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41화
사과를 한입 베어 먹곤 화장품까지 떠먹으려는 도혁을 바라보며 모두 크게 당황했다.
“저희가 제안하는 자연주의 화장품의 브랜드 컨셉은 ‘피부가 먹는다’입니다.”
드디어 도혁이 화면에 기획안을 띄우며 발표를 시작했다.
“자연주의 화장품이란 제품 설명을 듣고 제일 먼저, 가정에서 하는 팩을 떠올렸습니다. 집에서 하는 오이, 감자 팩 말입니다.”
바구니 속의 오이와 감자를 꺼내 들며 도혁이 컨셉을 설명했다.
“이번 과제에 힌트를 준 건 저의 누나입니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이듯이 제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누나인데요.”
당황했던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져갔다.
도혁은 누나의 이야기를 농담처럼 꺼내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었다.
“누나가 못생겨도 피부 하나는 좋거든요. 화장품 네이밍을 준비하면서 비결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매일 하는 오이 팩 덕분이라고 하더군요. 건조할 때 오이의 수분을 피부에 먹이는 느낌이라고요. 거기서 착안했습니다. 야채, 과일 등 자연 소재 성분을 재료로 한다면 피부가 먹는다는 컨셉 어떨까.”
화면을 전환하며 도혁이 설명을 이어갔다.
“자연주의 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나열해 봤습니다. 초록, 그린, 신선함, 한방, 어머니, 밥상…… 우리 팀에서 브레인스토밍하면서 나온 단어들인데 점점 토속적으로 변해가더라구요. 하지만 저희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자연주의 화장품 론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화장품 샘플을 높이 들며 도혁이 목소리를 함께 높였다.
“2030이 지향하는 아름다움의 이미지는 자연스러움, 그리고 세련미입니다. 이와 같은 소비자의 성향을 바탕으로 자연주의의 깨끗한 이미지를 더해보았습니다. 저희가 제안하는 브렌드 네이밍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킨엔(&) 푸드, 푸드의 정직함, 피부가 먼저 먹어요.]
[처음 만나는 푸드 코스메틱. 착한 화장품 에모라에서 만듭니다.]
화면에 커다랗게 브랜드명이 떠올랐다.
“이 네이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선 스킨 앤드 푸드, 그러니까 ‘피부와 푸드’라는 뜻이 첫 번째이구요. 두 번째는 스킨엔 푸드, ‘피부엔 푸드를 바르는 것이 좋다’라는 뜻입니다. 중의적인 브랜드명이죠. ‘좋은 건 입보다 피부가 먼저 먹는다’라는 카피를 활용함으로써 브랜드명에 대한 설명을 더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푸드 코스메틱이라…… 서브 카피도 인상적이네요.”
광고주인 에모라 화장품 홍보팀 직원이 끼어들며 푸드 코스메틱에 대해 물어왔다.
“해외에서는 푸드 코스메틱, 그러니까 과일과 야채, 혹은 벌꿀 등을 주 원료로 사용하는 자연주의 화장품이 제법 있습니다. 시장도 큰 편이구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이죠.”
“우리가 그 시장을 보고 선제적으로 론칭하는 겁니다.”
“그 부분을 강조하려 합니다. 처음 만나는 푸드 코스메틱이라는 문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최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시장 선두 주자임을 각인하는 겁니다.”
끄덕이는 광고주를 보며 도혁이 설명을 이어갔다.
“오늘은 기획과 마케팅 전반에 관한 발표가 아니므로 네이밍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점 양해해 주시길 바라며 후속 네이밍을 발표하겠습니다.”
“후속 네이밍이라구요?”
도혁이 손끝으로 리모컨을 누르자 화면에서 제품명이 한 글자씩 찍히고 있었다.
[제주엔(&) Green Tee]
[부산엔(&) Sea Water]
[미백엔(&) White Rice]
“아니, 저게 뭡니까?”
“특산품인가?”
소란하게 웅성거리는 실내를 돌아보며 도혁이 마이크를 당겨 쥐었다.
“스킨엔(&) 푸드의 브랜드 세부 라인입니다.”
“브랜드 라인!”
“화장품 브랜드마다 여러 라인이 있습니다. 보통 피부 상태에 따라 지성, 중성, 건성 라인으로 구별되죠.”
“맞습니다. 아!”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광고주가 눈을 크게 떴다. 도혁이 제주엔(&) 녹차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녹차는 오랫동안 각광받아 온 보습 재료입니다. 피부 진정에도 효과가 있어서 녹차로 세수를 하기도 하죠.”
“맞습니다. 저희가 첫 번째로 론칭을 예정하고 있는 라인이 바로 녹차입니다. 이거 신기하네요.”
“예를 든 것인데 제가 운이 좋았군요.”
물론 도혁은 에모라 자연주의 화장품이 녹차 라인부터 출시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운이 좋은 걸로 하자.
일단 브랜드 네이밍이 채택되어야 하니까.
도혁은 빠르게 설명을 이었다.
“제주의 녹차를 활용함으로써 신토불이의 이미지를 주고 자연주의인 제품력을 강조합니다. 지역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소구하는 것도 가능한데요, 미백엔 White Rice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역 이름 대신 기능을 넣었군요.”
“네. 오래전 수라간 궁녀들의 손은 늙지 않았다고 합니다. 뽀얀 소녀의 손을 유지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쌀뜨물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조사를 많이 하셨군요!”
감탄하는 광고주를 보며 이진태가 흐뭇하게 끄덕이고 있었다.
도혁이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멘트를 날렸다.
“저희가 준비한 브렌드 네이밍은 여기까지입니다. 굉장히 재밌는 아이템이고 론칭 제품이라 캠페인 기획안을 써보고 있는데요. 공모전 등 공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학생들의 박수가 쏟아지고 에모라 홍보팀장이 혀를 내둘렀다.
“대학생들 발표라서 참신한 게 나올 걸로 기대하긴 했는데, 제가 지금 많이 놀랐습니다. ‘화장품을 먹는다’라니. 정말 인상 깊은 발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모시고 올 걸 그랬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 정도면 대학생 공모전 할 만합니까?”
이진태가 홍보팀장을 바라보며 확답을 강요했다.
“그럼요. 아마 대표님도 발표 영상보시면 당장 실시하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기성 광고대행사에서도 이 정도로 네이밍 뽑아내기 힘들 텐데요.”
“마케팅 비용 굳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군요. 우리 강 대표한테 술 한잔 얻어먹어야겠습니다. 하하.”
농담처럼 진담을 강조하는 이진태였다.
실제로 기업 네이밍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기에 이대로 과제안이 채택된다면 에모라 화장품은 수억의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게 된다.
“잘했어. 명도혁 씨.”
“그럼 자리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정말 잘해줬어. 참, 거기 과일 바구니는 가져가게!”
“넵!”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발표가 마무리되었다.
십 분의 휴식이 주어졌고, 자리로 돌아온 도혁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팀원들이 기뻐서 날뛰며 다가왔다.
“너무 잘했어. 처음이라더니 하나도 안 떨던데?”
“무슨 소리야. 긴장해서 아찔해 지금.”
도혁도 발표는 처음이라 많이 긴장했다.
머릿속에 확실한 그림이 있었기에 발표하기 한결 수월했을 뿐이다.
“선배님. 잘 봤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래. 두 번째 해외 사례 조사는 잘 활용했어. 너도 수고했다.”
최철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도혁에게 사과했다.
“앞으로 뺀질거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 끝났는데 뭐. 마음 쓰지 마.”
공모전을 할 것 같긴 한데 최철우를 안고 가야 하나, 고민이 되기는 한다.
그 후로 다시 발표가 시작되었는데 그럭저럭 평범한 내용의 발표가 이어졌다.
한두 팀 괜찮은 아이디어도 보였지만, 대학생의 과제 수준이었다.
마케팅 캠페인으로 확장하긴 부족한 네이밍.
아예 방향을 잘못 잡은 경우도 있었다.
“자연주의지만 한방 쪽으로 가버리면 연령대가 훅 올라갈 텐데요. 젊은 친구들 올드한 거 질색하잖아요.”
“이건 여성들에게 어필하기 무리가 있겠어요. 메인 타깃에 대한 연구를 다시 하길 바랍니다.”
“힐링 굿이라. 네. 잘 들었습니다.”
조금 실망한 광고주의 기색을 눈치챈 이진태가 빠르게 수업을 마무리했다.
강의실을 빠져나오는데, 끝내 참석하지 못한 한수철이 걱정되었다.
“수철이 아직 연락 없어?”
“아까 발표할 때 문자 왔는데, 입원해서 링거 맞고 있대. 수철이가 발표하는 걸 봤어야 했는데.”
“그 자식, 감기 몸살인데 밤까지 새우고 무리했잖아.”
“어머, 몸살까지 걸렸었어?”
“하여간 한수철, 이 미련 맞은 놈.”
도혁은 느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미련 맞은 한수철과 팀원들 덕분에 무사히 과제를 마무리했다.
집에 돌아와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침대에 몸을 묻었다.
달콤하고 나른한 안도감에 두 눈이 절로 감겨왔다.
이게 얼마 만에 발을 쭉 뻗고 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성취 후에 맛보는 이런 통쾌함 때문에 회귀해서도 광고쟁이 하고 있는 거겠지.
“역시 PT 뒤에는 꿀잠이 최고구만.”
도혁은 이불에 빨려 들어가는 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역시 젊음은 좋은 것이다.
과제 때문에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고생했는데, 개운하게 일어났다.
두통도 없고 속도 가뿐하고. 학교로 가는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웠다.
오랜만에 동아리방에 들어갔다.
이미 동방 구석의 온돌에 한수철이 누워서 삐대고 있었다.
“너 몸은 좀 괜찮아?”
“그럼. 이제 가뿐하다. 비실대서 폐 끼치고, 면목 없다.”
“별소리를 다 하네. 아무튼 이게 얼마 만이냐. 나도 좀 같이 드러눕자.”
“공모전이고 뭐고 일단 좀 쉬어야겠어. 아, 머리야.”
“어! 소식 빠르네. 방금 공지 떴는데 미리 알고 있었던 거야?”
동아리 회장 강태오가 둘의 말을 듣더니 놀라 돌아보았다.
노트북으로 보여준 화면 속에는 한국방송광고공사 공익광고 공모전 공고가 띄워져 있었다.
[대한민국 공익광고제 공모전.
응모 자격: 전 국민.
(일반부 / 대학생 / 중고생).
응모 부문 및 주제.
자유 주제.
주최: 한국방송광고공사 공익광고 협의회.]
“저 자유 주제가 사람 잡는 거거든. 차라리 뭐라도 던져주는 게 편한데.”
“그러니까요. 우리 동아리 숙원 사업 아닙니까?”
강태오와 한수철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거 빼고 대학생 공모전은 애드포인트가 거의 휩쓸었는데 말이지.”
“국내 공모전 중에 공익광고 협의회가 제일 치열하잖아요. 경쟁률 어마무시할걸요?”
“참가자 범위가 워낙 넓어서 대행사부터 전공자, 심지어 전직 광고쟁이들까지 참여하잖아.”
“이렇게 공모전이 겹치는구나.”
한수철의 한숨에 강태오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명도혁, 한수철 공익광고 준비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 다른 공모전이 또 있냐?”
“네. 기업 공모전이 있을 것 같아요. 이진태 교수님 과제로 시작한 캠페인인데 일이 커지고 있네요.”
“그래? 이진태 교수님 바쁘시겠네. 공익광고 공모전도 직접 케어하기로 유명하잖아.”
“그래?”
금시초문이라 도혁이 한수철을 바라보았다.
“맞아. 아마 벌써 팀 꾸리고 있을걸. 도혁이 너는 당연히 교수님 팀에 들어가 있지 않을까?”
“공익광고 공모전은 애드포인트에서 하고 싶어.”
“올~ 의리 지키는 거냐?”
도혁은 대학생다운 공모전에서 자신만의 실적을 내고 싶었다.
아무리 간섭이 없다고 해도 두 건이나 교수와 함께하는 건 좀 부담스러우니까.
“온 김에 빨리 신청서 써버려야겠다. 교수님 물어보시기 전에.”
“그래, 얼른 받아버리자. 명도혁 마음 변하기 전에.”
“저도 끼워주십시오!”
문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활기찬 목소리가 동아리방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