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55화
전반전은 그렇게 2 대 1로 끝이 나고, 하프타임이 찾아왔다.
선수들이 짧은 휴식을 취하는 사이 아스날의 코치진은 후반전 전략을 짜기 위해 전반전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보게, 팻.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벵거 감독의 물음에 수석코치 팻 라이스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잠시만요. 조금만 더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팻 라이스의 요청에 벵거 감독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만히 기다린다. 시간을 들여서라도 상대의 의견을 들어야겠다는 태도였다. 이는 전술에 있어서 팻 라이스의 존재가 생각보다 크다는 걸 의미했다.
실제로 전술의 전체적인 색을 입히는 게 벵거였다면, 팀의 세부 전술과 훈련을 담당하는 건 라이스의 역할이었다.
훈련 상황을 보다 세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건 라이스였으니, 전술을 바꾸기 전에 그의 의견을 묻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라이스 코치는 두 번의 실점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보더니 말했다.
“공격이 오솔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건 확실합니다. 그는 저희의 생각보다 더 다재다능한 선수였군요.”
“솔직히 나도 그 정도인 줄은 몰랐네. 현재 맨시티 공격의 반 이상을 그가 담당하고 있어.”
“그렇다고 쉽게 막을 수 있는 선수인 것도 아니죠. 두 번째 실점 장면을 보시면 갈라스가 붙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이겨내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솔에게 역량을 집중하는 건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라이스 코치는 두 번째 장면의 예시를 들어 그러한 방법이 통하지 않았을 때를 걱정했다.
“오솔을 수비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하자는 뜻인가?”
“예. 오솔을 막으면 가장 좋겠지만, 만약 실패라도 한다면 다른 곳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오솔은 공격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그건 확실하죠. 그러나 중간 다리를 이어주는 건 다른 선수들입니다. 우리가 공략할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솔에게 힘을 쏟기에는 오늘 그가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도 유연하고, 또 다재다능했다. 라이스는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은 어느 정도 정형화된 패턴이 있고, 장단점이 확실한 편입니다. 이를 잘만 이용할 수 있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음, 좋아. 세부적인 작전을 말해보게.”
“네, 그러니까…….”
라이스 코치의 말이 계속될수록 벵거 감독의 얼굴 역시 조금씩 펴졌다.
* * *
“오솔!”
후반전이 시작되고, 맨시티 선수들은 전반전에 했던 대로 공격권을 잡으면 일단 오솔에게 공을 보냈다. 그러나 이는 아스날 선수들 역시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지금이다!’
오솔이 공을 잡는 그 순간, 플라미니가 오솔에게 접근했다. 뒤에선 갈라스가, 앞에선 플라미니가 강하게 압박하는 형태였다.
‘마티유! 오솔이 미드필드로 내려올 때 갈라스와 같이 앞뒤로 압박한다. 상대에게 패스를 돌릴 틈을 주지 마. 거칠게 해도 돼. 아니, 거칠게 압박해. 카드 하나 정도는 받아도 되니까, 어떻게든 정신을 못 차리게 해야 한다.’
벵거 감독의 지시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동시에 질베르투 시우바에게 밀려 후보 선수로 뛰었던 나날도 떠올랐다.
3년. 무려 3년이었다. 그는 출전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한 20대 초반 시기를 교체 선수로만 뛰어왔다.
‘이젠 이 자리를 누구에게도 주지 않아!’
플라미니는 정말로 카드를 불사하겠다는 듯 위협적으로 달려들었고, 오솔은 급하게 공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급하게 찬 것 치고는 패스가 깔끔했다. 균형감각과 패스가 높은 덕분이었다.
공은 우측에서 간격을 좁혀오고 있던 지울리에게 흘러갔고, 지울리 역시 기술이 남다른 선수답게 오솔의 패스를 부드럽게 받아냈다.
‘쳇, 패스가 안정적이잖아? 뭐, 괜찮아. 어차피 진짜 목표는 오솔이 아니었으니까.’
플라미니는 이번에는 지울리를 향해 달렸다. 그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자신의 장기인 왕성한 활동량을 적극적으로 발휘했다. 동시에 왼쪽 수비수인 클리쉬와 후방의 로시츠키까지 삼면에서 달려들었다.
‘압박이 빠르다!’
오솔은 달라진 아스날의 대응에 벵거 감독을 힐끗 바라봤다. 아스날은 공격의 모토가 ‘쉼 없이 움직이고 패스하라’였다. 그런데 수비에서까지 전면적인 압박을 수행한다? 이러면 체력이 몇 배나 더 빨리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상당히 도박적인 수. 그러나 이번에는 그들의 수가 제대로 먹혔다. 베테랑인 지울리조차 상대의 급격한 변화에 당황하고 있었다.
지울리는 멀리서 침투하는 페트로프나 뒤에서 올라오는 보싱와를 바라볼 틈이 없었다. 그는 급한 대로 중원의 플라실에게 공을 건넸다.
‘오솔이 쉽게 패스할 수 없도록 압박하다 보면 급한 패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때 앞으로 나아가 계속 압박한다. 그러면 상대는 계속해서 패스를 돌리겠지. 시야가 좁아지고, 판단은 단편적으로 변한다. 이게 반복되면 결국 언젠가는 받는 쪽이든 하는 쪽이든 실수를 하게 되어 있어.’
‘감독님의 말씀대로 됐어.’
플라실에게 향하던 패스가 뚝 하고 끊겼다. 이를 중간에서 잘라먹은 이는 바튼에게 집중 견제를 당하고 있어야 할 파브레가스였다.
‘그러다가 뺏으면…….’
‘바로 역습에 들어가는 거죠.’
파브레가스가 공을 잡고 측면으로 빠지자 바튼이 뒤늦게 달려왔다. 그러나 그는 같은 편인 플라실에게 진로가 막혔고, 덕분에 파브레가스는 순간적이나마 자유롭게 공을 찰 수 있었다.
‘이미 늦었다.’
바튼이 급히 쫓아왔을 때, 공은 이미 파브레가스의 발밑을 떠난 후였다. 목표는 보싱와가 올라가면서 생긴 왼쪽 측면 공간이었다.
타다닷!
패스를 받은 이는 포텐이 터지기 전의 반 페르시였다. 아직 오른발 사용이 어색하고, 시즌의 절반은 부상으로 빠지곤 했던 미완성의 ‘반’ 페르시.
그러나 부상이 없고, 왼쪽 측면에 선 반 페르시는 만만치 않았다. 특히나 리차즈처럼 경험보다는 반사 신경에 의존해서 수비하는 선수에게는 더욱더.
반 페르시는 리차즈를 앞에 두고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리차즈는 그때마다 반 박자씩 늦게 따라가더니 마지막 순간, 잠시나마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리고 반 페르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파앙-!
공은 중앙에서 쇄도하던 로시츠키에게 향했다. 로시츠키는 강하게 때릴 것처럼 팔을 크게 휘저었다. 타이밍도 그렇고 동작도 딱 슛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이에 하만은 온몸을 날려 슛 코스를 막아섰다.
그러나 로시츠키는 크고 역동적인 동작을 유지하다가 공을 차는 순간 급격히 감속했다. 그리곤 슈팅을 할 때 임팩트를 없애고 공을 가볍게 띄우듯이 찼다. 모두가 강슛을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로빙 패스를 시도한 것이다.
예상을 벗어나는 플레이에 수비수고 골키퍼고 반응할 수 없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느릿느릿 흘러가는 패스는 슛 코스를 막으려고 움직이던 모든 선수를 바보로 만들었다.
쾅-!
덕분에 아데바요르는 아무런 방해도 없이 슛을 찰 수 있었다. 슈마이켈 골키퍼는 코앞에서 날아오는 강슛에 손 한번 제대로 휘젓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좋아! 이걸로 두 골째다!’
아데바요르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 보였다. 이제 해트트릭까지 한 골 남았다는 뜻이었다. 그러고는 오솔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아마 오솔이 먼저 두 골을 넣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뭐야? 이 새끼. 왜 이래?”
오솔은 아데바요르의 일방적인 경쟁심을 보며 황당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오솔은 딱히 그와 경쟁할 생각이 없었다. 해트트릭이야 저 혼자 공약한 것이고, 오솔은 누가 골을 넣든 이번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일단 수비진이 무너지지 않게 해야지. 특히 저놈!’
오솔은 반 페르시에게 제대로 농락당한 리차즈를 찾아갔다. 역시나 리차즈는 눈동자의 초점이 살짝 흐릿해진 상태였다.
“야 인마, 정신 차려!”
“어? 어, 오솔.”
“왜 그렇게 처져있어? 항상 자신감 넘치던 놈이.”
“후우. 내가 저 녀석을 막을 수 있을까? 갑자기 자신이 없어지네.”
“그냥, 지금처럼만 해. 방금은 어쩔 수 없는 패스와 슛이었어. 그런 건 자주 나오지도 않고, 나오면 당하는 수밖에 없는 거야.”
이건 진심이었다. 방금은 로시츠키의 패스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던 것이지 맨시티 수비진의 실책은 거의 없었다. 있다면 보싱와가 공격에 가담하면서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빨리 중심을 잡으라고. 네가 제대로 막아야 이길 수 있고, 이겨야 기분 좋게 클럽도 가잖아. 경기에서 지면 클럽에서 놀 맛이 나겠어?”
“맞다, 클럽. 그래, 이겨야지. 이렇게 꿀꿀한 기분으로 클럽에 갈 수는 없으니까.”
클럽이란 말에 리차즈의 얼굴에 기합이 바짝 들어갔다. 오솔은 기가 찼으나 말을 아꼈다.
‘……일단은 의욕이 생겼다는 데 의의가 있는 거겠지.’
동기야 뭐가 됐든 당장 열심히 한다는 게 더 중요했다. 그는 리차즈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고 다시 전방으로 돌아왔다.
‘상대의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거기에 역습도 템포가 굉장히 빠른 편이야.’
오솔은 상대의 몰아치는 공격에 휩쓸리지 않았다. 상대가 도저히 이길 수 없을 만큼 강해 보이더라도 어딘가에는 약점이 존재하게 마련이었다.
‘굉장히 위력적이지만 체력 소모가 많은 작전이야. 지금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아마 70분만 되어도 몸이 둔해질 거야.’
축구라는 종목은 참으로 공정했다. 하나를 가지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이번에 아스날이 얻은 건 압박과 빠른 역습이었으나, 그로 인해 90분 동안 지속할 체력을 잃었다.
‘물론 역전골까지 넣고 나면 이러한 움직임도 금방 멈추겠지. 그러니까 우리로서는 최대한 지금 상황을 길게 끌고 갈 필요가 있어.’
공을 소유하고 뺏기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럼 상대방은 수비를 위해 계속 뛸 것이고, 정작 공격으로 전환했을 때 체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선수 교체입니다!]
다행히 데샹 감독도 금방 결단을 내렸다. 그는 발이 느린 하만을 빼고 일라누를 집어넣었다. 다소 공격적인 선택이었다.
아스날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하만을 뺀 것은 이해할 수 있었으나, 그 대신 공격형 미드필더를 넣는 것은 조금 의외였다. 빅 4와의 시합에서, 그것도 원정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두는 것은 꽤나 괜찮은 결과였기 때문이다.
‘감독님도 이기겠다는 생각이구나. 흐흐흐. 이거 마음에 드는데?’
오솔도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웠던 차였다. 게다가 이번 교체가 단순히 공격만 생각한 결과도 아니었다.
‘일라누는 발재간이 있는 선수야. 상대의 압박이 거셀 때 오히려 빛을 볼 수 있는 타입이지.’
두세 명의 압박을 이겨내려면 지금의 아스날처럼 팀 전체가 패스&무브먼트가 뛰어나거나, 혹은 선수 개인의 탈압박 능력이 뛰어나야 했다.
그런 면에서 일라누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당장 공격진에 한 명이 더 늘어나면서 패스 코스도 증가할 것이고, 그의 개인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어서 데샹 감독은 애제자 플라실을 빼고 그 자리에 활동량이 좋은 마이클 존슨을 넣었고, 지울리 대신 스테판 아일랜드를 넣어서 체력전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뜻을 내보였다.
‘좋아. 어떻게든 공격권을 유지한다. 이대로 시간만 끌면 이길 수 있어.’
오솔은 마지막 5분을 믿고 한 발씩 더 뛰기 시작했다. 상대의 압박이 몰린다 싶은 순간 동료에게 패스를 보내고, 동료 선수가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패스를 받으러 움직였다.
‘그렇게까지 뛰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잖아.’
오솔의 분투가 이어지자 맨시티 선수들의 움직임 역시 변해갔다. 팀의 에이스가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 가만히 구경하고 있으면 그건 이미 같은 팀 선수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 뛰자! 최소한 아스날 놈들만큼 달리는 거야.’
그 결과. 이 단순하지만 성실한 움직임은 아스날의 거센 압박을 조금씩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오솔과 2선 선수들의 호흡은 가빠졌으나, 발은 전혀 멈추지 않았다. 그에 따라 아스날 선수들 역시 빠르게 지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