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스밀리언 왕자 (20/70)

막스밀리언 왕자

“하면 전멸을 하였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적의 해군력이 워낙 수가 적은 때문에 절반 정도는 전장을 이탈하였고, 이들은 모두 정벌군 총원수부가 설치되어 있는 쿠덴베르에 상륙하였다 하옵니다.”

“뭐라고? 절반이나 당했단 말인가! 적의 해군에 남은 배라고는 물에 뜰 수 있는 것을 죄다 끌어내도 50척 정도라더니 그것도 당해 내지 못하고 절반이나 당했단 말인가!”

5차 지원군이 또다시 폰티악에게 당해 선단의 절반이 당했다는 에인세의 보고에 불같이 화를 내었다.

3백여 척으로 이루어진 5차 지원군 선단이 겨우 50척도 채 되지 않는 로엔의 해군에 당해 절반이나 되는 선단을 잃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큰 손실이었다.

“하면 그는?”

프란시스, 아니 리처드에 대한 것을 묻는 것이었다.

“그 또한 적과의 교전 중에 전사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확실한 것인가?”

“몇 번이나 확인을 하였습니다. 당시 그가 승선해 있던 전선에 함께 승선해 있던 병사들 중 생존한 병사들에게까지 확인하였습니다.”

전사를 하였다는 말에도 고메즈는 쉽게 그 말을 믿지 않고 수차례나 다시 물었다.

“그나마 그건 다행이군. 혹시라도 적의 포로가 되어 이용당하면 어쩌나 걱정하였는데 말이야.”

“주군께서 이 왕국의 진정한 주인이 되라는 신의 뜻 아니겠사옵니까?”

“훗! 신의 뜻이라…….”

아부라는 것을 알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아지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이제 전쟁을 마무리 지어야겠어.”

그가 5차 지원군을 무리해서 보낸 것은 이제 더 이상 로엔과의 전쟁을 질질 끌 수 없는 내부적인 상황에 직면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잡을 때까지야 한 명의 병사도 아쉬웠지만, 권력을 잡는 데 성공을 한 이후에는 너무 많은 병력, 특히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하더라도 잠재적으로 자신의 권력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는 수하들의 힘이 강성한 상태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하여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로엔을 침공하였고, 그의 뜻대로 잠재적으로 적이 될 수 있는 수하들의 힘을 대부분 깎아 내는 데 성공을 하였다.

하나 이제 더 이상 전쟁이 계속될 경우 자신의 힘마저 깎여 나갈 처지에 놓이게 되자 더 이상 전쟁을 끌고 갈 수는 없게 되었다.

“옳으신 판단이십니다, 전하.”

“물론 그 전에 그 일도 마무리 지어야겠지.”

“하면 실행에 옮기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게.”

“예, 전하.”

5차 지원군이 또다시 로엔의 폰티악 후작에게 참패를 당했다는 소식이 퍼진 가운데 모두가 쉬쉬하면서도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또 하나의 소문이 포넬의 귀족들 사이에 퍼졌다.

“어떻게 여왕께서 그런 망측한 행동을 하셨을까요?”

“그러게 말이에요. 생각만 해도 불결하지 뭐예요.”

“누가 아니래요. 평소에 그렇게 고결한 척하시던 분이…….”

저만치 앞서가는 하녀들의 입방아를 우연하게 듣게 된 포넬의 여왕 마리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여왕 폐하…….”

‘훗! 이런 식으로 날 욕보이다니. 차라리 깨끗하게 자결이라도 하게 배려해 줄 수도 없었다는 것인가요?’

어차피 아들인 프란시스를 위해서 희생할 것을 각오하고 벌인 일이었지만, 이처럼 모욕까지 당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던 마리다.

“언제부터인가요?”

“무, 무슨…….”

“언제부터 나에 대한 이런 더러운 소문이 돌고 있었던 것인가요?”

“폐하…….”

“후……. 아니에요. 이만 들어가도록 하지요. 쉬고 싶군요.”

“예, 여왕 폐하…….”

방으로 돌아온 마리는 언제나 기록하던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한참을 그렇게 일기를 쓰던 마리는 쓰기를 마쳤는지 펜을 놓은 마리는 칼로 자신의 머리를 한 움큼 잘라 내서는 그것을 일기책에 넣고는 책을 덮었다.

그리고 평소 늘 몸에 하고 다니던 패물들을 상자에 담아서는 일기책과 함께 이 세상에서 자신과 아들인 프란시스만이 아는 비밀의 장소에 넣어 두었다.

“이것들이 훗날 네가 돌아오면 조금이나마 네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비밀의 장소에는 역대 포넬의 국왕들이 어려운 살림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필요할 때가 되면 사용하기 위해 조금씩 모아 온 재물들이 하나 가득 쌓여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일기책과 늘 하고 다니던 패물들까지 비밀 장소에 넣어 둔 후, 그녀는 다시금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방 한가운데에는 이미 그녀의 마지막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의자 위에 오른 마리는 스스로 목에 천을 묶었다.

“아들아…….”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일기책에 적어 놓긴 하였지만 막상 마지막이다 싶으니 아직도 가슴속에 담긴 말들이 많아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대공,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랍니다. 나의 죽음이 바로 그대의 파멸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잠시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숨을 만끽하던 마리 여왕이 결심이 섰는지 주저 없이 올라서 있던 의자를 밀쳐 냈다.

쿵! 털썩!

“……!”

“헉!”

좀처럼 꾸지 않던 악몽을 꾼 알마리온이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이런…….”

그는 꿈속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리처드의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스스로 목을 매고 자결하는 모습을.

얼마나 원통하고 분하였으면 자신의 꿈에 나타났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파 왔다.

“형님께서 많이 슬퍼하시겠구나.”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것을 알려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알마리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는 리처드의 방으로 걸어갔다.

똑똑!

“들어와.”

이제 1∼2시간 후면 날이 밝아 올 시간이었지만 리처드는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리다 결국 잠자기를 포기해 버린 것이었다.

“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그런 넌 왜 안 자고 이 시간에 날 찾아온 거냐? 난 남잔 싫다고.”

“훗! 형님도 참. 그보다…… 잠시 저와 함께 나가시겠습니까?”

“이 시간에? 왜? 무슨 일이 있는 거냐?”

“예, 형님.”

유난히 어두운 알마리온의 표정에 리처드는 무슨 큰일이 생겼나 싶어 긴장한 채 그를 따라나섰다.

알마리온이 리처드를 데리고 간 것은 인적이 없는 곳이었다.

“뭔데? 무슨 일인데 이런 곳으로 날 데려온 것이지?”

“형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에게? 무슨 말인데 이런 시간에 이런 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야?”

“형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에 대한?”

“예. 오늘 밤 꿈을 꾸었습니다.”

“꿈을? 뭐야, 너. 너 지금 꿈 이야기나 하려고 날 이 시간에 이런 곳까지 불러낸 것이냐?”

평소 하지 않는 알마리온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있던 리처드는 꿈 이야기나 하겠다며 자신을 이 새벽에 인적이 없는 곳까지 끌고 온 것은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짜증이 났다.

“형님 어머님께서…….”

“뭐? 내 어머님? 내 어머님이 왜 네 꿈에 나타나?”

더욱더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하는 알마리온이었다.

“형님 어머님께서 오늘 아무래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것 같습니다.”

“무, 무슨 말이야, 도대체! 내, 내 어머니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시다니!”

“제 손을 잡아 보십시오.”

꿈을 통해 본 모습을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는 주술이 있었다. 알마리온은 그 방법을 통해 리처드에게 자신이 꾼 꿈을 보여 주려 하였다.

“뭐, 뭐야?”

알마리온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계속되자 저도 모르게 뒤로 한발 물러섰지만 결국 알마리온에 의해 손을 맞잡게 된 리처드는 알마리온이 꾼 꿈의 내용을 그대로 전해 받았다.

“어, 어머니? 어머니! 안 됩니다. 어머니! 어머니!”

알마리온이 꾼 꿈이 마치 환영 마법처럼 그대로 전해졌고, 그 꿈속에서 어머니가 스스로 목을 매는 모습을 본 리처드는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조차 하지 못한 채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그렇게 하면 어머니가 목을 매는 것을 말릴 수 있을까 해서였다.

“어머니! 어머니! 흑흑흑……. 으아아악! 으악! 으아악!”

어머니의 희생을 전제로 주어진 자유였다.

아무리 털어 버리려 해도 털어 버릴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일. 그것은 바로 자신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과 앞으로는 살아서 볼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어떻게 털어 낼 수 있겠는가.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과 그리움을.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더 쌓여만 갈 뿐이었다.

“으아악! 으악! 컥!”

얼마나 마음이 아팠기에, 얼마나 가슴에 쌓인 것이 많았기에 울분을 토해 내던 리처드는 많은 양의 피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탐스럽게 검던 그의 머리카락과 눈썹 등이 순식간에 하얗게 세어 버렸다.

“형님…….”

“부, 부탁이…… 크흑! 큭! 크흑! 부탁이 있어!”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리처드는 알마리온이라면 자신의 복수를 도와줄 수 있을 것만 같단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형님…….”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하려는 부탁이 무엇인지를. 어찌 자식을 위해 그렇게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발 부탁이다. 내 영혼을 달라면 주겠다. 내 목숨을 달라면 그것도 주겠다. 하니 내 제발…… 제발 내 복수를 도와다오! 제발!”

리처드는 알고 있었다.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로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만든 원수인 고메즈에게 복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그 도움을 주는 이가 알마리온이길 원했다.

“그러겠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제가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에게 복수만 할 수 있다면, 설사 그것이 백 년이 걸려도, 천 년이 걸려도 기다리겠다. 그에게 복수만 할 수 있다면!”

“그럼 돌아가시죠. 일단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지. 돌아가자.”

지금 당장은 이번 전쟁을 끝내야 했다. 그것이 우선이었다.

“모두 자리에 앉으시오.”

“예, 2왕자 전하!”

집단군 편제로 군 지휘 체계가 개편이 되었다.

한데 그 내용을 보면 실로 파격적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중 가장 파격적인 것은 제국군으로 구성된 제1군 사령관에 1왕자인 블리스 폰 로엔 왕자가, 그리고 동부 전선을 담당하게 된 제2군에 2왕자인 막스밀리언 폰 로엔이 임명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이 두 명의 왕자가 명목상으로라도 집단군의 최고 지휘관이 되는 것은 법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제국군이 다음 대의 로엔의 국왕이 될 블리스 왕자와 친분을 쌓기 위하여 그를 제국군들로만 구성된 제1군 사령관으로 강력히 요청을 하면서 덩달아 2왕자인 막스밀리언까지도 제2군 사령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제국군이 이처럼 블리스를 강력히 요청한 것은 그와 친분을 쌓아 두게 되면 두고두고 생기는 것이 많게 되기 때문이었다.

제국에서 로엔을 오가는 사신들은 한번 사신으로 다녀올 경우 막대한 재물을 챙겨 오곤 했다. 물론 그밖에도 양국을 오가면서 이루어지는 교역을 통해서도 큰 재물을 벌 수 있었기에 누구나 로엔에 사신으로 가고 싶어 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다음 대 로엔의 국왕과 안면까지 있다면?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다음으로 파격적인 내용은 원수인 더글러스 후작과 부원수인 나르담 후작이 처음으로 전선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이는 귀족 파벌의 위기의식에 의해 취해진 조치로, 그동안 국왕인 메르타니온을 따르는 자들이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며 승승장구하자 더 이상 이를 지켜볼 수만은 없단 판단에 직접 더글러스 후작이 나서자 이때다 싶어 나르담 후작을 제2군 부사령관에 임명하여 전선으로 내보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집단군 체제에서는 국왕파와 귀족 파벌에 속하는 군 지휘관들이 반반씩 임명되어 앞으로 이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 분명해진 상황이었다.

2군에 속하게 된 3군단과 7군단의 잔여 병력이 어제 모두 도착을 함으로써 제1의용군과 함께 병력 구성이 끝나자 막스밀리언 왕자는 곧바로 2군에 속한 3군단과 7군단 그리고 제1의용군의 모든 지휘관들이 참석하여 상견례를 겸한 첫 정식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앞으로 본인에 대한 호칭은 2왕자라 하지 말고 제2군 사령관이라고 하여 주었으면 좋겠소. 모두 아시겠소?”

“예! 사령관 각하.”

상견례가 모두 끝나자 막스밀리언은 몇 가지 주의할 점을 밝히고는 나르담에게 회의를 진행토록 하였다.

“자! 그럼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소. 나르담 후작께서 시작해 주시오.”

“예, 사령관 각하. 모두 주목하라!”

나르담의 강인한 목소리가 방 안에 낮게 울려 퍼졌다.

“간단하게 말하겠다. 우리 2군의 첫 공격 목표는 일단 헤일 백작령과 맞닿아 있는 콴, 옐친, 이고르, 이렇게 세 지역을 회복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하고 있다.”

비록 적의 5차 지원군 수송단 절반이 폰티악 후작에 의해 차단당하긴 하였지만 이들 중 절반은 이를 피해 쿠덴베르에 도착하였고, 포넬 정벌군 총사령관인 스펜서 후작은 이러한 병력과 기존의 병력으로 로엔의 남부 지역에 대한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조치로 인해 로엔 동남부 지역의 요충이자 로엔 땅에 존재하였던 옛 왕국의 왕도였던 헤일 백작 영지인 카이네에 주둔시켜 놓았던 2개 군단을 북진시켜 방어선을 구축토록 하였다.

실상 이런저런 일들로 시간을 끌지 않았다면 이곳 또한 제1의용군에 의해서 무혈점령할 수 있었던 것을, 시간을 끄는 바람에 이제는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빼앗을 수 없게 돼 버린 것이다.

어쨌든 적 2개 군단이 주둔 중인 헤일 백작 영지로 향하는 길은 콴과 옐친 그리고 이고르 남작 영지를 통하는 길밖에 없었는데 2군의 첫 공격 목표는 바로 이들 세 남작의 영지였다.

“혼테르 남작.”

“예! 부사령관님.”

“그대의 제1의용군이 콴을 점령한다.”

세 곳의 길 중 가장 험악한 지형인 곳이 바로 콴이었는데 그곳을 제1의용군에게 할당하는 나르담이었다.

“예!”

“그리고 하이란 자작의 3군단이 옐친을 맡도록 하게.”

“예, 부사령관님.”

“그리고 클레이튼 자작의 7군단이 이고르를 맡도록 하게.”

“예, 부사령관님.”

3군단과 7군단 단장인 하이란과 클레이튼이 힘차게 대답하였다.

“출발은 사흘 후 제1의용군을 선두로, 제3군단이 그다음 날 출발하고 7군단은 그다음 날 하도록 한다.”

이처럼 시간을 두고 출발을 달리하는 것은 콴과 옐친, 그리고 이고르 세 곳을 동시에 공격하기 위해서인데, 거리상으로는 가장 가깝지만 제1의용군이 맡은 콴은 가장 험한 산길을 통해서 이동을 해야 했기에 가장 먼저 출발을 하도록 한 것이며, 3군단과 7군단 또한 예상되는 이동 거리에 따라 출발 시간을 조정한 것이었다.

“앞으로 여드레 후에 세 곳을 동시에 공격토록 한다. 그리고 사령관님은 제1의용군과 함께하실 것이며 나는 7군단과 함께 이동할 것이다.”

“사령관님께서 제1의용군과 함께하시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막스밀리언이 제1의용군과 함께하는 것에 대해 하이란이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클레이튼 또한 동조하였다.

“그렇습니다. 병력도 가장 적고, 또 선봉이라 위험한 임무가 많은 제1의용군에 사령관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비록 명목상이고, 또 다음 대의 왕권과는 상관없는 막스밀리언이었지만 왕자라는 그의 타이틀은 충분히 활용하기에 좋은 것이었기에 하이란과 클레이튼 모두 그가 제1의용군과 함께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만. 그것은 내가 직접 결정한 것이오. 하니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마시오. 게다가 익스퍼트인 혼테르 남작이 내 곁에 있는데 나 하날 지키지 못하겠소?”

“그거야…….”

“또한 나의 안전을 위해 별도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있으니 무엇이 걱정이겠소. 안 그렇소?”

블리스와 막스밀리언이 전장에 나가게 되자 메르타니온은 두 왕자의 안전을 위해 근위군 소속 기사들과 병사들을 붙여 주었다.

이러한 막스밀리언의 말에도 하이란과 클레이튼은 좀처럼 수긍하지 않아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몇 가지 다짐을 받고서야 물러났다.

“산 곳곳에 적의 소규모 병력이 정찰을 돌고 있습니다. 이를 보아 콴에 주둔 중인 적의 지휘관이 무척이나 조심성이 많은 자인 것 같습니다.”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한센의 보고였다.

“적의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드란 경?”

“콴에 주둔하고 있는 적은 1개 천인대 규모인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사령관님.”

“이런 지형에서 1개 천인대라면 결코 적은 병력은 아닙니다, 군단장님.”

왕국 최대의 금광이 위치해 있는 콴 남작 영지는 대부분의 지형이 험한 산악 지형이었다. 콴 성 또한 다르지 않아서 이 성은 로엔 왕국 내에서도 가장 공략이 어려운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마치 하나의 봉우리였던 곳을 거대한 도끼로 내리찍어 놓은 듯 폭이 그리 넓지 않은 절벽을 사이에 둔 두 봉우리 중 남쪽 봉우리에 세워져 있는 콴 성은 사실상 북쪽에서의 공략 방법이 전무하였다.

이처럼 북쪽 봉우리에서 콴 성을 공략하는 방법이 전무하다고 말하는 것은 ‘신의 화풀이’라고 이름 붙여진 두 봉우리 사이에 놓인 절벽 사이에 놓인 가교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곳으로도 남쪽 봉우리로 이동하는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콴 성에 1개 천인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것은, 1개 정규군단보다 더 전력이 강하다고 해도 좋은 일이었다.

“…….”

“또한 평상시에는 가교를 항시 올려놓고 확인 후에야 가교를 내리는 것도 그렇지만, 가교를 내릴 때에도 동시에 성문까지 여는 법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정찰 결과만 보더라도 콴 성은 정규군단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공략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정령을 소환하여 살펴본 결과 두 봉우리를 연결하고 있는 가교에도 마법 아이템까지 설치되어 있어 언제든 위급한 상황에 가교를 폭발시켜 버릴 수 있도록 마지막 안전장치까지 해 놓고 있음을 확인하였지만 다른 사람들의 표정과는 달리 알마리온의 표정은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자, 이런 곳을 어떤 방법으로 공략할 것인지 궁금하군, 혼테르 남작.’

묵묵히 이런저런 정찰 보고를 받고 있는 알마리온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는 막스밀리언이었다.

하나 콴에 대한 공략법은 이미 알마리온의 머릿속에 모두 완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공략법의 단초를 제공해 준 것은 바로 레드로였다.

레드로가 전국을 떠도는 상인들이 이용을 하는 길을 이용하여 카르파티아 산맥을 건너 디엔 강의 남쪽, 그러니까 적의 후방을 공격하였고, 결국 이것이 소렌토를 적으로부터 되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레드로로부터 전해 들은 알마리온은 언젠가 취해질 공세 때 이곳 콴 성을 공략할 방법을 미리 생각했던 것이다.

‘적이 아무리 1개 천인대의 병력과 마법 아이템까지 설치해 놓고 만약에 만약까지 상정하여 방어를 철저히 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철저함이 그대들을 무너뜨리는 허점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군단장님께서 지시하신 그러한 길이 과연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결과는요?”

“있었습니다. 어렵게 찾기는 하였지만 상인들이 이용하는 길이 있었고, 그곳을 통해 콴 성을 우회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하였습니다.”

“콴 성을 우회할 수 있는 길이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혼테르 남작?”

다들 궁금해하는 것을 막스밀리언이 먼저 물었다.

“얼마 전 소렌토에 다녀왔을 때, 이그나티우스 남작이 카르파티아 산맥을 어떻게 넘었는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상인들이 이용하는 길 말이오?”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그리고 이곳 콴 성은 예로부터 상인들로부터 높은 통행세를 징수하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군 행정관인 알베르토 요하네스 경이 소관에게 귀띔을 하여 주었습니다. 그런 곳이라면 조금의 이익이라도 더 남기려는 상단으로서는 당연히 통행세를 덜 내기 위해 우회하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면!”

“조금 전 드란 경의 보고 내용처럼 드란 경이 그러한 길을 찾았고, 그곳을 통해 콴 성을 우회할 수 있음도 확인한 것입니다.”

“하하하! 대단하오, 혼테르 남작!”

“소관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처음 그러한 방법을 생각한 이그나티우스 남작이 뛰어난 것이옵니다, 사령관님.”

친구인 레드로를 띄워 주는 모습에 막스밀리언은 다시 한 번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우회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확인하자 막사 안의 분위기는 일순 확 바뀌었다.

이후에 알마리온은 칸이 지휘하는 1대와 한센이 지휘하는 2대, 리처드가 지휘하는 3대 3천의 병력으로 하여금 한센이 찾아낸 길을 이용, 콴 성의 배후로 이동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직할대와 요들이 지휘하는 4대, 2천 병력으로 콴 성의 정면을 공격기로 하였다.

“한데 공성 병기 없이 적의 성을 공격할 수 있겠소?”

“그 점에 대해서는 이미 대책이 서 있습니다, 사령관님.”

“대책이 있다는 것이오? 흠…… 비밀인 것이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럼?”

“제1의용군의 객원 기사인 리처드 레오폴트 경이 바로 그 대책입니다.”

“레오폴트 경이 대책이라 했소?”

“예, 사령관님. 이미 이곳의 다른 지휘관들은 모두 알고 있는 일이지만, 레오폴트 경은 익스퍼트의 검사입니다.”

“뭐라고 했소? 레오폴트 경이 익스퍼트라고 했소?”

리처드가 익스퍼트라는 말에 막스밀리언은 크게 놀랐다.

“예, 사령관님.”

“하면 왜 지난번에 소렌토에 왔을 때 폐하께 그러한 말씀을 드리지 않은 것이오?”

문책성이 강한 말이었다.

왕국에 또 한 명의 익스퍼트가 탄생했는데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천거하지 않은 것을 탓하는 것이었다.

“죄송하오나 전하, 소관이 한 말씀 드려도 되겠사옵니까?”

알마리온을 문책하듯 하는 막스밀리언의 행동에 리처드가 대신 나섰다.

“무엇이오?”

“혼테르 남작님이 그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은 것은 소관이 간절히 그것을 원하였기 때문이옵니다.”

“경이 간절히 원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이유가 무엇이오?”

“복수를 위해서라고만 알아주십시오. 그 이상은 말씀드리기 어렵사옵니다.”

“복수라?”

“그러하옵니다.”

자신이 포넬의 왕세자인 프란시스 레오나르도 폰 브리스톨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복수의 대상이 포넬의 권력자인 고메즈 대공이라는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결국 이용물이 되고 말 것이고, 그거야말로 절대로 사절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흠……. 하면 그대의 복수를 혼테르 남작이 돕기로 하였고, 그때까지는 혼테르 남작의 힘이 되어 주기로 한 것인가?”

확실히 인물은 인물이었다. 앞뒤 정황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익스퍼트인 리처드가 복수를 위해 혼테르의 곁에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만으로도 둘 사이에 무슨 묵계가 있었던 것인지 이내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알겠소.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한 번 서로 이야기를 하여 보도록 하겠소. 괜찮겠소?”

나중에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 보자며 알마리온과 리처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 사령관님.”

“예, 그리하겠습니다.”

척! 척! 척! 척!

직할대를 선두로 2천의 병력이 보무도 당당하게 콴 성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오르고 있었다.

이를 지켜본 포넬의 병사들은 이러한 소식을 곧바로 콴 성에 알렸고, 콴 성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마법사 카리스 폰 아담 남작은 곧바로 방어전을 지시했다.

“훗! 겨우 저 정도 병력으로 이곳을 공격하겠다는 것인가?”

아담은 2개 천인대 규모의 적군이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그보다는 우리를 이곳에 묶어 두려는 의도 아니겠습니까?”

실질적으로 콴 성에 주둔하고 있는 1개 천인대를 지휘하는 기사 조르단 헤겔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가능성 있군. 어쨌든 저 정도면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겠군. 안 그런가, 헤겔 경?”

“그럴 것 같습니다, 남작님.”

“하면 자네가 알아서 하도록 하게. 이런 일은 나보다는 자네가 지휘하는 것이 더 적합하니 말이야.”

순순히 지휘권을 넘겨주는 아담의 행동에 헤겔은 깊숙이 허리를 숙여 감사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록 적의 수가 많지는 않지만 공을 쌓을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담의 이러한 행동이 거저 나온 결과가 아닌, 그동안 성질 더러운 아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마다하지 않은 일이 없었기에 나온 결과였지만 말이다.

“감사합니다, 남작님. 하면 들어가 쉬도록 하십시오.”

“그러지.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찾도록 하게나.”

“예, 남작님.”

아담이 안으로 들어가자 헤겔은 본격적으로 군을 지휘하기 시작하였다.

“투석기는?”

“예. 철저히 점검하였습니다. 명령만 내리시면 곧바로 발사할 수 있습니다.”

“잘했군.”

외길에 가교가 아니고서는 성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성을 공격하는 측도 그렇지만, 방어하는 측에서도 투석기를 통한 공격 말고는 특별한 공격 준비를 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조금은 싱거운 전투준비를 하고 적이 투석기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적은 약게도 투석기의 사정거리 밖에서 걸음을 멈춘 채 좀처럼 다가올 기미가 없었다.

결국 이날은 서로 대치한 채 단 한차례의 공방도 주고받지 않았다.

‘운다인, 이곳 전체에 짙은 안개를 만들어 줘.’

-예, 알마리온 님.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시간, 알마리온은 물의 중급 정령인 운다인을 소환하여 봉우리 전체에 짙은 안개를 끼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군을 움직일 준비를 하였다.

“작전을 변경한다.”

작전을 변경한다는 알마리온의 말에 막스밀리언을 비롯한 나머지 지휘관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보다시피 봉우리 전체에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점을 이용하여 적의 이목을 우리에게 집중시킨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알마리온이 직할대와 제4대를 동원하여 적의 이목을 집중시키면 그것을 이용하여 우회한 제1, 2, 3대가 경계가 약한 적의 후방을 공략하는 것이 콴 성의 공략 계획이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렇다는 것이고, 알마리온은 처음부터 정령을 소환하여 적의 눈을 어둡게 만들어 적을 속일 생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태여 많은 희생을 낼 필요는 없겠지. 케인 경.”

“예, 군단장님.”

“직할대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을 5백 명만 뽑도록 하시오.”

“하하! 알겠습니다, 군단장님.”

목소리가 큰 병사들만 뽑으라는 알마리온의 말을 이내 알아들은 케인이 크게 웃으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천막을 벗어났다.

“그리고 트레뷰셋과 발리스타도 몇 대 준비토록 하시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웹 경은 이곳에서 병사들로 하여금 적이 투석기를 발사하면 적당히 호응하며 소란을 떨어 주시오.”

“하하. 예, 군단장님.”

“하하. 아주 재미난 계획이오, 혼테르 남작.”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준비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작하지!”

알마리온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 중에서 목소리가 큰 자들 5백이 몇 대의 트레뷰셋과 발리스타를 끌고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신호를.”

“예!”

삐이이이익!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와∼!”

“발사!”

펑! 펑! 펑! 펑!

케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트레뷰셋에서 기름 항아리가 발사되었고, 그것들은 콴 성의 성문 주변에 떨어져 삽시간에 성문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발리스타도 쏘아!”

핑! 핑! 핑! 핑!

쾅! 쾅! 쾅!

“가교에 제대로 박혔습니다!”

“좋아! 말에 연결해서 끌어내려!”

“예!”

“나머지는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와아!”

아무리 적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위장 공격이라 하더라도 만약을 대비하여 실제로 공격을 가하는 것처럼 진행을 하도록 하였다.

한데 워낙 짙게 드리운 안개로 인해 제1의용군의 움직임을 사전에 전혀 알아채지 못한 포넬군은 갑자기 아침 공기를 찢듯 울려 퍼진 날카로운 신호음에 처음으로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음을 알았고, 이들이 반격을 위한 준비를 막 시작하였을 때에는 이미 굵은 밧줄이 연결된 거대한 발리스타의 화살에 의해 가교가 당겨지고 있었다.

“투석기를! 투석기를 발사해!”

어차피 고정된 투석기는 콴 성으로 오르는 단 하나의 길에 겨냥되어 있기에 적이 보이든 말든 발사하기만 하면 되었다.

“젠장! 이렇게 안개가 짙게 끼어서야 뭐가 보여야 말이지!”

불과 10여 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게 낀 안개에 헤겔은 낭패감이 들었다.

“궁수가 없는 것이 영 걸립니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서 뭐하겠나. 어쨌든 자네가 병력을 지휘하여 이곳에서 적을 상대하도록 하게. 나는 그 나머지 병력을 지휘하여 성문 앞에 대기하고 있겠네.”

“예, 헤겔 기사님.”

만약을 대비하여 1개 백인대로 하여금 반대쪽 성벽 위에 대기시켜 놓았고, 공격받고 있는 쪽 성벽 위에는 2개 백인대를 배치하였고, 그 나머지 7개 백인대는 성문 앞에 대기시켜 놓았다.

콴 성에서 그나마 가장 취약한 부분을 고른다면 바로 지금 공격받고 있는 쪽의 성문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이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 그곳이 자신들의 치명적인 약점이 되리라고는 이때까지도 그 누구도 몰랐다.

“…….”

칸이 고개를 끄덕이자 굳이 몸을 숨길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자욱하게 낀 안개 속을 성큼성큼 걸어 성문 앞으로 걸어간 리처드는 검을 뽑아 들었다.

잠시 심호흡을 한 리처드가 마나 소드를 만들어 내더니 단번에 철판이 덧대어진 두꺼운 나무로 만든 성문을 반으로 잘라 버렸다.

“돌격!”

“와아아!”

성문이 파괴된 것을 확인하자 칸이 돌격을 명령하였고, 리처드를 선두로 3개 천인대가 일거에 콴 성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성공한 것 같군.”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사령관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콴 성안에서 일대 소란이 일기 시작하자 막스밀리언과 알마리온은 콴 성의 배후로 돌아간 쪽이 성안으로의 진입에 성공을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이쪽에서도 적극적으로 공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이쪽은 단지 적의 이목만을 끌려는 것 아니었소?”

“원래의 계획은 그렇습니다. 하나 전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움직여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옳은 말이오. 확실히 남작의 생각처럼 이쪽에서도 적을 당황시킬 만한 공격이 이루어진다면 적은 더욱 빠르게 무너질 것이오.”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막스밀리언과의 짧은 대화를 끝으로 알마리온은 직접 나머지 병사들을 이끌고 성으로 다가갔다.

‘실라페, 가교를 내려 줘.’

-쳇! 또 그런 하찮은 일을 시킨다.

‘하하, 미안.’

실라페가 가교를 올리고 내리는 도르래에 걸려 있는 걸쇠를 살짝 풀어 주자, 가뜩이나 발리스타로 쏜 거대한 화살에 연결된 밧줄을 말로 하여금 잡아당기고 있었기에 순식간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교가 연결되었다.

그렇게 내려진 가교를 가장 먼저 오른 이는 바로 알마리온이었다.

내려진 가교에 가장 먼저 검을 뽑아 든 채 성문을 향해 달려가던 알마리온의 검에 익스퍼트의 상징인 마나 소드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비록 정령의 힘으로 만든 거짓 마나 소드였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병사들은 자신들의 지휘관이 익스퍼트라는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과 용기를 얻었다.

“이얍!”

피융!

쾅!

단번에 성문이 파괴되었다.

“돌격!”

“와아아아!”

두꺼운 성문이 단 한 번에 파괴되는 모습에 더욱더 용기를 얻은 병사들이 알마리온을 선두로 하여 성안으로 진입하였다.

한편 반대편에서 성안으로 진입한 리처드는 알마리온이 미리 언질을 준 대로 적의 마법사를 찾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사전에 알마리온이 정령의 도움으로 마법 아이템을 모두 제거하였기에 별걱정은 없었지만 혹시라도 병사들이 마법사의 손에 해를 당할 것이 걱정되어 알마리온이 특별히 한 부탁이었다.

“으악!”

“컥!”

성문이 깨지고 적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자 적들 중 일부는 성 본체 안으로 들어가 농성을 준비하고 있다가 리처드의 등장으로 인해 순식간에 쓰러졌다.

“네 이놈!”

그때 마침 찾고 있던 마법사 아담이 리처드의 앞을 가로막더니 이내 매직 애로우로 그를 공격하였다.

방 안에서 모자란 잠을 좀 더 청하고 있던 그는 갑자기 건물 안에서 큰 소란이 일자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무조건 마법 아이템을 작동시키려 하였지만 그 또한 아무 반응이 없자, 직접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방을 나왔다 적군의 모습을 보고는 다짜고짜 마법을 날린 것이다.

“흥! 겨우 이따위 나부랭이로 날 상대하려는가!”

알마리온과 실전보다 더욱 실전 같은 대결을 펼친 리처드의 실력은 알마리온을 처음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아무리 마법사란 존재가 두려운 존재라지만 익스퍼트 또한 마법사와 다르지 않은 공포의 대상.

아담은 리처드가 익스퍼트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에 방심한 상태에서 그를 상대하였지만 리처드는 아담이 마법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는 것이 자칫 오래 끌 수도 있는 승부를 단숨에 끝내 버렸다.

팡! 파팡! 팡! 팡!

자신의 마법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멸시켜 버리는 모습에 아담은 비로소 리처드가 평범한 기사가 아닌 익스퍼트라는 것을 깨닫고 경악하였지만, 이미 상황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으, 으악! 이, 익스퍼트다! 적에게 익스퍼트가 있다!”

마법사의 마법을 단숨에 무력화시키고 눈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빠른 움직임으로 마법사를 단번에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는 단 하나.

바로 익스퍼트뿐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포넬의 병사들은 단번에 리처드가 익스퍼트임을 알아채고는 검을 버리고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하나 이는 부질없는 행동일 뿐이었다. 이미 두 곳의 성문이 모두 로엔군에 의해 점령당한 상황에서 이들이 도주할 수 있는 길은 아무 곳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콴 성은 별 어려움 없이 제1의용군에 의해 점령당했다.

“내가 이렇게 나서도 되겠소, 남작?”

“어쨌든 사령관님은 제2군의 사령관님 아니십니까?”

“하하! 그렇군. 맞아. 남작의 말처럼 내가 바로 2군 사령관이지!”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좋네! 그럼 진격한다.”

“예! 사령관님!”

전투가 시작된 지 불과 1시간여 만에 콴 성을 점령한 후, 알마리온은 막스밀리언 왕자에게 다음 명령을 내려 줄 것을 권하였고, 이에 잠시 멈칫하던 막스밀리언은 결국 알마리온의 권유에 따라 헤일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헤일에 주둔하고 있는 적은 아직 콴 성이 적에게 점령당하였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긴 다른 곳은 몰라도 콴 성만큼은 워낙 험준한 곳에 위치한 데다가 길이라는 것도 단 하나뿐이고,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마법 아이템이 설치되어 있으니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이에 반해 옐친과 이고르의 경우에는 길도 좋고 주변에 이렇다 할 장해물이 될 만한 것이 없었기에 그곳을 통해 접근한 적의 2개 군단을 상대로 쌍방 모두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공격하시오!”

“예, 사령관님!”

막스밀리언의 공격 명령이 내려지자 제1의용군 병력 5천이 일거에 적의 뒤를 치고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옐친을 통해 헤일에 접근한 3군단과 이고르를 통해 헤일에 접근한 7군단과 맞서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던 포넬군은 갑작스럽게 배후에서 나타난 또 다른 적으로 인해 일거에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와아아!”

“와아!”

대승이었다.

“전하!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도착하실 수가…….”

“혼테르 남작의 기발한 생각 덕분에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실상 나르담이 메르타니온을 제1의용군과 함께 콴으로 보낸 것은 그곳이 난공불락의 성이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옐친과 이고르와는 달리 콴은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기 힘든 지형이었다. 따라서 순식간에 상황이 변할 수 있는 회전과는 달리 언제든 위기를 맞게 되면 충분히 몸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여기에 나르담은 알마리온의 실력을 아직 믿지 못하고 있었고, 거기에 제1의용군은 병력도 정규군단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니 달리 보낼 곳도 없어 콴으로 보낸 것이었는데 이처럼 예상치 못하게 콴 성을 통과해 적의 배후로 나타나 일거에 적을 무찌르고 나타났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쨌든 당분간 이곳에 머물면서 군을 재정비토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르담 후작.”

“예, 왕자 전하. 아니, 사령관님.”

이날 이후 막스밀리언은 명목상의 지휘관이 아닌 제2군의 사령관으로서 실질적인 지휘권을 행사하게 된다.

아울러 그동안 알마리온에 대해서 필요에 의해 호의를 베풀던 것을, 콴 성 점령 때 보았던 그의 지휘관으로서의 능력과 이후 자신으로 하여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그를 늘 곁에 두려 하였고 그를 절대적으로 신임하기 시작했다.

“이것 받으시오, 혼테르 남작.”

막스밀리언이 내민 것은 한 통의 서찰이었다.

“무엇이옵니까, 전하?”

“막내가 그대에게 전해 달라고 내게 부탁하더군. 진즉에 전해 주었어야 했는데 늦었소. 미안하오.”

“아니옵니다, 전하.”

동생인 카산느가 알마리온을 처음 본 이후부터 그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카산느가 알마리온에게 전해 달라고 한 서신을 그에게 건네주지 않고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무리 알마리온이 왕국의 일곱 번째 익스퍼트이고 또한 부왕에게 힘을 보태는 중요한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출신이 노예였기에 거리를 두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소. 하여 막내가 그대에게 마음을 주는 것을 경계하였던 것이오. 하나 이제 그러한 나의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그 점 내 사과하겠소.”

자신을 단지 이용물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며, 그것을 사과하는 막스밀리언의 행동에 알마리온은 그에 대한 호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실상 알마리온은 처음 막스밀리언을 만났을 때부터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그것을 내색하거나 하지 않았다. 아니, 내색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을 뿐이다.

한데 이처럼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보았다며 당당하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사과하자 그의 사내다움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감사하옵니다, 전하.”

“그리고 말이오, 내 그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 것이 있소.”

“말씀하십시오.”

“나에게도 형이라 불러 주겠소?”

“…….”

막스밀리언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알마리온 또한 당황하여 그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리처드 경과 그대의 관계가 무척 부럽더이다.”

진심이었다. 왕자의 신분인 그에게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예의 바르게 행동을 하였지만 그것이 늘 불만인 막스밀리언이었다.

그는 보다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며 속에 담은 이야기들을 마음 놓고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언젠가 부왕인 메르타니온이 술이 과했던 날 로엔달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을 때, 그를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하면서 그에게만큼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일 수 있다고 자랑하였던 일이 있었는데, 이날 이후 어린 막스밀리언의 마음에는 자신도 그러한 친구가 있었으면 하였다.

그리고 그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난 알마리온과 레드로가 친구가 되었다는 것 또한 무척이나 부러워했었다.

그러다 소렌토에 온 알마리온이 리처드와 스스럼없이 형, 아우라 하는 것을 보며 자신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 잠깐 들었던 것이다.

“훗! 그러셨사옵니까?”

“흠! 그랬다오.”

“마침 리처드 형님이랑 술을 한잔 같이하기로 하였는데 형님께서도 함께하시겠습니까?”

“음? 하하하! 그것 좋지! 그것 좋아! 하하하!”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후련하게, 그리고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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