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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07화 (107/213)

 # 107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107화

[이제 양 팀의 진영만 정해지면 경기가 시작할 것 같습니다!]

[선공은 함부르크가 가져가는 것 같군요!]

아직 경기는 시작하기도 전이건만 한국 중계진의 목소리에는 벌써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당연했다. 비록 챔피언스 리그보다 한 수 아래의 취급을 받는 UEFA컵이었으나 그래도 결승전이었다.

게다가 월드컵을 코앞에 둔 덕분에 어느 때보다 축구에 대한 열기가 후끈거리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새벽 3시 45분이라는 극악한 중계 시간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박해진의 챔스 4강 못지않은 시청률이 나오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는 많은 기록들이 걸려 있다는데, 어떤 것들입니까?]

[일단 오솔 선수의 선발 출전으로 경신된 기록입니다. 이제 오솔 선수는 차호진 감독 이후 18년 만에 UEFA컵 결승전 무대를 밟은 두 번째 한국인이 되었습니다.]

[차호진 감독은 80년과 88년에 저 트로피에 입을 맞췄었는데요. 과연 오솔 선수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축구팬들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솔직히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업적이 워낙에 커서 그렇지 그 두 팀을 제외하면 다른 프리메라리가 팀들이 분데스리가 팀에 비해 실력이 앞선다고 볼 수 없거든요.]

[오늘 그 실력을 확인할 수 있겠네요.]

[물론 세비야를 얕볼 수는 없습니다. 이미 준결승전에서 독일 팀인 샬케04를 이기고 와서 상당한 자신감을 얻었거든요. 물론 함부르크는 현재 분데스리가 1위 팀이기 때문에 전력 차이는 상당할 겁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경기 시작합니다.]

삐이익!

오솔은 경기 시작과 함께 전방으로 올라갔다. 등 뒤에 하비 나바로를 두고 있는 게 조금 불안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과연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일단은 평소처럼 해볼까?’

오솔은 가벼운 자리싸움을 시작으로 점차 몸싸움의 강도를 높여갔다.

세비야는 오솔을 막기 위해 중앙 수비수인 하비 나바로와 줄리앙 에스퀴데, 두 사람을 동원했다. 오솔을 혼자 막는 건 불안하다고 느낀 것이다.

함부르크는 반 더 바르트를 활용해서 적극적인 공격에 나섰고, 세비야는 공격수인 카누테와 왼쪽 미드필더인 푸에르타가 중원에 적극 개입하는 것으로 이에 맞섰다.

[함부르크가 중원을 꽉 잡고 있네요. 세비야의 미드필더들이 따라가기도 벅찹니다.]

세비야의 대처는 훌륭했으나 아쉽게도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그 정도로는 베르더 브레멘과 대등한 싸움을 했던 함부르크의 중원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새 아가리를 다물었네. 너, 이렇게 말을 잘 듣는 캐릭터였냐?”

오솔은 나바로에게 가벼운 도발을 날리며 어깨를 붙였다. 이렇게 하면 상대는 힘을 쓰느라 대꾸도 못하고 계속 그의 말을 듣고 있어야 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짜증나는 짓이었다.

‘이러다가 골까지 먹히면 더 힘들겠지.’

오솔은 거북이처럼 단단한 등으로 상대를 밀어붙였다. 나바로는 그럴 때마다 크게 밀리며 체격 싸움에서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드러냈다.

툭! 툭!

‘슬슬 시작하는 건가?’

과연 성질이 났는지 아니면 반칙이 아니면 오솔을 막기 힘들다고 봤는지, 시간이 지나자 나바로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팔꿈치 공격이 시작됐다. 그는 처음에는 심판에게 걸리지 않게 살짝 치더니, 이후 10여분에 걸쳐서 조금씩 강도를 올렸다.

퍽! 퍼벅!

생각보다 강한 공격에 오솔이 슬쩍 뒤를 노려보자 놈은 오히려 비웃으며 말했다.

“뭘 봐. 이 머저리 같은 새끼야. 반칙이라고 징징대고 싶은 거냐? 반칙도 기술이야 인마! 심판에게 안 걸리면 아무 문제없거든! 억울해? 억울하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든지!”

“거 말 참 많네. 그럼 이제부터는 네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기술, 나도 보여줄게.”

“뭐?”

“이건 네가 시작한 거다. 억울해하기 없다.”

오솔은 그 말과 함께 돌아서면서 팔꿈치로 나바로의 몸통을 치고 지나갔다.

퍽!

회전력을 살리면서 들어간 공격이라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상대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뭐야 이건?’

하비 나바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솔의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본인이 당하고도 어떻게 당했는지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치고 지나간다고?’

심판의 사각에서 타격이 들어가는지라 들킬 확률도 낮았고, 공의 진행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부딪히는 거라 고의로 보기도 힘들었다.

‘흐흐흐. 무려 10년을 익힌 기술이다. EPL에서 익힌 몸싸움에 중동과 중국을 거치며 배운 더티 플레이가 더해진 결과지. 심판한테는 절대 안 걸릴 걸?’

오솔의 입가가 쭉 찢어졌다. 이 기술은 전생에 하도 집중 견제와 반칙에 시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것이었다.

그가 EPL에서 뛸 때는 동작이 어설퍼서 퇴장을 당한 적도 많았지만, 나중에 중국에 가서는 상대의 이를 깨트리고도 카드 한 장만 받을 정도로 절묘한 몸싸움이 가능했다.

‘흐흐. 네가 죽나 내가 죽나 한 번 해보자고.’

그때부터 다른 이들은 모두 축구를 하는데 오솔과 나바로만 격투기를 하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는 오솔이 더 많이 때렸는데, 그에게 패스가 올 때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그가 공에 신경이 팔린 사이에 나바로가 제대로 반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런 치사한 자식!’

이때만큼은 오솔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대 더 때리겠다고 공을 뺏길 수도 없지 않은가.

‘쳇! 뒤꿈치는 밟지 말라고 이 자식아!’

뒤에서 뻗어오는 발을 막으려다 보니 오솔은 스터드로 뒤꿈치를 긁는 것도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게 심해지다 보니 나중에는 신발이 벗겨지기까지 했다.

‘확실히 짜증나는 스타일이네.’

오솔이 아무리 몸싸움에 능하고 반칙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 해도 지금처럼 상대에게 뒤를 내줘야 하는 상황에서는 우위를 점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공까지 신경을 써야 하면 누구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그래도 네 패턴은 대충 파악했다.’

오솔은 상대의 반칙 패턴에 맞춰 돌파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리곤 수비수에게 보이지 않게 손바닥을 펴서 가슴에 댔다. 그 모습을 본 반 더 바르트가 고개를 살짝 까닥했다.

‘가슴 높이로 달라 이거지?’

‘당연하지. 그럼 이 안에 너 있다. 겠냐?’

파앙!

오솔이 원하는 높이, 그리고 원하는 세기로 공이 날아왔다. 확실히 반 더 바르트는 패스의 달인이었다.

‘확실히 센스가 있단 말이지.’

오솔이 그 공을 보며 웃고 있을 때, 등 뒤로 나바로와 에스퀴데가 달라붙었다. 상대에게 공을 컨트롤할 조금의 틈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 어디 이것도 막을 수 있나 한번 볼까?’

오솔은 가슴 트래핑으로 공을 툭 떨어뜨렸다.

‘이제 발길질을 하겠지.’

역시나 나바로가 있는 방향에서 그의 발뒤꿈치를 노리고 공격해왔다.

‘역시 패턴이 똑같네.’

오솔은 상대의 공격이 닿기 전에 발을 들어 올려서 피했다. 공은 그의 발등에 사뿐히 내려앉아 미동조차 없었다.

오오오!

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의 모습에 경기장 곳곳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건장한 체격의 선수가 선보인 우아한 동작에 의외성을 느낀 것이다.

‘아직 놀라긴 이르다고.’

균형 감각이 높았다면 이대로 계속 버틸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그랬다간 넘어지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오솔은 바로 공을 띄웠다.

‘뭐지?’

수비수들은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공이 오솔의 몸에 가려져있었던 데다 시선이 허리 아래에 고정되어 있어서 머리 위로 넘어가는 공을 놓친 것이다.

오솔은 그대로 몸을 돌려 두 사람의 틈을 억지로 벌렸다.

“시가!”

건장한 남자 둘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하비 나바로가 손을 뻗었으나 오솔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가볍게 쳐냈다.

‘카드를 받지 않고선 날 막을 수 없을 걸?’

오솔은 떨어지는 공을 물개처럼 머리로 받아 그대로 달렸다. 일명 물개 드리블이었다.

수비수들이 뒤늦게 따라붙었으나 이미 오솔이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 들어선 후라 이제는 반칙으로도 끊을 수 없었다.

‘뭐야. 쉽잖아?’

오솔은 침착하게 슈팅을 가져갔고, 공은 골키퍼의 손을 피해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와아아!

오솔의 원맨쇼에 함부르크 팬들은 물론이고 중립 팬들조차 날뛰기 시작했다.

[아…… 정말 이건 한국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누가 이 선수를 고작 19살의, 데뷔한 지 1년밖에 안된 선수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결승전에서 이런 미친 활약이라니요?]

[제가 그동안은 오솔 선수를 평가하길 주저했었는데요. 오늘 이 골로 단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선수, 앞으로 10년… 아니, 15년이 넘게 대한민국 축구를 이끌어갈 재목(材木)입니다. 더 자랄 것도 없이 지금 이 모습만 꾸준히 유지해도 정말 우리나라 축구 역사에 남을 선수가 될 것 같습니다.]

쏟아지는 찬사의 주인공, 오솔은 세리머니를 위해 달리다가 나바로의 옆을 지나면서 슬쩍 한 마디를 뱉었다.

“반칙도 기술이라고? 흐흐. 이제는 알겠지, 그따위 기술로는 날 못 막는다는 걸?”

하비 나바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프리메라리가의 미친개가 된 후로 처음 당하는 굴욕이었다. 그러나 그는 눈빛만 조금 더 날카로워졌을 뿐,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언뜻 보기에는 기가 죽었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뭔가 반응이 심상치 않은데?’

하지만 오솔은 저런 놈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경계심을 높였다. 보통 저런 놈들은 제대로 손을 쓰기 전에 되레 얌전해지곤 했다.

‘잘 됐군. 타이밍을 봐서 퇴장을 시켜야겠어.’

오솔은 촉각을 곤두고 상대를 대비했으나, 나바로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타이밍을 재기만 할 뿐 손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전반전이 거의 끝나갈 때였다. 후방에서 길게 올라온 공을 오솔이 잡으려고 하자 뒤에 있던 나바로가 그의 유니폼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겨우 그 정도로는 날 못 막는다니까?’

오솔은 오히려 다리에 힘을 더 넣고 몸을 일으켰다. 힘 대 힘으로 붙는 것은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어?’

그러나 오솔이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인 것은 공이 아니라 뾰쪽 튀어나온 나바로의 팔꿈치였다. 그리고 그것은 빠른 속도로 오솔의 시야를 가려왔다.

‘이런 개…….’

오솔은 욕을 내뱉을 정신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쿵! 하는 소리가 지켜보는 이들의 귓가에 울릴 정도로 두 사람이 제대로 부딪쳤다. 아니, 정확히는 나바로가 팔꿈치로 오솔의 어깨를 찍어버렸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이런 개자식! 죽여 버린다!”

“더러운 새끼들! 실력으로 안 되니까 주먹부터 쓰는 거냐?”

“방금 눈을 노리고 친 거 맞지? 이런 씹…….”

순식간에 양 팀 선수들이 오솔과 나바로 주위로 몰려들었다. 한 성격 하기로 유명한 반 바이텐과 볼라루즈, 그리고 만주키치가 우르르 몰려들어 상대와 대치했고, 반 더 바르트는 쓰러진 오솔을 확인했다.

“오솔! 괜찮아? 어디 봐봐.”

“이런 개새끼…….”

오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힘찬 기상과는 달리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가까스로 피한 덕분에 눈에 맞는 건 피했지만, 어깨는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순간적으로 피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선수 생활이 끝날 뻔했잖아?’

그 담대한 오솔도 방금은 정말 식겁했다. 아무리 그가 온몸이 단단하다 해도 눈처럼 단련할 수 없는 부위는 남들과 똑같을 수밖에 없었다.

“심판! 여기 멍든 거 보이죠? 이건 작정하고 친 거예요!”

“절대 의도한 게 아니었어요. 솔직히 방금 있었던 충돌은 상대가 늦게 뛰어서 일어난 거잖아요.”

나바로는 뒤늦게 변명을 늘어놓았으나, 듣는 오솔로서는 기가 찬 대답이었다.

“네가 뒤에서 잡았잖아!”

“더러운 새끼들!”

“웃기지 마, 이것들아!”

현장은 다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결국 심판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잠깐! 다들 뒤로 물러서! 이 이상 말을 걸면 바로 카드를 받을 줄 알아! 그리고 당사자 두 사람만 따라와!”

오솔과 나바로가 나란히 서자 심판이 말했다.

“나는 이번 반칙에 고의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하비 나바로, 당신에겐 옐로카드가 나갈 거야.”

“뭣?”

“감사합니다. 정확한 판단이에요.”

양손을 모으며 물러나는 나바로와는 달리 오솔은 심판에게 한 발자국 더 달라붙었다.

“당신 제대로 본 거 맞아? 이렇게 대놓고 찍었는데 고의성이 없다고? 만약 내가 피하질 못했다면 지금쯤 앞이 안 보였을 수도 있었는데, 지금 그걸 판정이라고 하는 거야?”

“물러서! 얼마나 위험했는가와 고의성이 있었는가는 전혀 다른 영역의 일이야. 그러니까 내 판단을 의심하지 마라!”

“이런 씨…….”

오솔은 ‘네놈의 판단이 아니라 양심이 의심스럽다.’고 하려다 겨우 참았다. 방금 그 말까지 했다면 자칫 카드가 나올 수도 있었다. 대신 그는 이를 갈며 다짐했다.

‘그래. 고의적이지만 않으면 상관없다 이거지? 두 놈이 아주 쌍으로 열 받게 만드는군. 어디 두고 보자. 내가 [우연히] 저지른 반칙에 어떤 판정을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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