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뱃지-1화 (1/191)

# 1

1. 지난 세월

그건 보상 심리 따위가 아니었다.

욕심이었다. 이해타산 끝에 나온 생각이었으며, 가능을 염두에 둔 내 감이었다.

그리고 벅차기는 해도 지나친 요구까지는 아니었다.

또한 나는 내 분수도 아주 잘 알았기에, 짧게만 말했다.

“다음 총선에서 공천해 주십시오.”

지역구든 비례든 상관없이, 공천만 받으면 됐다.

뭐가 됐든 당선될 만큼, 나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보냈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밑바닥부터 기어 올라온, 밧줄을 내려줄 때마다 틀어쥐고 버틴 인간이었다.

일개 개인이 할 만한 일은 다 해 봤었다.

미행, 협박, 폭행, 감금, 불법 정치자금 전달 등등. 교사(敎唆)를 꺼린 장 의원 덕에 살인만 면했을 뿐, 윤리와 준법은 내게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시키는 일은 해야 했다. 그래야만 동아줄을 받을 수 있었고,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장 의원의 수족으로 궂은일을 도맡으며 시민단체와 사회기관 곳곳에 빨대를 꽂았고, 힘깨나 있다는 사람들과 안면도 터 놨었다.

지역구라면 그 정도의 힘으로 책임당원과 대의원, 기초의원을 주무를 수 있었다.

비례라면 안정권 안에 내 이름을 넣을 것이었고.

만약 이렇게까지 안 했다면…….

흔한 스펙으로 흔한 중소기업에 들어가 상사에 치이고 잔업과 야근에 시달리면서 얼마 안 되는 돈을 받았겠지. 인서울 중위권 대학 졸업자가 할 일이 마땅히 뭐가 있겠는가?

그런 삶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권력과 명예 같은 말이 어울리는 삶을 바랐다.

그리고 지금이 그 기회였다.

하늘에서 내려 준 동아줄이 아닌, 내가 엮어 만든 끈이긴 했지만 어쨌든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어느새 장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확실하게 가자고, 윤 실장.”

됐다!

내가 만든 끈이 닿았다.

비록 사 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결국 나도 된 것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금뱃지를 다는 것이었다.

수족을 자처하다가 사라진 이름들을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물론 확실하게 가자는 장 의원의 말도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부탁조로 지시했던 총대를 확실하게 메라는 뜻으로, 검찰의 수사방향을 온전히 내 쪽으로 돌리고 수사를 종결짓게 하라는 의미였다.

장 의원이 검찰에 압력을 넣을 테니, 내가 총대만 확실하게 메면 일은 그의 의도대로 끝날 것이었다.

장 의원은 그사이 대답이라도 들었다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여기 쓸 것 있나?”

“예, 여기 있습니다.”

곧장 안주머니에 있던 수첩과 펜을 꺼내 건넸는데, 장 의원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이어진 턱짓.

아, 무슨 상황인지 충분히 이해했다. 확실한 것을 만들려는 모양이었다.

“……자술서를 쓰면 됩니까?”

내 물음이 맞다는 듯 장 의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기를 쓰든, 윤 실장이 알아서 하고. 장소하고 액수만 잘 포함시켜.”

이내 태평하게 말을 뱉은 장 의원은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나는 잠깐을 생각하다가 결국 종이에 한 글자씩 눌러 적었다.

21대 총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드러나고 불어난 비리.

현역 의원까지 포함된 총선 후보자 다섯이 조직적인 불법 선거 운동과 금품 전달 따위로 엮인 사건이었다. 엊그제 언론에서도 크게 터뜨린 것이기도 했고.

나는 그 거짓 책임을 지기 위해 고르고 골라가면서 몇 줄을 적었다.

이 정도면 일기나 기록이 아닌, 자술서나 다름없는 내용이었다.

나 또한 교가(橋架)의 역할을 한 사건이고, 중앙당 내부에선 책임자급으로 있으니 이 자술서면 사건 마무리도 어렵진 않을 것이었다.

의원들이 논란의 중심에 있긴 했지만, 어디가 되었든 사건이 부풀려지는 경우는 흔하니.

나는 아마 윤 모 씨로 나오겠지.

부정적 이미지와 전과가 기록된다는 사실이 아쉽지만, 보상은 그걸 넘어설 만했다.

내 나이 이제 서른여섯이었다. 마흔이면 의원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의원이 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내게는 마흔에 시작한 의원 노릇을 재선이고 3선이고 쭉 끌고 갈 능력도, 자신도 있었다.

나는 곧 마침표를 찍고, 장 의원에게 수첩을 내밀었다.

장 의원은 글자 토씨라도 일일이 확인하는 듯 한참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이거면 됐고…… 윤 실장, 오늘 일 있나?”

그가 나를 은근히 바라보기에, 원하는 게 있나 싶어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시키실 일 있으십니까?”

“그건 아니고, 밥이나 한 끼 하지.”

“아, 예.”

웬일인가 싶어서 멈칫했더니, 장 의원이 피식 웃었다.

“구치소 가기 전에 보양해야지. 재판 기다리는 동안 수의(囚衣) 입잖나?”

“예, 감사합니다.”

그 뒤에 시답잖은 말을 몇 마디를 나누면서 자리를 옮겼다.

한 시간 즈음 차를 달려서 간 곳은 평소에 장 의원이 종종 간다던 양평의 한적한 야외 낚시터였다.

장사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쓰이는 낚시터였다.

이목을 피하는 용도로 쓰이며, 어렵지 않게 유력 인사들을 모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 입어료를 받고 자리를 내주는 영업장을 겸했다. 낚시 용품 대여는 물론이고 간이로 음식을 해먹을 수도 있게끔 꾸려진 곳으로 나도 장 의원을 따라 몇 번 와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물가가 아닌, 웬 가건물로 들어갔다.

“붕어 어떤가?”

그 말대로 입구부터 매운탕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는 밑반찬과 소주 따위가 준비되어 있었고, 한 가운데 놓인 가스버너에선 붕어가 담겼을 매운탕이 팔팔 끓고 있었다.

이내 장 의원이 의자 하나를 끌어와 앉으면서 자랑하듯 말했다.

“내가 자네 준다고 미리 준비한 거야. 들어.”

“예, 의원님.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릇에 매운탕을 덜고, 국물 맛을 좀 본 뒤에 장 의원이 소주를 깠다.

평소에 보기 힘든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상급자로서, 권력자로서 보여 주지 않던 행동과 말이었다.

내게 살갑게 대한 적 자체가 없던 사람이었다.

이제 나도 4년 뒤에는 후배 의원이 되기 때문일까? 묘한 흥분이 가슴속에서 일었다.

그러던 중, 몇 숟갈 뜨던 장 의원이 몸을 일으켰다.

“먹고 있게.”

“예.”

화장실이라도 가는 모양인지, 장 의원은 허리벨트를 넉넉하게 풀면서 걸음을 옮겼다. 장 의원이 나를 완전히 지나치기를 기다리고, 다시 생선살을 발라 먹을 무렵이었다.

차라락.

금속음도 같기도 하고, 웬 마찰음과도 비슷한 생경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내 뒤에서 난 소리였는데…….

빠각!

눈앞이 하얘졌고, 몸이 뒤따라 추락했다.

무슨 일인지 경황을 이해할 새도 없이, 머리에서 화끈거리는 통증이 일었다.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뜨거웠다. 아니, 골이 깨질 것 같은 고통이었다.

그리고 연이어서 몇 번이나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퍽! 퍼억!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뚱이가 몇 번이고 고꾸라졌다.

이내 소음이 잠잠해지고, 환해졌던 시야가 점멸되며 흙바닥이 엷게 보일 무렵.

선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개 한 마리를 데려다 키웠더니.”

장 의원의 목소리였다.

앞이 여전히 잘 보이지 않아서 껌뻑거리다가 이질감에 눈을 비볐는데, 뭔가가 손에 묻었다.

불그죽죽한 피였다.

뒤늦게 피비린내가 진하게 풍기는 와중에, 장 의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게 사람 새낀 줄 알고 주인집에 들어오려고 하네, 감히 개가 주인하고 맞먹으려고 들어?”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반 즈음 상체를 세운 내 앞에 장 의원이 오만하게 서 있었고, 그의 손에는 단단하게 생긴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아니, 삼단봉이었다.

나는 오래지 않아 지금의 상황을 이해했다.

장 의원이 나를 깐 것이었다.

그의 도구에 불과한 내가 공천을 달라고 해서.

할 만한 거래라고 생각했고 어떻게든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게 오판이었다.

그랬다.

그에게 나는 사람도 아닌 존재였다.

사람도 아니니, 공천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서른여섯에 중앙당 실장 직함을 단 개 한 마리가 나였다니.

당연히 내 위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짐작은 하긴 했지만, 공천 자체가 불가능할 줄은 몰랐다. 쓸 만한 놈으로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그럼 그때가 개 잡는 날이야.”

진짜 오늘이 죽는 날인가 싶었다.

내가 쓴 건 자술서가 아니라 유서인가?

“윤 실장, 내가 십 대였을 적에 개 잡았단 거 아는가? 수십 마리가 다 이 손에 죽었어, 매달아 놓고 한참을 두들겼지. 직접 맞아 보니 어떤가? 그 가락이 좀 남아 있는 것 같나? 응?”

우스운 일이었다.

내가 사람이 아닌 개 같은 존재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당할 줄은 몰랐다.

내 위치를 착각한 것은 그래도, 이건 조금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장 의원은 불쾌한 일은 직접 하지 않고 나를 시켰었고 살인은 꺼리며 입에 담지도 않는 이었다.

더구나 나이와 신체 상태로 봐서 내가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나는 퇴근하면 헬스까지 하는 서른여섯의 창창한 나이였고, 그는 운동권 출신의 예순이나 된 사람이었다.

그 외에도 숱한 변명이 있겠지만.

만약에 그가 더 악한 사람이라면, 나를 죽일만한 사람이라면 내가 이랬을까? 아니면 그가 나보다 체격 조건이 더 좋았다면?

전부 오판이었다.

“자…….이제 때 됐다, 윤 실장.”

내가 아무런 대꾸도 안 하자, 장 의원이 삼단봉을 들었다.

이미 몇 번이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얼마나 맞은 것인지 하반신이 도대체가 움직이질 않았다. 여전히 팔이 덜덜 떨렸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차피 살아도 반병신으로 살 인생, 여기서 죽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도 자랑스러울 게 없었고.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 내가 전 인연을 봐서 공천 줄게.”

나는 삼단봉을 휘두를 듯 어깨를 젖히는 장 의원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다음 생이 있다면…….

너는 내 손에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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