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란의 트롤랑-125화 (125/164)

< 궁성 - [5] >

롤랑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스스로도 남 보기 껄끄러우리란 건 아시나 보군.”

“천것들 보기나 그렇습니다.”

롤랑은 나도 천것이라 그리 보이는 것이냐 성내려 했다. 그러나 오스론은 롤랑이 입술을 떼기도 전에 얼른 말을 이었다.

“아쉽군요. 롤랑 경께서는 신들의 세계에서 거하신 분이니 지상 것들과는 보는 눈이 다르리라 생각했는데. 뭐 전사들이 모인 발할라에서 결혼식이 치러지진 않을 테니 어쩔 수 없으려나요? 아무튼 간에 더 이상의 간섭은 원하지 않습니다. 롤랑 경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어요.”

“내 종자였던 아이의 미래를 신경 쓰는 게 그리도 주제넘은 짓이란 말인가?”

오스론은 딱 잘라 말했다.

“예. 만약 제 가문의 혼인관계에 간섭할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그건 롤랑 경이 아니니까요.”

“그럼 어느 지위쯤 되어야 딸과 아비의 결혼이 역겹다고 지적할 수 있나? 황제?”

롤랑이 쏘아붙였으나 오스론은 비웃음 섞인 어조로 대답했다.

“황제 따위가 감히?”

“그럼 달리 누가?”

“프레이 신이시죠. 저희 메디아 가문은 거사를 치르기에 앞서 조상신께 기도드립니다. 이번 혼인에도 저는 그 분께 기도드릴 겁니다. 그 허락여부에 따라 그 약혼의 성사여부가 판가름 날 거예요. 이 결정에는 아무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

오지랖 넘치게도 이혼이나 재혼 따위에 끼어들어 재판하는 교황이든, 귀족간의 결혼동맹에 훼방 놓으려는 황제든! 절대 메디아 가문의 혼사에 끼어들지 못합니다! 신이 아닌 이상에야 절대 그럴 권한이 없어요! 만약 그런다면 프레이 신께 도전하는 것일 테니!”

그리 외치더니 오스론은 롤랑의 반응을 살폈다.

프레이 신의 이름을 들먹였으니 움츠러들기 바랐는데 웬걸, 주눅 들기는커녕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언제 분노가 터질지 모르는 얼굴.

롤랑의 입이 열렸다.

“이······”

오스론은 얼른 수습에 나서야 했다.

“물론 경의 심정이야 이해합니다. 종자였던 아이가 갑자기 여자가 된 것도 미칠 일인데 이제 이 늙은 추기경 놈의 배필이 된다니. 서사시였으면 딱 제가 악역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아니에요. 프레이 신의 인정 하에 치러지는 일입니다. 신성하면 모를까 어찌 악할 수 있겠습니까? 롤랑 경께서도 이 점을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오스론은 집요하게도 프레이 신의 권위에 의지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신들의 전사, 발할라의 전사 아닌가. 그리고 발할라 궁전의 군주가 바로 프레이 신인 것이다. 아무리 화났을지라도 그 권위에 반항하지는 않을 터였다.

과연 그러했다. 롤랑은 분통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지만 눈앞의 추기경을 멱살 잡거나 할 수는 없었다. 그 역시 신이 두려웠으므로.

차라리 실제 발할라의 전사였다면 신들의 인내심이 어디까지인지 가늠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 지금의 롤랑은 그마저 불가능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롤랑은 겨우 화를 가라앉히고서 입을 열었다.

“그 아이가 안쓰럽지도 않소?”

“물론 배필로서 제게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거야 압니다. 하지만 달리 짝지어줄 만한 상대가······”

“그게 문제요? 당신이 아니라 백마 탄 왕자가 와서 청혼하더라도 그 아이는 혐오감에 몸서리칠 거요. 얼마 전까지 칼 가지고 놀던 사내아이였지 않나! 남자랑 몸 섞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끔찍할 텐데, 하물며 결혼상대가 제 아버지라니? 까무러지다 못해 은장도로 제 목을 찌른들 이상할 것 없지 않은가! 아버지로서 딸의 심정을 헤아려 줄 수 없나?”

그 말에 오스론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속으로는 정말 자결할 수도 있으니 시녀를 붙여 감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결혼상대가 맘에 안 드는 게 비단 그 아이만의 일이겠습니까? 혼처가 결정된 여아들은 다 그런다지요. 하지만 아무리 싫어한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일개 귀족가마저도 그렇습니다. 가문의 이득 때문에, 동맹관계 때문에 여식들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아비가 정해준 남편을 따라요. 하물며 저는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서가 아닌 고귀한 피를 잇기 위해 결정한 것인데요. 그 어찌 변동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후로도 롤랑은 그 뜻을 꺾으려 노력했다. 을러보기도, 정에 호소해보기도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오스론은 기어이 제 딸과 결혼하려는 모양새였다.

그 모든 설득에도 꿈쩍 않던 오스론은 마침내 하품을 하더니 말했다.

“아, 귀빈 앞에서 이런 무례를? 부디 이해해주십사. 오늘 업무가 많았는지라 너무 피곤하군요. 이만 물러가주시기 바랍니다, 경. 아직 처리할 일이 산더미고 더 이상 대화가 진전될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더 이상의 대화는 거부하겠다 이거요?”

“제 어찌 그러겠습니까? 나중에 대화하자는 겁니다. 나중에요. 제 시간이 빌 때 말이죠.”

어딜 봐도 당장 골치 아픈 대화를 그만두려는 빈말이었다.

롤랑도 그것은 알았지만 더 이상 버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오스론의 말대로 더 이상 대화가 진전될 것 같지 않았기에.

방에서 나온 롤랑은 앤지와 마주치지 않기를 기도했다.

다행히 복도에서는 만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방문을 열고 자기 방에 들어가 보니 앤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롤랑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앤지는 롤랑을 보자마자 바로 물었다.

“어찌 되었······”

그러나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롤랑의 표정, 거기 깃든 절망만 봐도 일이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결국 앤지는 흐리멍덩한 얼굴로 방을 나섰다.

제이슨이 초조한 얼굴로 물어왔다.

“결국 오스론이 신성한 소아성애의 뜻을 꺾지 않겠대?”

롤랑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그래.”

“미친······”

그동안 앤지를 반쯤 없는 취급하더니. 어째서인지 지금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그런 변화에 관심 둘 상황이 아니었다. 롤랑은 속으로 욕설을 지껄이며 침대에 누웠다.

그 옆에서 제이슨은 실제로 욕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냥 돌아왔냐? 씹질하든 말든 좆대로 하세요, 하고? 네가 챙겨주던 애 아니냐고!”

롤랑은 힘없이 대답했다.

“그럼 어쩌라는 거냐. 신만이 자기네 가문의 결혼에 왈가왈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신? 여기 있잖아?”

“누구, 우리? 발할라의 전사라서? 아냐. 우리는 반신······”

“신성 10짜리 방구석 현인신 있잖아, 마!”

“뭐?”

“카를!”

제이슨은 벌떡 일어나 롤랑과 함께 방을 나섰다.

둘은 카를의 숙소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카를과 그 일행뿐만 아니라 모지도 있었다.

롤랑이 말했다.

“카를? 부탁이 있는데.”

롤랑은 자기 종자였던 공주, 그녀와 결혼하려는 추기경에 관한 일을 말했다. 그리고 부탁했다.

“그러니까 오스론한테 가서 설득 좀 해줘. 신학서 보니까 너는 발할라에서 프레이에 버금가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던데. 그럼 네 설득은 씨알이나마 먹힐지도 모르잖아?”

다 듣고 난 카를은 난처해졌다.

‘오스론한테 가서 말 섞으라고? 지금 몸 사려야 할 판에 어찌?’

당연히도 카를은 거절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모지가 끼어들어 말했다.

“같은 신의 권위에 의지하겠다고? 나쁘지 않은 생각이로군. 그런데 신 행세를 하려면 소품이 필요할 것 같군. 롤랑, 네 성검 좀 빌려줄 수 있나?”

“성검은 왜?”

“카를이 써야할 것 같으니. 성검을 쥔 신이라면 더욱 권위 있어 보이지 않겠나?”

롤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가서 가져올까?”

“그래.”

그리하여 롤랑과 제이슨은 다시 방을 나섰다. 다시 넷이서만 남은 가운데 카를이 물었다.

“무슨 짓이냐? 왜 네 맘대로 결정해? 그리고 어차피 그 자식을 죽이면 오스마 2세? 그 결혼도 물거품이 될 텐데 왜?”

그 목소리에 분노가 섞여있었지만 모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가서 설득하란 게 아니다, 카를. 일 저지르기 전에 정보를 뽑아내라는 거지.”

“뭔 놈의 정보?”

“우리를 불러낸 소환계약서의 존재. 그리고 과연 너를 신으로 대우해주는가 여부. 중요해.”

“위험을 감수할 만큼?”

“그래. 지금 모르고 넘어가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일이다.”

그리하여 이유는 알게 되었지만 모지가 멋대로 카를의 행동을 결정한 사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충분히 화낼 만한 일이었다. 카를이라면 더욱.

그동안 카를은 다른 유저들을 상대로 그 독자행동을 엄준하게 지탄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저쪽에서 카를의 행동을 멋대로 정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결국 카를은 화내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두려웠기 때문이다. 진정한 마법사 마우그리스 경이.

이미 카를은 롤랑에게서 모지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모지는 한국인이 아닌 옛 영웅에 가까우리라는 사실을.

그러니 눈앞에 있는 것은 반쯤 영웅이었다. 그러니 어찌 강하게 나서겠는가. 오히려 그 뜻에 끌려 다닐 수밖에.

‘젠장.’

그러는 사이 롤랑이 돌아왔다. 웬 칼 한 자루를 쥐고서.

“성검 그람이다.”

카를은 롤랑이 내민 칼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그람? 정말? 당연히도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카를은 떨떠름하게 물었다.

“진품인가? 대체 어찌 구했나?”

“악룡과의 싸움에서.”

“그 덩치가 산만하다는 악룡? 헛소문 아니었나? 정말 싸웠던 건가?”

“그래. 죽고 죽어서 겨우 죽였지. 그때 모지도 한 번 죽은 거고······.”

롤랑은 말을 흐리며 모지의 눈치를 살폈다. 생각 없이 말했나 싶었기에.

그러나 모지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신경 쓸 필요 없다, 롤랑. 위대한 기사가 왜 동료 눈치를 살피나? 우리가 처음 비프로스트에 도착했을 때 나누었던 말, 기억나나? 영웅 서사시 주인공에 가깝게 행동하자는 약속. 그 약속은 지금도 유효하다, 롤랑.”

롤랑이 말했다.

“기억은 나. 그런데 지금 그걸 왜?”

“누구 눈치도 살피지 말란 말이다. 넌 지금껏 충분히 고결하게 행동했다.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는다. 네 종자였던 아이의 일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임무에 상관없는 일로 동료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걱정되는가? 걱정할 필요 없다. 넌 그저 네 뜻대로, 영웅답게 행동하면 돼.”

“내 멋대로 하기엔 지금 이 일에는 신까지 얽혔는데.”

“프레이 신이 두렵나? 물론 두려워해야지. 강력한 신이니까. 하지만 네가 그 노예인 양 여길 필요도 없다. 발할라에서 롤랑은 가장 강력한 전사 중 하나였다. 프레이 신도 하인 부리듯 대하지 못했어. 만약 롤랑이 그 뜻에 반해 행동한다면, 프레이 신은 분노하겠으나 대놓고 보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설령 네가 가짜더라도 진짜 롤랑의 권위가 너를 가호할 테지.”

롤랑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모지가 말했다.

“그러니 가라, 롤랑. 가서 위대한 영웅이라면 어찌 행동할지 생각해봐.”

*******

결국 카를은 모지의 지시에 따라 오스론에게 향했다.

그리하여 보게 된 오스론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죽이려다 실패한 상대가 찾아왔으니 놀라거나 당황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오스론은 그저 난처한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말씀하신 것을 요약하자면 이겁니까? 인류의 구원자, 빛의 수호자 카를 대제의 이름으로 선언하노니 이번 혼사는 정당하지 않노라?”

카를은 그 담담함에 놀라는 한편 엄숙하게 말했다.

“그러하다. 옛날 나 카를은 그대의 선조 메데이아 공에게 작위를 수여한 황제였다. 그 권위마저 부정할 셈인가?”

그리고 오스론은 쉽게도 대답했다.

“예.”

“어찌 감히?”

“왜냐하면 제 선조 메데이아 공과 연이 있었던 황제는 카를이지, 당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고하라.”

“당신은 진정한 카를 대제가 아닙니다.”

그 말에 카를은 섬뜩했다. 진정한 카를이 아니라니? 그 정체가 일개 한국인 유저들이었음을 아는 것인가?

카를은 그 난처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그 무엄한 발언에 대해 해명하라. 만약 모욕에 불과했다면······.”

“신학을 제대로 공부했다면 시골사제들이라도 다 알 겁니다. 발할라의 전사들을 불러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전사들이, 그것도 롤랑 경이 필요했기에 프레이 신께 부탁드렸습니다. 그러나 프레이 신께서도 그 위대한 전사들을 그저 하인을 부리듯 지상에 파견 보낼 수 없다고 설명하시더군요.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불러내야 했습니다. 마법적인 소환물을 불러내듯, 그 복제를 불러내야 했어요. 프레이 신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가능한 위업이었습니다.”

난데없이 정체가 밝혀졌다.

그러나 카를은 그다지 충격 받지 않았다. 이미 신전에서 수 차례 거론된 가능성이었기에. 덕분에 오스론이 의아할 정도로 담담하게 물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가짜 카를 따위는 존중하지 않겠다. 이건가?”

“그리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존중합니다. 당신께서는 위대한 카를 대제의 모습과 기억을 지니신 분이니. 그러나 굴종할 필요까지는 없을 뿐입니다.”

카를은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롤랑의 부탁은 들어주지 못하게 되었지만 어쨌건 상기의 목적 하나는 이루었다. 신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소환된 영웅들의 정체 또한 알아내었다.

카를이 말했다.

“그래서 롤랑도 그리 서슴없이 이용할 수 있었던 게로군. 덕은 실컷 본 주제에 배신하고.”

문득 오스론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롤랑 경······ 그 분께는 정말이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해와 같이 감사하고 죄송할 뿐이지요. 배신이요? 예, 말씀대로입니다. 그 분께서는 제가 바라는 것을 다 들어주셨는데 제가 저지르는 일은 죄 이 모양이로군요.”

자괴감 어린 어조, 의외였다.

“제 잘못은 아나?”

“알지요. 저도 염치가 있는 놈이니 어찌 그저 허허거리겠습니까?”

“그런 양심이 있다면 어찌 그리 굴려먹었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그 은혜는 앞으로도 갚아나갈 생각입니다. 롤랑 경께서 앞으로도 모험하고 싶어 하시니 메디아 섭정으로서 물심양면 지원해드릴 겁니다. 오스 놈이 워낙 인색한 나머지 그동안은 칼 한 자루 제대로 된 물건을 못 드렸는데, 이제 저는 국고를 털어서라도 성유물을 지원해드릴 겁니다. 그리고 방금 당신에게만 말씀드린 영웅들의 정체······ 그건 롤랑 경께 비밀로 해주십시오. 그게 당신에게나 제게나 좋지 않습니까?”

“롤랑만 대우해줄 모양이군. 나머지는?”

“신전에 남은 영웅들은 원래 제가 이 메디아에서 거사를 치를 때 병력으로 쓰고자 남겨두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도 없으니, 모셔와서 대우해드리겠습니다. 영웅 대우를요. 물론 당신께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를 대제에 걸맞은 대우는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대우라면 가능해요. 다시 말씀드리건대 저는 귀 영웅을 존중하고 존경합니다.”

카를이 문득 물었다.

“목줄을 채워두고 말인가?”

“무슨 목줄?”

“소환계약서. 아마 거기 기아스도 걸려있을 테지? 그걸로 어젯밤 웬 자객을 조종하여 대우하기 껄끄러운 대제를 처치하려 시도했고······”

돌연 오스론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기아스요? 전설에나 나오는 주문 아닙니까? 그런 편리한 게 있으면 누가 부하들의 배신을 걱정해요?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소환계약서가 있기는 했지만 이미 불태운 지 오래인데요!”

“미쳤다고 그걸 불태웠겠나?”

“그걸 불태우지 않는 게 더 미친 짓이었습니다! 영웅들을 어떤 형식으로 불러낼 건지 적혀 있었으니까, 남한테 보일 수 없었습니다! 바로 없애야했어요! 혹시 뭔가 일이 있습니까? 궁니르에 맹세하건대 그건 제 짓이 아닙니다!”

“뻔뻔하게도 발뺌을······”

오스론은 한숨 쉬었다. 억울한 표정, 연기라면 감히 배우를 해도 모자랄 터였다.

오스론은 더없이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튼 롤랑 경께 돌아가 전해주십시오. 유감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저 역시 롤랑 경의 뜻이라면 그저 따르고 싶을 뿐이지만 이 경우는 특별하다고 전해주십시오. 가문의 명맥을 잇기 위한 일입니다. 제 어찌 달리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

< 궁성 - [5] > 끝

ⓒ 검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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