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112화 (113/165)

112화

삐비비빅.

띠리링.

자정이 다 돼서야 겨우 끝난 의 첫 광고 촬영.

멤버들을 직접 숙소까지 데려다준 뒤, 하준도 다소 지친 몸을 이끌곤 집으로 귀가했다.

자동 센서등 사이로 손을 뻗어 거실을 밝히곤 하준은 곧장 냉장고로 향했다.

그러곤 캔 맥주 하나를 꺼내선 곧바로 캔 커버를 뜯으며 소파로 가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후우.”

단숨에 절반가량의 양을 비워내곤 길게 숨을 내뱉어보는 하준.

3주간의 빡빡한 미국 일정 뒤 숨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시작된 스케줄들에 꽤나 피곤할 수밖엔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앞으로 해야 일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을 터였고.

이제부턴 뿐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을 신경 쓰고 준비해야 할 자신이었으니까.

띵-

띵-

띵-

연이어 울리는 알림 소리에 하준은 상의 안주머니로 손을 넣어 휴대폰을 집었다.

그러곤 잠금을 해제하자, 정 반대의 시차에 있을 그들이 유쾌한 문장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헤이, 쭌! 한국에 도착은 한 거야? 설마 아직도 하늘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건 아니지?]

[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제프. 그럼 우리 쭌이 우주까지 날아갔단 소리야? 와우, 그럼 우리 중 최초로 무중력을 경험한 사람이 되겠는데?]

[음, 그럼 난 당장 티켓부터 끊어야겠어. 쭌과의 결혼식은 아무래도 무중력으로 이뤄지는 게 훨씬 특별할 테니까?]

[오우, 레일리.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말라고. 쭌이 너랑 결혼하는 건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아니, 하기도 싫다고.]

[닥쳐, 안토니. 지금 당장 너를 우주로 날려 버리기 전에!]

지난 3주 동안 거의 매일을 붙어 있다시피 했던 자신의 친구들. 개인 콘서트 일정, NFL 하프타임 쇼 그리고, 그래미 어워드 무대 준비까지.

자신들의 스케줄로도 바쁜 와중에 내내 하준과 멤버들을 챙기려 부단히 애쓰는 모습들을 보여주었었다.

덕분에 모든 일정이 수월했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그중 가장 고맙게 느껴지는 건 바로 멤버들의 심리적 변화였다.

단순히 세계적인 스타들과의 친분만 쌓고 온 것이 아닌, 그들이 어떤 음악을 생산해 내고 소화해 내는지,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나오게 되는지.

이 모든 것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느낀 것들이 무척이나 많을 수밖엔 없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 돌아온 이후 멤버들의 모습은 확연한 변화들을 보이고 있었고.

말과 행동, 그리고 자신감과 태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전반적으로.

띵-

띵-

하준의 안부를 묻기 위해 시작된 단체방의 대화는 늘상 그렇듯 그들만의 수다의 장으로 변해 있었고, 하준은 옅게 웃어 보이며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굳이 지금의 대화에 자신이 끼어들진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손에 들린 맥주캔을 다시 입으로 가져다대곤 다시 단숨에 비어 버리는 하준.

그와 동시에 문득 낮에 있었던 박채희와의 대화가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회장님을 두 번 다 거기서 뵈니까 되게 신기하더라? 따로 비서나 운전기사도 대동 안 시키시고 매번 혼자 오시는 것 같던데?’

물론 나이나 현재의 위치를 고려해봤을 때 충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는 일.

더군다나 자신과 구세희가 독립한 이후론 더더욱 적적할 수밖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굳이 그 먼 거리인 부산까지. 그것도 가끔씩 찾는 것이 아닌 꽤나 주기적인 간격으로 간다는 점은 좀처럼 납득이 되질 않았다.

무엇보다 여타 수행 인원도 없이 오로지 혼자 그 먼거리를 운전까지 해서.

박채희에게 그 외에 다른 얘기들은 듣지 못했고, 하준은 혼자만의 작은 추측 하나를 떠올려 보았다.

바로, 모친의 납골당.

단순히 휴식이나 관광의 목적으로 그렇게 잦은 빈도로 방문했다기엔 분명 무리가 있는 일. 그렇기에 해볼 수 있는 작은 추측.

하지만, 그것도 그리 가능성이 높은 일은 아니었다.

어떠한 이유인진 몰라도 지금껏 모친의 기일에 자신과 그곳을 함께 방문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그였기에.

“후.”

단숨에 들이켠 알코올의 취기가 조금씩 올라오려고 할 쯤, 하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셔츠 맨 윗단추를 풀어 넥타이를 조금 아래로 내리고는 벽면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나갔다.

그림 액자 하나만이 유일하게 걸려 있는 벽면. 하준은 늘상 그렇듯 그것의 안쪽으로 손을 뻗었고, 곧이어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이 빈틈을 보여왔다.

약간의 힘을 주어 옆으로 밀곤 숨겨진 공간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하준.

그간의 모든 스케줄들이 적힌 거대한 보드판을 일별하곤 어느 진열장 앞에 멈추었다.

“…….”

모친의 유품들을 모아놓은 진열장.

비록 채워진 공간보단 빈 곳이 더 크게 보일 만큼 초라한 그곳이었지만, 이젠 이것마저도 고맙게 느껴졌다.

모든 진실과 과거들을 다 마주한 지금, 이것마저 없었다면 그 먹먹함을 채울 길은 조금도 없었을 테니까.

진열장으로 손을 뻗어 사진 한 장을 집어드는 하준.

구명호로부터 전해 받은 엄마의 유일한 생전 사진이었고, 그곳의 모친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화려함과 수수함이 한데 섞인 긴 드레스를 입은 채로.

‘부산 국제 영화제가 처음 생겼던 해야. 드레스를 입고 난생처음으로 레드카펫을 걷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허허, 본인은 상 하나 수상받지 못할 걸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이야.’

자신의 일, 배우라는 직업을 너무나도 사랑했다던 모친. 구명호로부터 이 사진 속 배경을 듣고 나자 왜 그녀가 그토록 부산을 좋아했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구명호가 그녀를 왜 부산에 안착시켰는지 또한.

“…….”

다시 사진을 내려놓곤 말없이 옅은 한숨을 내뱉는 하준.

만약 그때의 자신이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비록 어린 나이일지라도, 홀로 외롭고 쓸쓸히 걸었을 그 길을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응원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럼 그녀도 그런 선택만은 결코 하지 않았을 테고.

물론 이제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부질없는 생각이란 걸 알면서도, 하준은 좀처럼 그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열었던 진열장의 문을 닫곤 다시 바깥으로 나오기 위해 걸음을 옮겨 나가는 하준.

거실로 빠져나온 뒤, 잠금장치를 다시 걸어두곤 탁자 위에 놓인 빈 맥주캔을 집어 들었다.

어느덧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내일도 이어질 빡빡한 일정들을 위해선 잠자리에 들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빈 맥주 캔을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곧바로 욕실로 들어서려는데 거실 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이 하준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 건 그때였다.

이 시간에 전화가 울릴 일은 없었기에 다소 의아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는 하준.

역시나 액정 화면 위로 띄워진 번호는 저장되지 않은 발신자의 그것이었고, 하준은 곧바로 통화를 연결했다.

“네, 유하준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대표님! 저 슬안데요, 이슬아! 혹시 기억하실는지…….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목소리이긴 했지만, 그 이름만큼은 하준도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이름.

박성환과 황수철의 죗값을 치르게 만드는데 가장 큰 일조를 한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했기 때문이었다.

“아, 네. 그럼요.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 시간엔 무슨 일로.”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 일 이후로 따로 고맙단 인사를 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먼저 연락을 해오니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의아한 생각이 앞설 수밖엔 없었다.

-아, 죄송해요, 대표님! 제가 너무 늦은 시간에 연락드렸죠……? 이준이한테 낮부터 계속 물어봤었는데 이제 막 스케줄이 끝나셔서 지금쯤 연락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해가지구…… 아, 말씀은 편하게 하셔도 돼요 대표님!

지난번 만남 때 느꼈던 것과는 꽤나 다르게, 무척이나 조심스러워 보이는 그녀의 어투.

하준이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자, 이슬아가 곧바로 다시 말을 꺼내왔다.

-그……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내일 사무실로 찾아봬도 될까요? 대표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그러고는 꽤나 중요한 일이라는 걸 강조하려는 듯 다급하게 말을 덧붙여왔다.

-저한텐 정말,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요! 대표님이 편하실 시간대로 맞춰서 아무 때나 찾아뵐게요! 새벽이고, 야간이고 상관없이요!

* * *

“10분 뒤 바로 미팅인 거 알지? 준비 다 되면 얘기해 줘. 나 잠깐 테라스에서 머리 좀 식히고 있을 테니까.”

말을 내뱉곤 곧바로 사장실을 빠져나가는 세련.

오전 내내 이어진 임원 회의를 끝내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다음 미팅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구세희 또한 다소 지칠만도 했고.

하지만, 내내 자신의 휴대폰만을 바라보고 있는 구세희의 표정은 웬일인지 무척이나 심각해져 있었다.

분명 지난 분기에 이어서 이번 분기 또한 흑자를 달성했다는 희소식을 전해 들은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녀의 휴대폰 키패드 위론 어떠한 번호가 띄워져 있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였을까.’

해당 번호는 바로 어제 자신의 부친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해왔던 그 번호.

휴대폰 번호가 아닌 부산의 지역번호가 찍힌 그것을 구세희는 몰래 저장해 두었고, 지금 그곳에 전화를 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어제의 그 전화 이후 곧바로 보내온 누군가의 메시지 내용 때문에.

‘이정화 씨의 검사 결과라니.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야?’

도저히 납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아는 이정화란 이름은 오로지 딱 한 명. 바로 하준의 모친이었고, 그녀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미 20년도 넘는 시간 동안 납골당에 안착돼 있는 망자를 대체 무슨 검사를 했다는 건지. 그리고, 그 결과가 아무런 이상이 없단 것은 대체 무슨 소린지.

하나부터 열까지, 도무지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의 내용들에 구세희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뒤엉켜 있을 수밖엔 없던 것이었다.

“후!”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길게 숨을 내뱉곤 곧바로 통화버튼을 연결하는 구세희.

자신이 귀신에게 홀린 게 아니라면 분명 직접 확인해 봐야 의문이 풀릴 것만 같았다.

몇 번의 수화음이 흐른 뒤, 수화기 너머에선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병원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혹시 뭣좀 여쭤볼 수 있을까 하는데.”

-네, 말씀하세요.

“혹시 거기에 이정화란 환자가 있나요? 거기 부산 맞죠?”

-환자의 개인 정보나 진료기록은 저희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부산은 맞구요.

“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던 답변. 하지만 이대로 통화를 종료할 순 없었기에 구세희는 곧바로 다른 질문을 건넸다.

“혹시 거기가 어떤 병원일까요? 일반 환자들이 입원할 수 있는 그런 곳인가요? 아, 가족 중에 아픈 분이 있어서 좀 상담을 받고 싶은데.”

행여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연스러운 말을 지어내서 내뱉은 구세희.

하지만, 곧이어 돌아온 상대방의 대답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그것이었다.

-죄송하지만 여긴 일반 병원이 아니에요. ‘특별 요양 병원’으로 분류된 곳이라 원장님이 허가하신 분 외엔 입원이 절대 불가하고요. 다음번에 다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을 내뱉곤 곧바로 통화를 종료시키는 상대방.

분명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의 구세희는 조금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통화가 끊김과 동시에 어떠한 다른 생각 하나가 자신의 머릿속을 강하게 집어삼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왜인진 모르겠지만, 그저 가벼운 추측 정도로 끝날 문제는 아닐 것 같단 생각이 들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설마 아줌마가 살아 있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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