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6화 마! 형우야
“그럴 리가 없지!”
자연스럽게 고개가 저어졌다.
조성기!
이놈을 알아도 너무 잘 알았다.
자신이 아는 조성기는 그렇게 치밀하거나 똑똑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한 망상증이 있어, 종종 사고까지 칠 정도였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였던 녀석이었다. 때문에 흑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아버지가 배우 안성기 팬이라 그 녀석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
덕분에 초등학교 때 별명이 거시기였다.
이게 진화를 해서 중학교 때는 자지가 됐고, 고등학교 때는 쭈구리와 도시락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군대에서 고문관이 되었고, 전역 후 겜돌이와 노숙자가 된 것이다.
그만큼 녀석의 인생은 좋지 못했다.
체구도 작은 데다 소심해서 말도 잘 못했다.
자신감도 없고, 존재감은 더욱더 없었다.
성적은 뒤에서 20위권.
그게 초등학교 동창들이 기억하는 조성기였다.
강형우가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 조성기는 도시락이 되어 있었다.
흔히 일진들이 말하는 빵 셔틀, 용돈 셔틀이었다. 심지어 반에서 왕따까지 당하고 있었는데, 그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인 상태였다.
덕분에 강형우는 일 학년 내내 싸움을 해야 했다.
그래도 초등학교 내내 붙어 다녔던 친구 사이였다.
한 동네 살아서 종종 마주쳤고, 홍태구와 같이 집에 와서 밥도 여러 번 얻어먹고 간 친구였으니까.
때문에 사건사고가 많았다.
조성기에 대한 괴롭힘이 사라진 건, 강형우가 정학을 맞고 나서였다. 그 녀석 때문에 일진 셋을 병원에 보냈고, 그놈들 형이라는 깡패들까지 모질게 두들겨 패 버린 것이다.
이즈음 되면 인생이 풀릴 만도 한데, 조성기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대신 간 군대에서도 자살 시도하는 바람에 정신병원에 보내졌고, 복귀를 꺼려한 사단장이 손을 써서 결국 상병 달고 의가사 제대를 했다.
제대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미친놈이 꿈이, 게임 속의 성주란다. 무슨 판타지 세상도 아닌데 그게 인생의 목표라는 거다!
살다 살다 이런 새끼는 처음 봤다.
그래서 잘하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멍청하게도 몇 달에 한 번 꼴로 아이템 사기도 당했고, 심지어 게임회사 직원을 가장한 사기꾼에게 천만 원이나 뜯기기도 했으니까.
하여간 조성기 인생은 햇볕이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방사능 피폭급의 삶이라고나 할까?
취업도 꽝, 연애도 꽝이었다.
그럼에도 성주가 되고, 게임 지존이 되어, 돈 많이 벌어 PC방을 차리겠단다.
동업을 제안한 건, 이런 놈이라도 열심히 일하다 보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였다. 거기에 보다 못한 친구들의 권유와 성기 아버지의 부탁도 있었다.
그랬던 녀석인데…….
확실히 세상일은 예측이 불가능했다.
조성기가 로또 1등에 걸릴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내가 망하게 생겼다.
막 자괴감이 들려는데… 갑자기 머리가 시원해졌다.
역시 내공심법의 위력인가?
입에서 단호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인정하자!”
장백호는 항상 사고가 나면 이 말부터 시작했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그걸 밟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형우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조성기가 김밥천왕 사장인 건 맞았다. 그 건물도 그 녀석이 주인이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결과, 지성분식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강형우는 한동안 평소의 그답지 못한 행동들을 하고 말았다.
일단 자신감을 잃었다.
조금씩 핑계를 대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냈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기에 실수도 잦았고 타인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미진이가 날 떠난 건 그래서일지도.
맞다! 모두 내 잘못이다.
“이렇게 인정하고, 마음 정리하고 나니 후련하기는 하네.”
그런다고 딱히 현실이 바뀌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가슴에 묵혀 있던 덩어리가 쑥 하고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새삼 새벽에 꿨던 꿈이, 장백호의 인생을 겪어봤다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을 끙끙 앓던 것이 마음가짐 하나 바뀐 걸로 단번에 해결되었으니까.
“이래서 멘탈이 중요하다는 거구나.”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은 산뜻했다. 숙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묘한 자신감까지 치솟는 기분까지 들었던 것이다.
“그래,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놓고 고민하는 거다.”
일단 강형우는 수첩을 꺼냈다.
꼬질꼬질한 가죽을 넘기고 제일 앞에 몇 가지 기억나는 글귀들을 적어 나갔다. 그리고 그걸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뒤에 주방으로 향했다.
“일단 장사 준비부터!”
다른 건 몰라도, 가게 오픈은 철저히 혼자서 했다.
여기에 자신만의 비법과 노하우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으니까.
강형우는 제일 먼저 주방 전체를 둘러봤다.
“양념은 충분하고, 밥은 새로 지어야겠네.”
한창 잘 나갈 때는 하루 평균 100인분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50인분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밥이 남지만 어차피 김밥용은 매일 새로 해야 했다.
하루 지난 건 볶음밥이나 조리용으로 쓰면 된다.
오히려 적당히 수분이 빠진 게 더욱 양념을 잘 먹고 접시에 담을 때도 깔끔하게 낼 수 있었으니까.
“제일 먼저 밥물이지.”
일단 물을 올리고 다시마 한 조각과 양파 세 개를 넣는다.
끓으면 다시마만 건지고 물이 식을 때까지 놔두다가 양파를 건지면 끝이었다.
이렇게 만든 밥물을 만드는 이유는 하나였다.
실로 미묘한 차이지만, 정수기 물은 가볍다. 필터가 유해성분 뿐만 아니라, 각종 미네랄까지 제거하기 때문에 물 맛 자체가 평범해지는 것이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차별화된 맛을 위해서는 사소한 부분부터 공들일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밥맛을 결정하는 건, 쌀알이 흡수하는 수분에서 판가름이 난다. 그 작은 차이가 전체 음식의 퀄리티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일단 식혀놓고.”
강형우는 쌀을 여러 번 씻은 다음 체에 담아 물기를 뺐다.
무 하나를 꺼내어 토막을 낸 뒤, 믹서기에 갈았다. 그걸 다시 걸러 면포에 짠 다음 또 뭔가를 찾았다.
깨끗이 씻어서 말린 뒤에 비닐 포장을 해 놓은, 배춧잎이었다.
이게 강형우표 밥 짓기의 핵심이었다.
“쌀을 삼분의 일, 그 위에 배춧잎 두 장, 다시 쌀을 넣고 또 배춧잎…….”
배춧잎 위에 마지막 남은 쌀을 붓고 위를 덮은 다음 밥물부터 맞췄다. 손등이 약간 덮일 정도가 되자 미리 짜놓은 무즙을 한 컵 정도 넣었다.
이제 남은 건 익히는 것뿐.
강형우가 이렇게까지 공들여 밥을 짓는 건 여러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메뉴가 많은 분식집들은 현실적으로 레토르트 식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 작은 분식집 주방에서 갈비탕이나 감자탕 육수를 끓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레토르트 제품에는 당연하게도 많은 화학조미료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위가 좋지 않은 사람들에겐 약간의 소화 장애를 일으켰다. 트림도 안 나오고 속이 더부룩하고, 뭔가 꽉 막힌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걸 조금이나마 완화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는데 그 결과가 이거였다.
무는 소화에 좋고, 변비에 좋고, 혈압에도 좋았다. 아밀라아제라는 효소 때문이었다.
맞다. 누구나 과학시간에 한번쯤은 들어봤을 그거다.
마찬가지로 배추 역시 식이섬유가 풍부해 소화를 촉진시켰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지은 밥은 촉촉함이 오래갔다. 게다가 무와 배추의 수분 때문에 미세하게 단맛까지 감돌아서 밥맛이 끝장이었다.
사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실제로 다양한 재료들에도 도전해 봤다.
흑미, 기장, 콩, 현미 같은 잡곡들뿐만 아니라 감자, 호박, 고구마, 밤, 대추, 삼 같은 재료들을 사용해 보았다.
하지만 전부 탈락이었다.
전분과 수분, 밥 냄새, 색이 물드는 정도에서 생각한 조건에 맞지 않았다. 게다가 잡곡의 원가도 무시할 수 없어 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찾은 게 다시마였다.
다시마는 오래 끓이면 끈적끈적한 진액이 나온다. 그게 밥과 섞이게 되면 쓴맛을 넘어서 미묘한 껄끄러움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소량을 살짝 우리는 정도로만 쓴다면 미세한 향과 약간의 감칠맛이 스며들면서 밥맛을 좋게 만든다.
치이익~ 치익~
압력 밥솥에 추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좋고~”
강형우는 약불로 낮추고 다시 한 번 타이머를 확인했다.
잠시 후, 대략 칠분 정도 지났을 때 수증기 근처로 코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손을 저어 향을 맡은 뒤 고개를 끄덕이며 불을 꺼 버렸다.
이게 밥 양이 적으면 금방인데, 무려 30인분이나 되다 보니 뜸을 들이는 시간이 길었다.
“잘됐나 볼까?”
희한하게도, 이때가 되면 가슴이 설ㅤㄹㅔㅆ다.
꼭 미팅 처음 가는 순둥이처럼 상대를 생각만 해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상황이랄까.
“후우~ 하아아~ 좋다!”
아주 그냥 냄새가 끝내줬다.
강형우는 주걱을 들고 위에 밥을 살살 걷어 내었다.
그런 뒤, 배추를 모두 들어내고 밥을 섞는데……
흐음, 역시 이거다. 향이 아주 폭발한다.
마치 후각 세포 전부가 거기에 홀린 듯한 느낌이랄까?
그때였다.
♪~ ♪♪
박차고 태어나서 짠짜잔, 짠짜잔.
겁날 게 뭐가 있나~
갑자기 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어라? 웬일로 이 시간에…….”
액정에 뜬 이름은 ‘밥 공장 사장’이었다.
의아해하면서도 무의식중에 전화를 받자마자, 스피커가 폭발했다.
-마! 이 새끼야!”
***
“형, 미안해요.”
-이 씨~ 미안하다면 다냐? 너 진짜 죽을래?
“아니, 그게…….”
와! 진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졸라 쪽팔려서 고개를 숙였는데, 스피커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새끼야! 술 처먹었으면 곱게 처잘 것이지! 엉? 새벽 한 시에 전화 걸어!
“…….”
-형수랑 애들 잠 깬 건 그렇다 치자. 왜 그렇게 서럽게 우냐고?
“그게…….”
-너 인마! 말도 없이 십 분 넘게 울기만 했거든?
갑자기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방금 ‘밥 공장 사장’ 분석이 형에게 전화 왔을 때 뜬금없다 싶었다. 한 달에 서너 번 통화하는 게 전부였는데, 아침 7시도 안 된 이 시간에 연락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다짜고짜 욕이라니.
한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럴 만했다.
내가 잠결에 전화를 했단다. 그리고는 그 새벽에 목을 놓아가며 열심히 울었다는 거다.
말도 없이 그냥 무작정 울기만…….
혹시나 싶어서 통화내역을 확인해 봤다.
정말, 새벽 한 시에 내가 전화한 게 맞았다. 심지어 목록에는 미진이도 있었고, 성기와 태구도 있었다.
다행인 건, 다른 사람은 아무도 전화를 안 받았다는 거!
솔직히 분석이 형 입장에선 황당했을 거다.
새벽에 자다 깨서 전화를 받았는데, 난데없이 남자 울음소리만 계속 들렸을 테니.
머리를 긁적거리는데, 정분석이 고함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