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44. 타이밍 (2)
7월 중순.
337호 의원실 한편의 통유리 회의실.
안에서 회의가 한창이었다.
상석에 앉은 4급 보좌관 박민표가 회의를 진행하다가 한 명의 질문에 표정을 굳혔다.
“안 돼, 하지 말라고 해.”
유령 당원 모집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주로 벌어지는 일 중에 하나로 실적을 내기 위해서, 혹은 잘 보이기 위해서, 여러 이유로 당원을 모집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당사자의 의사와는 무관한 가입.
어느 공장의 공장장이나 사무실의 사장이 직원들에게 당원 가입서를 주고 쓰라고 권유하는 일이 그 예였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가입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고소나 거부는커녕, 책임당원 월회비 2만 원까지 부담하는 게 현실이었다.
2만 원이 아까워서 혹은 정치적 신념 때문에, 그 외의 이유가 뭐가 됐든 간에 거부한다면, 당장의 직장 생활이 불편해질 것이고, 심해지면 일자리를 잃으며, 어쩌면 업계에서 공유되는 채용자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가능성도 있었다.
이는 법 이전에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는 악랄한 짓이었다.
질문했던 6급 비서가 약간 위축되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오너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건데…….”
“안 된다고, 인마. 너 영감님하고 원투데이하냐? 스타일 알잖아, 몰라?”
그 말에 5급 비서관들이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있는 사람들이 더하다는 말과 다르게, 윤수혁은 주어지는 세비도 반납하는 경우가 잦았고, 공지하지 않은 세금도 찾아서 내곤 했었다.
국회의원이라면 숨 쉬듯하는 불법 주정차와 각종 의전도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차를 세운다면, 얼른 내리고 차는 주차 라인에 맞춰 세워야 했다.
거의 강박에 가까운 수준.
“그거 확실하게 경고해, 아니다…… 아예 경고장 만들어서 모바일로 쫙 뿌리자.”
이어서 박민표의 시선이 다시금 6급 비서에게 닿았다.
“김 비서가 초안 써, 들어갈 단어는 당원 강제 모집 금지, 적발 시 당적 박탈. 오케이?”
그제야 김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제 총선 체제 들어가니까 잡음 나는 거 없도록 해. 우리 영감님 인기 최고인거 알지? 흠집 났다가는 바로 죽음이다. 명심해.”
“네.”
“알겠습니다.”
비서관과 비서들이 대답하고, 박 보좌관이 회의를 파했다.
이후 개인 자리로 돌아가려던 찰나.
국토위원회 전문가로 스카우트 됐던 5급 비서관 오영현이 그를 조용히 불렀다.
“보좌관님.”
“어, 오 비서관.”
“제가 이쪽 친구들한테 얘기를 좀 들은 게 있어서요.”
“얘기?”
“네, 따로 말씀드리고 싶은데. 잠깐 시간 내주시겠습니까?”
그의 눈치를 살핀 박민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나 한 대 태우자.”
그렇게 두 사람이 간 곳은 의원회관 비상계단.
국회의 분수 물줄기와 녹색의 나무, 잘 가꿔진 잔디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장소였다.
다만 흡연 공간은 아니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흡연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고, 담배를 피기 위해서는 바깥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명문화된 규정이었고, 암묵적으로는 흡연이 허용됐다.
신고도, 단속도 없었다.
구청 직원이 감히 국회 의원회관에 와서 기습 단속하는 건 불가능했다.
의원 개인실은 물론이고, 기자실과 회관 내 여러 장소에서 흡연이 이뤄지고 있던 탓이었다.
더욱이 비상계단 창가에도 담배꽁초를 버리는 종이컵과 400원짜리 편의점 라이터가 하나 보란 듯이 놓여 있었다.
이윽고 비상계단 위아래를 확인한 박민표가 입에 담배를 물었다.
찰칵, 불꽃이 튀어서 라이터 가스가 화르륵 불탔다.
박민표가 담뱃불을 붙이고서는 오영현을 바라봤다.
얘기해 보라는 듯한 표정.
눈을 마주한 오영현도 담배를 한 차례 빨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혹시 알고 계십니까? 국토위 피감기관에서 의원님 이름 도는 거.”
“우리 영감님 이제 월드 클래스잖아. 이름 도는 게 왜?”
그건 윤수혁 뿐만 아니라, 유명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각 정당의 수장들인 황택근이나 염상수.
곧 총선도 있고, 이어서 전당대회도 있으니 당연히 관련된 얘기가 도는 것이었다.
보좌진들 입장에서는 경력 한 줄 쌓기 용이한 사람들이기도 했고.
그러다 박민표가 주춤했다.
오영현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본 것이었다.
박민표의 입이 다시 열렸다.
“루머야?”
“루머는 아니고, …… 팩틉니다.”
“팩트?”
“의원님께서 하시는 일, 말씀, 행동까지 입 밖으로 나온답니다. 자료 수집하는 것처럼…… 그리고 보좌관님 성함도 몇 번 나왔다고 했습니다.”
“나?”
박민표가 담배를 든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쿡 찍자, 오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내 이름이 왜 나와?”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낌새 이상하다고 알려 준 거라서,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있던 박민표가 인상을 찡그렸다.
“……오 비서관, 뭐 실수 한 거 없지?”
“저요? 저는 룸도 안 가고…… 국회 들어와서는 떡값도 안 받습니다. 의원님께서 보너스도 많이 주시는데, 제가 실수 할 게 뭐 있겠습니까?”
그 말에 박민표가 담배가 타들어 가는 동안 가만히 있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일단 다시 집합, 단도리 한 번 치고 가자.”
“다시 회의실로 모이라는 말씀이세요?”
박민표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빨았다.
“어, 전부 다.”
***
미리 건강 검진을 받았었다.
특히 불임, 난임과 관련해서 꼼꼼하게 체크했었고.
그 결과, 의사가 빙긋 웃었다.
“임신 맞습니다, 축하드려요.”
나이 지긋한 원장의 말에 일단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혹시 초음파 검사나 그런 건 아직…….”
내 말에 원장이 엷게 웃었다.
“아직 좀 더 커야 돼요, 지금은 아기가 너무 작아서 혈액 검사로만 확인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모니터를 돌려서 혈액 검사 수치를 보여 줬다.
임신 했을 때 나오는 다른 수치.
원장이 최대한 꼼꼼하고 친절하게 해 주는 듯 보였으나,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이 전부라서 확실한 것만 되물었다.
“그럼 4주차부터 아기집 확인이 가능하다는 말씀이시죠?”
“네, 산모수첩에 체크해 드릴 겁니다. 내원하셔서 검사하시고, 바쁘지 않으시면 저희 컨설턴트하고 말씀 좀 나누시겠어요? 각종 검사나 제대혈 은행, 조리원, 아기보험까지 알려 드릴 겁니다.”
이미 원장의 테이블 앞에도 각종 팸플릿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걸 다 볼 시간도 없었다.
당장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는데, 많이 촉박했다.
약속 시간이 코앞이었다.
오늘 산부인과 방문도 원래 약속되 있던 게 아니었다.
임신 여부 확인과 사람들의 이목을 신경 쓰고, 소개 받았던 산부인과 원장에게 인사도 할 겸해서 왔을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산부인과 첫 방문인데, 아내 혼자 보내지 말라고 해서 바쁜 시간을 쪼갠 것이었다.
이미 예정된 내 약속이 당도한 상황이었다.
특히 이번 달이 바빴다.
곧 공천심사위원회가 만들어질 예정이었고, 출마를 위한 사람들을 맞이하고 걸러내느라 시간이 모자랐다.
총선을 준비하는 중요한 타이밍이 지금이었다.
그 와중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사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저 혼자 들을게요, 남편은 많이 바빠서. 지금 약속 시간 다 됐죠?”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입가에는 미소까지 어려 있기에 나도 조금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시간은 다 되긴 했는데, 괜찮겠어요?”
“나 애 아니에요, 이제 엄마 될 사람인데.”
한사랑이 그러면서 엷게 웃었고, 흐뭇하게 보던 산부인과 원장도 입을 열었다.
“산모께서 나이에 비해 굉장히 어른스럽네요. 의원님 먼저 일어나셔요, 산모는 내가 잘 모실게요. 걱정 마세요.”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한사랑과 눈을 마주친 뒤, 진료실을 나왔다.
동시에 카톡도 하나 왔다.
[의원님, 차량은 입구에 바로 대기시켜 놨고, 약속 지연 알림도 미리 해놨습니다.]
영석이었다.
눈치껏 움직이는 게 거의 박 보좌관을 능가할 수준이 됐다.
전에 대화투자자문에 있을 때부터 계속 비서 역할을 도맡은 덕분에 실력이 는 것이었다.
눈치도, 업무도 이제는 꽤 숙련된 솜씨를 보여 줬다.
영석이한테 바로 답신을 썼다.
[지금 끝났다]
그 뒤에 나오는 길에 접수를 해 줬던 간호사에게도 잘 부탁한다고 한마디 해 놓고 복도로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1층에서 내리자 영석이가 묵례를 했다.
“의원님, 축하드립니다.”
“어? 아, 어떻게 알았어?”
걸으며 묻자, 영석이가 가볍게 미소를 머금었다.
“딱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네가?”
“네, 그럼 박 보좌관한테도 말해놓겠습니다. 사모님 임신 사실 배포자료 준비하는 거 같은데…….”
“아직 열흘 밖에 안 됐는데, 급하기는.”
“이미 산부인과 출입하신 순간부터 순식간에 소문 납니다. 여기 보는 눈 많습니다.”
“그래서 내내 포커페이스 했는데…… 아. 어는 어떻게 알았어? 나 웃지도 않았는데?”
가볍게 묻자, 영석이가 머뭇거렸다.
“저…….”
“왜?”
“저도 산부인과 다녀왔습니다.”
“네가? 무슨 소리야?”
뜬금없는 말에 산부인과 로비를 가로지르다가 멈출 뻔했다.
“사고…… 쳤습니다.”
말끝에 영석이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무슨.”
걷던 발이 멈추고 말았다.
“어? 사고? 너 여자 친구랑? 아니, 여자 친구 있어?”
“네, 의원님. 일단 차에 탑승하셔서 말씀하시는 게…….”
뒤늦게 주위를 확인하고 얼른 걸음을 옮겼다.
곧장 시동이 걸린 제네시스에 몸을 실었고, 영석이가 운전석에 오르자마자 되물었다.
“진짜로 그 사고 쳤어?”
“네, 의원님.”
“여자 친구지? 설마 원나잇은…….”
“아닙니다, 6개월 사귀었습니다.”
“6개월이면…… 참, 새해부터 만났다고? 흐흐흐.”
나도 웃음이 나고 말았다.
일한다고, 나한테 존댓말 쓴다고, 프로페셔널 하겠다고 말조심, 행동 조심하던 영석이가 사고를 치다니.
“여자 친구는 예뻐?”
“의원님도 아실 겁니다.”
“내가 안다고?”
“대학 때 같은 과였던 친구인데, 이름이 안서연이라고…….”
“걔가 과 퀸카였잖아? 그치?”
“맞습니다, 으흐흐.”
“웃기는…… 그래서 지금 임신했다고? 맞아?”
“네, 지금 5주차입니다.”
“와…… 나보다 선배였어?”
그렇게 가는 내내 영석이 얘기로 시간을 보냈다.
주로 내가 묻는 입장이었지만.
세상에 내 대학후배가 먼저 애까지 가지다니, 여전히 농담 같아서 웃음이 났다.
***
8월 중순.
[(속보)신민주당 황택근 전 보좌관 김 모 씨 후원금 횡령 의혹]
[황택근 당대표, “전직 보좌관 후원금 횡령 의혹 알지 못해, 사실 확인 중.”]
[黃대표, 당대표 되자마자 전 보좌관 횡령 문제 터져···反黃계 전당대회 공정성까지 의심해, 내부 문제 터지나?]
각 정당마다 공천 체제로 들어가고, 10월의 국정감사를 앞두고 바쁘던 때.
갑자기 정치면을 채운 기사에 4급 보좌관 박민표가 고개를 갸웃했다.
‘후원금을 얼마나 해 먹었다고 이게 났을까?’
후원금의 일부를 접대나 차비 목적으로 보좌진이 챙기는 경우가 있긴 했다.
그러나 관행으로 묵인 됐다.
수천만 원이나 억 단위의 돈을 홀로 꿀꺽 삼킨 게 아니라면, 늘 있던 관례였다.
국회의원들이 지역 유지나 사업가들에게 돈을 받고, 지역구 행사에 가서 불법 찬조금을 주는 이치와 같았다.
이는 정치권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만연한 일이기도 했다.
9급 비서가 출력하고 정리한 기사를 확인하던 박민표의 눈이 어느새 가늘어졌다.
‘설마?’
박민표가 기억을 헤집었다.
5급 비서관 오영현의 말과 근래 국회 곳곳에서 들리던 말을 떠올린 것이었다.
‘이거 감이 이상한데?’
박 보좌관이 신문을 챙기고는 서둘러 개인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의원님께선 알고 계실 거 같기도 하고, 모르셔도 말씀 드려야 할 거 같아서 들어왔습니다.”
“뭔데요?”
이력서를 한편으로 치운 윤수혁이 박민표를 바라봤다.
“이번에 황택근 대표 전 보좌관 사건부터, 요 근래에 계속 의원님 성함이…….”
“아, 그거. 알아요.”
윤수혁의 태연한 대답.
막 신문 기사 정리한 파일을 보여 주려던 박민표가 눈을 껌뻑거렸다.
“네?”
“누가 한 건지 자알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