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13화
“대표님, 인터넷 터졌어요.”
“무슨 말이야. 인터넷이 왜?”
“방긋토이 CF 반응 대박 터졌다구요. 유명 커뮤니티마다 들썩여요.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출근한 도혁은 막내들의 호들갑에 갸웃했다.
엑슨처럼 격렬한 반응을 기대하고 만든 완구 CF가 아니었기에 의문이었다.
잔잔하고 귀여운 장난감 광고가 커뮤니티를 뒤집어놨다고?
“방긋토이 키즈 모델 오디션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게 화제성 몰고 다닌 지 언젠데 아침부터 난리냐.”
“이거 보세요! CF 후기가 올라왔어요.”
최민아가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동영상을 들이댔다.
영상 프로덕션 스텝 중 누군가가 유명 게시판에 올린 CF 후기 영상이었다.
촬영장의 단면과 흔한 NG 모음 중에 제목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배우 전서윤 인성 논란]
도혁은 놀라 영상을 급히 클릭했다.
이 영상만 조회 수가 터져 나갔다.
인성이 훈훈한 데다 사고를 쳤을 리가 없는 전서윤인데. 지금도 훌륭한 그녀였지만 회귀 전엔 대한민국에서 기부를 제일 많이 하는 연예인으로 유니세프의 여왕으로 불렸다.
매년 아프리카 가서 봉사까지 했었고.
급한 손길로 영상을 열어봤는데. 화면 속에는 전서윤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토닥이는 뒷모습이 담담한 시선으로 담겨 있었다.
전서윤의 어깨는 지쳐 보였지만 마치 성녀처럼 아름다웠다.
“어휴, 제목 어그로였구만. 나도 낚였네.”
“아래 댓글 반응 보세요. 엄청나요.”
-배우 전서윤 인성 논란
ㄴ 헐, 바닥에 주저앉은 거냐? 여배우가?
ㄴ 맞아요. 아이 무릎에 앉히려고 배려한 것 같아요. 봐요. 손부채질도 해주지 않습니까?
ㄴ 전서윤이 더 천사 같은. 그래서 제품 이름이 뭐라구요? 방긋 뭐시기랬는데.
ㄴ 방긋토이 ㅂㅅ아. 여신이 둘이나 나오는데 그걸 못 외우냐.
ㄴ 역시 내 여친.
ㄴ 역시 너 미친.
ㄴ 너 이 XX 어디냐. 현피 뜰까?
ㄴ 현피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말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ㄴ 요새도 현피 많이 뜨거든? 근데 여자분이신가요?
ㄴ 여자면 어쩔 건데요.
ㄴ 누님.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ㄴ 안드로메다다 이 XX야.
ㄴ 위에 두 분 꺼지시고 예쁘면 됐지 뭘 인성까지 좋고 그러냐. 하아. 전서윤 님 사랑합니다.
도혁이 촬영일에 전서윤을 보고 보였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 사람 마음 다 똑같나 보다.
“기사도 제법 났어요. 의도하지 않게 보도 자료까지 뿌린 셈이 됐네요.”
최민아가 CF 촬영 현장에 관한 기사들을 보여주었다.
[배우 전서윤 인성 재조명. 스텝이 찍은 뒷모습 화제.
아이 엄마 ‘너무 고마웠죠. 아이가 전서윤 씨 매일 보고 싶다고 졸라요’.]
[방긋 토이 촬영 현장서 아역 배우 방긋, 언니 덕에 편하게 촬영했어요.]
ㄴ 커뮤에서 영상 보고 왔는데. 이건 나라에서 상 줘야 함. 애 엄마인 줄 알았다니까요.
ㄴ 미친. 저걸 스탭이 뒤에서 보고 찍었다는 거? 인성 터지네. ㄷㄷㄴ 아역 배우 부럽네요. 전서윤 무릎에도 앉아보고.
ㄴ 전서윤 그렇게 안 봤는데. 차도녀 이미지 아니었나?
ㄴ 요즘 CF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듯. 얼마 전에 문어도 함.
ㄴ 문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엑슨 광고 못 보셨나 보네요. 중간중간 숨어 있어요. 카메오라서요.
ㄴ 애기 웃는 거 너무 귀엽다요. 하. 천사 같다.
ㄴ 전서윤 문어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ㅋㅋㅋㅋㅋㅋ 지금 찾아보고 옴.
댓글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전서윤과 방긋토이, 그리고 엑슨까지 이어서 화제가 되고 있었다.
도혁이 기사를 훑어보며 부연했다.
“이건 우리가 의례적으로 내는 홍보 자료와는 차원이 달라. 눈에 띄는 화제성을 몰고 왔고 브랜드 인지도가 따라 올라가는 거니까.”
“제 말이요. 이렇게 의도해도 하기 어려운데.”
“저 스태프한테 밥 한번 사야겠다. 프로덕션 연출팀 막내라고 했지?”
한턱 크게 사야겠다.
키즈 모델 오디션까지 개최하며 화제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덕분에 엄청난 홍보 효과를 몰고 왔다.
차현우가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방긋토이 실시간 검색어야. 명 대표. 밥 정도가 아니라 술을 거하게 사야겠다.”
“그러게요. 주목도가 남다른 기사가 되어버려서 이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거니까요.”
흐뭇해하는 도혁을 보며 황도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데 대표님이랑 전서윤 배우님 말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봤는데 두 분 그렇고 그런 뭐, 좀 약간 서로 설레고 보고 싶고, 그런 사이입니까?”
아, 썸을 말하는 건가. 이때는 썸이라는 말이 없었구나. 한 음절의 말을 저렇게 길게 설명해야 하다니.
언어화의 위대함을 느끼며 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델한테 사심 있을 게 뭐 있나.”
“에이, 그래도 남녀 사이는 모르는 건데요. 전서윤 배우 엄청 예쁘지 않습니까? 화제가 됐듯이 인성도 예쁘고, 두 분 잘 어울리십니다.”
“그런 거 아니야. 인마. 훠이 훠이.”
황도준과 막내 라인이 은근슬쩍 도혁을 계속 떠보았지만 손을 흔들며 부인했다.
아무튼 시끌벅적했던 DW애드의 이번 캠페인도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큰 건이 끝났지만 이제는 일상 업무가 되어버린 건설 광고에 제작팀은 여전히 바빴다.
기획 쪽은 한숨 돌리며 술이라도 한잔할까 하던 참이었다.
-따르릉
“네. DW애드입니다.”
-방긋토이 CF가 방긋 웃었다면서요?
인천 시장이었다. 아재 개그로 인사를 건네며 크게 한턱 쏘겠단다.
-조찬 모임 말고 저녁을 먹죠. 반주도 좀 곁들이고. 우리와 같은 아침형 인간 한수철 씨랑 같이 몸 만들어 오세요. 싱싱한 간으로 오셔야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설마하니 환갑을 넘긴 최 시장보다야 아기 간이겠지. 회귀까지 한 마당 아닌가.
아기 간 도혁과 수철이 출동 준비를 마쳤다.
* * *
거물급이다.
인천시장이 초대한 고급 한식당 밀실. 십여 명의 기초단체장이 모여 있었다.
곧 지자체 선거에 참가할 광고주들이시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도혁과 한수철은 신나게 명함을 돌렸다.
“우리 DW애드가 홍보의 달인이라고 인천시장이 하도 자랑을 해대길래 지긋하신 분이 나올 줄 알았거든요. 지금 보니 청년 사업가들이군요.”
“명도혁 대표 독립하자마자 엑슨에서 투자받고, 연타석 홈런 중이라고. 이번에 내가 방긋토이 소개했다가 대표한테 술을 열 번쯤 얻어먹었지, 아마?”
“그래?”
부산시장이 관심을 보였다.
DW애드 코리아라는 상호를 잠깐 들여다보더니 마린시티에 대해 물어왔다.
“혹시, 그 해운대 트럼펫 월드 광고하신 그 회사 맞습니까? 배우 전서윤 씨 나오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 맞네. 내 그 건설 회사 대표랑 친하거든요. 서울에서 온 어린 친구랑 일한다고 하더라구요. CF가 지역 광고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고급스러워서 물어봤어요.”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호, 또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만.”
부산시장이 안경을 추어올렸다.
“내 디자인을 못 해도 보는 눈은 있는 편인데 남달랐어. 아무튼 반갑네요.”
“그 인천시 슬로건 광고했었죠? 명도혁 씨.”
“네. 시장님과는 그 건으로 인연이 닿았습니다.”
지자체 슬로건 광고 얘기가 나오자 몇몇이 술렁였다.
“혹시 그 서울시도 했습니까? ㅅㅇ 아, 사랑해.”
“네. 맞습니다. 기억하시네요.”
“인천시 슬로건도 크게 흥했지. 충주도 그렇고. 그게 다 DW에서 한 거구나.”
슬로건 얘기에 술자리가 술렁였다.
멀찌감치 앉은 강릉시장이 미간을 좁혔다.
“이런. 그분이구만. 대학생인데 지자체 휩쓸었다고 그때 한참 정치권에서 화제가 됐어요.”
“아, 그랬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우리 강릉시도 명도혁 대표를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헬로우 강릉’이라는 슬로건을 썼는데, 예산 낭비로 언론의 뭇매를 맞았단다.
두드려 맞을 만하다고 생각하며 도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에 명도혁 씨라면 어떻게 지었을 것 같습니까?”
“슬로건이라는 게 갑자기 나오는 건 아닙니다. 지자체의 특색과 장점, 단점을 파악하고 지어야겠지만…….”
“겠지만……?”
시선이 도혁에게 집중되었다.
“인사 멘트를 굳이 사용하고 싶다면 헬로우보다는 굿모닝이라고 하면 어땠을까요. 굿모닝 강릉. 대한민국의 아침을 엽니다. 정도로 서브 카피 넣구요.”
“오! 그렇지. 동해에서 해가 떠오르니까!”
“아, 그렇네요. 같은 인사인데 느낌이 확 다르네.”
듣자마자 감탄하며 강릉시장이 테이블을 탁 두드렸다.
“일 분 만에 나오는 슬로건을 두 달씩 질질 끌면서 헬로우 강릉이라니. 내 슬로건 이후론 광고쟁이들 다 사기꾼이라고 했다니까요.”
“그러니까. 우리 시도 돈 수억 쓰고 욕만 먹었어. 예산 낭비 소리만 보면 신물이 나.”
너무 띄워주는 분위기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선거철은 광고계의 놓칠 수 없는 대목 중 하나이니까.
솔직히 인천시장이 이렇게까지 다리를 놔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침형 인간 하기를 정말 잘했구만.’
거나하게 술잔이 돌고 드디어 선거 얘기가 나왔다.
“이번 지방 선거 공천이 곧 시작인데 말이지.”
“여기 모인 사람들이야 공천은 받지 않겠나? 홍보전이 문제지.”
“요즘은 정치도 광고예요. 광고. 이미지가 아주 중요해졌어.”
부산시장이 운을 떼자 강릉시장이 은근슬쩍 도혁을 떠보았다.
“전국 단위로 의뢰를 받는지 궁금하네요. 강원도에 믿고 맡길 만한 회사를 찾고 있기는 한데 쉽지가 않습디다.”
“네. 저희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부산 광고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도 잘 되어 있으니 급한 일은 전산으로 처리하기도 합니다.”
“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말이구만.”
“다만 저희 DW애드만의 철칙이 있는데요. 그 부분만 양해해 주시면 어디든지 달려가겠습니다.”
양해를 부탁한다는 도혁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정치색을 배제하고 일로서만 접근하려고 합니다. 저희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도 않을뿐더러 앞으로 그럴 일도 없을 겁니다.”
“오호, 정치광고를 하는데 정치색을 빼시겠다?”
“네. 그렇습니다. 이 부분에서 압력이 들어오거나 한다면 광고 의뢰를 포기하더라도 받지 않으려구요.”
도혁의 단호한 말에 귀 기울이던 부산시장이 안경 너머로 도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하는 건가요?”
“네. 아마 이런 원칙 때문에 총선이나 대선 광고는 못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이번엔 지방 선거니까 도시 슬로건의 경험을 살려 광고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흠……. 광고로만 접근한다라…….”
“철저하게 캠페인으로 진행하되 후회하시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부산시장이 잠깐 생각에 잠긴 듯 말을 끊자 강릉시장이 대뜸 끼어들었다.
“그럼 일단 시안이랑 샘플 광고 있으면 좀 봅시다. 난 지금 홍보업체를 못 구해서 급한 상황이거든요. 강원도는 전문 광고 회사가 서울에 비해서 없는 데다가 시정 홍보하던 업체가 최근에 부도를 맞아서 아주 곤란해요.”
“네. 알겠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연락드리고 찾아뵙겠습니다.”
“자, 잠시만. 이거 명 대표를 강릉에서 선점하는 건가?”
도혁이 했던 지자체 슬로건 광고 성공 사례를 알고 있는 기초단체장들이 조급해졌다.
“일단 우리 쪽에도 포트폴리오 좀 부탁합니다.”
“저희도요. 메일이, 저기, 명함에 우리 보좌관 이메일 있을 겁니다.”
옆에 앉은 한수철이 손가락으로 조그맣게 브이를 그려 보였다.
도혁은 입매를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