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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08화 (108/213)

 # 108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08화

오솔은 욱신거리는 어깨를 만지작거리며 하비 나바로를 노려봤다.

‘저 새끼는 해로운 새끼다!’

하비 나바로는 축구계에 남아있어 봐야 남들에게 피해만 입힐 놈이었다. 이참에 그의 은퇴를 도와주는 편이 모두를 위한 일이리라.

‘하지만 자연스럽게 해야 돼.’

오솔은 분노한 와중에도 흥분을 다스렸다. 이 무대는 결승전이었다. 개인적인 복수나 축구계를 위한 헌신도 좋지만 일단은 우승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했다.

‘게다가 괜히 티 나게 복수했다가 징계라도 받으면 손해잖아.’

오솔은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보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 그러나 이러한 대처는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분을 참는 것으로 비쳤고, 특히 나바로는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실제로 그는 오솔의 눈초리를 보며 콧방귀를 뀌고 있었다.

‘흥! 제깟 놈이 노려보면 뭘 어쩔 건데? 진짜로 덤빌 깡도 없으면서 눈이 힘만 주는 건 동양인들 특징이라니까.’

오솔의 전적을 모르는 나바로는 그가 자신에게 당했던 여느 선수들처럼 겁을 먹었다고 판단했고, 거기에는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네. 이제 카드 때문에 대놓고 손을 쓰기 껄끄러운데.’

카드 한 장을 허무하게 받은 감이 있었지만, 그로 인해 상대 공격수의 멘탈을 흔들 수 있다면 그리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며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심판의 손이 페널티 마크를 가리켰다. 오솔의 부상과 선수들의 싸움을 말리느라 미처 선언하지 못했던 페널티킥 판정을 내린 것이다.

[페널티킥을 차러 나오는 반 더 바르트…… 함부르크는 반 더 바르트 선수가 키커가 되는 경우가 많네요. 오솔 선수가 직접 차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요.]

[오솔 선수는 이미 8골로 득점왕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보니, 준비했던 대로 반 더 바르트 선수가 차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오솔 선수처럼 어린 선수에게는 페널티킥이 부담스러울 수 있거든요. 게다가 지금처럼 흥분한 상태에서는 더 안 좋죠. 자칫 실책이라도 했다간 정신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어요.]

[확실히 결승전이니 부담감이 더 심하겠네요. 그나저나 오솔 선수가 어렵게 얻어낸 기회이니 만큼 반 더 바르트 선수가 꼭 넣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득점에서 성공해서 두 골 차이로 벌어지면 승부의 추가 제법 많이 기울어지게 됩니다.]

[굉장히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과연 넣을 수 있을까요?]

[다행히 골을 넣을 확률이 꽤나 높습니다. 반 더 바르트 선수는 아약스 시절부터 페널티킥을 전담해서 차 왔기 때문에 경험이 상당하죠. 바로 이를 막아야 하는 안드레스 팔로프 골키퍼는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발렌시아에서 제대로 출전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승전에서 페널티킥이라니…….’

안드레스 팔로프는 가벼운 푸념과 함께 손발을 풀었다. 그는 긴장을 조절하며 상대 키커를 바라봤다. 공을 양손으로 놓고 한 걸음씩 물러나는 반 더 바르트의 모습은 꽤나 비장했다.

‘역시 왼발잡이답게 왼쪽으로 섰군.’

팔로프는 가만히 반 더 바르트에 대한 자료를 떠올렸다. 그의 페널티킥 습관과 행동, 슈팅 통계 등등 일주일 전부터 수십 번도 더 읽은 내용이라 기억에 선명했다.

‘오른쪽으로 찰 확률이 약 55퍼센트, 왼쪽은 38퍼센트, 그에 반해 중앙은 고작 7퍼센트에 불과하다.’

해설자의 말처럼 팔로프는 출전 경험이 적은 편이었다.

발렌시아에서 산티아고 카니사레스에게 밀려 두 번째 골키퍼로 지내야 했고, 6년간 40여 경기밖에 못 뛸 정도로 홀대를 받았다. 골키퍼가 원래 제1선발에게 모든 기회가 돌아가는 포지션이라는 걸 감안해도 지독하리만치 긴 시간을 훈련장에서만 보낸 것이다.

그런 그를 구원한 것이 세비야였다. 세비야의 운영진은 서른둘의 경험이 없는 골키퍼를 기꺼이 그들의 품으로 받아들였고,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팔로프는 그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수많은 선방으로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왼쪽으로 찰 것처럼 조금씩 단서를 흘렸을 땐, 88퍼센트 확률로 오른쪽으로 찬다.’

사실 올 시즌, 그가 선보였던 선방들은 지금처럼 상대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선발로 지냈던 세월동안 조금이라도 실력을 늘리고자 상대 선수들을 분석하기 시작한 것이 세비야에 오고 나서야 꽃을 핀 것이다.

‘이미 네 생각은 모두 파악했다. 와라!’

비록 오솔처럼 자료가 많지 않은 선수에게는 약했으나, 그는 반 더 바르트처럼 자료가 많은 선수를 상대로는 가진 실력 이상을 선보일 자신이 있었다.

삐이익!

휘슬이 울리고, 경기장이 적막에 휩싸였다.

스무 명의 선수가, 3만 명이 넘는 관중이, 또한 약 5천만 명의 시청자들이 공 하나만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반 더 바르트의 어깨가 한 차례 크게 출렁이더니, 입술이 꾹 다물어진다. 그리고…….

탓, 타다닷!

파앙!

반 더 바르트는 티가 나게 몸을 틀었다. 왼쪽으로 차려는 동작을 취한 것이다.

팔로프 역시 그에 맞춰 몸을 기울였다. 그러자 반 더 바르트가 슈팅 직전에 발목을 살짝 틀어서 공을 반대쪽으로 찼다. 슈팅 속도는 조금 느렸지만 상대를 완전히 속이는 슈팅 기술이었다.

물론 팔로프는 속지 않았다. 아니, 되레 그를 간파하고 있었다.

타앗!

팔로프의 몸이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났다. 왼쪽으로 몸을 기울인 것은 마치 지금의 도약을 위함이었다는 듯 너무도 자연스러운 연결이었다.

터억!

[마, 막혔어요!]

아아아…….

함부르크 팬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페널티킥은 키커가 훨씬 유리한 싸움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득점에 실패하게 되면 허무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반면 세비야 팬들은 한껏 기세가 살아서 팔로프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그대로 선수들에게 전달되었다.

“한번 가보자. 이 기세를 살려서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만회골을 넣는 거야.”

오솔이 당한 반칙을 골로 갚았다면 승부는 함부르크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을 공산이 컸다. 그러나 팔로프가 놀라운 선방을 보여줌으로써 이제 세비야도 반격의 기회를 잡게 되었다.

[세비야 선수들이 후방에서 공을 돌리며 빈틈을 찾고 있습니다.]

[역시나 스페인 팀답게 수비수들도 공을 다루는 동작이 부드럽죠?]

중계진의 말처럼 세비야는 수비수들의 패싱력을 바탕으로 좌우 측면을 오가며 공격 기회를 엿봤다. 함부르크는 진형을 4-3-3에 가깝게 변형해서 대응했으나 세비야는 골키퍼까지 적절히 올라오면서 빌드업에 신중을 기했다.

[다니 아우베스가 공을 잡습니다. 바로 따라붙는 만주키치.]

[만주키치 선수의 움직임이 굉장히 부지런하네요. 아주 좋습니다. 헤수스 나바스와 다니 아우베스의 오른쪽 라인은 프리메라리가에서도 강력하기로 소문난 조합이거든요. 잠시라도 상대를 자유롭게 둬선 안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전반전 내내 만주키치 선수와 다니 아우베스 선수가 부딪쳤었죠? 토마스 돌 감독이 맞춤 대응을 준비해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나 아우베스는 단순히 맨마킹만으로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좌우로 흔들었을 때는 더욱더.

‘한 골 만들어보자고!’

아우베스는 공을 중앙의 헤나투에게 넘김과 동시에 가속하기 시작했다. 만주키치는 그의 질주를 인지한 즉시 따라붙으려 했으나 이미 둘 사이의 거리는 한참 벌어진 후였다.

[가볍게 돌아서는 헤나투! 앞에는 나이절 더 용이 막아서고 있습니다. 돌파하나요? 아니면 패스?]

우측면에 있던 나바스는 중앙으로 침투했고, 그의 빈자리로는 아우베스가 빠르게 쇄도하고 있었다.

숙련된 패서인 헤나투로서는 무척이나 즐거운 상황이었고, 이를 막아야 하는 나이절 더 용은 반대로 속이 바짝 타는 입장이었다.

‘나바스는 비키가 막을 테니까, 아투바는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겠지? 그럼 아우베스는 아투바랑 만주키치가 막을 수 있을 거야. 좋아. 난 이 녀석을 막는데 집중하자.’

나이절 더 용은 빠르게 판단을 끝내고 헤나투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돌파와 전진 패스를 모두 막을 수 있는 위치였다.

일반적으로 보면 제법 적절한 판단이었다. 측면과 중앙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중앙을 우선적으로 수비하는 편이 실점 확률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니 아우베스 같은 선수가 있는 팀을 상대로 측면을 내주는 것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일이었다.

[헤나투, 측면으로 내줍니다!]

헤나투의 패스는 아우베스가 굳이 속도를 가감(加減)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확했다. 덕분에 아우베스는 아투바와 만주키치의 사이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다.

파아앙!

[크로스를 올렸어요!]

‘어디로 올린 거지? 카누테? 아니면 파비아누?’

수비수들은 공을 주시하며 더듬이 마냥 손을 뻗어 공격수들을 찾았다.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어느새 공은 날카롭게 휘어지며 박스 안에 도달해 있었다.

‘파비아누 쪽이다!’

아우베스의 선택은 루이스 파비아누였다. 키만 따진다면 카누테 쪽이 더 크긴 했지만, 마크맨이 반 바이텐이라 오히려 제공권에서 밀렸다. 그에 비해 파비아누는 볼라루즈 보다 더 컸다.

‘내가 그리도 만만히 보였나?’

칼리드 볼라루즈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확실히 작년만 해도 그는 반 바이텐에 비해 작다는 이유로 공중볼을 전개할 때마다 타깃이 되곤 했다.

그러나 분데스리가 2년 차인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를 무시하지 못했다. 그가 ‘식인종’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거친 수비를 펼쳐왔기 때문이다.

‘씹어 먹어주마!’

볼라루즈는 하비 나바로처럼 대놓고 주먹질만 안 했다 뿐이지, 태클이나 몸싸움이 거칠기로는 한 손에 꼽히는 수비수였다.

쿠웅!

볼라루즈의 온몸을 던진 경합 덕분에 파비아누는 미세하게 밀려나며 헤딩에 실패하고 말았다.

[볼라루즈가 헤딩을 따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중계진의 환호성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하필이면 공이 세비야 선수의 발 앞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을 잡은 선수는 정교한 패스 실력으로 유명한 엔초 마레스카였다.

[마레스카-!]

마레스카는 ‘슛은 마지막 패스.’라는 격언대로 구석을 노리고 정확하게 찼다. 덕분에 함부르크 팬들은 출렁이는 그물망과 데칼코마니처럼 변한 전광판을 지켜봐야 했다.

만주키치는 상대편의 세리머니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젠장. 너무 빨라. 따라가는 게 고작이야.’

앙다문 이 사이로 뜨거운 숨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그의 활동량은 다니 아우베스에게 밀리지 않았으나 순간속도나 주력은 크게 밀렸다.

문제는 다른 대책이 없다는 점이었다. 애석하지만 이 역할은 만주키치가 아니라 오솔이나 다른 선수가 맡는다고 해도 똑같았다.

오솔은 축 쳐진 만주키치의 엉덩이를 툭 쳤다.

“기운 내, 키맨(Keyman)! 우리도 그대로 갚아주면 되잖아.”

“오솔…….”

“그리고 네 장점은 스피드가 아니잖아. 놈에게도 좌절감을 느끼게 해주자고.”

“좋아!”

오늘 함부르크는 만주키치를 활용한 와이드 타깃맨 전술에 힘을 싣고 나왔다. 키가 작은 다니 아우베스를 압도하는 동시에 그를 수비에 묶어둠으로서 세비야의 공격력을 낮추려는 속셈이었다.

[공기 길게 넘어갑니다. 만주키치 쪽을 봤군요?]

만주키치는 준비했던 대로 다니 아우베스에게 제공권 싸움을 걸었다. 두 사람의 신장 차이는 무려 20㎝. 아우베스로서는 그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어떠냐? 아무리 발이 빨라도 이건 못 막을 걸?’

만주키치는 공을 중앙의 반 더 바르트에게 건네주고 그대로 상대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반대편의 오솔도 나바로의 뒤로 돌아가면서 반 더 바르트가 수비수와 1대1 승부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제 선택은 반 더 바르트의 몫이었다. 패스, 돌파, 슛 무엇을 하든 상관없었다. 그때였다. 몸을 움찔하게 될 만큼 강렬한 눈빛이 반 더 바르트를 바라봤다.

‘짜식! 그렇게 보면 패스할 수밖에 없잖아.’

오솔이었다. 아무리 반 더 바르트가 팀의 핵심이라고 해도 저런 눈빛을 받으면 다른 선택지는 고를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아까 오솔이 얻은 페널티킥을 날려버렸으니 더욱더 거부하기 힘들었다.

‘그래, 제대로 복수해봐!’

반 더 바르트는 오솔의 골을 기대하며 스루 패스를 찔러 넣었다. 언제나처럼 수비수 사이를 송곳처럼 꿰뚫는 패스였다.

‘흐흐! 패스 좋고! 수비도 좋네!’

오솔은 급히 따라붙는 나바로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여러 의미로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넌 뒤졌다.’

나바로는 오솔을 잡기 위해 손을 뻗어왔다. 오솔은 나바로의 손을 쳐내는 척 녀석의 얼굴에 손날을 날리며 소리쳤다.

“아·수·라·파·천·무!”

거기에 슈팅을 하면서 나바로의 발등을 걷어차는 건 덤이었다.

철썩!

골이 들어갔으나 경기장에 모인 눈들은 공이 아니라 나바로의 모습을 쫓았다. 천 쪼가리 몇 장을 이어붙인 것보다는 선홍빛 피분수가 더 사람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크아악!”

하비 나바로는 피가 철철 흐르는 코를 잡을 생각도 못하고 발을 오므렸다. 오솔은 세리머니를 뒤로 미루고 그에게 다가갔다.

“아, 나도 실력이 많이 떨어졌네. 입이랑 발목을 노렸는데…….”

오솔은 표정관리에 애를 쓰며 한 마디 더 건넸다.

“아직 더 뛸 수 있지? 기껏해야 코랑 발가락 좀 다친 거가지고 교체되는 건 아니잖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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