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40화 (40/252)

광고 천재 명도혁 40화

“최철우 지금 장난하냐?”

들국화 영토에 다시 모인 과제 팀.

도혁의 목소리가 사위를 울렸다.

-피부가 먹는다.

최철우가 가져온 브랜드 네이밍을 보고 기가 차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컨셉을 그대로 써 오면 어떡해. 아무리 1학년이지만 정도껏 해야지.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

“아무리 생각을 해도 떠오르지가 않아서요.”

“야, 최철우. 나 지금 공모전에 진심이다. 어?”

“죄송합니다.”

이지원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최철우를 딱하다는 듯 바라보며 도혁을 말렸다.

“아직 1학년이잖아. 도혁이 네가 참어. 그리고 철우. 너, 계속 이런 식이면 정말 곤란해.”

“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최철우가 고개를 숙였다.

최철우가 이 정도였나? 아무리 1학년이지만 전공자 아닌가.

컨셉과 네이밍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져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쪽으로 감이 전혀 없든지 성의가 없든지, 둘 중 하나겠지.

도혁은 한 번 더 최철우를 노려보곤 노트북으로 눈을 돌렸다.

한수철이 회의 테이블을 두드리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자, 다시 회의 시작하자. 최철우는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과제에 참가하도록 하고. 지금 우리가 너 혼낼 시간도 없다. 각자 한두 개 생각해 온 네이밍 있지?”

“좋아. 종이에 적어서 테이블로 모아보자.”

“세 개씩 뽑아보면서 의견을 나누는 게 좋겠어.”

한수철이 테이블 한가운데 모인 종이 중 세 개를 읽어 내려갔다.

-아토프리. 피부가 먹는 순한 화장품

-스킨랩. 피부를 연구합니다. 먹어도 되는 자연주의 화장품-비건뷰티. 순수함을 추구합니다.

여기까지 들은 도혁의 입꼬리가 느슨하게 올라갔다.

“비건뷰티 누구야. 시대를 앞서가는 카피라이터.”

“나야. 왜, 마음에 들어?”

“나는 좋은데 너무 앞서갔어. 소비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네.”

비건의 주인공은 이지원이었다.

고등학교 때 호주에서 살았다는 그녀는 21세기 최신 키워드 비건을 적어 왔다.

“하긴 비건이라는 말이 좀, 어렵지?”

“어. 무슨 뜻이야?”

“원래는 채식주의를 말하는 건데, 식물에서 유래된 성분을 이용한 제품에 흔히 쓰여.”

“한 번도 못 들어본 말이라 화장품 용어인 줄 알았어.”

한수철의 말에 도혁은 비건뷰티가 적힌 종이를 옆으로 치웠다.

“대학생인데 들어본 적도 없는 단어는 쓰기 힘들 것 같다.”

“오케이.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이렇게 하나하나 적어 온 네이밍을 함께 들여다보며 의견을 나누었다.

“아토프리랑 스킨랩은 어때?”

“스킨랩, 피부를 연구한다는 카피가 좋지 않아?”

“동감. 뭔가 많이 연구하고 만든 느낌이야.”

“먹는다는 컨셉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아토프리는 약국 화장품 느낌이 들어서 나는 별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브레인스토밍이 이어졌다.

셋 중에는 스킨랩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가운데, 한수철이 남은 종이에 적힌 네이밍을 읽었다.

엄마 손길. 착한 화장품.

힐링 유, 이젠 먹어서 치료하세요.

스킨 엔(&) 푸드. 푸드의 정직함, 피부가 먼저 먹어요.

“잠시만 스킨엔 푸드? 이거 누구 거야?”

한수철이 눈을 크게 떴다.

도혁이 의자에서 등을 떼어내며 대답했다.

“내가 쓴 거야. 피부와 푸드, 그리고 피부에는 푸드.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어.”

“중의적인 의미도 있고, 컨셉에 딱인데?”

“나도 그래. 스킨엔 푸드. 단어인데도 문장 같고, 세련되기도 하고.”

“맞아. 친환경 제품은 좋게 말하면 자연스럽고 나쁘게 말하면 촌스럽거든. 근데 이건 도시적인 이미지가 있어. 영어라서 그런가?”

스킨엔 푸드에 긍정적인 의견이 모이자 도혁이 설명을 이었다.

“해외에서는 푸드 코스메틱, 그러니까 야채와 과일로 만든 화장품이 많지만, 국내에는 별로 없으니제법 신선하게 다가갈 거라고 생각해.”

“만약에 이 컨셉으로 확정되면 도혁이가 말했던 것처럼 아예 광고에서 화장품을 먹는 것도 괜찮겠는데?”

“비주얼만 예쁘게 나온다면 가능하지.”

도혁이 간단하게 적어온 원 페이지 기획안을 내밀었다.

“난 광고주가 대학생 공모로 확대해서 진행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

“아무래도 그렇겠지?”

“손해 볼 게 없거든. 첫 론칭일 뿐만 아니라 메인 타깃의 주목을 끌어낼 수 있으니까. 망해도 기존 마케팅 쪽으로 선회하면 그만인 거고.”

신규 브랜드일수록 공모전을 통해 인지도와 충성도를 끌어올리는 방식은 불리할 게 없다.

실패해도 인지도는 올라갈 거고, 추후 마케팅은 대행사에 던지면 그만이거든.

도혁이 간단하게 추린 기획서를 읽어 내리던 팀원들의 눈이 커졌다.

“잠시만, 이게 뭐야. 샘플 마케팅?”

“공모전 사이트에만 접속해도 샘플을 보내주는 방식을 채택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

“와. 공모전 참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샘플을 뿌린다고?”

“어. 그러면서 고객 DB(데이터베이스)도 모으고 말이지. 뭐, 아직 구체적으로 기획안을 쓴 건 아니고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 본 거야.”

“아니, 명도혁. 이런 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해내는 거냐? 어?”

한수철이 어이가 없다는 듯 도혁을 보며 감탄했다.

팀원들의 칭찬에 기획안을 곁눈질로 바라보던 최철우의 눈매가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수철이한테 대단하다는 말은 전해 들었었는데, 아이디어가 장난 아닌데?”

“그러니까. 기획안까지 적어 오다니. 난 네이밍도 겨우 했는데. 지금 너무 놀랐어.”

아직 놀라긴 이른데?

구체적인 마케팅 기획안과 메인 카피 설명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도혁이 노트북을 펼쳐 들었다.

* * *

기다리던 브랜드 네이밍 과제 발표일.

강의실에 들어선 학생들은 낯선 풍경에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저게 뭐람? 저분들은 다 누구고, 테이블 배치가 왜 저래?”

“교수님 말고도 심사 위원이 있는 모양인데?”

“심사 위원?”

웅성거리는 소음 사이로 이수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뭔가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어. 뭐 하는 거지?”

“경쟁 PT, 오늘 발표는 광고대행사 PT처럼 진행하는 것 같다. 실전처럼.”

강의실은 정확히 경쟁 PT할 때의 대열로 정리되어 있었다.

한가운데 심사위원석과 그 자리에 앉은 남자들, 캠코더.

이거 아주 낯익은 풍경인데…….

저 사람들 설마 광고주인가?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건 과학인가 보다.

‘광고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끼이익, 강의실 문이 열렸다.

이진태가 가운데 자리에 앉은 남자들을 반갑게 맞았다.

“어! 에모라 화장품에서 나오신 분들이군요!”

“네. 대표님께서 오늘 참관하라고 하셔서요. 에모라 홍보팀에서 나왔습니다.”

“사전에 전화 받고 자리 마련해 두었습니다. 이런, 오늘 녹화도 하실 건가요.”

“네. 학과장님과 학생들이 양해해 주시면 찍어갈 생각입니다.”

“그럼 우리 발표자들한테 물어봐야겠네요.”

탁, 박수 한 번으로 어수선한 시선을 모은 이진태가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오늘 우리에게 브랜드 네이밍을 의뢰한 주식회사 에모라에서 참관을 나오셨습니다. 녹화를 부탁하셨는데 발표자분들 이의 없으시죠?”

“네…….”

“광고주님께서 원하시니까 그럼 오늘 발표는 녹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못해 끄덕이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과제 발표도 버거운 대학생들이었다.

광고를 의뢰한 기업의 홍보팀 직원이 참관하는 데다 녹화까지 진행한다니. 부담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제 발표가 이렇게 떨릴 일이니?”

“그러게. 어떻게 일이 많이 커진 느낌이다.”

학생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긴장이 더해졌다.

소란한 강의실을 한번 휘이 둘러본 이진태가 진행을 시작했다.

평소의 장난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진지한 눈빛이었다.

“자, 모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에모라 화장품에서 출시할 신제품의 브랜드 네이밍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이 자리에는 에모라 화장품 홍보팀 직원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학생들이 박수를 치자 홍보팀 직원들이 일어서 인사했다.

이진태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본격적인 과제 발표에 앞서 오늘 발표는 녹화될 예정임을 알려 드립니다. 에모라 화장품 측에서는 내부적으로만 활용하시고 절대 외부에 유출하지 않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당연합니다.”

“그럼 각 팀 발표자들 앞으로 나와주세요. 발표 순서를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발표자들이 앞으로 걸어 나오고 이진태가 숫자를 대충 적은 종이를 뽑으라고 했다.

진행이 잠깐 중단되자 에모라 홍보팀 직원 한 명이 이진태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고 다가왔다.

“순서 뽑는 동안 새로운 제품 샘플이 나왔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자연 유래 성분으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그사이 또 다른 제품도 나왔군요.”

“네. 재료에 따라 여러 라인으로 출시할 예정입니다.”

도혁이 슬쩍 들여다본 화장품은 역시 예상대로 과일과 채소를 재료로 한 것들이었다.

먹는다는 컨셉과 잘 어우러질 것이 분명한 신제품을 보자 확신이 차올랐다.

도혁이 저도 모르게 여유로운 표정을 짓자 이진태가 다가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다들 긴장했는데 명도혁 씨만 여유가 넘치는구만. 정의팀이 1번으로 발표할 텐가?”

“네? 갑자기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참, 그 팀 발표자는 한수철 씨 아닌가?”

“그게 급하게 변경되었습니다.”

어젯밤. 환절기 감기 몸살을 무릅쓰고 과제 작업에 몰입하던 한수철은 결국 장렬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한수철은 코피까지 쏟으며 도혁의 손을 애잔하게 붙잡았다.

-도혁아. 너밖에 없다.

-나 카피라이터 지망인 거 알잖아. 발표는 안 해봤어.

-컨셉 제안자니까 나보다 더 잘할 수도 있어. 도혁아, 부탁한다. 파이팅!

한수철은 파이팅을 외치며 결국 입원까지 해버렸다.

그렇게 할 수 없이 난생처음으로 발표를 하게 된 것이다.

“교수님 제가 발표가 처음이라서요. 1번은 좀 부담스럽습니다.”

“내가 기대하고 있는 것 알고 있지? 어! 손에 든 것 1번 아닌가?”

첫 번째로 발표할 운명이었나 보다.

이진태의 지명과 상관없이 1번을 뽑아버렸다.

도혁은 심호흡을 한번 크게 뱉으며 발표를 준비했다.

‘뭐, 발표라고 별거 있나. 머리에 있는 거 설명하면 되지. 약간, 충격적으로.’

성큼 단상으로 올라간 도혁이 눈짓을 보내자 이지원이 바구니를 가져왔다.

“저게 뭐야?”

“오이, 사과, 감자…… 채소랑 과일인데? 저걸로 뭘 하려는 거지?”

웅성대는 소리를 뚫고 도혁이 마이크를 잡았다.

“저희 팀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광고홍보학과 2학년 명도혁이라고 합니다.”

인사를 마친 그가 바구니 속에 담긴 사과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러곤 덥석 사과를 한입에 베어 물었다.

뒤이어 곧바로 제 앞에 놓인 화장품 샘플을 들어 먹는 척했다.

놀란 광고주가 저도 모르게 물었다.

“지, 지금 뭐 하는 건가요?”

“먹는 겁니다.”

“먹고 있는 거야 아는데…….”

“이렇게 입이 먹는 게 아니라 피부에게 먹일 겁니다.”

“피부에게, 먹인다구요?”

“그렇습니다.”

말을 끊은 도혁이 광고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희가 제안하는 자연주의 화장품의 브랜드 네이밍 기획안을 지금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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