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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32화 (13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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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32화

강팀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여기에는 무수히 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를 몇 개 뽑으라면 다음의 다섯 가지 조건을 선정할 수 있다.

1. 유능한 코치진.

2. 소통하는 운영진.

3. 뛰어난 선수들.

4. 위기를 해결해 줄 에이스.

5. 팀을 하나로 만들어 줄 리더.

쭉 나열된 조건들만 봐도 함부르크에 부족한 것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일단 3, 4, 5번은 어느 정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멤버 정도면 주전만 놓고 봤을 때 다른 팀에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확실한 에이스인 오솔과 반 더 바르트가 있고 이번에 둘이 화해하면서 자연스럽게 팀도 하나가 됐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첫 번째 조건인 ‘유능한 코치진’에 있었다. 물론 두 번째 조건도 함부르크가 강팀이 되는데 큰 걸림돌이었으나, 당장 경기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유능한 코치진’ 즉, 감독이었다.

축구에서 감독이란 자리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술을 만들고, 선수들에게 설명하며, 훈련을 진행하는 일들은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감독의 위치가 진짜로 빛날 때는 게임에서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승을 많이 일궈낸 감독일수록 흔히 말하는 승부사 기질이 있었다. 필드위의 변수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확인하고, 통찰력을 발휘해서 과감하게 결정한다.

얼핏 쉬워 보이는 일련의 과정은 거기에 걸린 판돈이 커질수록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려워진다.

안타깝지만 토마스 돌 감독은 이 승부사 기질이 부족한 편에 속했다.

[함부르크가 라인을 내리는군요.]

[한 골을 만회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쉽네요. 지금처럼 기세가 좋을 때 계속 몰아치면 어쩌면 동점까지 따라갈 수 있거든요. 게다가 지금 선수 구성도 공격수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지금 수비로 돌아서는 건 상당히 비효율적입니다.]

그러나 돌 감독은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는 원정에서 득점에 성공했고, 이제 겨우 1점 차이라는 게 더 중요했다.

‘됐어. 홈에서 1 대 0으로만 이겨도 8강에 올라간다.’

야망이 적다고 할 수는 없고, 지나치게 안전 지향적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이렇게 함부르크가 알아서 움츠려드니 AC 밀란으로서는 마음 놓고 공격할 수 있었다.

안첼로티는 마지막 교체 카드로 인자기를 빼고, 히카르두 올리베이라를 넣으며 마지막까지 승부수를 띄웠다.

그는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있었다.

[피를로의 패스가 올리베이라에게 길게 넘어갑니다! 빠릅니다, 올리베이라!]

[이제 막 들어와서 기운이 펄펄 나거든요! 반면 함부르크의 수비수들은 잔뜩 지쳐있어요.]

천만다행으로 콤파니가 먼저 공을 걷어내는 데 성공했으나 자칫하면 다시 2점 차로 벌어질 뻔한 장면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오솔은 반 더 바르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뜻이 맞았다. 이렇게 수비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 번 더 만들어 보는 거야.’

콤파니가 걷어낸 공을 타카하라가 따내는 데 성공했다.

오솔은 공을 받아서 반 더 바르트의 앞으로 굴려주곤 빈 공간을 찾아 뛰었다. 극장골 스킬로 얻은 힘이 큰 도움이 되었다.

파앙!

그러나 이번에 반 더 바르트의 선택은 오솔이 아닌 파올로 게레로였다.

‘오솔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어.’

반 더 바르트는 오솔이 만회골을 넣었을 때의 움직임을 통해 그의 체력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게레로를 선택했다. 오솔에게 스킬이 있음을 알지 못했기에 내린 판단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것은 오판이 되고 말았다.

[아! 게레로의 슈팅이 골문을 살짝 빗나갑니다!]

[방금 건 너무 아쉽네요. 들어갔다면 정말 드라마틱했을 텐데요.]

“하아”

오솔의 입에서 기운 빠지는 소리가 나왔다. 방금 전력질주로 말 그대로 모든 체력을 소진했기 때문이다.

‘딱히 미끼가 되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는 건 아니지만…….’

다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찬스가 골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실망스러웠다. 팀에 위협적인 선수가 너무 적었다.

‘별 수 없이 2차전은 1점 뒤진 상태로 시작해야겠군.’

오솔은 경기 종료 휘슬을 들으며 말디니를 찾아갔다. 진성 AC 밀란 마니아인 아내를 위해 말디니의 유니폼을 가져가야 했다.

말디니는 오솔의 옆구리가 휑한 것을 보고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아까 유니폼 찢은 건 미안하다. 설마 찢어질 줄은 몰랐어.”

“됐어요. 어차피 골을 넣었으니까요. 그나저나 오늘 비가 와서 다행인 줄 아세요. 만약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지금처럼 수비 라인을 올릴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가? 뭐, 상관없어. 다행히 다음 경기부터는 내가 아니라 네스타가 널 상대할 거니까.”

“승부를 피하는 겁니까?”

“승부라면 아까 내가 지면서 끝나지 않았나? 이미 실점한 사람한테 또 붙자고 하다니, 너무 잔인한데?”

말디니는 실점을 입에 담으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하긴, 그의 필드 경험은 오솔의 전생과 현생의 경험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많았다. 어린 선수 하나가 도발한다고 부동심이 흔들릴 리 없었다.

“후후. 아쉽지만 내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어. 5년만 젊었을 때 만났다면 재밌게 어울려봤을 텐데…….”

‘끝나가고 있기는 개뿔. 마흔 넘어서까지 현역으로 뛸 사람이 엄살이 너무 심하네.’

오솔은 말디니가 앞으로 2년은 더 현역으로 활동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실제로 오늘 부딪힌 그는 비록 속도는 좀 떨어졌으나 아직 힘이나 체력에서는 다른 수비수들 못지않았다.

‘이제 조금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다음 경기에서는 네스타로 바뀐다니…… 환장하겠군.’

오솔은 푸념과 함께 필드를 벗어났다. 이제는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으아. 힘들다.”

오솔은 반 더 바르트의 판단을 옹호하며 다리를 쭉 뻗었다.

역대급으로 힘든 경기를 치르고 와서 그런지 오늘은 하루 종일 쉬고 싶었다. 그러나 라이올라는 뭐가 그리도 급한지 아까부터 계속 전화를 넣고 있었다.

“여보세요.”

“경기 봤다. 아쉽게 됐던데? 마지막 패스가 네게 향했다면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라파엘의 판단에는 문제가 없었어. 실제로 직전에 만회골을 넣었을 때만 하더라도 곧장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는 몸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전력 질주한 게 사실이잖아? 골을 넣고 흥분을 했든, 아니면 남은 힘을 쥐어짰든 어쨌든 중요한 건 네가 거기서 다시 달렸다는 거지.”

“왠지 신이 나 보이네?”

“흐흐. 맞아. 일이 재밌게 돌아가고 있거든. 내가 오늘 누구랑 같이 경기를 봤는지 안다면 깜짝 놀랄 거다.”

“왜, 새로운 여자 친구라도 생겼어?”

“그런 건 아니지만, 제법 매력적인 사람이지. 만약 여자였다면 어떻게든 꼬시려고 했을 거야.”

“누군데 그래?”

오솔도 슬슬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웬만한 사람은 무능력자에 머저리로 보는 라이올라가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말한 상대가 누군지 궁금해진 것이다.

“고객이지. 그렇지만 보통 고객이 아니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가진, 말 그대로 거물이지.”

“하아암~ 슬슬 지루해지고 있거든? 빨리 말해봐.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지.”

“음…… 먼저 이걸 묻고 싶어. 다음 시즌 이적하려는 건 확실하지?”

“맞아. 오늘로써 확실해졌어.”

오솔은 보는 사람이 없음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감독이 보여준 판단력에 크게 실망했다.

“네가 바라는 조건을 다시 확인해볼게. 일단 되도록이면 프리미어 리그로 갔으면 좋겠고, 계약금과 주급은 최고 수준으로 하며 초상권도 얻어내는 것이지?”

현재 오솔의 초상권은 함부르크에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오솔은 개인 광고나 스폰서 계약에 제동이 걸려 있었다.

스타성이 있는 선수일수록 초상권으로 인상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데, 호날두 같은 경우는 전체 수입에 1/3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오솔은 이번 계약 갱신에 초상권을 요구하지 못했다. 구단에서 초상권을 내주는 대신 그만큼 계약기간을 연장하자는 식으로 몽니를 부렸기 때문이다.

“다 맞는데, 거기에 챔피언스 리그 진출도 넣어야지. 그리고 되도록 강팀에 야망이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 이제는 주전 경쟁에서 밀릴 일도 없으니까 경쟁자는 크게 신경 쓸 필요 없겠지.”

“……그런가. 아무튼, 정리하자면 영국에 있고, 돈을 많이 주면서 강팀이어야 한다 이거지?”

“맞아.”

“그…… 챔피언스 리그는 꼭 진출해야 하나?”

“당연하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챔피언스 리그에 못 나가는 팀을 강팀이라고 할 수 있겠어?”

“아니, 앞의 조건들을 모두 만족하는 팀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하필이면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조금 힘드네?”

오솔은 어째서 라이올라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는지 알 것 같았다.

“오늘 만났다는 사람이 그 팀 관계자야?”

“관계자는 아니지만, 곧 제일 큰 관계자가 될 사람이지.”

“그게 무슨 소리야?”

“아직은 아니지만 곧 있으면 구단주가 될 사람이거든.”

“구단주? 설마…….”

“흐흐흐. 조금만 기다려 봐 곧 있으면 맨체스터 시티가 이 사람 손에 떨어질 거야.”

오솔은 맨시티의 예비 구단주라는 말에 태국의 전 총리 탁신 친나왓이 떠올랐다.

이미 작년 9월에 태국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탁신 총리가 미국 등지를 떠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는 아직 중위권 수준에 불과한데…….’

게다가 탁신 총리는 1년 만에 구단을 다시 팔아치우게 된다. 물론 새롭게 구단주가 되는 사람이 그 유명한 만수르다. 그때부터는 제법 괜찮은 조건에서 뛸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맨시티가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나는 데까지 최소 3년은 필요했다.

‘스타플레이어들이 맨시티에 들어가길 꺼려했던 이유가 이거지. 아무리 많은 돈이 들어온다고 해도 팀이 강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해.’

2년이나 3년 뒤였다면 맨시티는 제법 괜찮은 선택지가 되었을 것이다. 돈이나 비전은 확실하니까. 그러나 탁신 체제와 만수르 체제로 이어지는 이 2년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태국의 전 총리는 또 어떻게 만났어?”

“뭐?”

“같이 경기를 봤다는 사람, 탁신 총리 아니야?”

“하하하! 누구? 탁신?”

“왜 웃어?”

갑작스러운 웃음에 오솔이 당황하는 사이 라이올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탁신도 제법 거물이지만 이 친구에 비하면 피라미나 다름없어. 이쪽은 진짜 로열패밀리거든!”

“설마…….”

“이름을 듣는다고 알지 모르겠지만 알려줄게. 이 사람의 이름은 만수르 빈 자이드 빈 술탄 알나하얀이야. 조금 길지? 아버지 이름을 붙여 써서 그렇다고 하더라고. 부를 때는 편하게 셰이크 만수르(Sheikh Mansour)라고 해도 된대.”

“맙소사! 만수르라고?”

“어, 알아? 하하, 그러면 말하기 더 편하겠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랍계 왕족이야. 아빠가 아랍에미리트 연합(UAE)의 초대 대통령이라고 하더군.”

설명을 들을수록 오솔이 알고 있는 그 만수르가 맞았다.

“처음에는 나도 아랍계라 조금 거부감이 있었는데, 만나보니까 마인드는 완전히 사업가더라고. 게다가 축구도 좋아하는지 이야기가 아주 잘 통했어. 흐흐. 놀라지 마. 이 사람이 직접 자기가 네 팬이라고 말했어. 영입 1순위로 너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이야.”

오솔은 이어지는 설명에도 상황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가 알기로 만수르가 맨시티를 인수하는 시기는 분명히 내년 여름이었다.

‘아니, 만수르 정도 되는 사람이 한두 달 만에 인수를 결정했을 리 없을 테니, 훨씬 전부터 준비하는 게 이상하지는 않지만…….’

뭔가 정해진 역사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기분이 묘했다.

“각국의 도시를 둘러보며 인수할 구단을 찾을 때, 함부르크 SV도 명단에 있었나 봐. 아무래도 북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니까, 인수할 가치가 있었겠지.”

하지만 분데스리가에서는 규정상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51% 이상의 지분을 차지할 수 없었다. 외국 자본의 유입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이른바 '50+1' 규정이었다.

“너는 그때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때 한창 분데스리가 득점왕으로 이름을 높이고 있었으니 모를 리 없었겠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됐고, 그래서 결론이 뭐야?”

“만약 네가 이번 여름에 맨시티로 오겠다고만 한다면 당장 구단을 인수해서 EPL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했어. 최고 수준의 대우가 아니고, 최고의 대우야. 일주일에 너보다 더 많이 버는 사람이 없게 해주겠다는 소리지!”

“만약 그랬다가 들키면…….”

프리미어리그 규정에는 선수가 계약이 되어있는 구단측의 서면 허가 없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다른 구단과 접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글귀가 있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지키는 구단 그리고 에이전트는 거의 없었다.

고백은 도전이 아니라 확인이라는 말이 있다. 이적도 마찬가지다. 규정과는 달리 실제로는 구단끼리의 합의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개인 협상의 대부분이 마무리된다.

“안 들키면 되지.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네 의사를 말해봐. 최고의 대우를 약속해주는 곳이 좋아, 아니면 챔피언스 리그를 노릴 수 있는 팀이 좋아?”

“음…….”

“너무 고상하게 말했나? 간단하게 생각해. 돈이야, 명예야? 아… 정정하지. 빅 머니야 아니면 코딱지만 한 명예야?”

그 한마디로 오솔은 라이올라가 상당한 수준의 수수료를 받기로 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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