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69화
오솔의 복귀 경기는 프리미어리그 27라운드로 그 상대는 중하위권에 위치한 뉴캐슬 유나이티드였다. 약 3주 만의 복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복귀전을 가장 간절히 기다렸던 건 당연히 오솔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국내의 축구팬들 역시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SBC 스포츠 역시 그러했다.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중계를 맡은 SBC 스포츠의 배성진입니다. 박민성 해설위원, 오늘 정말 반가운 소식이 있었죠?]
[네. 드디어 오솔 선수가 그라운드에 돌아왔습니다. 아쉽게도 선발 출전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교체 명단에는 이름이 올랐으니까 후반전에는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겁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던 국내 팬들에게는 살짝 아쉬운 상황입니다. 저희끼리는 선발 출장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데샹 감독은 오솔 선수를 아끼는 판단을 했네요?]
[급할 게 없다는 생각 같습니다. 그동안 만주키치 선수의 활약이 나쁘지도 않았으니까요.]
오솔이 빠진 사이에 맨시티는 총 네 경기를 치렀는데, 그중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셋이었고 FA컵 5라운드 경기가 하나 있었다.
만주키치는 이 중 세 경기를 출전했고, 큰 키를 이용한 제공권 장악과 활발한 움직임으로 2선의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만주키치 선수가 득점력은 좀 아쉽습니다만 수비 가담이나 연계 플레이에 있어서는 합격점을 받을 만했습니다.]
[연계와 득점까지 다 잘하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죠. 만약 그랬다면 오솔 선수에게 그만 한 몸값이 매겨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사실은 데샹 감독도 오솔의 선발 출전을 고민했었다. 그러나 괜히 무리한 복귀로 부상이 덧나거나 새로이 부상을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애써 그를 교체 명단으로 돌렸다.
‘선발도 괜찮다니까 그러네.’
오솔은 가볍게 몸을 풀며 데샹 감독을 흘겨봤다. 직접 몸 상태가 괜찮다고 말했음에도 데샹은 혹여나 오솔이 다칠까 싶어 극도로 조심하고 있었다.
‘뭐, 나도 조심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이제는 남은 경기라고 해봐야 고작 13경기에 불과했다. 거기다 5위인 첼시와의 승점 차이는 고작 3점으로 그야말로 한 경기 한 경기가 말도 못 하게 중요한 시기였다.
‘후우. 동료들을 믿고 기다리는 게 맞는 거겠지. 지난 네 경기에서 모두 이겼으니까 이번 경기도 괜찮을 거야.’
오솔은 조급증이 이려는 걸 애써 다독였다. 사실 그는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이렇게 오래 쉰 것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쉬면서 부상에 대해 새삼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단순히 몸이 튼튼하다고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바보 같은 착각인지…….’
이번 일에서 봤듯이 아무리 몸이 튼튼하고 상태창이라는 사기적인 능력이 있다고 해도 상대가 마음먹고 덤벼들면 부상을 피하기 힘들었다. 회귀 전까지 부상 하나 없었다는 게 정상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죽기 살기로 뛴 적이 없었어.’
오솔은 흔히 말하는 투혼이 느껴지는 플레이를 한 적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다 싶으면 몸을 사렸고, 굳이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다. 원래도 몸이 튼튼한 사람이 그렇게 조심했으니 다치지 않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발롱도르를 목표로 하면서 대충 뛸 수는 없잖아?’
위협적인 공격수에게는 거친 몸싸움과 태클이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호나우두나 지단 등도 커리어 내내 상대의 거친 태클에 시달려왔었다. 활약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러한 견제는 더욱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부상을 피하면서 골을 넣는 것. 당분간은 이것에 중점을 둬야겠어.’
부상으로 쉬는 경험은 한 번이면 족했다.
* * *
오솔의 복귀는 맨시티 선수들에게도 힘이 나는 소식이었다. 당장 몸을 풀고 있는 모습만 봐도 지난 세 경기와 달리 얼굴에 여유들이 있었다. 모드리치는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만주키치에게 물었다.
“이 변화…… 오솔 때문이지?”
“득점왕이잖아요. 든든해지는 게 당연하죠.”
“대단한데? 팀 분위기를 이렇게까지 바꾸다니…….”
“제가 누누이 말했잖아요. 오솔은 천재라고…… 노력파인 것도 맞는데, 솔직히 옆에서 지켜보면 재능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어요.”
만주키치는 침이 튀도록 칭찬을 쏟아냈다. 도저히 같은 포지션 경쟁자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칭찬 일색의 평가였다. 차라리 롤 모델에게 보내는 찬사라면 오히려 이해할 법한 모습이었다.
“궁금하네. 과연 어느 정도의 선수인지.”
모드리치가 오솔과 패스를 주고받은 시간은 고작해야 사흘 정도에 불과했다. 이는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기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었다.
게다가 오솔은 그 기간 동안 경기 감각을 서서히 끌어올린다고 대략 50%에서 70% 정도의 힘만 발휘해 왔었다. 덕분에 모드리치로서는 오솔의 실력을 실감하기 힘들었다.
‘훈련 때 움직임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뭐, 자세한 건 오늘 확인할 수 있겠지.’
[경기 시작합니다!]
호각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찾은 5만여 명의 관중이 환호성을 쏟아냈다. 그 속에서 뉴캐슬의 도약을 꿈꾸는 홈팬들의 열정이 느껴졌다.
와아아아-!
자주 봤던 장면이었지만 그럼에도 오솔은 매번 이 같은 열기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대단하네. 중위권 팀인데도 이 정도의 환호성이라니…… 아무리 못나도 내 자식, 내 팀이라 이건가?’
과거에는 몰라도 최근의 뉴캐슬은 그리 강한 팀이 아니었다. 약팀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구단에서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뉴캐슬은 독일 구단인 함부르크 SV보다 더 안 쓰는 편이었다.
뉴캐슬의 클럽 이적료 레코드는 2005년에 영입한 마이클 오언(1,700만 파운드)이었고, 그다음이 1996년에 세계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한 앨런 시어러(1,500만 파운드)였다.
놀랍게도 이 기록은 오솔이 회귀하기 전인 2019년까지도 깨지지 않는다. 2012년 이후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걸 생각하면 이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기록이었다.
‘오언의 부상 때문인가? 그렇지 않아도 무뎠던 공격이 더욱더 힘을 잃었어.’
뉴캐슬은 그나마 앨런 시어러가 있었던 2005-06시즌까지는 득점력이 뛰어난 팀 중 하나였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그저 그런 중하위권 팀에 불과했다. 실례로 지난 시즌 이들의 득점력은 경기당 1골 수준인 38골에 불과했다.
게다가 상황은 이번 시즌도 다르지 않았다. 이번 시즌 뉴캐슬의 공격 패턴은 마크 비두카의 머리를 향해 길게 올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튼의 태클에 공을 뺏기고 마는 다이어입니다.]
역시나 경기는 맨시티의 우세로 진행되었다. 바튼의 중원 장악력은 뉴캐슬 정도의 팀을 상대로는 절대적이었고, 모드리치 역시 부지런히 뛰면서 수비에 힘을 보탰다.
‘수비는 기본적으로 체력과 지구력, 그리고 성실성이야. 상대가 뛰는 것에 한 발자국만 더 뛰면 어떻게든 수비는 된단 말이지.’
물론 상대가 메시나 호날두 같은 괴물이면 그만한 수비 기술도 갖추고 있어야 했지만, 기본적으로 많이 뛰면 그만큼 수비가 되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모드리치는 수비력 역시 제법 준수한 편이었다. 저 작은 체구 어디에 그런 에너지가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모드리치는 공수에 걸쳐 많은 활동량을 보였다.
여기에 모드리치 특유의 정교한 패스까지 더해지자 중원은 완전히 맨시티의 것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뉴캐슬 선수들은 서서히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니키 버트가 모드리치를 막아섭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를 지냈던 니키 버트가 모드리치를 막아보려 했으나 모드리치는 유려한 드리블로 상대를 가볍게 지나쳤다.
오솔은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반 더 바르트와 헤어지고 나서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동료의 개인 돌파였다.
‘저게 모드리치가 다른 선수들에게 우위를 갖는 점이지!’
미드필더가 혼자 힘으로 탈압박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건 곧 공격 시 수적 우위를 갖게 된다는 걸 의미했다.
이후 모드리치는 오른발로 부드럽게 감아 차는 것으로 측면을 파고들던 지울리 앞에 공을 떨궜다. 시야도 좋고 패스 기술도 좋았기에 나올 수 있는 장면이었다.
‘기회다!’
지울리는 돌파하는 척 상대를 속이더니 한 박자 빠른 크로스로 수비진의 타이밍을 어그러뜨렸다. 덕분에 공은 만주키치의 머리에 가볍게 안착할 수 있었다.
“됐다. 들어갔…….”
그러나 오솔은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골대 구석을 향해 날아간 슈팅을 뉴캐슬의 셰이 기븐 골키퍼가 귀신처럼 날아가 튕겨냈기 때문이다.
[막아냅니다. 셰이 기븐!]
[이야, 이걸 막아내네요!]
오오우우-!
홈팬들의 입에서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나 날법한 소리가 나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기븐 골키퍼가 그들을 구원한 것이다.
짝짝짝짝-!
놀라운 선방을 보여준 기븐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이에 화답하듯 기븐은 이어지는 코너킥에서도 콤파니의 헤딩을 번개처럼 쳐냈다.
[셰이 기븐이 짧은 시간에 두 번이나 팀을 구해냅니다!]
[글쎄요. 구했다는 말을 하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과연 기븐 골키퍼가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골문을 수호할 수 있을까요?]
이후 경기는 맨체스터 시티 대 셰이 기븐이라는 기묘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모드리치의 패스로 기회가 만들어지고, 이를 기븐이 번개처럼 막아내는 모습이 후반전 20분이 될 때까지 쉼 없이 반복된 것이다.
결국 은근슬쩍 맨시티의 편을 들던 중계진까지 울컥한 마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뉴캐슬 수비진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죠? 이건 흡사 기븐 혼자서 맨시티 전체를 상대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유효 슈팅 숫자만 봐도 11 대 2입니다. 골대를 빗나간 슈팅까지 치면 26 대 5. 자그마치 다섯 배가 넘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놀라운 건 그럼에도 스코어는 여전히 0 대 0이라는 것이죠!]
[보통은 이렇게까지 벌어졌는데도 득점을 못 하면 공격수들을 비난하기 마련인데, 솔직히 오늘은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딱 봐도 들어갔다 싶은 슛이 적어도 3개는 있었어요. 이건 무조건 들어갔다 싶은 슈팅들이죠. 그런데…… 다 막아냅니다. 기븐이 다 막고 있어요.]
[셰이 기븐! 그야말로 뉴캐슬의 수호신입니다!]
‘환장하겠군.’
이처럼 기븐이 야신 모드를 선보인 덕분에 데샹 감독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분명 경기력도 압도하고 있었고, 기회도 많이 찾아왔으나 결과물은 여전히 제로였다.
‘후우. 오늘이 정말 날인가?’
기븐이 좋은 골키퍼라는 건 데샹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보여주는 모습은 그중에서도 특히나 대단했다. 어찌나 잘 막는지 나중에는 공격수들이 일부러 막기 좋게 차주는 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농담이 아니라 이 정도면 정말로 팀에 데려오고 싶은데?’
마침 시즌이 끝나면 골키퍼 역시 보강할 생각이었다. 이삭손이나 슈마이켈, 조 하트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차!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지금은 한가롭게 선수 영입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남은 25분 안에 어떻게든 골을 넣어서 승점 3점을 획득해야 했다. 데샹은 수석코치에게 손짓했다.
“스티브! 오솔을 준비시켜줘요.”
“네. 전달하겠습니다.”
오솔은 수석코치가 다가올 때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도 슬슬 자신이 들어가야 한다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
‘복귀전인데 상황이 좋지 않네. 좀 쉽게 갔으면 했는데.’
골키퍼의 야신 모드는 오솔로서도 달갑지 않았다. 평소라면 당연히 골이 되었을 슈팅들이 번번이 막히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스텝이 꼬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0 대 0이라 다행이야. 침착하게 한 골만 넣으면 된다.’
오솔은 마인드 컨트롤에 집중했다. 경기력이 무너지는 건 결국 조급증 때문이었다. 침착하게 평소대로만 플레이할 수 있으면 골을 넣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삑-!
5분여의 준비 시간이 지나고 교체 신호가 떨어졌다. 오솔이 터치라인에 서서 형광 조끼를 벗을 때 데샹 감독이 다가왔다.
“오솔! 만주키치, 지울리와 함께 중앙에서 골을 노려줘요. 측면은 풀백들에게 맡기고 중앙 지역을 완전히 차지하는 겁니다.”
이미 상대는 수비라인을 끝까지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측면이나 후방에 파고들 공간이 없었다. 이럴 때는 골문 앞에 최대한 많은 공격수를 집어넣을 필요가 있었다. 오솔은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다소 불량스럽게 웃었다.
“억지로라도 넣고 올 테니, 두 발 뻗고 기다리세요.”
“미안해요. 원래는 이기고 있을 때 여유롭게 실전 감각을 익히게 해줄 생각이었는데.”
“됐어요. 실전 감각이야 골을 넣으면 바로 돌아오는 거니까요.”
“아무튼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요. 아직 시즌은 10경기 이상 남았으니까.”
데샹 감독은 혹여나 오솔이 다시 다치지는 않을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다 큰 양반이 왜 이래?’
오솔은 뭔가 간지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에게 믿음과 기대를 받는다는 건 확실히 사람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오솔은 페트로프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손짓을 하며 감독의 지시사항을 전달한 뒤, 모드리치에게 말했다.
“갓드리치! 킬러 패스로 하나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