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지도대련 >
성현이 제안한 건 대련이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대련을 해 보고, 그가 느낀 각자의 장단점 및 실력 향상에 맞는 조언을 이야기해 주겠다 한 것이다.
단순히 기본기를 봐주는 것보다는 훨씬 더 도움이 되는 제안이었기에 2학년 트리오도 수긍했다.
호구 착용을 마친 성현이 자리에서 느릿하게 일어나며 물었다.
“그럼, 먼저 하실 분은···.”
“나! 내가 먼저 할게!”
앞으로 불쑥 나선 대현이 말했다.
열정적인 성격만큼이나 적극적인 태도였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성현이 대현과 약간 거리를 벌려 섰다.
신나서 성현을 마주하듯 선 대현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대련 방식은 어떻게 할 거냐?”
“제가 끝났다고 말할 때까지, 계속입니다.”
“계속···?”
“네, 계속입니다.”
살짝 식은땀을 흘리며 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저 ‘계속’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불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 하지 말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애초에 가르침을 부탁한 게 그들이었으니까.
숨을 크게 들이쉰 대현이 눈을 빛냈다.
“좋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곧 죽도를 들어 올려 중단세를 취한 두 사람.
검도 유망주 대회 결승전에서 본─S 방송국 중계를 통해 봤다─상단세를 떠올린 대현이었지만, 곧 그것을 떨쳐 냈다.
당장 중단세를 상대로도 이길 수 있을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상단세는 무슨 놈의 상단세란 말인가.
하물며, 서로 실력을 겨루기 위한 대련도 아니고, 배움을 청해서 하는 대련인데.
‘애초에 상단세면 내가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 장단점이고 나발이고 못 보겠지.’
성현이 취한 겨눔세에 대한 상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대현은 다시 진지하게 집중했고, 그런 그를 향해 성현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작하겠습니다.”
“어, 그래. 알겠-”
대현이 내뱉던 대답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한순간 변해 버린 성현의 분위기가, 그의 입을 강제로 다물게 만들어 버린 까닭이다.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할 만큼 묵직하면서 위력적인 위압감!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
‘미친···.’
진짜 강한 이는 겨눔세만 봐도 알 수 있다.
중단세를 취한 성현을 본 대현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비로소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중단을 취하고 있을 뿐인데도, 그는 성현에게 기세에서부터 한없이 밀리고 있었으니까.
가만히 선 성현의 모습이 그에게는 마치 거대한 괴물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만큼 그가 성현에게 철저히 압도당했다는 뜻이리라.‘위압감이 진짜, 장난이 아니네···.’
대현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는 성현과 영준의 대련을 직접 보았고, 그때 중단세가 참 위압감 넘친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 몸으로 직접 느끼는 건 하늘과 땅 차이인 법.
진심으로 중단세를 취한 성현의 위압감은 어지간해서는 위축되지 않는 대현조차 손발이 굳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곧, 대현은 이를 악물었다.
‘겁먹지 말자. 어차피, 져도 상관 없는 대련이잖아.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 주면 돼.’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안해진 듯했다.
호흡을 가다듬던 대현의 눈이 번쩍 빛났다.
일족일도의 거리까지 다가갔을 때, 돌연 성현의 겨눔세에서 빈틈이 보였기 때문이다.
제대로 보일 듯 말 듯 흐릿하게.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땅을 박찼다.
“이야아압-!”
대현이 거친 기부림을 내지르며 나아갔다.
온몸을 내던지듯이, 그러나 분명하게 균형잡힌 움직임으로 죽도를 최단 거리로 휘두른 것이다.
노리는 것은 성현의 손목!
순간, 대현의 눈에 기쁨의 빛이 어렸다.
이 정도면 공격이 성공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이른 축배였으니···.
스윽-
망부석처럼 서 있던 성현이 움직인 것은 대현의 죽도가 그의 오른손목을 때리기 직전이었다.
그는 가볍게 물러나며 손목의 회전을 살려 죽도를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
손목을 노리던 대현의 죽도는 그가 들어 올린 죽도 우측에 ‘스쳐졌고’, 그로 인해 방향이 틀어지며 타돌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읏!”
‘일부러 틈을 드러낸 거였구나···!’
뒤늦게 깨달아봤자, 이미 늦었다.
기검체 일치는 이미 흐트러져 있는 상황이었기에.
설령 억지로 몸을 가눠 오른손목을 격자한다 한들, 점수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주도권은 완전히 넘어가 버렸고, 이제 성현이 결정해야 할 건 어디를 치느냐였다.
균형을 잃으며 빈틈이 분명하게 보였기에.
손목을 치느냐, 아니면 머리를 치느냐였지만─
“······.”
정작 성현이 택한 건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빈틈이 훤히 드러난 대현에게 격자를 시도하지 않고, 다시 일족일도의 거리까지 물러선 거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의 실력을 뽐내는 게 아니라, 대현의 장단점을 파악하기 위한 대련이었으니까.
굳이 완벽한 기회를 잡았다 하여 격자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후우우-”
성현이 뒤로 물러난 사이, 자세를 추스른 대현이 차분하게 호흡을 골랐다.
그래도 한 번 검을 나눴기 때문일까?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기분이었다.
게다가 비록 상대가 드러낸 빈틈이기는 해도, 그걸 잘 포착하고 노리지 않았던가.
잘만 하면 1점쯤은 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슬그머니 아른거렸다···.
‘한 방, 한 방은 먹이자···!’
그는 재차 기부림을 내지르며 타돌을 시도했다.
그렇게 공방을 주고받기를 몇십여 차례─물론, 그 와중에 대현이 성현에게 성공한 격자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대현의 타돌을 받아낸 성현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여기까지 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 이제 끝이야?”
“네, 끝입니다.”
“후아아-···.”
대련 종료 선언을 들은 대현이 참았던 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실제 경기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대련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성현과의 대련이 그에게 그만큼 어마어마한 피로감을 선사한 까닭이기도 했다.
호면을 벗고 드러난 대현의 얼굴은 그야말로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마 그의 몸도 온통 땀에 절어 있으리라.
슬쩍 그에게 다가온 윤호가 물었다.
“그렇게 힘드냐?”
“와, 씨. 장난 아냐. 그냥 대련보다 몇 배는 더 힘든 거 같아. 진짜 마지막에는 다리에 힘 풀려 넘어질 뻔했다.”
“그런 거 치곤, 성현이는 힘든 기색이 전혀 안 보이는데?”
“그래서 쟤가 괴물인 거 아닐까.”
대현은 질린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또 온갖 기부림을 내지르며 대련을 치른 그와는 달리, 성현은 그저 가볍게 그를 갖고 놀 듯이 제압해 버렸으니까.
그게 한두 번이 아니라 수십여 차례나 계속해서 이어지자, 그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절대적인 간극을.
감히 넘어서려 시도하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는 실력의 격차를 말이다.
“그 정도란 말이지.”
윤호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일어섰다.
대현의 말을 들으니 몸이 근질거린 까닭이다.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저 괴물의 실력을 겪어 보고 싶었다.
“다음은 윤호 선배가 하실 건가요?”
“맞아. 참, 나도 형이라 불러라.”
“네, 윤호 형.”
“이제 내 차례긴 한데, 바로 해도 괜찮겠냐? 힘들면 좀 쉬어도 돼.”
“아뇨, 괜찮습니다.”
성현이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분명 대현과 똑같은 시간 동안 대련을 했음에도, 그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거의 지치지 않은 상태였다.
모두 불패의 달인이라 불리던 노인 시절, 그가 검도를 계속하기 위해 몸에 익힌 요령 덕분이었다.
언제나 최소한의 움직임과 최저한의 힘으로 최적의 방어를 펼치니, 당연하게도 체력이 크게 소모될 리가 없는 것이다.
‘진짜 터무니없는 괴물이네.’
그것을 모르는 윤호에게는 성현이 실력만이 아니라 체력 또한 괴물 같은 수준으로 보였다.
거의 4킬로그램에 가까운 무게를 몸에 달고 쉬지 않고 움직였는데 호흡 하나 거칠어지지 않았으니 그렇게 보일 만도 했다.
“시작하시죠.”
“그래.”
짧게 대답한 윤호 또한 성현의 변화에 순간적으로 압도당했다.
분명 대현이 당하는 걸 보았고, 그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저도 모르게 몸이 굳어지고 만 것이다.
진심이 된 성현에게는 그만한 위압감이 있었다.
일개 학생 선수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면서 두려운 존재감이.
아무래도 기위(氣位)가 남다른 까닭이다.
세월로만 무려 오십 년-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정신 수양과 신체 단련, 기술적 연마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 품위는 실로 숭고하기까지 했다.
단순히 겨눔세에서뿐만 아니라, 손짓 하나 발짓 하나에서부터 내면에 견고히 쌓인 적공(積功)이 겉으로 드러났다는 이야기다.
‘진정하자. 이 정도는 예상했잖아.’
“후우우-”
하지만 두려움은 알고 나면 옅어지는 법.
이미 앞선 대련을 보았던 윤호는 금방 자신을 옥죄어 오는 압박감을 털어낼 수 있었다.
차갑게 눈을 빛낸 그가 공세를 시도했다.
칼끝에서부터 날카롭게 찔러 들어, 성현의 균형을 무너뜨리려 한 것이다.
타악! 탁! 타탁!
죽도의 선혁과 선혁이 얽히며 부딪쳤다.
그러나 공세가 이어질수록, 식은땀을 흘리는 건 오히려 먼저 시작한 윤호였다.
도저히 상대가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쳐냈다가, 얽어매고, 감기도 해 봤는데도 성현은 마치 버드나무처럼 흔들리며 모두 흘려 버렸다.
오죽했으면, 아무것도 없는 물에다 대고 죽도를 움직이고 있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이게 가능하다고?!’
윤호는 속으로 비명 같은 외침을 내질렀다.
나름대로 주특기로 생각하고, 자신 있던 공세가 완전히 막혀 버렸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렇다고 성현이 마냥 유순하기만 하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었다.
타악-!
“읏?!”
지금처럼, 돌연 박차고 나오는 공세에는 머리카락이 쭈뼛 설 만큼 무시무시한 힘이 담겨 있었으니.
그야말고 부드러움과 강함이라는 상반된 면모가 한꺼번에 담겨 있는 공세였다.
공세는 공격을 시작하는 시작점이다.
그것이 무엇을 하기도 전에 무너지니 윤호의 공격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본인도 그것을 알고 타돌을 시도해 보았지만, 어설프게 하는 공격이 성현에게 먹힐 리 만무.
‘그렇다면 차라리-’
윤호의 눈빛이 변한 건 두 차례의 타돌이 완벽하게 막힌 뒤였다.
차분하게 호흡을 고른 그가 선택한 건, 오히려 공세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었다.
자신의 장점을 밀고 나가기로 택한 것이다.
그게 막혀서 무너질지언정, 차라리 그와 함께 죽기를 택했다고 봐도 좋았다.
“우랴아아앗-!”
기부림과 함께 마치 두 마리 용이 춤추듯 죽도와 죽도가 서로를 얽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호의 도복이 땀으로 완전히 젖어 들었을 무렵.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성현이 자연스레 죽도를 거두며 물러섰다.
‘감는 기술’에 의해 죽도가 날아가기 직전까지 갔던 윤호가 크게 숨을 토하며 물러났다.
그는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대현의 옆으로 가서 주르륵 무너져내렸다.
악력을 지나치게 쓴 탓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호면을 풀어내고 드러난 그의 얼굴은 그야말로 땀에 찌들어 있었다.
호면 아래에 썼던 면수건이 아예 머리에 달라붙어 있다시피 했으니 말 다 했다.
“흐어어···.”
“거 봐, 내가 뭐랬냐. 진짜 힘들다니까.”
“진짜, 괴물이다- 그렇게밖에 표현 못 하겠어.”
“인정. 저게 진짜배기 천재라는 거겠지.”
대현이 옅게 웃으며 대꾸했다.
어쩐지 체념이 묻어나는 말에도 윤호는 도저히 반박할 수 없었다.
반박하고 싶지도 않았다.
곧바로 영준과 대련을 이어 나가는 성현을 보며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도리가 없었으니까.
잠깐의 침묵 이후, 먼저 입을 연 건 대현이었다.
“야, 윤호야.”
“왜?”
“솔직히 이번에 단체전 우승 못 하면 그냥 다 우리 잘못이라고 봐도 되는 거 아니냐?”
“···쟤 데리고 우승 못 했다는 건데, 백 퍼센트 우리 잘못이지.”
“···하, 진짜 이 악물고 열심히 해야겠다.”
“···그러게.”
대현과 윤호가 다시금 각오를 다지는 사이.
성현과 대련하던 영준이 비틀거리며 그들 곁으로 다가와, 이내 아무렇게나 주저 앉았다.
호면을 벗은 그의 얼굴도 역시나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어찌나 땀을 많이 흘렸는지, 심지어 눈 뜨기조차 버거워 보일 지경이었다.
“진짜, 개힘들어···.”
거의 드러눕듯이 한 영준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그것이었다.
대현과 윤호 두 사람은 그런 영준을 보며 킬킬거렸다.
2학년들 중에서는 제일 잘한다며 큰형 아니냐고 했던 그도 결국 성현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걸 몸소 보여 주고 있었기에.
그런 그들을 향해 성현이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아무래도 세 명을 연속으로 상대하는 만큼 제법 지친 탓이리라.
물론, 땀에 쩔어 버린 세 명에 비하면 아예 뽀송뽀송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지만 말이다.
“고생하셨어요, 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