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반면 행복당은 돈이 넘친다. 선거캠프의 총괄본부장인 윤수혁 의원은 20대 총선 때, 본인 재산으로 1조원을 신고했었다. 호화 별장 여러 채와 수억을 호가하는 수퍼카, 심지어 이탈리아산 요트까지 있다. 더 이상 정치인이 아니다. 재벌이다.]
어느 중견 신문사의 사설이었다.
출력해온 것을 읽고 있었는데, 박 보좌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읽으셔도 됩니다.”
기분이 마뜩찮은 게 표정으로 드러난 걸까?
아니었다.
내용 자체가 좋지 않으니 박 보좌관이 만류한 것이었다. 오히려 그의 표정이 더 좋지 못했다.
“반박 기사도 바로 준비 중입니다. 기관과 단체마다 후원 영수증 정리해서 뉴스에 태울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단 마저 볼게요,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박 보좌관의 지친 답을 듣고 마저 눈을 돌렸다.
[그렇다면 윤 의원이 모시는 조성현 후보는 어떨까? 조 후보는 이틀 전 광화문 연설에서 ‘일(勤勞)’이라는 말을 30번, ‘행동’이라는 말을 22번, ‘실천’이라는 말을 18번이나 했다. 그럼 기부는 얼마나 행했을까? 2016년에 국민을 위해 기부한 돈은 300만 원이 전부다. 그리고 같은 해, 동료 국회의원들에게 준 정치기부금은 그보다 50만 원이 더 많은 350만 원이다. 조 후보의 일은 동료 국회의원을 위한 일로 보인다.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그 뒤로는 조 후보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글로 끝맺음이 돼있었다.
“조잡하긴 한데, 교묘하네요.”
“죄송합니다, 대응 계획 두 시간 내로 결재 올리겠습니다.”
박 보좌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캠프 차원에서 하진 마세요. 그냥 제 입장 하나 써서 배포 하는 걸로 마무리 지으세요.”
“하지만 벌써 사설에 편승한 기사도 보도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요청도 일부 들어왔는데······.”
“해봤자 다 진흙탕인 거 아시잖습니까?”
그래서 황 후보의 캠프에서 일을 벌이는 것이었다.
더 시끄럽고 추잡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조성현도 결국 수많은 정치인과 같다는 걸 알리는 게 목적이었다.
가외로 나까지 깎아내리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조용한 게 나았다.
어차피 당선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될 테니까.
“하지만 선거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대응이 미미하면······.”
“대신에 덮는 걸로 가시죠.”
“어떻게 덮으실 생각이신지······?”
“VIP 지지자들, 연설대에 세웁시다.”
유명인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국민 배우 타이틀을 가진 탤런트, 전 국가대표 출신의 축구감독, 시나리오 작가인 대학교수 등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알법한 이들.
이미 그들을 방송 찬조연설대와 유세장 트럭 위에 세우기로 합의한 상황이었다.
그것도 언론에 노출하지 않은 채, 지지율 막판 싸움에 써먹으려고 했었다.
시기는 1차, 2차 TV토론회 이후 반응을 보고난 뒤.
그러나 상황을 보니 일찍 써야 할 것 같아서 말한 것이었다.
박 보좌관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하루 이틀 차이로 세워서 기사 써내게 하면······.”
“그건 조 본부장님하고 박 보좌관님이 상의해서 진행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박 보좌관이 꾸벅 허리를 숙인 뒤 자리를 떴다.
나도 마음 같아선 확실하게 해명하고, 기사 낸 인간들을 징벌하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됐다.
가급적 덮어야 했다.
사후처리는 나중의 일이었다.
대선까지 남은 시간이 고작 2주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 * *
윤수혁과 조성현의 반박 자료가 배포된 지 며칠 째.
기자들이 둘의 유세장을 찾아가서 마이크와 스마트폰 따위를 들이밀었다.
서면으로 입장을 반박할 뿐, 직접 피력한 의견이 없던 탓이었다.
육성 대답을 따와야 한다는 강박에 기자들이 들러붙었는데, 인파를 헤치고 누군가 나타났다.
“어?! 누구지?!”
“이현범 같은데?!”
“맞아! 이현범이잖아!”
국민 아버지라고 불리는 배우 이현범의 등장에 웅성거리던 기자들이 재빨리 타깃을 바꿨다.
이현범은 약 60년을 연기해온 원로 배우였다.
또한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젊은 층에게도 사랑을 받아서, 국민 배우라는 타이틀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이였다.
더구나 과거에 정치 이력도 있었다.
1990년대에 보수 정당의 국회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됐었고, 이후에는 민선 시장 공천까지 받았었다.
만약 그길로 갔다면 원로 정치인이 됐을지도 몰랐다.
어느새 조성현 옆자리에 이현범이 오르자, 기자들이 소리를 지르듯 질문을 내던졌다.
“어떤 요청으로 유세장에 오셨습니까!”
“조성현 후보님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십니까?!”
“최근에 불거진 기부금 논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들의 함성에 이현범은 덤덤한 얼굴을 한 채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배우 이현범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전형적인 지지 연설이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저는 조성현 후보와 같은 사람을 처음 봤습니다. 조성현 후보야말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다들 아실 겁니다. 조성현 후보는 일을 할 줄 압니다. 그리고 잘 합니다. 열심히 하기까지 합니다. 두 해 전의 메르스 사태를 기억하십니까? 정부가 미온할 때, 앞장서서 문제 해결을 해나갔습니다. 법안을 만들었고, 휴업과 휴회를 제안했지요. 작년에 사드로 외교적 마찰이 생겼을 때도 조성현 후보는 곧장 중국으로 넘어가 일을 해결했습니다.”
완숙한 배우다운 정확한 발음과 굴곡 있는 목소리가 유세장에 진중하게 깔려나갔다.
그 다음.
이현범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축구 영웅으로 유명한 전 국가대표 출신의 감독까지 마이크를 잡았다.
조성현의 옆자리는 아니었지만, 갑자기 유세차량에 오른 것이었다.
연예면과 스포츠면, 정치면, 사회면이 연달아 대선 이슈로 몰아쳤다.
[축구 영웅 천성관, 조성현 깜짝 지지 연설···“정치 성향 관계없이 일하는 후보를 지지해”]
[趙, 기부금 논란 이후 오히려 상승세···유명인 지지선언 이어져]
[대선 D-7 논란 속 마지막 여론조사, 趙 -黃 양자구도 지지율 3% 이내 박빙]
그렇게 조성현의 기부금 논란은 잠깐이나마 묻혔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까지 다가온 탓이었다.
언론사에 여론조사 전문 기관의 지지율 조사 결과가 실렸고, 사설에는 후보마다 겪은 네거티브 내용이 짬뽕처럼 섞였으며, 유세 지역과 대선 캠프 앞에서는 전국의 수많은 단체가 지지 시위를 벌였다.
국가의 수장이 결정되기까지 고작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대선을 화두로 삼았다.
* * *
2017년 12월 20일, 늦은 밤.
잘 다려진 와이셔츠를 꺼내 입고,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새로 맸다.
그렇게 정장 상의까지 걸치자, 드레스룸 문이 열렸다.
한사랑이었다.
“벌써 나가요?”
“이제 출발해야 돼요. 당선인하고 같이 움직이기로 했어요.”
“개표 다 끝나고 가는 줄 알았어요.”
아직 대선 개표 방송이 한창 송출되고 있었다.
개표율은 3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고, 조성현 후보자 밑에 나타난 글자도 ‘확실’이 아닌, ‘유력’이었다.
그러나 출구조사 기록부터 방송사별로 마련한 예측 시스템은 계속해서 조 후보의 우세를 점쳤다.
최저 2%에서 최고 7%의 차이.
결국 개표율 40%가 되기 전에 ‘당선 확실’이 될 것이었다.
이미 TV화면에 간간이 잡히는 당사 내부에는 웃음꽃이 만연했다.
아나운서가 업데이트 되는 득표율을 알려줄 때마다 선대위원장이 박수를 쳤고, 간부들이 곧잘 박수를 따라 쳤다.
반면에 희망민주당은 덤덤했다.
지난 선거 때부터, 그리고 선거운동 때부터 이미 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크게 침울해 보이지 않았지만, 기대감이 있던 초반과 다르게 아주 조용했다.
할 말이 없는 것이겠지.
그사이, 어느새 다가온 한사랑이 뒤에서 나를 안았다.
포근했고, 따듯했다.
“이제 두 개는 끝난 거예요?”
“예?”
내가 되묻자, 그녀가 까치발을 들듯 내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거울 너머에 그녀의 얼굴이 쏙 나왔다.
“우리 만난 첫 날, 기억 안 나요?”
“기억나죠.”
아직도 선명했다.
2013년 5월 말, 사진으로만 봤던 한사랑을 처음 봤었다.
어색한 러시아말로 인사를 나눴고, 강북구을의 내 사무소에서 입을 맞추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식사시간에 그녀가 물어왔던 말이 뭔지도 잘 알았다.
“장래희망이 뭐냐고 했잖아요.”
“그럼 두 개가 뭔지 기억해요?”
“그럼요, 내가 말했는데.”
재선과 입각.
지금보다 네 살은 어렸던 그녀가 장래희망을 묻기에, 일단의 목표를 말한 것이었다.
그 중 재선은 작년에 했고, 입각은 곧 예정돼 있었다.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구성되고, 2월 26일에 제대로 된 임기가 시작되겠지만.
이미 입각이라도 한 듯 싶었다.
받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두 대의 스마트폰으로 축하 연락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재선 당선 됐을 때보다 더했다.
어느새 한사랑이 거울로 나와 눈을 마주하면서 웃었다.
“축하해요, 여보.”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직 장래희망을 다 이룬 건 아니잖아요.”
속으로 다짐했던 대통령을 떠올리며 말했는데, 한사랑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요. 이래야 당신답죠.”
얼굴에 웃음기는 있었지만, 달관한 말투였다.
“왜요?”
“대통령 당선 시킨 날에도 다음 스케줄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게······ 그렇긴 하네요.”
“평소에 내가 아내인 건 기억하죠?”
“그럼요.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내가 뒤돌아 껴안자, 한사랑이 바람을 뱉듯 웃었다.
“푸흐. 나는 괜찮은데, 당신 머릿속에 2등은 지훈이로 해줘요. 알았죠?”
“당연하죠, 나가면서 지훈이 얼굴 보고 가려고 했어요.”
“지훈이 잠자리 예민한 거 알면서······, 아니 모르죠?”
“······.”
차마 대답하질 못했다.
대선 준비하느라 근 1년 동안 집에도 잘 들어오질 못했었다. 한사랑은 물론이고 아들 얼굴조차 자주 보질 못했었다.
식습관이나 잠자는 모습을 아는 게 더 어려웠다.
그녀가 품에 안긴 채로 나를 올려다봤다.
“이제 조금 여유롭게 살아요. 어차피 장래희망도 당장 이룰 수 없잖아요.”
내 마지막 장래희망인 대통령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만 40세의 나이를 충족시켜야 했다.
지금이 만으로 32세였으니, 앞으로 8년은 필요했다.
이윽고 그녀가 말을 덧붙였다.
“이제 지훈이랑도 같이 놀면서 시간 보내고 쉬면서 지내요. 이사갈 집에 마당도 있으니까······.”
청와대로 출근할 예정이라서 이미 평창동에 집까지 알아본 상황이었다.
아니, 매매를 마친 게 올해 중순이었고, 리모델링을 끝낸 게 저번 달이었다.
당연히 부동산 관리인과 한사랑이 일을 처리했었다.
그녀가 날 잠깐 바라보더니 말을 바꿨다.
“음. 아직 집 모르죠? 확인도 못한 거죠?”
“······선거철이라서요.”
“그래요, 선거철이니까. 그런데 인수위 준비하는 동안에도 바쁠 것 같은데, 아니에요?”
“음······.”
인수위 활동도 바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내각이 거의 정해지긴 했지만, 그것도 후보일 때 계획한 것이었다.
대통령 당선인이 된 순간부터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게 될 것이었다. 그 중에 쓸 만한 사람은 다시 채용해야 했다.
거기에 내가 개입해야만 했다.
논공행상 때문이었다.
고생한 사람에게는 그만한 대가를 줘야만 했다.
그래야만 사람들도 나를 믿고 따라오고, 내 힘이 되어줄 것이었다. 단순히 내가 가진 것이 많기에 따르는 걸로는 부족했다.
내 목표는 그냥 대통령이 아니었다.
이윽고 한사랑이 내 품에서 벗어나선 가볍게 입을 맞췄다.
“알았어요, 기다릴 테니까 잘 다녀와요.”
여태 한 번도 투정한 적 없던 그녀의 말이었다.
“고마워요.”
“기다리는 거 잘해요, 나.”
그렇게 웃는 사이, 지훈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사랑이 픽 웃음을 흘리더니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지훈이 다시 재우러 갈게요. 얼른 가요, 늦겠어요.”
그렇게 한사랑이 지훈이를 다독이는 사이, 집을 나왔다.
입구에서 대기 중이던 김백현 경호팀장의 인사를 받은 뒤에 그와 함께 이동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무렵.
여태 잠잠하던 한 대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전화하는 사람이 몇 명 없는 스마트폰이었다.
화면을 보는 순간 미소가 지어졌다.
[조성현 후보]
김 팀장이 눈치껏 거리를 벌리는 사이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윤 본.
“네, 후보님.”
부름에 대답했는데도 조용했다.
내가 차에 오르고, 영석이가 차를 출발시킬 무렵에야 그의 목소리가 더디게 나왔다.
- ······고맙습니다.
울음기가 섞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온갖 감정을 꽉 누른 것처럼 들렸다.
나는 그의 말에 담담히 대답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