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66화 (66/213)

 # 66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66화

13장 맥주 파티

“흐음. 원래라면 4, 5라운드까지는 기존 선수들로 끌고 가려 했는데 말이지…….”

본래의 계획은 5라운드까지 주전 선수들을 투입하고, 오솔과 1.5군은 주중에 있을 UEFA 컵에 내보내는 것이었다. UEFA 컵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경기가 6라운드에 있었기 때문이다.

‘9월 23일. 바이에른 뮌헨과의 홈경기.’

그렇다. 6라운드 상대는 분데스리가 우승을 두고 치열하게 다퉈야 하는 상대이자 남과 북을 대표하는 라이벌 구단, FC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이 경기의 중요성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단순히 라이벌전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우승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일전이기 때문이다.

04/05 시즌 뮌헨의 성적은 34경기 24승 5무 5패였다. 이 중 2패가 작년에 준우승을 했던 샬케 04에게 당한 패배다. 즉, 뮌헨은 우승 경쟁자를 제외하면 사실상 지는 일이 없는 팀이란 소리였다. 분데스리가에서 우승을 노리는 팀이라면 바이에른을 상대로 무조건 승리해야 했다.

‘뮌헨을 상대로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써야 해.’

오솔의 회복력이 그렇게 좋다면 UEFA 컵에 출전시킨 이후 6라운드 경기에 조커로 투입시킬 수도 있었다.

‘잘하면 후반전에는 기습적으로 투 타워 전술을 써먹을 수도 있겠어.’

토마스 돌 감독은 2주 뒤에 있을 6라운드 바이에른 뮌헨전을 위해 모든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 * *

오솔은 4라운드에 있었던 헤르타 BSC 베를린전에 결장했다. UEFA 컵을 치른 지 3일 만에 열린 경기였기에 따로 휴식을 준 것이다.

함부르크 SV는 이날 경기에서도 2 대 1로 승리하며 시즌 시작을 4연승으로 끊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반 더 바르트의 침투와 반 바이텐의 헤딩슛이 골로 연결되었다.

이후 6일 만에 다시 열린 리그 5라운드에서는 후보 선수로 등록될 수 있었다. 주중에 열릴 UEFA 컵 2차전에 오솔을 선발로 쓰고자 했기 때문이다.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출장 기회는 꾸준히 받고 있으니까.’

4경기(교체 1) 3골 2도움.

비록 포칼과 UEFA 컵 위주의 출전이었으나 지금까지 경기력이나 기록이 상당히 좋았다. 팀 내에서도 조금씩 입지를 얻고 있었고, 팬들 사이에서도 슬슬 이름이 알려지고 있었다.

실제로 최근에는 타카하라에게 ‘초밥 폭탄’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것처럼 오솔에게도 별명을 하나 지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여론이 생겨나고 있었다.

덕분에 오솔은 북부 독일인들의 유머 감각이 얼마나 처참한 수준인지 엿볼 수 있었다. 끔찍하게도, 별명 후보라고 나온 것들이 ‘김치 나이트’나 ‘비빔밥 폭격기’ 같은 것들이었던 것이다.

‘안 돼! 김치 나이트라니, 그것만은 절대 안 돼!’

이에 오솔은 모르겐 포스트(함부르크의 지역신문)의 칼럼니스트, 데니스 쿤츠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발 자신을 라텔(Ratel, 벌꿀 오소리)이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아직은 SNS가 발달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언론을 통해 소통을 시도한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더 널리 알릴 수 있었으니 그리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삐이익!

그가 별명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경기가 시작됐다.

[함부르크 SV와 FC 샬케 04의 리그 5라운드 경기가 시작됩니다. 함부르크는 주전 선수들이 총출동했습니다. 골키퍼에 스테판 왓처, 포백에…… 함부르크는 이번에도 4-3-1-2 전술로 나왔습니다. 확실히 토마스 돌 감독은 하나의 전술만 고집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술이 유연하지 못하다는 건 확실히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선수들의 장점을 끌어올리기 좋은 전술을 쓸 경우에는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시면 포메이션만 그대로일 뿐, 매 경기 운영 방법이 다르다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포메이션은 선수들의 위치를 나타내는 그림일 뿐이었다.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성향을 보일지는 경기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었다.

일례로 함부르크의 경우 수비를 할 때는 4-3-3 대형-반 더 바르트가 역습을 준비, 투톱이 좌우로 벌어지면서 압박과 수비에 가담하는 형태-으로 선다.

하지만 공격에 들어가면 중원의 두 미드필더가 각각 공격과 수비를 위해 움직이면서 4-2-2-2 같은 형태로 변한다.

[이어서 샬케 04의 선발 명단입니다. 골키퍼에 프랑크 로스트. 오른쪽 수비로 하피냐, 중앙에 믈라덴 크르스타이치와 마르셀로 보르돈이, 그리고 왼쪽에 레반 코비아쉬빌리가 섭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크리스티안 폴센, 중원은 하밋 알틴톱과 파비안 에른스트가 책임집니다. 플레이메이킹은 링콘 선수가 맡았고, 전방에는 게랄트 아사모아 선수와 케빈 쿠라니 선수가 선발 출장했습니다.]

[샬케 04 역시 함부르크와 같은 전술을 들고 나왔습니다. 오늘 두 팀 다 중앙에 집중하는 전술을 들고 온 만큼 미드필더 싸움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할 것 같습니다.]

해설의 말대로 이번 경기는 중원을 지배하는 쪽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다. 보다 정확히는 반 더 바르트가 크리스티안 폴센을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그리고 라파엘 비키가 링콘을 얼마나 잘 막아내느냐에 따라 결정될 공산(公算)이 컸다.

[5라운드 샬케 04, 주중에 UEFA 컵 2차전, 그리고 6라운드 바이에른 뮌헨까지……. 함부르크 입장에서는 이 한 주가 굉장히 중요하겠습니다.]

[맞습니다. 시즌 초반부터 우승 경쟁자들을 몰아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분위기가 좋았으니까 이번 라운드, 그리고 다음 라운드도 기대해 봐야겠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반 더 바르트 선수와 크리스티안 폴센 선수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크리스티안 폴센은 경기 초반부터 ‘덴마크산 미친개’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모습을 선보였다. 반 더 바르트가 공만 잡았다 하면 눈빛이 돌변해서 몸통 박치기를 해댄 것이다. 덕분에 전반 10분도 지나기 전에 그 홀로 파울을 세 개째 적립하고 있었다.

‘살벌하네.’

오솔은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팀의 에이스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저런 놈이 90분 내내 쫓아다니면서 괴롭히는 날에는 꿈자리조차 뒤숭숭할 것이다. 덕분에 오늘은 반 더 바르트조차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링콘 공을 잡고 측면으로 돌아 나갑니다.]

[중앙은 물론이고 측면에서도 뛸 수 있는 선수거든요. 지금처럼 중앙에 밀집된 형태에서는 저렇게 빠져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아! 그러나 티모테 아투바와 라파엘 비키의 협력 수비에 막히고 맙니다.]

힘을 쓰지 못하는 건 샬케 04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양 팀은 전반전 30분이 넘어가자 중원 싸움을 포기하고 한 번에 길게 보내는 방식을 채택했다. 세르게이 바바레즈와 케빈 쿠라니라는 장신 공격수들을 믿고 공을 띄운 것이다.

[반 바이텐이 먼저 공을 따냅니다! 전방으로 길게 차는 볼라루즈!]

[샬케 04도 만만치 않아요. 크르스타이치 선수가 헤딩 경합에서 이기고, 공을 바깥으로 걷어냅니다.]

[전반전은 힘과 힘의 대결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그렇습니다. 참, 힘이라고 하니까 최근에 팀에 합류한 오솔 선수가 떠오르는군요.]

[하하. 젊음의 패기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선수죠?]

[네. 많은 팬들이 벌써부터 젊은 스타가 탄생할 것이라며 기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열아홉 살 생일을 맞이하기 전에 별명을 지어주자며 온라인에서 투표가 진행되고 있죠.]

해설이 삼천포로 빠진다는 것은 그만큼 경기에서 짚어줄 부분이 적다는 뜻이었다. 역시나 경기는 지지부진하더니 전반전은 그대로 끝이 났다.

오솔의 교체 지시가 떨어진 것은 후반전 20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오늘 어느 때보다 많이 뛴 바바레즈 대신해서 들어가게 되었던 것.

“크르스타이치를 조심해. 심판 모르게 팔꿈치를 잘 쓰는 놈이야. 괜히 말려들어서 흥분하지 말고, 최대한 냉정하게 판단해라.”

“네. 알았으니까 그만 들어가서 쉬세요, 할아버지.”

“이 녀석이……. 하하. 그래 알았다. 뒤를 부탁한다.”

심각하게 충고하던 바바레즈도 오솔의 넉살에 결국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토마스 돌 감독이 바바레즈를 안아주며 왜 웃었는지 물었다.

“담력이 대단하다 싶어서요. 아직 십 대라 그런지 무서운 게 없는 모양이에요.”

“그럼. 공격수라면 응당 그래야지.”

“정말…… 그 젊음이 부럽네요.”

“대신 자네는 다른 게 있지 않은가.”

바바레즈를 바라보는 감독의 두 눈에는 신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나이 때문에 활동량은 조금 부족했지만, 포스트플레이는 물론이고 경기 조율과 감각적인 패스까지 되는 전천후 공격수가 바바레즈였다. 게다가 골 감각도 좋아서 현재 반 더 바르트와 함께 가장 많은 골을 넣고 있었다.

‘팀 내 분위기까지 잡아주니 그야말로 세 사람 몫을 하는 셈이지.’

그러니 감독 입장에서는 예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젊어서 겁이 없는 게 아니라 날 때부터, 그리고 죽었다 살아나서도 겁이 없는 오솔은 바바레즈를 대신해서 전방으로 향했다.

‘이 녀석이 크르스타이치인가?’

믈라덴 크르스타이치는 눈이 크고 코가 뿔처럼 툭 튀어나온 사내였다.

그는 191㎝의 큰 키를 이용한 수비로 명성이 높았고, 어렸을 때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겪은 탓인지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성숙한 편이었다.

이제는 서른이 넘은지라 순발력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으나 아직까지도 분데스리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었다.

‘분명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국가대표 수비수, 그것도 수비진의 핵심이라고 했었지?’

구단에서 준 자료에 따르면 크르스타이치를 주축으로 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는 2006년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7조에서 조 1위를 달리고 있었다.

7조에는 스페인과 벨기에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막강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수비진은 예선전 기간 동안 단 1 실점-스페인의 라울이 넣은 골-만 허용한 상태였다.

‘확실히 만만치 않겠네.’

부리부리한 두 눈이 오솔을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평범한 18살 청년이었다면 충분히 겁을 먹을 법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솔이 누군가.

‘흐흐. 어디 눈알이 빠지도록 힘을 줘봐라. 내가 눈 하나 깜짝하나.’

오솔은 콧방귀와 함께 바짝 다가섰다. 크르스타이치는 만만치 않은 힘을 느끼고 콧김을 거세게 내뿜었다. 그도 제대로 시동이 걸린 모양이었다.

“오솔!”

마침 그에게 공이 올라왔다.

오솔은 다리에 힘을 주고 상대를 밀어내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갑자기 등 뒤로 수비수의 팔이 슬쩍 얹어지더니 반칙이 아닌가 싶을 타이밍에 슬쩍 빠져나갔다.

덕분에 오솔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헤딩을 놓치고 말았다. 공이 조금 길긴 했지만 평소였다면 수비수를 밀어내고 거뜬히 따냈을 만한 공이었다.

이번 경합은 크르스타이치의 승리였다.

‘반칙과 정당한 경합의 경계선을 교묘히 오가는 수비를 하는구나. 역시…… 베테랑이라 이건가?’

크르스타이치 역시 힘 대 힘의 싸움에는 이골이 난 선수였다. 힘은 반 바이텐보다 적었지만 수비수로서의 경험은 오히려 더 많았다.

힘과 기술의 조화가 절묘하게 이루어진 수비수인 탓에 어찌 보면 반 바이텐보다 더 상대하기 껄끄러웠다.

‘나에게 힘과 높이밖에 없었다면 그랬겠지.’

오솔의 속도는 이미 입단 초기와 달라도 너무 달라져 있었다. 입단하기 전만 하더라도 페널티를 포함한 주력은 58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페널티가 있음에도 72에 이르렀다.

겨우 두 달 사이에 무려 14나 오른 것이다. 순간 속도도 같이 올랐기에 체감상으로는 거의 1.5배 정도 더 빨라졌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상대 팀보다는 동료들이 먼저 눈치챌 수밖에 없었고, 중원의 사령관으로서 팀원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파악해야 하는 반 더 바르트는 누구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고 있었다.

마침 반 더 바르트가 크리스티안 폴센이 붙기 전에 공을 받았다.

‘라파엘!’

반 더 바르트와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오솔이 욕심으로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수비 뒤 공간으로 부드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파아앙!

반 더 바르트의 패스는 오솔이 함정에 빠지기 직전에 이루어졌고, 아슬아슬하게 오프사이드를 피할 수 있었다.

타다다닷!

오솔의 두 다리가 거칠게 교차했다.

적진을 파고들면서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긴, 망설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했다는 건 곧 수비진 모두가 그를 놓쳤다는 걸 뜻했다.

지금 그의 앞은 그야말로 푸른 들판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