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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167화 (167/252)

광고 천재 명도혁 167화

계 탔다.

이럴 때 한국 아줌마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관객들은 이게 웬 떡이냐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피에르가 모습을 드러내다니. 그것도 작은 동양에서 온 광고대행사의 시사회이자 세미나를 들은 직후였다.

게다가 명도혁 대표에게 질문할 것이 있다고 대담까지 참여한단다.

외신이며 관객, 심지어 칸 광고제의 주최 측 관계자까지 죄다 몰려들어 세미나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사회자가 고무된 목소리로 피에르에게 물었다.

“어떤 심경의 변화로 얼굴을 공개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칩거하시기로 유명하신 분인데 말입니다.”

“귀찮아서 세상이랑 말을 섞지 않았을 뿐이지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번 칸 광고제에는 이상하게 관심이 가서 여행 중에 돌아왔었죠. 그리고 귀향길에서 한 청년을 만났고요.”

“어! 그럼 그 청년이 바로?”

“맞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지만 칸으로 오는 길에 우연히 명도혁 대표와 만났습니다.”

비행기에서의 일과 방금 노미네이트 광고를 소개하는 도혁과의 인연을 설명하며 피에르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폐쇄적인 사람이에요. 모두 알다시피 완고하고 확고한 세계를 선보이는 크리에이터입니다.”

“그래서 더 놀랍고 신기해하는 중이에요. 아마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같은 느낌이실 텐데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도혁이 사회자의 말에 동의했다.

피에르가 비행기에서와는 전혀 다른 온도로 도혁을 바라보았다.

“비행기에서 오는 내내 평소처럼 틱틱 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자리 앉은 젊은이가 자신만만하게 툭 대꾸하는 겁니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동년배 늙은이처럼 말이죠. 예전 같으면 호통을 치고 지랄을 해댔을 텐데 이상하게 관심이 갔습니다. 자꾸 시선을 머물게 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친굽니다.”

“마케터의 흡입력이라고 해두죠.”

“바로 이런 것 말입니다. 이 나이에 보일 수 없는 여유, 당당한 자신감에 어디까지 만들었는지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오늘 강연에 참가했습니다만.”

말을 끊고 피에르가 마이크를 다잡았다.

“제가 많이 늙었나 봅니다. 이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뉴제너레이션, 제3세계와 맞닿은 뉴 웨이브의 길목에 와 있음을 오늘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늘 대담에 참가하겠다고 한 겁니다.”

“별말씀을요. 세계 크리에이티브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계신 분인데요. 진심으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해먹었지, 뭐. 오늘 그만둘까, 내일 은퇴할까 매일 고민하고 있어요.”

한국 나이로 환갑이 다 되어가는 피에르였다.

민감한 감각의 날을 곤두세워야 하는 광고인에게는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제법 지났다고 볼 수도 있었다.

적어도 스스로는 나이의 한계를 절감할 때일 것이다.

때마침 피에르를 소개하는 영상과 그의 광고가 대형 스크린을 통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던 도혁이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피에르에게 말을 던졌다.

“여기 피에르의 광고, 우리 회사 신입이 만든 것 같은데요?”

“아, 저기 명도혁 대표님, 그 말씀은 조금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당황한 사회자가 어쩔 줄 모르며 도혁을 말렸다.

멀찌감치 주최 측의 피디가 양손을 엇갈리며 엑스를 만들어 보였다.

놀란 제작진에게서 피에르에게 시선을 옮기며 도혁이 부연했다.

“누가 이 광고를 만든 분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연륜이 느껴지는 건 단호하고 분명한 메시지, 그리고 확신에 찬 컨셉뿐입니다. 비주얼과 감각에 있어서는 결코 젊은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오호, 명 대표가 데리고 있는 젊은이들 감각이 후진 건 아니구요?”

역시 까칠한 본성은 버릴 수가 없나 보다. 이 어르신이 칭찬을 해도 또 이러시네.

도혁이 안경 위로 눈을 치뜨며 찌푸리는 피에르에게 힘주어 강조했다.

“우리 회사 모든 직원은 인턴이든 신입이든 결코 후지지 않습니다. DW애드의 수준은 오늘 저녁 있을 시상식에서 밝혀지겠죠.”

“역시, 이런 점이 마음에 든다니까! 하하.”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피에르의 눈빛이 호기심에 반짝였다.

그건 관객들과 주최 측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회자의 기대에 찬 음성이 해변을 울렸다.

“여러분 동양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칸 라이언즈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할 수 있을지 잠시 후 있을 시상식에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 * *

레드 카펫을 밟는 도혁의 뒤를 직원들이 따랐다.

평소 장난기 넘치는 모습과 달리 약간은 굳은 표정에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엄청난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메인 스타디움의 문을 열어젖히자 감탄이 흘러나왔다.

“칸은 끊임없이 발전하는구나. 예전에 왔을 때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야.”

“태오 국장님은 전에 광고제 와본 적이 있다고 했었죠? 그것이 칸이 세계 최고 광고제로 자리 잡은 힘이 아닐까요?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열정이요.”

회귀 전까지도 칸 광고제의 입지는 공고했다.

칸 광고제는 스토리텔링에 기반한 혁신적 크리에이티브로 해가 지날수록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압도적 규모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광고제였지만 현재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시도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와, 영화제 못지않게 화려하네요.”

“칸 영화제 끝나고 바로 시작하니까. 혹시 칸 광고제의 기원을 알아?”

강태오의 말에 도무진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럼요! 칸 영화제 관계자들이 영화 앞에 붙는 광고 필름 제작자들에게 상을 수여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그게 칸 광고제의 기원이 됐잖아요.”

“올~ 우리 무진이 영어 잘 읽네? 직독 직해?”

강태오가 광고제 홍보물을 열심히 읽어 내린 도무진을 칭찬했다.

조금 긴장이 풀리고 자리에 앉자 더 실감이 났다.

모두 시상식장을 두리번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광고계와 각계각층의 유명인이 많은 데다 국제 시상식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현실에 직원들 모두 설레고 있었다.

도혁은 한수철을 보며 약간의 아쉬움을 표했다.

“한수철 팀 작품도 좋았는데 노미네이트를 놓쳐서 유감이야. 반응 좋았을 텐데.”

“할 수 없었잖아. 완성이 안 됐는걸.”

한수철이 괜찮다고 하면서도 씁씁히 웃었다.

한수철 팀이 사내 PT에서 제출했던 핫초콜릿 광고는 때마침 국내 초콜릿 업체에서 경쟁 PT가 들어오는 바람에 팔아버렸다.

칸 광고제 출품을 염두하며 열심히 제작했지만 광고주와 컨셉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일정이 늘어져 아직 CF 촬영조차 들어가지 못했다.

기존 한수철팀이 만든 광고에서 코코아가 박힌 빨대를 우유에 꽂아 마시는 제품까지 제안하면서 프로모션까지 더해졌다.

일이 커지는 바람에 광고제 출품일까지 일정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아쉽지만 다음번에 차현우 선배와 미국 시장을 노려보자. 분명히 좋은 성과 있을 거야.”

“그래도 아쉽기는 하네. 아, 초콜릿에 빨대는 괜히 꽂자고 해가지고.”

“그거 매출 엄청 터질 거야. 광고주가 한수철 업고 춤춘다고 할 거다. 광고제는 처음이 힘들지 두 번은 훨씬 수월하니까 꼭 클리오 노려보자고.

“오케이. 그럽시다요. 어! 시작한다.”

한수철이 툭 꺼진 조명을 가리켰다.

세련된 피아노 라인과 브라스가 섞인 음악이 잔잔히 흐르고 화면 정면에서 올해를 빛낸 광고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을 떼기 힘든 다양한 캠페인의 향연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 후우, 객석에서 연신 비슷한 탄성이 터졌다. 어떤 장면에서는 함께 웃고 또 그러다가 한숨짓고.

각기 출품한 나라도 광고인의 연령도 브랜드의 성향도 모두 달랐지만, 잠깐 들여다봐도 척 메시지를 알 수 있는 좋은 광고들이 연이어 펼쳐졌다.

DW애드 직원들도 정면의 광고들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광고를 괜히 20초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지. 미치겠다.”

“이야,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 도대체 어느 회사야?”

도대체 어느 회사냐는 질문이 저절로 나오는 광고에 오늘의 그랑프리가 수여될 것이다.

불이 켜지고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방금 노미네이트된 광고들을 함께 보셨는데요. 오늘의 사자들이 달려가 안길 작품들입니다. 여러분! 칸 광고제의 마지막 날, 최종 시상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칸 광고제는 뒤로 갈수록 열기가 높아진다더니 바깥 날씨와 상관없이 분위기가 한껏 뜨거워졌다.

열화와 같은 성원과 함성이 쏟아지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시상이 시작되었다.

세계 최고 권위의 광고제였지만 엄숙 근엄한 국내 광고제에 비해 한결 자유로운 편이었다.

“명 대표 긴장돼?”

“괜찮아요. 세미나 때에 비하면 이건 떨리는 것도 아니죠.”

“참, 피에르가 나타났다면서.”

“그랬죠. 피에르 덕분에 더 언론의 주목이 쏟아져서 정말 부담스러웠습니다.”

대담의 마지막에는 눈이 부셔서 뜨지 못할 정도로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소식을 듣고 늦게 몰려온 기자들 덕분에 질문도 많았고.

“걱정 마. 국제광고제는 노미네이트가 힘들지 상은 많이 주는 편이잖아. 워낙 부문이 많기도 하고.”

“네. 잘될 겁니다. 그래도 금송아지 정도는 데려가야 한국 광고계의 면이 설 텐데요.”

“에헤이! 욕심은. 최초수상으로 라이언즈 골드를 노리신다?”

탁기준의 에헤이를 뚫고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디어, 헬스엔 웰리스 부문부터 시상을 시작하겠습니다.”

탁기준의 말대로 국제광고제는 수상하는 분야가 엄청나게 다양했다.

미디어, 라디오, 인쇄, 모바일 등 매체에 따른 분류뿐 아니라 헬스, 엔터테인먼트 등의 주제, 디자인 PR 등의 기능에 따른 분야까지.

솔직히 후보작에 올랐으니 저 많은 상 중에 한두 개는 수상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피에르에게도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거였다.

번쩍이는 사자상들이 계속해서 수여되고 있었다.

다른 매체와 달리 상영 시간이 짧은 광고의 특성상 상을 받는 시간 동안 수상작을 통째로 볼 수 있었다.

“역시 받을 만한 작품들이 상을 가져가네요.”

“맞아. 사람 보는 눈 다 똑같지. 한눈에 괜찮다 싶은 건 반드시 수상하는구만.”

세계 최대의 무대에서 DW애드의 작품이 한눈에 괜찮게 보여야 할 텐데 말이지.

도혁이 커피 잔을 그러잡는 순간 사회자의 목소리가 장내에 번져갔다.

“이 작품은 심사 위원과 관객분들게 호평을 받으며 광고제 기간 내내 인구에 회자되었는데요. 이번 광고제를 통해 동양의 라이징 스타로 발돋움한 회사죠.”

사회자의 눈길이 검은 머리 외국인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도혁과 직원들에게 향했다.

“미디어 부문, 다이렉트 디자인 부문 DW애드 코리아의 수상을 축하합니다!”

화면 뒤로 불타는 빅시버거의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혁이 긴 다리로 저벅저벅 걸어 나가고 직원들이 모두 뒤따라 달려 나왔다.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벅찬 감격으로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뭉클한 가슴을 가누며 도혁이 황금 사자의 몸통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사자의 숫자는 점점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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