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7화 건물주와 사골육수
-마! 발신번호에 네 이름 안 떴으면, 진짜 경찰청에 신고했을 거다!
“형, 미안해요.”
사과를 해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일단 흥분 상태라고나 할까?
잠시 후, 정분석의 목소리가 많이 가라앉았다.
-너 솔직히 말해? 기억 안 나지?
“예.”
-하아, 돌겠네~ 진짜. 그러게 술 좀 작작 처먹으라니까.
“형. 진짜 제가 실수했어요. 죄송해요!”
폰 너머로 보이지도 않는데 강형우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정분석.
그는 강형우의 스승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으니까.
“후우~”
스피커 너머에서 한숨이 들렸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괜찮은 척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간단히 요약하면, 잔다고 누웠는데 잠결에 감정이 북받친 모양이었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울화라고 해야 할까?
결국 폰을 들었고 이래저래 전화를 한 모양이다.
후우~
그나마 다행인 건, 형 말고 아무도 안 받았다는 게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마! 느그 형수가 너 불러 오라 그랬다. 집에서 밥 먹인다고. 그래, 오늘 저녁에 시간은 되냐?
“예. 되기는…….”
“그럼 와라! 나 마치면 네 시 반이니까, 너네 가게로 가마.”
아주 뒷말을 자르는 건, 기본이었다.
워낙 성질이 급한 형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날 잘 알아서였다.
결국 분석이 형의 열변에 약속을 잡고 말았다.
“예. 그렇게 할 게요.”
-딱 준비하고 기다려라.
통화를 끊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분석이 형이 마치고 여기 오면 다섯 시가 조금 넘을 거다.
이전처럼 주방 아주머니가 있으면 상관이 없는데, 지금은 장사를 마쳐야 했다.
최근의 내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생긴 오해였다.
“흐음, 어떻게 하나?”
장사를 일찍 마친다?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영업시간은 고객과의 약속이었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항상 지켰다. 손님이 단 한 명이라도 정해진 시간까지 가게를 여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결국 강형우는 다시 폰을 들었다. 시간을 좀 늦추면 안 되냐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바로 전화가 왔다.
-형우야. 미안하다. 내가 일이 있어서 그런데, 8시에 보자. 아우! 갑자기 미팅이 잡혀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뭔가 큰 건수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너, 인마! 이번에 되면 같이…… 아니, 아니다. 나중 되어야 아는 거니까.
잠깐 횡설수설하던 정분석은 일단 무조건 8시에 온다고 대기하고 있으라 했다.
“이 형이 왜 이러지?”
성격을 알고 있으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따지면 가족 다음으로, 가족 같은 사이었다. 실제로 가족이 될 뻔하기도 했고.
“가만, 뭐라도 준비해야 하나?”
형수 음식 솜씨는 엄청났다.
그냥 쉽게 표현하면 국가공인 명장급!
특히 불고기가 예술이었는데, 양념이 대박이었다. 고추장 없는 고추장 불고기라고 해야 할까?
바나나 5, 파인애플 2, 당근 1, 양파 1, 배 1의 비율로 갈아 버린다. 거기에 화건초 고춧가루와 사천 고추를 조금 섞고 맛술과 꿀, 다진 마늘, 생강에 비법 양념을 살짝 넣으면 된다.
이렇게 만든 양념은 고추장을 넣지 않았는데도, 고추장 같은 느낌이 났다. 매콤하면서 달달해서, 누구나 좋아하는 맛이 되는 것이다.
고추장 불고기 생각하니 갑자기 군침이 돌았다.
“일단 아침 먹고 생각하자!”
***
“오늘의 메뉴는, 제육덮밥!”
나름 시그니처 메뉴로 준비한 것 중에 하나였다.
지성세트의 라면과 김밥, 그리고 제육과 낙지, 소세지 덮밥이 그거였다. 그리고 고생해서 우린 사골육수로 만드는 몇 가지가 더 있었다.
솔직히 찌개와 탕 종류는 아직 자신이 없었다.
전문분야가 아니기도 했지만, 그 메뉴들은 분식집과 정식집의 경계에 있어서였다.
일종의 구색 맞추기로만 하는 메뉴일 뿐!
“자, 돼지 비계부터.”
이게 제육볶음의 핵심이었다.
비계로 낸 기름에 고춧가루와 비법 양념, 그리고 바로 빻아서 넣은 마늘을 넣는 것!
거기에 다진 야채를 반 줌 넣고 전분물을 약간 넣어서 달달 볶으면 된다.
마무리로 후추, 파슬리 톡톡 뿌리면 끝!
그렇게 만들어진 제육볶음은 밥하고 무척 잘 어울렸다.
강형우는 삭삭 비워진 접시를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렇게 맛있는데, 왜 손님들이 오질 않는지.”
솔직히 메인 요리에 들인 공은 적지 않았다.
일단 제육볶음 같은 경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 셀 수가 없었다.
못해도 십만 그릇은 넘지 않았을까?
거기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기 위해 무수히 많은 공부를 했다.
황금 조리법, 삶의 달인, 생생한 특공대를 비롯한 방송들을 빼놓지 않고 봤고, 무수히 많은 인터넷 쿡방과 블로그들까지 살펴봤었다.
그걸 기반으로 양념을 더하고 빼는 것만 무려 수십 차례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장사가 가능한 수준까지 조리과정을 손봤다.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제육덮밥의 경우, 고객 만족도가 높았다. 실제로 일주일에 서너 번씩 찾아와서 먹는 아저씨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분들은 요즘 뭐하시나 몰라.
“일단 설거지나 하자!”
강형우는 후다닥 그릇을 씻고 나서… 할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럴 때는, 내공 수련이나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적어도 잡념은 사라질 테니까.
하지만 가게 입구 너머로 사람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심란해졌다.
“내가 판단을 잘못하고 있나?”
사실 그 동안은 냉정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인근에 새로 생긴 경쟁가게가, 단순히 가격을 할인하는 것 때문에 매출이 이렇게 하락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불과 서너 달 전만 해도 학생들이 줄까지 서서 먹질 않았던가?
“확실히 뭔가가 있어.”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
그렇다고 가게를 내팽개치고 알아보러 다닐 수도 없었다.
“에이, 호흡도 집중 안 되고, 가만히 있으면 심란하기만 하지.”
강형우는 결국 걸레부터 들었다.
주방을 대청소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닦고, 가게 입구까지 쓸고 정리했다.
“깨끗하니까 좋네.”
사실 크게 티는 나질 않았다. 평소에도 워낙 깨끗했고, 어제 온 손님도 열 명이 채 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가게가 이렇게 넓었나?”
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여덟 개였다. 다소 간격이 빡빡하긴 하지만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보니 괜히 가게가 훤하게 보였던 것이다.
갑자기 허전해졌고 동시에 울컥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노력이 배신당한 기분이랄까?
그때였다.
가게 바깥으로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건물주인 박첨기 어르신이었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박첨기가 별말 없이 테이블에 앉자 강형우는 눈치를 살폈다.
“손님 왔는데, 물은 안 주냐?”
“예? 아!”
강형우는 잽싸게 물과 컵을 가져왔고, 동시에 메뉴판을 옆에 놔뒀다.
박첨기는 물로 입을 축인 뒤 슬쩍 메뉴판을 살폈다.
“뭐가 이렇게 많나?”
솔직히 음식 종합선물세트라는 김밥천국에 비하면 반의반도 안 된다.
이래저래 치면 열 몇 종류 정도?
잠시 후, 박첨기가 주문을 했다.
“사골 떡만둣국 하나 주게.”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강형우는 주방으로 들어가 물부터 올린 뒤, 떡을 한줌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냉동실에 얼려놓은 사골 육수 비닐을 뜯고, 왕만두 네 개를 꺼냈다.
한 일분 정도 기다렸다가 물이 끓자 바로 만두를 넣고 사골 육수까지 넣어버렸다.
이미 육수에 간이 다 되어 있어 복잡한 조리과정은 필요하지 않았다.
적당히 끓으면 계란을 풀고, 파를 송송 썰어 듬뿍 올리면 끝이었다.
“떡만둣국 나왔습니다.”
박첨기는 별다른 말도 없이 숟가락으로 만두를 잘게 자르고 후루룹 마시듯 먹기 시작했다. 한입 먹구 여러 번 오물거린 다음 삼키는 식으로 말이다.
강형우는 일이 있는 척 카운터로 향했다.
기억하기로 박첨기는 치아가 좋지 않아서 외식도 잘 안 한다고 들었다.
실제로 지성분식 오픈하고 딱 두어 번 들려서 맛을 보고 갔을 뿐이었다.
애들 분식은 자기 입에 맛질 않다나 뭐라나.
15분이 넘도록 천천히 식사하던 박첨기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그릇을 잡고 후루룹 마시더니 이내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흐으음. 좋군.”
박첨기는 잠시 눈을 감고,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자네, 일로 와서 좀 앉게.”
“예!”
박첨기는 손님이기도 하지만, 건물주였다. 조물주보다 더 높다는 바로 그런 존재 말이다.
강형우가 앉자 박첨기는 물끄러미 빈 그릇을 쳐다봤다.
처음에는 못마땅한 표정이었는데, 국물 한 방울 안남기고 삭삭 비운 것이 민망한 모양이었다.
“험험. 사실 사골이라는 게,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끓이는 사람마다 맛이 달라.”
“예. 저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젊은 사람이 사골 육수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
오다가다 한 번씩 들릴 때는 장사 잘 되냐고 물어볼 뿐, 크게 관심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를 찬찬히 살펴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강형우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예. 처음에 배울 때는 정말 어렵더라고요. 고기 부위하고 뼈 종류에 따라 삶는 방식이나 피 빼는 법도 달랐고, 가게마다 노하우가 천차만별이더라고요.”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일단 말이 트이니까 술술 나왔다.
손님과 대화하는 게 그리웠던 것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가게 쉬는 날 한 번씩 만들어 놓습니다.”
한번 할 때 만드는 양은 대충 30인분 정도였는데, 실제 많이 나가는 메뉴가 아니라서 그 정도면 충분했다.
“초벌로 푹 삶아서 핏물 제거하고, 그 다음 솔질로 뼈 사이 이물질을 청소하죠. 그걸 다시 냉수에 서너 번 세척한 다음에야 솥에 넣습니다.”
처음엔 두 시간 우리면서 국자로 계속 걸러 줘야 한다.
그다음 첫 육수를 걷어 내고 다시 깨끗한 새 물에 또 네 시간을 우린다.
이걸 반복하면 육수가 세 종류가 나오는데 그걸 섞어서 적당히 간을 하면 끝이었다.
그렇게 나온 양은 30인분 정도였다. 장시간 우리면서 졸아들기 때문에 많지 않았던 거다.
사실 한 번 할 때 귀찮고 번거로워 그렇지 이렇게 한번 해 놓으면 두고두고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사골 육수가 들어가는 음식들은 무려 6,000원짜리였다.
특 분식 세트 다음으로 비싼 가격!
“평안도식 설렁탕 우리는 것과 비슷한 것 같은데…… 맞는가?”
박첨기의 짐작에 강형우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이 방식으로 만드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단 두 명, 어머니 박혜숙과 정분석뿐이었다.
“역시 맞는 모양이군. 하긴 분식집이니…… 사골에 돈을 많이 쓸 수 없겠지.”
박첨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마치 뭔가를 떠올리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실 강형우가 이 같은 방식을 선택한 건 이유가 있었다.
잡뼈와 부산물을 많이 쓰면 그만큼 재료비를 아낄 수 있었다. 대신 국물이 탁해지고 잡냄새가 많이 나며 찌꺼기까지 많이 생긴다.
때문에 계속 불앞을 지켜야 했다.
국자 계속 기름과 찌꺼기를 걷어 내야 하므로.
한마디로 비용을 아끼는 만큼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거다.
괜히 음식 장사가, 사람 노동력을 갈아 넣는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닌 거다.
그때 박첨기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긴가민가했는데…… 우리 내자가 설렁탕을 기가 막히게 잘 끓였거든. 그때야 곰탕과 설렁탕도 구별 못했으니, 고깃국물이라면 무조건 몸에 좋다고만 알았지.”
가난한 시절, 평범한 공장 직원에겐 곰탕 한 그릇도 사치였다.
“월급이 이십만 원도 안 되는데, 곰탕 한 그릇이 천오백 원이나 했으니 쉽게 먹어지겠나?”
강형우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약간 당황했는데, 박첨기가 가볍게 웃었다.
“대충 지금 물가로 열 배 정도라고 보면 될 거야. 그러니까, 고깃 국물 한 그릇이 만오천 원이나 했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