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01화 (101/191)

# 101

32. 자, 이제 시작이야 (2)

10월 말, 경기도 화성시.

해병대사령부 대회의실.

국방위원회 위원장인 임청학이 마이크 가까이 입을 댔다.

“의석을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헌법 제 61조, 국회법 제 127조와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병대사령부와 서북도서방위사령부에 대한 2013년도 국정감사 실시를 선언합니다.”

땅땅땅-

세 번의 타봉소리.

임청학은 이어서 의례적인 감사 인사말과 함께, 국정감사의 의의를 밝혔다.

짧지 않은 말 뒤에 임청학의 시선이 원고와 증인석으로 향했다.

“……증인 선서가 있겠습니다. 먼저 증인 선서에 앞서 선서의 취지와 처벌규정 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서를 하는 이유는 이번에 국회가 국정감사를 실시함에 있어서 증인으로부터 양심에 따라 숨김없이 사실대로 증언하겠다는 서약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증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임청학이 말을 이어 가던 중.

뒤편에 앉아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있던 보좌관이 사람들을 비집고 나왔다.

“김 보좌관?”

기자들이 눈치껏 보좌관을 향해 카메라 렌즈를 돌렸다.

그러나 보좌관은 멈추지 않고 다가가서 임청학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채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카메라 플래시가 수어 번 터지는 사이, 다른 보좌진들도 움직였다.

4급 보좌관 박민표가 윤수혁에게 다가갔을 때는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기자들도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있었다.

윤수혁이 다가오는 박민표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중앙일간에서 국방위 국정감사 비리 의혹을 폭로했습니다.”

어떤 비리냐고, 뭘 폭로했냐고 묻는 대신에 윤수혁이 동그란 눈을 해 보였다.

반드시 생기는 게 비리였다.

욕심에 의해서, 두려움에 의해서, 가지각색의 이유로 비리와 부정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기계도 아닌 사람이니 당연한 것이었다.

이윽고 윤수혁이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 이 시기예요?”

“네, 여기 있습니다.”

박민표도 그 물음이 맞는 것처럼 태블릿PC로 보도된 온라인 기사를 보여 주었다.

윤수혁의 눈이 태블릿 PC 화면에 닿았다.

[(단독)국방위 소속 행복한국당 의원들 부적절한 커넥션 발각]

기사 내용에는 행복한국당 소속의 국회의원 두 명의 실명이 적혀 있었다.

식사와 접대, 골프를 쳤다는 상세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고, 그걸 국정감사 피감기관과의 비리 의혹으로 엮은 게 기사의 골지였다.

윤수혁의 눈이 반사적으로 두 의원을 찾았고, 기자들도 이제야 확인한 것인지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이것도 보시죠.”

박민표가 이어서 화면을 터치했다.

[장세룡, “행복한국당은 피감기관보다 내부 감사나 먼저 해라.”]

성명 대신에 개인 발언으로 올라온 기사였다.

“아무래도 보수신당에서…….”

박민표의 말에 윤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요, 타이밍이 참…….”

“타이밍이요?”

되묻는 박민표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고 윤수혁이 피식 웃었다.

“아닙니다, 당에서 연락 왔어요?”

“저희 측에는 아직 없습니다.”

“그럼 그냥 있어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박민표가 물러가는 사이, 윤수혁은 회의 책상 아래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문자 메시지 어플을 누른 윤수혁이 금세 키패드를 두드렸다.

[준비 다 되셨습니까?]

수신자는 손기택 지검장이었다.

***

저녁 7시 경, 해병대사령부 소회의실.

해병대사령부의 국정감사를 마치고, 행복한국당의 국방위 위원들이 전부 집합했다.

모두 6명.

적어 보이지만 국방위원회 총 위원정수가 17명이니, 6명이면 굉장히 많은 숫자였다.

보수신당이 셋이고, 새정치당이 둘이었으니.

그중 임 의원이 가장 먼저 목소리를 냈다.

“두 분, 이거 사실 맞습니까?”

“사실이긴 사실인데…… 이게 뭐라고 문제가 됩니까?”

이마가 훤히 드러난 강 의원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막말로 내가 뭘 청탁한 것도 아니잖아요? 밥 좀 먹은 거 가지고…….”

“그럼 아무 일도 없었단 겁니까?”

“그런 거 없었어요.”

없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설마 중앙일간과 보수신당이 단순 바람몰이 용으로 보도 했을까?

믿기 힘든 얘기였다.

조그만 증거라도 하나 나와야 했다.

“그럼 최 의원님은 확실합니까?”

임 의원이 남아 있던 다른 한 명에게 묻자, 그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냥 밥만 먹었습니다.”

“그럼 내일까지 결백하다는 입장 표명 하시고, 국방위 차원에서도 성명서를…….”

“잠깐만요.”

내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임 의원이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었다.

방금 국정감사가 끝나기도 했고, 경기도 화성에서 서울로 올라가야 하니 빨리 끝내려는 것이었다.

더구나 밥 좀 얻어먹고, 청탁 들어 주는 건 그들에게 별일 아니었다.

이미 국회에 만연한 일이기도 했고.

다섯의 시선을 받으며 곧장 말을 이었다.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만, 입장 표명도 최소화하고 국방위는 가만히 있는 게 어떻겠습니까?”

“가만있어 봐야 더 난리들 치는 거 몰라서 그래요?”

반박이 바로 튀어나왔다.

‘요’자가 붙긴 했으나 상당히 감정적인 언행이었다.

아직도 당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보여 쓴웃음이 났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그것도 잘 압니다.”

이 바닥에서만큼은 명백하게, 확실하게 입장을 표명해야 했다.

설사 거짓이라 하더라도, 노선이 확실해야 유권자도 성원하는 법이었고, 정치질 하기에도 유리했다.

그건 단순 의혹뿐만이 아니었다.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 우파, 좌파 등등.

조금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죄 지은 놈이 검찰 수사 받으러 가면서 당당하다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남은 다섯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조만간 더 큰 거 터질 겁니다.”

“큰 거라니?”

강 의원이 놀라서 물어 왔다.

더 나쁜 얘기인지, 아니면 좋은 얘기인지 분간하지 못해서 묻는 것처럼 보였다.

“보수신당 쪽입니다.”

“누구? 누구요?”

내가 고개를 젓자, 이번에는 임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가만있는 다는 건 의혹을 인정한다는 말인데…… 그리고 같은 식구끼리 도와주지도 않고 가만있어서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위원장님. 조용히 넘어가는 게 나을 겁니다. 괜히 폭탄 터지는데 옆에서 휩쓸릴 필요가 있을까요?”

“폭탄이라…… 얼마나 크답니까?”

“보수신당 걸레짝 날겁니다.”

“……!”

내 단언에 몇몇 이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데 가선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럼, 왜 말하겠어?”

강 의원이 당연하단 듯 말했지만, 믿진 않았다.

당장 옆에 있는 황 의원만 해도 바쁘게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애초에 미디어를 통해서는 서로 일침을 날리며 비판해 대지만, 뒤에 가서는 웃고 떠드는 게 국회의원들이었다.

당장 나만해도 신민주당의 30대 의원들과 형, 동생하고 있었다.

그럼 이 중에 누군가는 프락치처럼 보수신당에 귀띔을 해 줄 게 뻔했다.

물론 지금 잡도리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거의 다 끝난 상황이었다.

버튼만 누르면 폭탄은 터질 예정이었다.

그사이, 임 의원이 목소리를 냈다.

“강 의원님, 최 의원님. 어떻습니까? 윤 의원이 저렇게 말하는데…….”

“그럼 그럽시다, 내가 죄지은 건 아니니까.”

“나도 그래요.”

두 의원에게 대답을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섯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박 보좌관과 함께 벤츠에 올랐다.

영석이가 운전하는 사이, 나는 몇 명의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글자는 달랐지만, 내용은 같았다.

시작을 알리는 말이었다.

***

이틀 뒤.

- 갈매기 나래 위에 시를 적어 띄우는…….

70년대 말 대중가요.

하이라이트 부분이 우렁차게 스마트폰 스피커를 울렸다.

“이거 참…….”

짜증을 삼킨 행복한국당의 국회의원 강상기가 스마트폰을 보다가 걸려오는 전화를 종료시켰다.

그러나 벨소리는 다시 차내를 채웠다.

“이런……!”

얼굴을 구긴 강상기가 결국 해결책을 찾기 위해 통화 종료를 하고, 연락처를 뒤졌다.

보수신당에도 아는 의원이 있었고, 중앙일간에도 친한 기자가 있었다.

그들에게 대강의 상황이라도 들어 볼 생각이었다.

이윽고 연락처를 내리던 찰나.

[국방위 초선 윤수혁]

염두에 두지 않았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의혹의 당사자인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막은 이름이었다.

다른 이름을 떠올리던 강상기가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썩 가까운 사이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상임위 동료 의원만큼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종종 지지 해 주기도 했었고.

더욱이 윤수혁이 폭탄을 터뜨린다고 했었으니, 얘기를 들어 봐야 했다.

그게 언제인지, 얼마나 강력한지.

중앙일간이나 보수신당은 그다음에 전화해도 될 일이었다.

아니면 아예 전화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몰랐다.

- 여보세요.

윤수혁의 목소리.

강상기가 얼른 목소리를 냈다.

“나 강상긴데, 그거 어떻게 돼요?”

- 이틀 전에 그거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이 사람아. 지금 내 전화기에 불이 났잖아. 출근길이 이 모양이면 기자들 정문부터 지키고 있는 거 아니요?”

- 세 시간만 참으십시오. 곧 기사 날 겁니다.

“무슨 기산데? 이거 덮을 만한 거 맞아요?”

- 세 시간 뒤에 기사 보시면 아실 겁니다. 만약에 아무런 효과가 없으면, 제가 돈으로 처발라서라도 의원님 기사는 싹 내리겠습니다.

제법 힘이 들어간 목소리.

강상기가 움찔했다.

돈으로 처발라서 기사를 싹 내리겠다니.

내심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강상기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어…… 그래요? 그러면 뭐 일단은 믿고 있긴 할 건데…….”

- 믿으십시오, 말 한 건 꼭 지킵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알겠어요. 그럼 내 다시 전화 할게요.”

뚝.

전화를 끊자, 다시금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들의 전화였다.

통화를 종료한 강상기는 아직 켜져 있던 연락처를 보다가 스마트폰 배터리를 뽑았다.

***

최영길 의원과 강상기 의원 둘과 통화를 하고 다독여 주었다.

그래도 말을 순순히 듣는 걸 보니, 내 영향을 받긴 받는 모양이었다.

완전한 당권 장악까지 얼마나 걸릴지, 잠깐을 생각하다가 TV를 틀었다.

보도전문채널.

앵커가 멘트를 하다가 멈칫했다.

- 아,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보수신당의 나경호 국회의원이 폭력조직원을 사주하여 정관계를 인사 다수를 불법사찰 했다는 수사 결과가……

동시에 빨간 띠로 이루어진 속보 자막까지 떴다.

[나경호, 폭력조직원 사주해서 정관계 인사들 불법사찰해]

예전 민정수석실의 불법사찰보다 더한 효과를 보여 줄 것 같았다.

공무원들도 아니고, 부려 먹은 게 폭력조직원들이었다.

몇 해가 지나도 회자될 게 분명했다.

폭력조직원, 그리고 불법사찰. 이 두 단어는 그만큼 자극적이었다.

그사이 앵커의 멘트가 이어졌다.

- ……압수수색영장을 발부 받아 현재 의원실과 충북의 지역구 사무실, 자택을 일제히 수색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검찰은…….

웃음이 나는 와중에 문이 벌컥열렸다.

“유, 윤 의원!”

나와 마찬가지로 초선의 비례대표인 황 의원이었다.

“아, 예.”

“이거였어요? 윤 의원이 말한 게?”

“예, 그런데요.”

“아니! 이 사람이…… 같은 의원끼리 이게 무슨 짓이에요. 미리 말을 해 줘야지!”

이게 이렇게나 열을 낼 일인가?

헛웃음이 올라왔다.

스스로를 프락치라고 홍보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국회의원 체면유지 몰라요? 같은 의원이면 감싸줘도 모자랄 판데, 지금 의원실하고 집까지 전부 수사관들이 발자국 찍게 만들면…….”

“그만 하시죠.”

“이 사람이…….”

“의원님!”

목청을 돋우자 그가 움찔했다.

“이거 아니었으면 우리 국방위 얻어 터졌을 겁니다. 그걸 바라신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저는 우리 당과 국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황병우 의원님은 아닙니까?”

“…….”

그가 입을 다물었다.

아주 프락치라고 동네방네 자랑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긴, 그는 전생에서도 탈당을 두 번이나 한 박쥐 중에 박쥐였다.

“나가주십시오, 그리고 혹시라도 보수신당에 알려 줄 게 있다면…… 이 말이나 전해 주십시오.”

황 의원의 움찔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시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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