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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14화 (14/252)

광고 천재 명도혁 14화

놀란 탁기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친놈, 명도혁 너 이 자식, 진짜 뭐 하는 놈이야. 너, 설마 천재냐?”

“천재라니, 그럴 리가요.”

회귀했을 뿐입니다만?

입꼬리를 끌어 올린 도혁과 대조적으로 김민수의 인상은 사정없이 구겨졌다.

“천재가 아니면 초짜 인턴 입에서 어떻게 기획국 회의 때 확정한 컨셉이 나와!”

“아, 메인 컨셉이 미니멀리즘입니까?”

“그래, 인마. 듣는 순간 소름 확 돋았다.”

탁기준은 진짜 소름이 돋은 걸 훑기라도 한 듯 팔을 매만지며 탁기준이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다른 팀원들 생각도 같은 거야? 미니멀리즘으로 가는 거?”

“그럼요! 당연합니다.”

“당연히요.”

팀원들과 한수철은 모두 고개를 주억이며 탁기준의 말에 동의했다.

‘기획국 회의의 결과가 미니멀리즘이라니, 이거 의왼데?’

도혁은 속으로 생각을 곱씹었다.

어쩌면 회귀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트렌드가 이동할 수도 있겠다.

미니멀리즘은 오 년 뒤쯤 대한민국을 강타해 오랫동안 각 분야에서 핵심 트렌드로 자리 잡는다.

사실 회귀 전에도 다시 유행이 돌아 메인 키워드가 되었다. 스테디셀러라고나 할까.

단순하고 간결한 것을 추구하는 이 문화적 흐름은 예술뿐 아니라 상품, 디자인, 라이프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영향을 끼쳤다.

국장급 회의의 컨셉이 벌써 미니멀리즘이라니.

이건 시장 판도가 틀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손가락으로 툭툭 다이어리를 치고 생각에 잠긴 도혁에게 탁기준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자, 그러면 우리 명도혁이 왜 미니멀리즘을 제안했는지 들어볼까?”

“광고주가 좋아하니까요.”

다른 이유가 있나.

미친 소리 같지만 이 바닥에서는 제일 맞는 말이다.

광고주에게 적절한 컨셉을 들이밀어 설득하고 어쩌고 하는 건 광고주가 헤맬 때 말이고.

일레라 가구 김영석 대표는 마케팅 감각과 촉 하나로 대한민국 가구계를 씹어먹을 양반이다.

“뭐? 너 김영석 대표 취향을 어떻게 알고?”

“사무 가구에서 학생 가구까지 론칭하는 사업 성향을 보고서요. 맥시멈 쪽이었으면 당연히 가정용 가구를 먼저 시작했을 겁니다. 그리고.”

말을 뚝 끊은 명도혁에게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김민수가 죽도록 째려봤지만 도혁은 모른 척하며 말을 이었다.

“일레라 가구 직접 보거나 사용해 보신 분?”

“…….”

팀원들의 침묵이 이어졌다.

“계속 말해봐, 명도혁.”

“저는 책상을 써봤는데요, 일레라 가구에서 출시한 책상은 제가 사용해 본 것 중에 제일 합리적이고 간결한 스타일의 가구였습니다.”

“그래?”

“선이 단순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있을 건 다 있죠. 서랍 속에요.”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다?”

“네. 서랍의 칸이 잘 나뉘어 있어서 수납이 잘되고 책상 위에 뭘 올려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흠. 좋았어. 거기까지.”

열심히 귀 기울이던 탁기준이 도혁의 말을 뚝 끊었다.

“지금 명도혁이 얼마나 중요한 얘기를 했는지, 아는 사람 있어?”

“…….”

“일동 침묵. 봐봐 명도혁. 이런 게 인턴이야. 이렇게 멍 때리는 게 정상이라고.”

다시 소름이 돋는지 탁기준이 팔짱을 끼고 제 팔뚝을 사정없이 훑었다.

“광고주의 취향과 제품력에서 컨셉을 뽑는 자세. 그러니까 직접 제품을 써보는 태도는 기획자의 기본 중의 기본이야.”

“그렇죠. 이 속에서 도출한 컨셉이 트렌드에 부합해야겠지만요.”

“정확해. AE들이 환경분석을 하는 건 이런 여러 가지 요소에서 접점을 찾아내 컨셉을 도출하기 위한 거지. 명도혁!”

“네.”

“너 솔직히 말해봐. 이거 얼마 만에 생각해 낸 거냐.”

아, 미니멀리즘 말씀이시라면, 3초?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슬쩍 미소로 넘어갔다.

그게 더 꼴 보기 싫었는지 김민수의 눈꼬리는 사정없이 올라갔고.

“이 자식, 진짜 어디서 이런 게 굴 러 왔냐?”

탁기준은 한 팔로 사정없이 도혁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흥분해 칭찬을 퍼부었다.

“내가 볼 때 1팀은 무조건 1등이다. 너네 복 받은 줄 알아. 천생 광고쟁이 명도혁이 덕 많이 볼 거야, 아마.”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답하자 다른 인턴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수가 주먹을 불끈 쥐고 마지못해 주억이는 모습도 보였다.

주먹을 얼마나 꽉 쥐었는지 손등의 혈관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제대로 뽑아낸 컨셉에 모두 기뻐하는 분위기였지만, 도혁은 의아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왜 기획국 회의에서 나온 컨셉을 알려주시는 겁니까? 팀별로 기획안 만들어서 진행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인턴들 뭘 믿고 그런 삽질을 시키냐!”

탁기준이 볼펜으로 책상을 툭툭 치며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인턴들이 컨셉 제대로 뽑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 아무도 없었어. 컨셉 이상하면 열 팀이 죄다 디자인 삽질하고 있을 건데, 그 꼴을 어떻게 보고 있냐. 정신병원도 아니고.”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래서 컨셉 도출까지의 과정은 평가를 별도로 하되, 컨셉은 지정해 주는 게 이번 미션의 방향이었어.”

하긴 샘플 미션이면 몰라도 이런 걸 인턴들 제멋대로 하게 두긴 부담스러웠겠지.

일레라 가구 미션이 실전은 실전인 모양이었다.

정말 인턴 팀들의 제작물 중에 채택할 수도 있겠다.

컨셉이 나왔다면 지금쯤 제작팀으로 기획안이 넘어가 있을 것이다.?

AE들은 신나게 PPT(프레젠테이션) 만들고 있을 거고 그동안 카피와 디자인 시안을 뽑을 텐데.

“물론 우리 팀도 제작 들어가긴 했는데 인턴팀의 시안이 진짜 채택될 수도 있어.”

도혁의 마음을 읽은 듯 탁기준이 설명을 이어갔다.

“기획이야 경험과 연륜의 영역이니까 인턴 못 믿지만 제작은 다르지. 톡톡 튀는 아이디어, 신규들이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

탁기준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신규들의 아이디어가 신박한 건 사실이지만 베테랑의 촉을 따를 수는 없다. 카피나 디자인 역시 경험과 연륜이 승패를 가른다.

뭐, 그래도 결국 우리 팀 시안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1팀에는 최민아라는 걸출한 디자이너가 있었다.

그리고 이십 년 차 카피라이터 명도혁의 연륜이 함께하니까.

파이팅 넘치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팀원들에게 탁기준이 지시를 내렸다.

“컨셉 나왔으니까 AE들은 PPT 준비 시작해야지. 발표 자료 예쁘게 만들고, 아, 발표 자료 만들 때도 주의할 점이 있어.”

“PPT 깔끔하게 만들겠습니다. 미니멀하게.”

한수철이 대답하자 탁기준이 기특해했다.

“이 자식도 말이 통하네. 그래. 메인 컨셉이 한눈에 보이게끔 PPT(프레젠테이션)도 디자인해야 돼. 뭐 이쪽은 내가 있으니까 걱정 없고.”

탁기준이 카피라이터와 디자이너들을 바라보며 조금 미안해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카피랑 시안 뽑아야 하는데, 제작 쪽은 알아서 해라. 내가 AE라서 제작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는 좀 어려울 수 있어.”

“컨펌 잘하시지 않습니까. 시안 보는 눈이 하늘 위에 있으시잖아요.”

도혁이 저도 모르게 진심을 말하고 눈을 크게 떴다.

“명도혁, 네가 내 취향을 어떻게 알아?”

“뭐, 보면 알죠. 눈 엄청 높으실 것 같은데요. 여자 보는 취향도 그렇고.”

“이 자식 자리 깔아야겠네. 나 여자 보는 눈 정수리에 있는데.”

은근슬쩍 넘어가서 다행이었다.

즉흥적으로 여자 얘기를 섞은 건 무의식이 작용했나 보다.

탁기준은 업계에서 제일 예쁜 카피라이터와 결혼했다.

바로 명도혁의 첫 상사였던 서희주 카피.

둘이 사내 연애하다가 도혁에게 처음 걸렸었는데.

옛일을 생각하자 서희주 선배가 보고 싶어졌다.

희주 선배 진짜 잘해줬었는데. 성격도 좋고 일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여러모로 탁기준이랑 살기는 아까운 여자였다.

저 인간의 매력은 뭘까, 탁기준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그의 주먹이 툭 도혁의 가슴팍을 때렸다.

“내일부터 죽어라고 달려야 하니까, 맥주 한잔할까? 내가 쏠게.”

“오늘은 선약이 있습니다. 저는 가봐야겠는데요.”

“뭐 그러든지. 김민수 빼고 나머지는 시간 괜찮아?”

‘김민수, 저 자식 그래도 선배가 술 산다는데 약속 조정해 보는 척이라도 하지. 처음 같이 먹는 건데.’ 하긴 그런 융통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선약을 앞세운 김민수가 사라지고 남은 팀원들은 태강애드 앞 작은 호프집에 모였다.

“저녁 먹고 하기 귀찮으니까 여기서 안주로 대충 때우자.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감사합니다!”

“뭘. 내일부터 피 터지게 구르라고 사주는 건데. 많이 먹어라.”

왁자지껄 술자리가 이어지고 술잔이 돌았다.

술이 들어가자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왔다.

회귀, 다시 돌아온 태강애드, 이 죽일 놈의 프레젠테이션 그리고.

사람들.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사람들과 처음을 함께 시작하는 기분이 묘하면서도 뭉클했다.

특히 한수철 이 자식. 진짜

센티해진 도혁과 달리 한수철은 신이 나서 떠들고 있었다.

“명도혁, 너 왜 이렇게 노련하냐. 아까 기획안 도출할 때 나 약간 짜증 났잖아.”

“맞아. 짜증 나게 잘하더라. 기획이 그 정도니까 카피는 믿어도 되겠지?”

최민아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한수철은 그마저 꼴 보기 싫어했지만.

“저 자신감 봐라. 아 짜증 나. 나도 죽어라고 PPT 파야지. 선배님 한잔하시고 많이 도와주십시오!”

“그래. 여기 다 감각 좋던데 뭐.”

탁기준은 잠깐 잔을 들더니 입술만 대고 내려놓았다.

“에이, 서운하게 왜 안 드십니까?”

“다시 회사 들어가 봐야 돼. 그 냉장고 소재(CF 등의 광고 제작물) 바꿔야 돼서.”

“참 그 냉장고 광고 비하인드 좀 들려주십시오!”

“뭐, 전태현 물어보는 거냐?”

탁기준이 진행하는 냉장고 광고의 메인 모델 전태현.

이 톱스타의 가십을 궁금해하는 인턴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예뻐. 예쁘고, 예쁘고, 또 예쁘다. 끝.”

“에이.”

“혹시나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나중에 일하게 되더라도 연예인이나 업계 소문 함부로 내고 다니면 안 돼. 알지?”

“그럼요. 아마추어처럼.”

“너네들이 아마추어니까 하는 말이지, 인마.”

탁기준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지폐 몇 장을 도혁의 손에 쥐여주며 눈을 찡긋했다.

“이거면 충분할 거다. 많이 먹고 내일 보자.”

“벌써 가십니까?”

“동기끼리 할 말도 많을 거잖아. 내 욕도 실컷 하고.”

“그래야겠습니다. 욕할 게 많아서요.”

웃으며 장난치는 도혁의 뒤통수가 따끔했다.

탁기준은 손바닥으로 머리를 쓰다듬다가 한 대 툭 때리며 돌아서 나갔다.

그럼 슬슬 욕 시동을 걸어볼까.

밤도 샐 수 있지 탁기준 욕이라면.

그러면서도 술 한잔 못 마시고 일어서는 그가 조금 딱했다.

지난 생의 제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인턴들이 엉덩이를 반쯤 일으켜? 떠나는 그에게 인사했다.

그걸 본 탁기준이 슬쩍 장난을 던졌다.

“아, 맞다. 전태현이 말이지 최근에 남자친구를 갈아치웠는데…….”

“네? 전태현이요? 잠깐만 갈아치웠다면 전에도?”

“배우만 네 명째지 아마. 그럼 나는 이만.”

“잠시만. 선배님! 잠시만요!!”

“이번에 남친은 재결합, 어이구 늦었네.”

“선배님! 탁기준 선배님!!”

김이준 얘기네. 둘이 수십 번은 재결합하지 아마.

씨익 속으로 웃으며 창문으로 탁기준이 뛰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걸 말해줘 말어? 해주지 뭐.

“우리 삼촌이 매니지먼트 오래 하셔서 들었는데, 전태현이랑 김이…… 어?”

“이 자식도 말 끊네. 절단 신공이냐?”

한수철의 구박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혁이 창밖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을 가늘게 떴다.

‘저게 누구야.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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