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개과천선 스트라이커 65화
이후 전반전 남은 시간은 온전히 함부르크만을 위한 것이 되었다.
오솔의 머리를 향해 날아온 공은 타카하라나 반 더 바르트에게 흘러갔고,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수비진은 이들을 막느라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또다시 공을 따내는 오솔! 공은 그대로 반 더 바르트에게 향합니다.]
삑!
[아, 반칙이죠? 치리아코 스포르자 선수의 태클이 조금 거칠었습니다.]
[네. 방금은 반 더 바르트 선수가 완전히 빠져나간 후에 걸었습니다. 발뒤꿈치를 살짝 찼네요.]
반 더 바르트의 플레이가 힘을 발휘할수록 이를 막아야 하는 스포르자의 심정은 처참해졌다.
벌써 두 번이나 마크에 실패해서 실점한 상태.
오늘 패배의 원인은 그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스포르자는 발을 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반 더 바르트를 보면서도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저 노란색 카드에 슬쩍 손을 들어 보인 게 다였다.
‘제기랄. 처음부터 거칠게 나갔어야 했는데.’
스포르자는 독이 잔뜩 올라 있었다. 한 번 더 노란 카드가 나오면 퇴장임에도 몸싸움이 이전보다 더 거칠어졌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했다.
발목 부상은 물론이고 자잘한 부상을 항상 달고 사는 반 더 바르트 입장에서는 상당히 껄끄러운 플레이였다.
‘작정을 하고 달려드는구나. 안 되겠다. 남은 시간은 패스 위주로 풀어나가야지.’
추가적인 돌파는 상대를 더 자극할 위험이 있었다. 이럴 때는 패스를 돌리다가 틈이 보였을 때만 찌를 필요가 있었다.
반 더 바르트가 몸을 사리기 시작하자 함부르크의 공격도 차츰 사그라들었다. 어차피 2점 차로 이기는 상황이다.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덕분에 후반전 초반은 카이저슬라우테른의 공격 일변도로 흘러갔다. 마음이 더 급한 것은 아무래도 지고 있는 쪽일 수밖에 없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이 수비 라인을 바짝 끌어 올립니다.]
[굉장히 공격적인 움직임이네요. 반 더 바르트 선수가 주춤한 틈을 타서 역전을 해보겠다는 생각 같습니다.]
[아, 이에 맞서서 토마스 돌 감독은 나오히로 타카하라를 빼고 에밀 음펜자 선수를 넣어주네요.]
이는 아주 정확한 판단이었다. 라인을 위로 올린 상대에게 발이 빠른 음펜자 같은 공격수는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오솔은 벤치의 지시가 없었음에도 헤딩을 곧장 상대 뒤 공간으로 연결했다. 교체만으로도 감독의 의중을 읽은 것이다.
‘지금처럼 반 더 바르트가 집중 견제를 당하고 있을 때는 다른 선수를 이용하는 편이 더 낫겠지.’
에밀 음펜자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프로인 이상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팀플레이가 우선이었다. 이것도 역시 바바레즈에게 배운 태도였다.
[오솔의 백헤딩! 뻥 뚫린 공간으로 음펜자가 달려 들어갑니다!]
[수비수도 한 명밖에 없어요! 절호의 찬스입니다.]
음펜자는 적당히 달리다가 페널티 에어리어에 들어서기 직전에 슈팅 자세를 취했다. 먼 거리에서 강슛을 날리는 것은 그가 좋아하는 플레이 중 하나였다.
뻐어엉!
[아! 살짝 높았습니다!]
[골키퍼는 잘 넘겼는데, 힘이 너무 셌는지 골대까지 넘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음펜자는 잔뜩 인상을 쓰며 한숨을 내쉬었다. 득점 감각이 떨어진 탓에 가장 좋아하고, 또 잘하는 플레이조차 뜻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도움이 하나 더 생기나 싶었는데 아쉽네.’
멋진 패스를 보내준 오솔이었으나, 에밀 음펜자는 고맙다는 말도 그 흔한 따봉도 하나 없었다. 방금 놓친 골만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오솔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으나 막상 이런 취급을 받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전생에 자신 역시 저랬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더 더러웠다.
‘조심하자. 이번에는 저렇게 되면 안 되잖아.’
어쨌든 에밀 음펜자의 돌파가 아예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수비 뒤 공간을 놔뒀다간 언제든지 방금과도 같은 돌파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서는 다시 라인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토마스 돌 감독의 의중이 제대로 먹혀들어 갔다.
[오솔, 다시 공중 볼을 따냅니다. 이번 경기만 벌써 8번째죠?]
[그렇습니다. 이 선수,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이 리그에서 충분히 통한다는 걸 증명해 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공이 반 더 바르트에게 향합니다.]
상대 라인이 뒤로 간 덕분에 1.5선에 공간이 생겼다. 다시금 반 더 바르트가 활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스포르자가 재빨리 따라붙었으나 반 더 바르트는 수비수 한 명 정도는 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내 패스에 익숙해졌겠지?’
후반전 25분 내내 패스 위주의 플레이만 펼친 반 더 바르트가 마침내 칼을 꺼내 들었다. 공을 받자마자 마르세유 턴으로 옆에서 따라붙는 스포르자를 따돌린 것이다. 스포르자는 비틀거리면서 뒤늦게 다리를 뻗었고, 그대로 반 더 바르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삐이익!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반칙에 곧장 경고가 주어졌다.
[이렇게 되면 스포르자 선수 퇴장입니다.]
[큰일이네요. 따라가기도 바쁜데 여기서 한 명이 퇴장당하다니요.]
[느린 그림으로 다시 보시죠. 아! 상대에게 완전히 속아버렸습니다. 반 더 바르트 선수가 순간적으로 돌아서자 완전히 놓쳐 버렸어요.]
[본인에게 이미 경고가 한 장 있다는 사실도 잊은 모양입니다.]
결국 상대 팀은 남은 시간을 11 대 10으로 싸우게 되었다. 게다가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프리킥 찬스가 남아 있었다.
[반 더 바르트 선수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왼발로 차기 아주 좋은 위치죠?]
[메디 마다비키아 선수가 찰 수도 있습니다. 반 바이텐 선수나 볼라루즈, 오솔 선수 등 키가 큰 선수가 상당히 많거든요.]
[말씀드리는 순간 찹니다. 반 더 바르트!]
반 더 바르트의 오른발이 땅을 힘차게 내디뎠다.
뻐엉!
공은 수비벽을 가볍게 넘으며 오른쪽 골대 모서리에 처박혔다. 소위 야신 존이라고 하는 곳으로 파고든 것이다.
[고오올! 반 더 바르트 선수의 프리킥 득점입니다! 3 대 0으로 달아나는 함부르크입니다!]
[본인에게 함부로 반칙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주네요.]
[득점 직후, 교체가 있습니다. 오늘 종횡무진 활약한 반 더 바르트 선수가 나가고, 세르게이 바바레즈 선수가 들어옵니다.]
토마스 돌 감독은 과열되는 경기 양상을 보고 반 더 바르트를 빼는 결정을 했다. 팀의 에이스나 다름없는 선수이니만큼 세심하게 관리하려는 것이다.
[홈 관중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놀랍군요. 이 암스테르담에서 온 스타플레이어는 단 두 경기 만에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듯합니다.]
반 더 바르트는 팬들 입장에서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선수였다.
골이면 골, 도움이면 도움, 못하는 게 없는 데다가 순간순간 보이는 클래스가 다른 플레이는 기존의 함부르크 선수들에게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기껏 반 더 바르트가 나갔으나 한 사람이 부족한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서는 반격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자칫하다가는 오히려 추가 실점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상대 팀 감독은 수비를 굳힌 채 이대로 경기를 마치기로 했다.
함부르크 역시 완승을 거둔 상황에서 더는 무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딱 한 사람을 제외하면 말이다.
“방금은 이 앞으로 패스를 줬어야지. 이 머저리야!”
지금 오솔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음펜자가 그 주인공이었다.
“이런 답답한 놈들! 한 명이 적은 상대에게 골을 넣는 게 뭐가 어렵다고…….”
모두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뛰는 상황에서 그 혼자만 골을 넣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오솔은 굳이 대꾸할 필요를 못 느꼈다. 시의 적절하게 바바레즈가 끼어들어 음펜자를 막아선 덕분이었다.
“물러서, 음펜자! 한 번만 더 동료에게 소리를 지르면 그땐 가만두지 않겠어!”
“쳇!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
‘조급해하는군. 성적이 안 좋아서 그런가? 아니면 스스로도 컨디션에 문제가 있다는 게 느껴져서?’
에밀 음펜자의 지금까지의 성적은 11경기 3골이었다. 객관적인 수치만 따져도 상황이 좋지 않은데 거기에 상대했던 팀들이 인터토토컵에서 만난 약팀들이라는 게 더 문제였다.
처참한 수준까지 떨어진 득점 감각.
팀 내의 입지가 흔들린 것과 신체적, 정신적으로 준비가 덜 된 상황이 이런 결과를 몰고 왔다고 할 수 있었다.
오솔은 아직까지 경기 수도 많지 않았고, 운 좋게 데뷔전에 골도 넣어서 문제가 될 게 없었다. 그러나 음펜자는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장점으로는 결국 쓰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오솔이 스피드 훈련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도 제공권 외에 또 다른 무기를 갖기 위함이었다.
이후 에밀 음펜자의 투덜거림과 미드필더에서의 공방(攻防), 그리고 몇 번의 중거리 슛이 오가자 슬슬 경기가 끝날 시간이 되었다.
삑, 삑. 삐이익!
[네. 리그 2라운드가 끝이 납니다. 함부르크 SV가 카이저슬라우테른을 3 대 0으로 기분 좋게 꺾고 리그 선두가 됩니다.]
[아직은 큰 의미 없는 선두자리지만 오늘 보여준 경기력, 그리고 지난 1라운드의 경기력을 본다면 리그 후반기까지 이 자리를 지킬 수도 있습니다.]
[과연, 토마스 돌 감독이 올 시즌 목표는 우승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닐 정도로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 * *
함부르크 SV는 이어지는 9월도 경기로 가득했다.
리그 경기만 다섯 경기에 UEFA 컵 1회전 두 경기가 연달아 있었다.
리그 3라운드에서는 기존의 주전 선수들이 출전해서 볼프스부르크를 상대로 2 대 0으로 가볍게 이겼고, UEFA 컵에서는 FC 코펜하겐을 만나 1 대 1 동점을 기록했다.
오솔은 UEFA 컵 1회전 1차전에 선발로 출전했으나 이번에는 아쉽게도 득점 포인트를 올릴 수 없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경기가 끝나고 레벨이 하나 올랐다는 점이다. 그는 이렇게 오른 능력치를 모두 주력에 투자했다.
-주력 85(15%↓)
주력이 80대에 이르자 포인트를 하나 투자할 때마다 페널티가 0.8%씩 감소했다. 덕분에 페널티는 빠르게 줄어 이제 15%까지 떨어져 있었다.
‘이것도 90까지 올리면 더는 못 올리겠지? 좋아. 그 후에는 순간 속도를 올리면 되겠다.’
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기회가 주어진 덕분에 예상보다 성장이 더 빨랐다. 체력 코치가 2주에 한 번씩 오솔의 기록지를 바꿔야 할 정도였다.
“맙소사 달리기 속도가 또 올랐잖아? 오솔! 설마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마르쿠스 귄터는 오솔이 어디서 몰래 주사라도 맞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게 이는 스테로이드라도 맞지 않는 한 불가능한 수준의 성장 속도였다. 오솔은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다.
“비행으로 쌓였던 피로가 이제야 풀렸나 봐요.”
“그건 벌써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이잖아.”
“아니면 최근에 하는 훈련이 성과가 있었던 거겠죠.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로 급격한 변화는 말이 안 되는데…….”
마르쿠스 귄터는 혹시나 해서 감독과 오솔의 동의하에 소변과 채혈검사를 진행했고,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을 수 있었다. 아니, 의사가 한마디 덧붙이긴 했다.
“엄청 건강하네요. 여기 적혈구 수 좀 보세요. 이 사람 어디서 힐링 팩터라도 맞고 온 거 아닙니까?”
“그런 주사도 있습니까?”
“아, 만화 얘기입니다. 왜 만화에 보면 초(超) 재생 능력을 지닌 캐릭터들 있잖아요. 오솔 선수 같은 경우는 초능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들보다 회복력, 재생력 등이 월등합니다.”
“팀 닥터한테 비슷한 얘기를 듣긴 했는데, 그 정도입니까?”
“네. 아마 일반인보다 30에서 40퍼센트 정도 더 뛰어날 겁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괴물이었다.
“그럼 혹시…… 남들의 절반만 휴식해도 원래의 체력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그건 좀 힘들겠죠?”
“이론상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권해 드리고 싶진 않네요. 사람 몸이라는 게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라서 조심해야 합니다.”
마르쿠스 귄터는 이를 토마스 돌 감독에게 보고했다.
“아무튼 약물이 없다니 다행이군. 그럼 훈련 성과가 잘 나온 건 단순히 회복력이 좋기 때문인가?”
“아직 성장기라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곧 만 19살이니, 몸이 더 클 여지가 있긴 하죠.”
어린 선수의 무서운 점이 이런 성장이었다. 십 대의 1년은 이십 대~삼십 대의 1년과 같은 시간으로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