 꺼냈다.
확 펼치니 왼편에 큰 그릇이 보였고 그 안에 오뎅이 그득 들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딱 세 개였지만, 왜 각도빨이라는 게 있지 않는가?
거기에 국물 머금은 큼직한 무와 썰린 고추가 있었고 데코용으로 쑥갓을 하나 올렸다.
장식 빼면 전체적으로는 정직했다.
지금 대통령 입버릇처럼 말이다.
“하여간 인터넷이 저렴하기는 한데, 꼭 한 번씩 사고 친단 말이야.”
원래라면 벌써 했어야 했다.
하지만 주문받은 담당자가 전달을 잘못한 것인지, 거기 디자이너가 술이 덜 깬 건지 사진이 바꿔져 왔다.
어묵국밥 자리에, 황당하게도 오뎅탕 전골냄비가 떡 하니 올라가 있었던 거다.
그래서 반품하고 새로 받은 게 오늘이었다.
강형우는 그 현수막을 오뎅 가판 뒤에 걸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이거였다.
어묵국밥 개시.
단돈 3,000원!
***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묵국밥은 대박까지는 아니고 중박 이상은 쳤다.
1차로 공지혜가 맛을 봤다.
그다음 강영지와 인정둥이들이 찾아왔고, 진공포장으로 가져간 걸 박혜숙이 먹었다.
평가는 엄지 척이었다.
사실 반찬이나 다른 겉들임 음식이 없어서 약간 부족하긴 했다. 어묵국밥에 같이 나가는 건, 고작 김치와 양념 단무지뿐이었으니까.
하지만 3,000원이란 무적의 가성비가 폭발하고 말았다.
“이게 삼천 원이라고?”
“와! 졸라 싸다.”
일종의 착각 효과였다.
밖에서 오뎅 세 개 먹으면 1,500원이다.
근데 어묵국밥에는 오뎅 세 개+조림무+공깃밥에 김치 양념 단무지가 합쳐서 나온다.
그럼에도 3,000원이니 당연히 싸게 느껴질 수밖에.
하지만 실제 원가는 900원 수준이었다.
한 그릇 팔면 이천 원이 넘게 남는, 라면 다음의 효자 메뉴였던 것이다.
강형우는 씨익 웃었다.
오뎅 팔기 시작한 지 일주일, 국밥 개시 이틀째였다.
지금 손님의 절반 이상이 어묵국밥을 주문했다.
이게 강형우의 노림수였다.
밖에서 파는 오뎅이라는 미끼로 물면, 자연스럽게 벽에 걸린 어묵국밥을 볼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에, 혹은 밑져야 본전 심정으로 한번 시켜 보는 것이다.
반응은 제법 괜찮았다.
게다가 의외의 효과가 있었으니, 무적의 조합이 추가된 것이다.
“아저씨. 어묵 세트 둘요.”
“저희는 세트 두 개 주세요.”
어묵국밥+지성김밥. 합해서 4,500원.
말 그대로 지성세트 2였다. 라면에 김밥 조합을 능가하는 신메뉴가 탄생한 것이다.
“예, 가요.”
이렇게 보니 공지혜가 참 신기하다.
저 토실토실한 체구로 테이블 사이를 날렵하게 오가는데, 정말 무협 영화에서나 나오는 절정고수 같았다. 사각 쟁반 하나에 무려 두 테이블 음식을 포개 올려 서빙을 하는데 달인처럼 보였던 것이다.
얼마 전, 공지혜는 뜬금없이 일을 더 시켜 달라 했다.
무슨 소린가 물었더니, 바쁘게 움직여야 살이 빠지지 않겠느냐는 거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결국 공지혜가 김밥까지 맡게 되자 강형우는 음식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어머! 어서 오세요.”
공지혜의 밝은 목소리에 입구를 쳐다봤다.
오오! 은인님이 오셨도다!
도수 높은 안경.
M자 탈모가 진행 중인 머리.
피부는 푸석푸석 했고 다크서클은 필수였다.
이름은 이학수, 직업은 학원 강사였다.
170㎝가 조금 넘는 키에 비쩍 마른 체형인데, 얼마나 말랐는지 셔츠가 헐렁했고 허리는 28도 안되어 보였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한창 때, 내 허벅지 사이즈가 28까지 나갔었으니까.
어쨌든, 단골손님이자 은인, 학원 강사님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강형우는 잽싸게 앞으로 나가 메뉴판을 건넸다.
“저게 그거 맞습니까?”
“옙, 맞습니다.”
이학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한 그릇 부탁드립니다.”
“예. 걱정 마십시오.”
강형우는 정성껏, 어묵국밥을 말아 왔다.
렌지를 돌리고, 녹기 직전의 얼음을 그릇에 투하.
거기에 아침에 지은 밥을 담았다.
냄비 안에서 따로 조린 무를 덜어 올리고, 오뎅 세 개를 넣은 뒤 국물을 부으면 끝.
정말이지 너무도 간단한 과정이었다.
걸린 시간은 불과 2분.
이학수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어묵 국밥을 보더니 숟가락을 들었다.
먼저 국물 맛부터 봤다. 그리고 입에서 몇 번 음미하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강형우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미식가 레벨이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 한 등급 더 까다롭다는 환자 레벨이었다.
스트레스성 만성 위장염.
때문에 소화력이 좋지 못해 음식을 가려야 했다.
특히 화학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걸 먹으면 거북해했고, 하루 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린단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라면 냄새만 맡아도 울렁거린다나 뭐라나.
그러게 왜 김밥천왕에서 밥을 먹어 속을 더 악화시켰는지 모르겠다.
강형우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이학수는 어묵국밥을 절반쯤 먹고 있었다.
식사가 끝난 건 10분이 다 돼서였다.
다른 손님들이 5분 안에 해치우고, 학생들이 평균 3분 컷 하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럼에도 강형우는 느긋했다.
“어떠십니까?”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속도 편안한 것… 끄억. 끄으어어억.”
이학수의 입에서 트림이 연속으로 나왔다.
민망하고 부끄러울 수도 있는 순간.
하지만 강형우의 입가에 미소가 활짝 그려졌다.
소화가 진행된다는 신호였으니까.
***
학원 강사 이학수.
그는 어묵국밥 메뉴를 결정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신메뉴를 고민하는데, 그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속이 든든하면서 소화 잘 되고, 빨리 먹고 갈 수 있는 음식은 없느냐고.
그러면서 대화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때 필이 딱 왔다!
게다가 이학수의 이야기는 고객층을 특정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요즘 애들 보면 불쌍하다.
한창 성장기고 잘 먹어야 되는데 그러질 못한다. 결국 편의점 사발면에 김밥, 햄버거나 빵, 밥버거 같은 걸로 후다닥 때우는 게 전부라는 것이다.
그렇게 먹고 들어오면 뭐가 문제가 되느냐?
소화력 왕성한 한창 때는 돌이라도 씹어 먹는다지만, 많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밥 먹으면 책상 앞에 강제고정이었다.
수업 끝날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있는데, 먹은 음식들이 소화가 잘 되겠는가?
게다가 식사시간도 짧았다.
잠깐 쉬는 시간, 혹은 학원에서 학원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전부란다. 그래서 결국 떡볶이, 오뎅, 튀김처럼 서서 먹을 수 있는 걸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때 강형우는 깨달음을 얻었다.
아! 그래서 저녁 시간에는 학생들이 유독 적었구나.
생각해 보니 지성분식에는 그런 음식들이 없었다.
무조건 가게 안에 들어와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다 먹고 나가야 하는 것들뿐이었다.
맞다.
오뎅을 미끼로 한 건 그래서였다.
동시에 어묵국밥을 만든 것도 이학수의 이야기가 결정적이었다.
시간이 부족한 건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때문에 강사들 상당수가 소화불량을 달고 산단다.
생각해 보니 의외의 고객층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학원이 많으면 강사들도 많지 않겠는가?
강형우가 조림무를 추가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디아스타제, 아밀라아제, 우레아제, 카탈라아제 등등.
무에는 이름도 한 번에 외우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소화 효소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학수는 소심하게 배를 쓰다듬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트림이.”
“아뇨. 괜찮습니다. 근데 입에는 맞으신가요?”
“예,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정확한 건, 화장실을 몇 번 가 봐야 알겠지만, 느낌은 아주 좋네요.”
“아! 다행이네요.”
강형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짝 긴장한 건 이유가 있었다.
이학수가 그러더라.
음식이 괜찮으면, 학생들하고 주변에 추천하겠다고.
특히 동료들은 그가 권하는 음식을 흔쾌히 찾아가서 먹는단다.
정말 그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이틀 뒤, 단체 손님들이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