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85화
회귀 전 명도혁의 하루.
핸드폰 알람으로 아침을 열고 스마트폰을 든 채 화장실로 직행한다.
뉴스와 이메일을 확인하고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는다.
업무 시간 중간중간 시장조사며 동향 파악이라는 핑계로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점심때가 되면 맛집을 검색한다.
오후 회의 시간. 핸드폰을 이용해 주요 사항을 녹음하고 중간중간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카피를 ‘나에게 보내기’ 톡으로 메모해 놓는다.
하루가 끝나가는 시각. 워치를 확인하며 오늘 만 걸음을 걷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고 모바일로 너튜브 채널과 유행하는 네플릭스 드라마를 챙겨 보곤 잠이 든다.
스마트폰을 고이 가슴 위에 올려놓은 채.
21세기가 시작하고도 20년이 지난 시점 전 세계 사람들의 풍경이다.
종일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고개를 들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모두 모바일의 세상 속에 일상을 묻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세상이 변화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지.
퇴근길에 오른 도혁은 씁쓸한 기분으로 과거를, 아니, 미래를 회상했다.
최민아가 도혁의 어깨를 툭 치며 의아해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도혁 오빠 가끔 그럴 때 있더라.”
“그냥. 이런저런 잡생각. 늙으면 원래 그런 법입니다요. 참, 우리 내일 인천시 들어가기로 했지?”
“늙기는 무슨……. 맞아. 아니, 왜 피곤하게 조찬 모임이야, 정말.”
“아침에 일어나기 좀 힘들기는 한데, 인천시장님은 조찬 회동을 제일 중요시한다고 비서가 전해줬어. 귀빈만 초청한다나 뭐라나.”
“귀빈?”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난다는 철학이 있대. 얼리버드.”
“내가 이래서 아침형 인간들이 싫어요.”
최민아가 투덜거리며 잔뜩 찌푸렸다.
“일찍 일어나서 일찍 자나 늦게 일어나서 늦게 자나, 일어나서 움직이는 시간은 똑같은데 어찌나 거들먹거리는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나 같은 사람은 게으름뱅이 취급한다니까.”
“보통 몇 시에 자는데?”
“새벽 3시쯤? 디자인 하는 인간들 다 그렇지, 뭐.”
“뼈 삭아, 인마.”
젊어서 아직은 모를 뼈아픈 팩트를 말해주고 도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최민아에게 충고를 해보았지만 도혁 역시 얼리버드는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다음 날 아침. 아침형 인천시장과의 조찬 모임을 위해 리멤버 팀이 새벽같이 모였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채로.
“아, 나 두 시간 잤어.”
“난 그냥 안 잤어. 자면 못 일어날 것 같아서.”
“포에버 땅에 꺼지겠는데?”
꺼질 듯 한숨을 내쉬며 포에버 팀이 조찬 회동 장소인 호텔로 이동했다. 그러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올~ 여기 장난 아니다.”
“우와. TV에서 보던 무슨 청와대 조찬 모임 같아. 대박.”
고급스럽고 세련된 호텔 레스토랑이었다.
샹들리에의 조명이 드리운 실내에 격조 높은 음악이 흐르고, 슈트 차림의 근사한 남자가 다가와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역시나 여느 때처럼 감탄하고 서 있는 포에버 팀 앞에 인천시장이 나타났다.
풍채가 좋고 푸근한 인상의 그가 소탈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이런 우리 포에버 팀.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멀리 오시는 데 불편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간단하고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고 인천시장이 포에버 팀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이번 인천시 슬로건 정말 잘 뽑힌 것 같습니다. 바다를 품은 동아시아의 심장. 크으. 저는 이 심장이라는 말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인천광역시는 정말 동아시아의 심장이 될 테니까요. 저는 믿고 있습니다.”
도혁의 진심을 말하며 시장과 함께 웃었다.
인천항과 송도 신도시의 개발로 동아시아의 허브로 다시금 발돋움할 인천시였다.
하이 인천, 같은 무의미한 슬로건을 쓸 수는 없지 않겠나.
“실무자를 통해서 젊은 팀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제 생각보다도 훨씬 젊으시네요. 젊은 피의 저력이 무섭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천광역시도 젊은 도시잖아요. 시장조사를 해보니 이제 막 시작하는 굵직한 사업들이 많더군요.”
“알고 계시네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이렇게 조찬 모임에 모셨습니다.”
온화하게 웃고 있던 인천시장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동네 돈 많은 아저씨 같은 느낌에서 정치인의 모습으로 돌변하며 포에버 팀을 바라보았다.
“우리 큰 사업들, 포에버 팀이 좀 같이하시면 어떻겠습니다.”
“사업의 홍보와 광고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것도 있고. 흠. 앞으로 추진하게 될 시정 사업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다음 시장에게 넘기고 싶지 않아요.”
포에버 팀 멤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시장이 말하는 속뜻을 눈치챈 도혁이 옅게 웃었다.
“선거 홍보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맞습니다. 저와 함께해 주실 수 있으실지요. 당연히 당선 후 이어가는 시정 사업은 포에버 팀과 하겠습니다.”
시장이 말을 끊고 똑바로 도혁을 바라보았다.
“젊은 피가 필요해요. 그것도 아주 많이.”
* * *
때가 오고 있었다.
태강애드를 정리하고 명도혁의 사업을 시작할 때 말이다.
공모전과 지자체 캠페인으로 자본금이 충분히 모였고 이진태 학과장의 배려로 학점이 마무리되어 갔다.
무엇보다 다시 발을 들인 태강애드에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기획부터 매체까지 쭉 훑어갈 수 있었다.
세계와 대한민국 광고계의 흐름을 알았기에 수석 카피라이터로서의 지엽적인 눈이 아니라 전체의 그림을 그려내는 기획자로서 거듭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태강애드를 안에서 잡아먹든지 밖에서 씹어먹든지 하자고 결심한 게 엊그제 같은데.’
조덕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회귀 전 태강애드에 망조가 들어 잡아먹을 수도 있겠지만, 태강애드 안에서 출세하고 싶진 않다고 말이다.
곧 조덕현 같은 빌런들 줄줄이 나타나는데, 다시는 그들과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았다.
중독이 가까울 정도로 일을 좋아하지만, 함께하는 사람이 더 중요한 법이니까.
‘일단 시작해 볼까?’
도혁은 심호흡을 크게 내쉬며 강남 신사동 사거리에 섰다.
강남구 신사동. 중소 광고대행사들이 제법 밀접해 있는 곳이다.
프로덕션이나 인쇄하는 곳도 제법 있어서 광고회사를 시작하기에는 적당한 입지였다.
도혁이 처음 사업을 위해 발을 내디딘 곳은 부동산이었다.
사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단정한 인상의 여자 사장님이 도혁을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어, 학생이네. 원룸 찾아요?”
“아니요. 사무실을 구하려고 합니다.”
“사무실이요? 여럿이 같이 쓰는 공용 사무실 같은 걸 말하는 걸까요? 아니면 오피스텔?”
감을 못 잡겠다는 듯이 아주머니가 도혁을 훑어보았다.
하긴, 사업과는 거리가 먼 나이니까 어떤 사무실을 말하는지 헷갈릴 만도 했다.
“일반 건물에 있는 사무실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아주 클 필요는 없어요. 아직은 직원이 많지 않습니다.”
“오! 젊은 친구가 사업하나 보네?”
“맞습니다. 저 크게 될 건데 많이 도와주세요. 한번 맺은 인연 저버리는 스타일 아닙니다.”
“네? 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사장이 도혁을 다시 보았다.
“미안해요. 멀끔한 청년이 꼭 늙은이처럼 말해서 웃었어요. 인연이라, 좋죠. 나도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는 편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좋은 사무실 구해볼게요.”
“잘 부탁드려요.”
“혹시 생각해 놓은 보증금 상한선 있어요?”
“그럼요.”
금액을 들은 사장의 눈이 커졌다.
“사업은 계속 확장해 갈 거예요. 사무실 확장 이전까지 오래 안 걸릴 거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야, 패기 하나는 끝내주네요. 이름이?”
“명도혁입니다. 참 그리고 그,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말씀하세요.”
“금마 아파트는 언제 재건축할까요? 아버지가 세를 놓아야 할지 고민하시더라구요.”
“금마 아파트 사는구나? 거기 빨리 세 놔요. 당분간 재건축 가망 없어. 얼른 세 놓고 신도시 가거나, 여유자금 있음 차라리 개포주공 쪽은 어때요?”
여기 믿을 만하네.
도혁은 웃으며 부동산을 빠져나왔다.
‘이제 멤버를 구성해야 하는데. 일단 포에버 팀은 설득해 볼 거고.’
그간 함께 팀을 꾸려온 믿음이 있기에 포에버 팀은 믿고 있었다.
한수철과 최민아, 특히 강태오의 미래가 크게 바뀌는 것이 좀 마음에 걸렸지만 괜찮다.
명도혁은 성공할 거니까.
그리고 또 한 사람. 도혁에게 꼭 필요한 그를 데려오기 위해 도혁은 열차에 올랐다.
“이쯤인 것 같은데. 저기 말씀 좀 묻겠습니다. 여기 시청 공사 현장이 어딥니까?”
“저~기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시면 됩니다.”
멀리서 도혁의 스카웃 대상 차현우가 공사판 인력들에게 빵과 음료를 돌리고 있었다.
“여기 빵 드세요. 어떤 걸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보름에 먹는 빵으로 통일했습니다.”
“벌써 갔다 왔어? 아무튼 빠릿빠릿하다니깐.”
“김 선생님은 커피우유. 박 선생님은 커피 못 드셔서 우유 사 왔구요…….”
“크으. 차는 젊은 친구가 일머리도 좋아. 안 그래요?”
“그럼그럼. 박 씨 말이 맞아. 내가 계속 달고 다니고 싶다니까?”
안 될 말이다. 일머리 좋고 빠릿빠릿한 차현우는 명도혁이 데려갈 거니까.
도혁은 일행에게 다가가 차현우를 바라보았다.
차현우가 도혁을 보자마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명도혁. 너 여기 무슨 일이야? 천안에 볼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우연일 리가 있어요? 찾아왔지.”
“와. 도혁아, 잠시만.”
차현우가 노가다 판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도혁을 근처 편의점 앞으로 데려갔다.
가게 앞 벤치에서 커피를 뜯으며 차현우가 도혁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일부러 왔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왜 이까지 나를 찾아와.”
“선배.”
“그래 인마. 반갑다 일단. 너무 놀라서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
“네. 선배 저도 반갑습니다. 반가워서 기절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뜻밖의 방문을 궁금해하는 차현우를 바라보며 도혁이 아메리카노를 쭈욱 들이켰다.
“선배랑 커피 마시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근데 나 이제 선배랑 계속 이렇게 붙어 다니려고요.”
“뭐? 그게 무슨 말이냐?”
“딱 잘라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차현우 선배님. 저하고 같이 일합시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말이야. 도혁아, 혹시 집에 무슨 일 있어? 노가다 판 만만치 않은데.”
도혁이 막일을 찾아온 거라 착각하는 듯했다.
하긴 대학생들이 방학 때 등록금 마련으로 막노동도 많이 하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한참 잘못짚은 차현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니요. 막노동 아니고. 아니, 막노동인가?”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봐.”
“선배 나 선배 스카웃하러 온 거예요. 나 회사 오픈할 겁니다.”
“뭐? 회사?”
“네. 광고대행사. 선배 나하고 광고 다시 합시다.”
도혁이 바지에서 손을 빼내 차현우에게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