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21화 (21/251)

# 21

21화 오늘만 할인

“후우, 하아~”

공지혜가 탁, 그릇을 내려놨다.

정말 다행이었다. 솔직히 방금 전까지, 공지혜가 그릇까지 먹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으니까.

혹시나 해서 타이머를 확인했는데, 정확하게 3분이었다.

바로 가져와서 뜨거울 텐데?

아니, 이게 그렇게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나?

그런 생각들은 정말이지 순식간에 사라졌다.

공지혜는 엄지를 척 들었다.

“맛있어요? 정말 괜찮은데요?”

“당연하지. 누가 만든 건데?”

자신감이 불쑥 솟아올랐다.

나름 입맛 까다롭다는 공지혜의 마음에 들었으니 적어도 맛없다고 할 사람은 없을 터.

“그런데, 원래 오뎅국물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요?”

공지혜는 미세한 가루 입자만 조금 남은 빈 그릇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맛있기는 하지. 그걸 좀 더 손을 봐서, 식사에 가깝게 만든 거야.”

솔직히 평범한 오뎅국에 밥 말아 먹는 건 쉽지 않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맑은 계열의 국수 육수에 밥 말아서 먹는 건 쉽지 않았다. 밥이 풀리면 전분이 더해져서 국물이 탁해지고, 원래의 깔끔한 맛이 사라지는 것이다.

예외로 치는 건 소고기뭇국과 갈비탕 정도였다.

하지만 그 요리들은 고기 국물의 감칠맛이 베이스에 깔려 있었고, 간을 더했기에 말아 먹는 게 가능했다.

강형우는 혹시나 다른 게 있나 싶어서 생각해 봤는데, 콩나물국밥 말고는 떠올리지 못했다.

사실 부산에는 잘 없는 음식이었다.

최근에야 전라도식 전문점들이 생겨서 그렇지 그 전에는 거의 콩나물해장국뿐이었다. 고춧가루와 들깨가루 팍팍 넣고, 날계란을 탁 하고 깨 넣어서 진하고 걸쭉하게 내오는 것이다.

강형우의 단골집은 연산동 쏭가네였다.

거기 이모랑 친할 때는 놀랍게도 날계란을 두 개나 풀어 줬다. 덩치 큰 총각 왔다고, 많이 먹고 힘내라고 공깃밥도 두 개나 줘서 자주 갔던 거다.

그러고 보면 거기 오뎅 반찬이 참 맛있었는데…….

“근데 오뎅 국물에서 왜 고기맛이 나죠?”

“뭐?”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되지? 약간 국밥 같은 걸쭉함이 있는 것 같은데요?”

공지혜는 자신의 짐작이 맞느냐는 듯 눈빛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강형우는 수 초간 고민했다.

일단 공지혜는 믿을 수 있었다.

남자들끼리는 가끔 부랄 친구라는 말을 쓴다. 강영지와 그 정도 사이였고, 인정둥이들과도 툭탁거릴 정도로 가족 같았다.

하긴 시누이2호라는 별명도 있었으니 말 다했지.

“눈치가 빠른 건지. 혀가 좋은 건지… 정말 용케도 알아냈네.”

강형우는 피식 웃더니 주방으로 들어갔다.

가져온 건 실리콘으로 된 얼음 틀이었다. 거기에 얼음 대신 노란 뭔가가 들어가 있었는데, 얼핏 보면 오뎅 국물을 얼린 것 같았다.

“이거야, 이거.”

맞춰 보라는 듯 내밀었지만 답을 찾기는 힘들 거다.

공지혜는 유심히 쳐다보다 코를 가져다 대었다.

설마? 맞추는 건 아니겠지?

실제로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혹시 또 모른다.

공지혜는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았으니까.

개코 수준은 아니지만, 한 번씩 경악할 만한 능력을 보여 주곤 했던 것이다.

“어디서 맡아봤는데?”

공지혜는 얼음 하나를 빼서, 말릴 틈도 없이 입에 집어넣었다.

“야! 그거…….”

“으음, 오옴, 히잉. 츠그워여.”

“당연하지 얼음인데.”

강형우가 황당해하는데, 공지혜가 벌떡 일어섰다. 재빨리 싱크대로 달려가 뱉고 온 것이다.

헌데 표정이 승자의 그것이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컥!”

“맞죠?”

세상에나, 이걸 맞출 수 있다니…….

강형우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남은 건 패배 선언이었다.

“맞아.”

***

‘삶의 달인’

이 방송은 요리사들에겐 일종의 자극제나 마찬가지였다.

강형우에게도 그랬다.

까다롭다 못해 무서울 정도로 고집하는 재료.

번거롭고 지극히 섬세한 과정.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 등등.

사실 처음에는 저게 뭔가 싶어서 보다가, 나중에는 아! 그래서 그런 거구나 하는 게 있었다.

또,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선택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들기도 했다.

거기에 방송된 곳 중 황당한 어묵 가게가 나온다.

일단 늦가을에서 초봄까지만 장사를 한다. 날이 조금 따뜻하다 싶으면 아예 문을 닫아 버리는 거다.

그게 맛을 위한 신념이라고 했다.

추울 때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나 뭐라나.

이 집 오뎅 국물 비법이 바로 사골 육수였다.

그것도 짐작하는 거지 정확하진 않았다.

왜냐?

방송에 나온 사장님 분량은 웃으면서 취재를 거부하는 내용뿐이었으니까.

그러면서 슬쩍 보인 게 육수였다.

다행이 거기까지는 허락을 받아 방송에 나왔는데, 강형우는 그 색과 농도를 보고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소뼈를 푹 고아서 우린 맛!

그게 오뎅 국물하고 결합 되면 어떤 맛이 나올까?

강형우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골 육수는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게다가 김창주에게 배우면서도 이걸 염두에 두지 않았던가.

바로 해 보니 대박이었다.

감칠맛 폭발!

오뎅 육수에 사골 육수를 더하니 국물이 더 진하고, 고소했으며 놀랍게도 혀끝에서 그 맛이 길게 남았다.

문제는 밥 말아 먹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것!

해서 강형우는 몇 가지 고기 육수를 만들었다. 그걸 조합해서 만든 게 바로 이 얼음이었던 것이다.

“대박!”

공지혜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지성분식의 덮밥 메뉴는 단 세 개.

제육, 오징어, 불닭이었다.

재료는 돼지 뒷다리살, 냉동 오징어 몸통, 닭이었는데 이걸 강형우가 직접 손질했다.

특히 불닭 덮밥의 경우 닭살코기를 빼고 나면 당연하게도 뼈가 나온다. 이걸로 육수를 만들어서 사골육수와 결합한 것이다.

맛을 보니 닭육수의 비율이 좀 더 높아야 밥 말아 먹기 적당했다.

하지만 음식이 나갈 때마다 조절할 수는 없는 노릇.

특히 작은 분식집의 경우 음식 나가는 속도가 정말 중요했다. 때문에 조리 과정을 줄여야 했고, 고민 끝에 나온 게 이런 방식이었다.

“중요한 건 손님들이 몰라야 한다는 거! 그래야 우리 맛을 훔치지 못하니까.”

김밥천왕의 술수에 대비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강형우는 공지혜한테도 신신당부했다.

이건 절대 비밀이라고.

그러면서 조리 방법을 알려 줬는데…….

“어묵 국밥 주문이 들어오면, 일단 얼음 두 개를 그릇에 넣고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려.”

조리법은 생소하고 황당하게 시작한다.

“그걸 손님 그릇에 옮기고 밥을 덮는 거야. 거기에 조린 무와 오뎅을 올리고 육수를 부으면 어떻게 되겠어?”

“당연히 얼음이 녹겠죠.”

“맞아. 그러면서 맛이 스며드는 거야.”

당연하게도 밥이 먼저 육수맛을 빨아들인다. 적당히 간간해지면서 딱 먹기 좋을 정도가 되는 거다.

또 하나!

정말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오뎅 국물은 무조건 뜨거워야 한다. 그래야 식혀가면서 먹을 거고, 그사이 오뎅 한 개라도 더 집어먹는다.

만약 딱 마시기 좋을 온도라면… 당연히 오뎅 국물이 남아나질 않겠지.

반대로 가게 안에서 먹는 건 달랐다.

국물 음식의 경우, 너무 뜨거우면 적당히 식는 데까지 시간이 걸린다. 불과 몇 분이지만 그게 쌓이면 회전율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어묵국밥의 온도가 딱 그랬다.

겨우 얼음 두 개지만 거기에 뜨거운 육수를 부음으로써 적당한 따뜻할 정도로 온도가 맞추지는 거다.

이건 공지혜한테 알려주지 않았다.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지만, 서빙 알바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러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근데 닭육수 맛은 어떻게 알아낸 거야?”

“그게… 며칠 전에 먹어봐서요.”

공지혜가 말하길, 친구들끼리 파스타를 먹으러 갔단다.

특별할 게 없는 까르보나라인데 맛이 미묘하게 다르더란다. 혀에 착 달라붙는데 뭔가 감칠맛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혹시나 싶어 물었는데 거기 젊은 사장이 닭육수를 쓴다고 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장사 초보라 실수로 알려주고만 것이다.

솔직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

“그때 파스타가 꽤 인상 깊었거든요. 다음에 영지랑 같이 셋이서 먹으러 가요.”

공지혜가 자랑할 정도면 제법 맛있는 모양이다.

근데 왠지 어감이 조금 미묘한데?

***

“장사하자. 짜잔짠. 대박나자! 짜잔짠~”

강형우는 연신 콧노래를 부르며 준비에 들어갔다.

철물점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야외 테이블을 놓던 자리를 개조했다. 오뎅을 판매할 수 있게 작게 가판대를 설치한 거다.

하늘도 도움을 주려는 것일까?

이틀 전부터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불면서 다들 옷을 두껍게 입고 나왔고, 저녁에는 입김까지 나올 정도였다.

따뜻한 부산 날씨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1월이나 되어야 이 정도 추위가 찾아오니까.

역시 수능의 저주려나?

“자! 시작해 볼까?”

강형우는 물부터 끓였다. 그다음 커다란 김치통에서 꺼낸 육수를 섞기만 하면 끝이었다.

“맛은… 이만하면 됐고. 이제 오뎅인데.”

종류는 딱 두 개.

사각 오뎅과 동그란 오뎅이 전부였다.

하지만 쉽게 볼 수 없는 것이, 창주 형한테 소개 받은 가게에 따로 주문해서 제작한 거였다. 야채 비율을 높여서 당근과 부추가 많이 보였고, 크기도 제법 컸던 것이다.

그다음은 큼직한 가래떡이었다.

그렇게 각각 스무 개씩 꼽아서 통에 담가 놓자, 제법 그럴듯하게 보였다.

“에취!”

갑작스러운 찬바람 때문일까?

곳곳에서 기침소리가 들렸고, 저마다 옷깃을 바짝 당기고 있었다.

“이럴 때는 역시~ 오뎅 국물이지.”

강형우는 일부러 크게 말하면서 약간 식혀 놓은 오뎅 국물을 마셨다.

호로로로롭.

그 소리가 너무 컸던 것일까?

마침 학생 하나가 뭔가에 홀린 것처럼 자석처럼 딸려왔다.

“아저씨, 오뎅 얼마에요?”

“한 개 오백 원인데… 개시 기념으로 세 개 천 원에 해 줄게요.”

“오! 진짜요?”

“그럼요. 맛없으면 돈 안 받습니다.”

강형우가 자신만만하게 손뼉을 치자마자 학생이 천 원을 내밀었다.

“세 개만 먹을게요.”

“예, 감사합니다. 오뎅 국물은 옆에 종이컵 있습니다. 드시고 밑에 통에 버리시면 됩니다.”

딱 여기까지는 평범한 장면이었다.

오뎅 장수가 있고, 춥고 배고픈 학생이 맛있게 먹는 것!

문제는 그 직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는 거다.

“후아~ 하아~ 녹는다, 녹아~”

학생 얼굴이 첫사랑에 홀린 사람처럼 벌겋게 변했다.

처지는 눈꼬리, 올라간 입술.

마치 옆집 아저씨가 뜨거운 사우나에서 나온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와, 국물 대박이네.”

학생은 연신 감탄하면서 국물을 더 덜어갔다.

하지만 바로 마실 수 있는 온도는 아니었다.

앗~ 뜨거!

예상대로의 반응이 나오고, 후후 부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사이 오뎅 하나를 더 빼먹은 학생은 잠시 머뭇거렸다. 시선을 보니 사각이냐, 동그란 거냐를 두고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선택받은 건 매운 고추가 조금 섞인 동그란 거였다.

그것까지 먹고, 국물까지 싹 비운 학생은 진지하게 물었다.

“아저씨. 이거 오늘만 싸게 주는 거죠?”

“그렇기는 하죠. 첫날이고, 이제 막 개시해서…….”

갑자기 학생이 딜을 걸었다.

“이따가 저녁까지 되요?”

“글쎄요? 되려나?”

“싸게 해주면 친구들 왕창 부를게요.”

“진짜?”

“그럼요. 옆에 학원 친구들 많거든요.”

“콜!”

호기롭게 외친 강형우는 한 시간 뒤 기적(?)을 경험했다.

첫 손님이 간 뒤로 간간이 손님 서너 명이 왔다 갔다.

그렇게 팔린 오뎅은 모두 열두 개.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학생들이 달려왔다. 그 속에는 한 시간 전의 첫 손님도 보였다.

한창 배고플 나이의 학생들에 의해 준비한 오뎅 한 박스가 순식간에 없어졌다.

한 번 데쳐서 기름 뺀 거라 다행이지 아니면 그냥 오뎅을 먹일 뻔했다.

물론 단단히 일러두는 건 잊지 않았다.

오늘만 할인.

내일부터는 정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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