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44. 타이밍 (1)
7월 초.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장세룡 전 당대표가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1일 열린 2심 선고공판에서 장 대표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한 벌금 200만 원과 추징금 2억 2000만 원을 부과했으며, “피고인은 개인과 법인으로부터 2억 2천만 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해 공직자로서의 투명성을 훼손했고…… ]
기사가 길어졌다.
뒤에 나오는 말은 공직자로서의 투명성을 훼손하고도 장세룡이 고작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이유였다.
특별한 건 아니었다.
주요 혐의였던 170억 수수는 증거가 없어 무죄가 되었고, 피고인이 반성하는 데다가 나라에 이바지한 점을 고려해서 양형했다고 나와 있었다.
나도 예상한 바였다.
교도소에서 먹고 자는 일은 피하기 위해서 갖은 수는 다 썼을 게 뻔했다.
검찰, 법원, 증인들까지 구워 삶기 위해 부단하게 애를 썼으리라.
그 과정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것이었다.
증거 없음, 반성, 이바지 등등.
권력자들이 법망을 빠져나가는 쉬운 방법 중에 하나였다.
애초에 수천억 원을 몰래 빼먹은 경제 사범에게도 경제 회복의 임무를 주고 특별사면 시키는 나라가 대한민국이기도 했고.
그렇게 장세룡의 집행유예가 정치면을 채웠다.
전 보수신당의 대표이자 한 때는 대권 후보였던 사람이라서, 그리고 메르스 여파가 잠잠해질 무렵이어서 뜨거운 것이었다.
여전히 정치권에서 메르스를 갖고 떠들긴 했지만 별 건 없었다.
메르스 법안이 통과 됐고, 그 과정에서 조 대표는 대권 후보로 발돋움한 정도.
장세룡은 그 와중에 나온 좋은 기삿거리겠지.
심지어 나오자마자 정치꾼을 할 노릇인지 보수신당 지도부하고 접촉하면서 이목까지 끌었다.
역시 개새끼였다.
결코 풀려날 놈이 아니고, 풀려난 뒤에도 정치질을 해서는 안 될 놈이 아닌가?
여태 몇이나 죽였을지 모를 놈이 집행유예를 받고 나와서는 뻔뻔하게 돌아다니다니.
안 될 일이었다.
이 땅덩어리에서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추악한 놈이 그였다.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권팀장님, 접니다.”
- 네, 의원님.
“장세룡 마크해 주십시오. 접점은 없게, 최대한 깨끗하게 부탁합니다.”
- 알겠습니다.
“앞으로 더러워질지도 모릅니다.”
- 명심하겠습니다, 의원님.
권 팀장이 단단하게 대답했다.
일이 생겨서 좋은 건지, 그의 목소리에 유달리 힘이 넘쳤다.
근래에 내가 지시하는 중요한 일이 없어서, 의원실 잡무나 좀 도와주고 있던 차였다.
필요할 때마다 당직을 줬다가 가져가면서, 인력이 필요한 일에는 입법조사원이라는 명목으로 쓰기도 했었고.
권 팀장과의 통화를 마친 뒤에는 다음에는 손기택 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세룡에 대한 말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다른 말을 들었다.
- 월요회가 해체됐습니다.
예상은 했었다.
월요회를 이루는 의사협회 부회장 김정섭 원장과 정무수석 박우식이 메르스 정국에서 실수를 하지 않았던가?
의협은 초기에 낙관을 내놨고, 박우식은 국회 컨트롤에 실패했다.
더구나 본격적인 내각 개편을 위한 인사 경질이 시작되던 차.
월요회 유지는 힘든 일이었다.
“박 수석은요?”
- 보직 변경될 것으로 보이고, 새로운 모임은 아직입니다.
“선대 위원장이었으니, 내쳐지진 않겠네요. 1등 공신이니까.”
-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다만 어느 부처로 갈지는 아직…….
손 지검장의 말꼬리가 흐려지는 사이.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 아, 장세룡 문젭니까?
“예, 보셨군요. 지검장님이 힘 좀 쓰실 순 있겠습니까?”
- 저 혼자로는 부족합니다. 증거도 좀 더 확실한 게 필요합니다.
“아쉽게도 저번에 드린 장부가 전부였습니다. 더 이상 드릴 게 없네요.”
- 죄송합니다. 회사도 그렇고, 법원에서도 증거를 까다롭게 골랐습니다. 아마 돈 주고받았다는 영수증 정도는 있어야 할 겁니다.
그의 목소리가 씁쓸하게 들렸다.
월요회도 해체되고, 장세룡도 집행유예로 나갔다는 게 쌉싸래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지검장님이 신경 좀 써 주십시오. 장세룡 그냥 뒀다가 시끄러워질 사람입니다.
- 알겠습니다, 각별히 신경 쓰지요.
그렇게만 통화했다.
그 외에 당장 할 만한 조치는 없었다.
이미 수사도, 재판도 끝난 상황.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 같은 죄에 의한 심리나 재판도 있을 수 없었다.
그나마 장세룡이 당장 선거에 못 나온다는 게 다행이었다.
공직선거법 19조 2호에 의해서 형이 실효(失效)되어야 입후보가 가능하니, 장세룡이 선거에 나오는 건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다음부터였다.
집행유예 기간은 앞으로 2년.
17년 7월 이후의 재보궐 선거나 나올 수 있으리라.
아니면 그 전에 뭐 하나 걸려서 아예 감옥으로 들어가거나.
내 목표는 그 전에 감옥 보내기인데, 그게 마음처럼 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세상사가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장세룡을 보낼 때도 어중간 했었다. 복수라고 치기에는 가벼웠고, 그렇다고 내가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겠는가?
특히나 장세룡 같은 거물은 더했다.
그러기 위해서 권 팀장에게 감시를 지시했고, 손 지검장에게 미리 언질을 준 것이었다.
물론 할 게 더 있었다.
이제 슬슬 감춰 뒀던 돈을 꺼내야 할 때가 왔다.
…… 요즘 1BTC에 얼마더라.
***
여의도 고급 중식당.
내부가 화려했다.
까만 타일이 깔린 바닥과 적갈색의 두꺼운 테이블, 붉은 방석과 황금 테이블보까지.
중구난방 같기도 했으나, 하나하나 고급 자재여서 호화로워 보였다.
그중 자리 하나를 차지한 중년의 사내, 우재준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때 맞춰 나오셔서 불행 중 다행입니다.”
“다 내가 부덕한 탓이지.”
중후한 대답.
장세룡이 말끝에 점잖게 웃었다.
“자, 먼저 한 잔씩 들지.”
“네, 대표님.”
“내가 무슨 대표야, 여기 대행 있잖나?”
“주인 없으니 입구나 지켰을 따름입니다. 보수신당 창당한 게 누구 은덕인데, 제가 뭐라고 대행 노릇을 하겠습니까?”
“사람 참, 자! 원샷.”
흰 도자기 잔이 들렸고,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독한 증류주가 식도를 할퀴며 지나가자 앉은 이들의 얼굴이 금세 벌게졌다.
그들을 둘러보지도 않고 장세룡이 다시 술병을 쥐었다.
“다음 잔, 원샷.”
조금은 딱딱해진 목소리.
테이블의 사람들이 눈치를 살피며 바쁘게 잔을 채웠다.
김이 오르는 중화요리를 놔둔 채, 그들이 장세룡을 따라 손목을 꺾었다.
“흐으, 이제야 살 것 같네.”
잔을 비운 장세룡이 중얼거리며 말하자, 처음에 입을 열었던 우재준 의원이 입을 열었다,
“못 지켜드려서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나? 자네가 딴죽이라도 걸었나?”
“…….”
우재준이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자, 다시 잔을 채운 장세룡이 홀로 술을 들이켰다.
1분 만에 세 잔.
탁-
도자기 잔을 거칠게 내려놓은 장세룡이 테이블을 둘러봤다.
“나 없다고 꿩처럼 대가리나 처박고 있었나?”
“죄송합니다.”
“내가 구치소에서 뭘 했을 거 같은가?”
“…….”
“총선 준비했네, 총선.”
툭 말을 뱉은 장세룡이 우재준을 쳐다봤다.
“우 의원은 이번 총선 어떻게 해야 될 것 같나?”
“아, 저희 표밭을 우선으로 해서 가능성 있는 지역구에…….”
구구절절 이어지는 대답에 장세룡이 말을 끊었다.
“정공법? 그게 지금 이 시점에 통할 거 같나, 당이 진흙밭인데?”
주축이 되는 두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했고, 중견 의원들은 90만 원의 벌금형이나 기소유예로 간신히 의원직을 유지한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난항.
그 여파로 메르스 정국 때도, 사드 논란이 반짝 했을 때도, 대정부 질의 때도 보수신당은 제대로 한 것도 없었다.
작금의 보수신당은 키가 고장나고, 돛이 부러진 상태였다.
침몰이 예정되어 있는 배.
장세룡이 사람들을 둘러봤다.
“방법은 하나야.”
“어떤…….”
“바짓가랑이 쥐어 잡고 딴 놈들도 잡아당겨.”
“아.”
우재준이 곧장 알아들었다는 듯 감탄을 내뱉었다.
“이 바닥 인간들 다 거기서 거기야, 아닌가? 신민주, 새정치, 행복당. 그 중에 창자에 똥 한 덩이 없는 놈이 어디 있나? 다 사람 새끼야, 안 그런가?”
“맞습니다, 대표님.”
우재준이 칼같이 대답하자, 장세룡이 드디어 풀린 얼굴을 해 보였다.
“그래, 그럼 끌고 올 놈은 누가 적당하겠나?”
“당대표들 아니겠습니까? 황택근, 염상수, 조성현 이 셋으로…….”
“아니지.”
“네? 그럼 누구를…….”
“행복당은 조성현이가 아니라, 윤수혁이야.”
그 말에 우재준이 멈칫했다.
윤수혁은 능력있고, 젊고, 유명했지만 아직 연륜이 없었다.
운이 따른다고 해도 그의 나이는 너무 어렸다.
이제야 서른한 살.
만으로는 고작 스물아홉의 청년이 아닌가?
조성현은 몰라도, 윤수혁의 말에 동조할 의원은 이 중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가 얼른 대꾸했다.
“윤수혁이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아직 정치 경험이나 연륜이 미진하지 않습니까? 반면에 조 대표는 당대표고, 이번 메르스 정국에서 성과를…….”
“쓰읏, 이 사람이.”
장세룡이 눈을 부라리자, 우재준이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눈치를 살폈다.
당대표도 아니고, 의원직을 상실했고, 내년 총선에도 못 나오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장세룡이었다.
사학재단과 재벌기업을 뒤에 둔 권력자.
그가 창당을 책임졌고, 당의 자금을 댔으며, 보수신당의 의원들에게 금배지를 달아주었다.
그랬기에 장세룡이 없다면 보수신당은 해체될 지도 몰랐다.
이미 비슷한 선례가 많았다.
사람 한둘이 구심점이 되어 창당했다가 부지기수로 망했었다.
보수당뿐만 아니라, 진보당도 마찬가지.
장세룡이 구치소에 들어가서도 유선으로 통신했기에 망정이었지, 아니었으면 해체 수순을 밟았을지도 몰랐다.
총선 체제에 돌입하기 전에 살 길을 찾아야 하니까.
이윽고 장세룡이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몰라, 윤수혁이 안에 뭐가 있는지.”
“…….”
사람들이 차마 대꾸하지 못하는 사이, 장세룡이 말을 이었다.
“황택근이하고 염상수나 맡게.”
“알겠습니다.”
“자네들 정치 인생 달렸다고 생각해야 될 게야, 성공하는 게 사는 길이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
며칠 후.
퇴근하자마자 한사랑에게 물었다.
“오늘부터, 맞죠?”
가임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임신해야 총선이 있을 4월경에는 출산이 가능했다.
그래야 한사랑도 조리원에서 쉬고, 나도 출산을 자랑삼아 한마디라도 더 할 수 있었다.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다들 나를 축하해 줄 터.
선거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한사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하게요?”
“아니죠, 흐흐. 저녁 먹고, 좀 쉬었다가…… 아니, 내가 그렇게 무드가 없었어요?”
넥타이도 풀다만 상황.
나를 바라보던 한사랑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머, 몰랐어요?”
“그래도 프러포즈 할 때도 다이아 반지로…… 미안해요.”
생각해 보니 신혼여행을 가지 않았었다.
결혼식 다음에 국회 업무가 있었고, 영원호 침몰 사건이 있던 탓이었다.
이후 재보궐 선거에 후반기 업무까지.
정말 일에 치여 살았었다.
덕분에 국가적인 스타가 되긴 했지만, 어쨌든 신혼여행을 가지 않았었다.
어쩌면 일이 바빠서 신혼여행을 못 갔다는 것도 나중에 써먹을 만한 감동적인 얘깃거리가 되겠지만.
지금은 무드 없는 놈이었다.
살짝 고개를 기울인 한사랑이 덤덤하게 말했다.
“신혼여행 안 간 거, 이해해요. 근데 무드는…….”
“사랑 씨, 내가 미안해요. 그거는 이번 달에 일정 조절해서라도…….”
“푸흐, 가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그냥 무드 없다는 거 알려 주려고 한 말이에요.”
한사랑이 그러면서 싱긋 웃었다.
서운하지 않은 걸까?
아무리 중매로 만났다고 해도, 내조하겠다는 조건으로 결혼을 했다고 해도, 한사랑은 여자였다.
그것도 이제 스물셋에 불과한 나이.
신혼여행 못간 게 조금은 아쉽기도 할 법한데, 그녀의 얼굴에는 그런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애어른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
“그럼 씻고 와요, 장어 구울 거니까.”
“장어요?”
“이모님이 손질하고 양념해서 준비 다 해 주셨어요. 금방 익으니까 먹기 전에 바로 구워서 먹으면 된데요.”
그녀가 말하는 이모는 집안일을 해 주는 가사도우미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
멀찍이 있는 주방의 대리석 싱크대 위에 락액락 통이 보였다.
몇 마리나 있는 건지.
김치를 몇 포기라도 담아 놓은 듯한 사이즈였다.
그사이, 한사랑이 말을 이었다.
“7월 초까지는 장어 철이래요. 어떻게 타이밍이 딱 맞네요?”
장어철하고 엮다니.
이럴 때는 꼭 애 같아서 나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내가 타이밍은 잘 맞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