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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70화 (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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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70화

기회는 쉽게 찾아왔다. 뉴캐슬의 수비 조직력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덕분에 오솔은 어렵지 않게 공간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수비수들의 몸싸움을 가볍게 이겨내며 공을 받았다.

‘수비네. 허수아비라고 욕먹어도 할 말이 없겠어.’

정면으로 기븐 골키퍼의 긴장된 모습이 보였다. 시간은 어느새 후반전 30분이 되었는데, 기븐은 여전히 경기 초반처럼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역시 문제는 이 녀석이다.’

오솔은 평소보다 신중하게 슛을 시도했다. 기븐의 선방쇼를 질리도록 봤다. 어설픈 슈팅으로는 그를 쓰러뜨릴 수 없었다.

파아앙!

오솔의 발을 떠난 공이 가까운 쪽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정석적인 방법을 한 번 꼬아서 가까운 곳을 노린 슈팅이었다. 게다가 골키퍼가 반응하기 힘들다는 배꼽 아래로 향하는 낮은 슛이었다. 그러나…….

타앗!

기븐은 흡사 발레리노라도 되는 것처럼 다리를 쫙 찢어 공을 쳐냈다. 오솔이 공들여 찬 슈팅이 너무도 쉽게 막힌 것이다.

‘뭐야, 이건? 인간의 반사 신경이 아닌데?’

가까이에서 본 기븐의 움직임은 비범했고, 전신에서는 절대로 골을 허용할 수 없다는 기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짜 야신이라도 빙의된 거야 뭐야? 후우. 생각보다 더 까다로운데? 웬만한 슛으로는 골 넣기 힘들 것 같아.’

이럴 때는 예상을 뛰어넘는 슛이나 수비진은 물론이고 골키퍼까지 다 제쳐버리는 미친 돌파, 혹은 정교한 콤비네이션을 바탕으로 패스 플레이를 활용해야 했다.

‘혹은 기가 막힌 패스로 1 대 1 찬스를 잡거나…….’

오솔은 모드리치를 돌아보며 눈을 빛냈다. 그가 기억하는 모드리치라면 충분히 그만 한 패스를 할 수 있었다. 오솔은 반 더 바르트에게 받았던 패스를 다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모드리치를 불렀다.

“갓드리치!”

“……내 이름은 모드리치인데?”

“방금 봤죠?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좀 힘들겠어요.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갓갓스러운 패스를 부탁해요.”

“……내 말을 전혀 안 듣는군.”

오솔은 할 말을 마치고 곧장 전방으로 돌아갔다. 덕분에 모드리치는 오솔의 뒷모습으로 보며 난감하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런 패스가 주문한다고 바로 나오겠냐고. 무슨 패스트푸드 음식점도 아니고…….’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수비진이라고 해도 어쨌든 뉴캐슬 진영에는 수비수들이 가득 차 있었다. 빈 공간은커녕, 라인도 바짝 내린 상태라 뒷공간도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중앙으로 패스를 해서는 답이 없었다.

‘일단은 중앙에 공간을 만들어야겠지.’

반 더 바르트였다면 개인 돌파로 틈을 벌렸겠지만 모드리치는 보다 안정적인 방법을 선호했다. 그는 좌우로 공을 돌리며 차분하게 측면부터 공략해 들어갔다.

‘뉴캐슬의 약점은 측면이야. 좌우를 번갈아가며 찌르다 보면 어느 순간, 틈이 생긴다.’

공은 우측의 보싱와에게 흘러갔다. 보싱와는 상대를 앞에 두고 이리저리 페인팅을 부리더니 여의치 않다고 느꼈는지 공을 다시 모드리치에게 돌려줬다. 모드리치는 공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몸을 열어 반대편 측면을 바라봤다.

‘좋아. 역시나 공간이 생겼다.’

모드리치가 막 좌우 전환을 하려 할 때였다. 그의 시야에 눈에 띄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수비진을 잔뜩 끌고 다니다가, 갑자기 상대 진형에 깊숙이 파고들어 숨어 있던 공간을 드러내는 존재가. 그 존재는 당연히 오솔이었다.

‘……!’

순식간에 중앙에 공간이 생겼고, 오솔에게 이어지는 패스 코스가 만들어졌다.

절호의 기회. 그러나 모드리치로서는 예상하기 힘든 기회였다. 그래서 모드리치는 처음에 노렸던 대로 공을 반대편 측면으로 보냈다. 물론 패스를 마친 후에는 오솔과 그가 만들어낸 공간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말이다.

‘거기에 공간이 있었나? 아니, 그가 만든 것인가? 저 좁은 곳에 패스를 욱여넣을 공간을?’

오솔은 ‘왜 패스하지 않은 거야?’라고 묻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당연히 패스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표정이었다.

모드리치는 당혹스러웠다. 솔직히 그는 오솔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해당 패스 코스를 파악하지 못했었다. 아니, 얼핏 보이긴 했지만 무시했다. 오솔이 서 있는 곳은 너무 좁고 깊어서 패스가 연결될 확률이 너무 낮아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뺏겼다간 바로 역습인데 어떻게 패스해.’

지금까지 모드리치가 뛰어왔던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였다. 유소년 시절은 물론이고 프로에 데뷔한 이후, 그리고 국가대표가 되었을 때까지…… 그는 이 자리를 계속 지켜왔었다.

다행히 그에게는 중앙 미드필더가 갖춰야 할 재능이 많이 있었다.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 준수한 탈압박 능력과 자유로운 양발 사용 등이 그런 것들이었다.

자연스럽게 감독들은 그에게 경기의 전반적인 운영을 맡겼고, 그는 중원의 사령관으로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뽐내왔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중앙에서 뛰면서 안 좋은 버릇도 하나 생겼다. 바로 정확하고 안전한 패스에 대한 집착이었다.

‘전체적인 경기 운영을 생각해야 해.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의 리스크도 늘 염두에 둬야 한다고.’

모드리치의 패스 성공률은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서 90%를 가볍게 웃돌았다. 가장 많은 패스를 뿌리는 중앙 미드필더가 90%대의 패스 성공률을 보인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안전 지향적인 패스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확률이 가장 높은 쪽을 선택하는 게 맞아.’

모드리치는 공격적인 패스는 지양했다. 전진 패스도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패스 위주로 시도해왔었다. 말하자면 파브레가스보다는 알론소에 가까운 타입이었다.

그의 패스가 향하는 곳은 항상 가장 성공 확률이 높으면서 동시에 상대의 방어가 미약한 지역이었다. 물론 이것도 대단한 재능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 패스로는 오솔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오솔은 모드리치의 미래를 알고 있었고, 그의 안에 알론소는 물론이고 파브레가스 역시 들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모드리치! 왜 패스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곳은 너무…….”

“으으. 겨우 잡은 기회였는데, 아쉽다. 다음엔 타이밍에 맞춰서 찔러줘요. 그전까지는 갓드리치라고 안 불러줄 테니까.”

“누가 그렇게 불러 달랬냐? 야, 야! 저 자식, 또 그냥 가버리네…….”

오솔은 이번에도 말이 끝나기 전에 전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모드리치는 말을 끊겼다는 사실보다 모험적인 패스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곤란했다.

‘저기로 어떻게 패스하라는 거야? 분명히 어설프게 찼다간 수비수에게 걸릴 텐데?’

모드리치는 아직 어린 선수였다. 어찌 보면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는 스물세 살이 되도록 경력 대부분을 크로아티아 리그에서 쌓았고, 국가대표 경기라고 해봐야 이제 스무 경기 남짓 출전한 게 전부였다.

그래서 알지 못했다.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어떤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지를.

‘읏! 또다!’

다시 시작된 경기. 모드리치는 생전 처음 느끼는 신기한 기분에 휩싸였다.

분명 머릿속으로는 측면으로 패스를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시선은 자꾸만 오솔에게 사로잡혀 떠나질 못하는…… 그래서 오솔이 쇄도하는 곳을 쫓아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패스 코스를 그리는…….

그건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한번 해볼까?’

항상 감독이 시키는 대로, 팀에게 도움이 되는 대로 뛰었던 선수가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위험할지도 모르고 실패할 확률이 높은 패스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저곳으로 차보고 싶다.’는 생각을.

파아앙-!

‘아! 내가 무슨 짓을?’

그는 마음이 동하는 순간 바로 패스를 보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설픈 각오에 맞게 상당히 허접한 패스였다는 사실이었다.

뻐엉-!

역시나 수비수가 앞에서 잘라먹으며 멀리 찼다. 발 빠른 공격수가 공을 잡으려고 뛰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콤파니가 적절히 막아냈지만, 자칫 뒷공간을 내줬다간 실점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르는 장면이었다.

모드리치의 등줄기에 축축하게 젖으려는 찰나, 오솔이 말을 걸었다.

“방금 그 코스 좋았어요. 조금만 더 날카롭게 넣을 수 있죠?”

“하지만 이 패스는 너무 위험해. 방금도 봤잖아?”

“뭐가 위험해요? 뱅상이 잘 막았는데.”

“하지만…….”

“설마 역적이 될까 봐 겁내는 거예요? 패스가 막히고 되레 역습에 당할까 봐?”

“그런 게 아니야. 단지 나는 균형 있는 경기를 추구하는 것뿐이라고.”

“지금 우리가 균형을 잡으면서 공격할 처지예요? 수비수까지 다 올라와서 공격해도 모자랄 판인데……. 이런 경기는 비겨도 욕먹어요.”

오솔은 방금 패스보다 더 빠르고 공격적인 패스를 원했다. 상대가 막아낼 수 없을 만큼 날카롭고 예상하지 못할 만큼 모험적인 패스……. 그런 패스라야 기븐의 야신 모드를 이겨낼 수 있었다.

‘여기서 더 세게 차라고? 미치겠군. 그건 거의 슛이나 다름없는 패스를 달라는 거잖아. 준다고 해도 받을 수나 있는 거야?’

모드리치는 회의적이었다. EPL의 패스가 슛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라는 건 이적 첫날부터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골문 앞처럼 1초가 아까운 곳에서는 되도록 받는 사람이 편히 받을 수 있는 패스를 보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오솔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배려 따윈 필요 없습니다. 무조건 상대가 반응하지 못할 패스로 해줘요. 그래야 넣을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줄지 알고? 우리는 따로 연습하지도 않았잖아.”

“방금도 통했잖아요. 굳이 연습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그 코스가 유일한 해답이라는 걸 우리 둘 다 알고 있는데.”

“……알겠어. 네가 말한 대로 한 번 패스해 볼게.”

“한 번이요? 흐흐흐. 제가 장담하건대 일단 맛을 보면 끊기 힘들 겁니다.”

다시 시작된 공격. 모드리치는 이번에도 오솔의 움직임에 시선을 빼앗겼다.

‘유일한 해답이라고? 둘 다 알고 있어?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 난 네가 움직이는 것을 간신히 따라가는 것뿐이라고!’

모드리치는 오솔의 움직임에 맞춰 패스를 시도했다. 처음으로 받을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패스였다.

파아앙-!

모드리치의 발을 떠난 공은 수비수 두 사람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더니 순식간에 오솔에게 닿았다.

잡을 수나 있을까 싶은 강한 패스. 그러나 걱정스러웠던 패스는 오솔의 발끝에서 가볍게 멈췄다.

‘받았다!!’

모드리치는 그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전율에 휩싸였다. 안정적인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가려졌던 시야가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보인다. 녀석이 말했던 패스 코스가…….’

아까까지만 해도 오솔의 움직임에 의해 흐릿하게 보였던 패스 코스가 어느새 그의 눈앞에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 * *

“젠장!”

“막아! 막으라고!”

기함하는 수비수들 사이에서 오솔의 발이 반으로 접혔다.

그의 앞에는 오늘 좋은 의미로 미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셰이 기븐이 있었다. 몸을 잔뜩 긴장시키고 있는 기븐의 모습에서 절대로 골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가 느껴졌다.

그러나 상황이 좋지 않았다. 박스 안에는 많은 수비수가 있었지만, 모드리치의 킬러 패스 덕분에 적어도 이 순간만은 오솔과 기븐의 1 대 1 싸움이었다.

‘아슬아슬한 패스의 장점이 이것이지. 연결되기만 한다면 완벽한 찬스를 잡을 수 있다는 것.’

오솔은 회심의 미소와 함께 발을 뻗었다. 수비수가 다가오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슈팅할 생각이었다.

‘온다!’

기븐 골키퍼는 강슛을 예상하며 온몸의 긴장을 팽팽히 잡아당겼다.

그러나 오솔의 발은 공에 닿기 직전에 급격히 속도를 줄였다. 그리곤 골프공을 퍼팅 그린 위로 퍼 올리듯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

파앗!

기븐은 확실히 대단한 골키퍼였다. 그는 오솔의 하체와 디딤발의 발목을 통해 그가 노린 방향을 정확하게 잡아냈다. 그의 눈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이 보였다.

그러나 공은 그의 몸이 떠오르고 다시 추락하는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나서야 그 위를 지나갔다. 90분 내내 빠른 공에 적응되었던 기븐의 몸은 오솔의 칩 샷을 잡아낼 수 없었다. 타이밍 싸움에서 완전히 속은 것이다.

모드리치는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힘을 주자 몸이 덜덜 떨려왔다.

‘하, 하하. 뭐지 이 기분은?’

모드리치는 오솔이 말한 ‘맛’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전신이 짜릿했다. 90분을 뛰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온몸에 활력이 넘치는 기분, 말 그대로 중독을 부르는 ‘맛’이었다.

“나이스 패스였어요. 갓드리치.”

“하하. 갓드리치? 다시 갓드리치가 된 거야?”

“괜찮은 별명이죠? 어때요? 추가 시간으로 3분이나 준다는데, 한 골 더 넣어볼까요?”

모드리치는 부들부들 떨리는 입가를 가릴 생각도 못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골이 뭔가 가능하다면 두 골이고 세 골이고 더 넣고 싶었다.

그 모습을 본 만주키치가 말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전 저런 패스 못 받아요.”

덕분에 모드리치는 금방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삑, 삑, 삐이익-!

결국 이날 경기는 1 대 0으로 끝이 났다. 모드리치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공격적인 패스를 마음껏 즐겼고, 애꿎은 만주키치만 헛발질을 하면서 체면을 구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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