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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13화 (13/252)

광고 천재 명도혁 13화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우리 김 민 수 인턴님.”

튀어나오는 욕지기를 겨우 누르며 도혁이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인턴 나부랭이니까 또박또박, 좀 알아들으라고.

“표절하자는 게 아니라 동향을 보자는 거잖아. 세계의 가구 트렌드, 그 속에서 우리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만한 요소들을 찾아보자는 거지.”

“난 좋은 의견인 것 같아. 그건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이라도 사례를 모아서 분석해 볼까?”

한수철이 김민수에게 그만하라는 눈짓을 보내며 도혁의 말에 동조했다.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최민아가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커피라도 마시면서 할까? 사다리 타서 사 오기 어때?”

“커피는 여자가 타 오는 게 좋지 않을까?”

와, 김민수 저 자식 선 넘네.

아직 직장 내 남녀평등이 자리 잡히기 전이기는 했지만, 동기끼리 뭐 하는 짓이냐. 매너 없는 놈아.

도혁이 한숨을 내쉬며 나섰다.

“됐다. 내가 갔다 올 테니까 커피 취향 쭉 말해봐.”

“나도 같이 가.”

최민아가 종이쪽지에 메뉴를 적으며 도혁을 따라왔다.

착한 눈매로 선하게 웃고 있었지만, 입술을 다부지게 깨물고 있었다.

최민아는 은근히 무서운 여장부다.

소리 없이 강한 최민아는 훗날 저 차분한 인상으로 태강그룹 전체 여직원 회장까지 맡았다.

직장 내 성희롱 퇴치에 앞장서는 잔다르크였단 말이다.

김민수 저 자식. 하여간 눈치도 없고 싹수는 더 없고.

최민아가 커피를 시키는 도혁을 보고 말을 붙여왔다.

“고마워. 김민수인지 그 사람이 커피 타 오라고 할 때 너무 짜증 났는데.”

“고마울 건 없어. 여자 어쩌고 하면서 동기한테 심부름시키는 놈이 이상한 거지. 그냥 앉아 있지 그랬어.”

“혼자 들긴 너무 많잖아. 참 오빠라고 불러도 돼? 우연히 프로필을 봤는데 나보다 한 살 많더라고. 알면서 도혁이라고 할 수도 없고.”

“편할 대로. 말은 아까 합의한 대로 놓고”

“그럼 오빠라고 부를게. 도혁 오빠.”

그러고 보니 공과 사의 구별이 철저한 최민아는 도혁에게만 유일하게 오빠라는 호칭을 썼다.

대리 달기 전까지 도혁 오빠라고 불렸던 기억이 있었다.

아무튼 한잔의 커피로 분위기를 정돈하고 다시 팀원들이 모여 앉았다.

한수철은 쉬는 동안에 부지런히 해외 자료를 찾아본 모양이었다.

“일단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조금 유행이 처지니까 일본 쪽을 살펴봤는데 요즘은 이런 원목 스타일이 많더라고.”

“조금 멀리 가보는 건 어때? 스칸디나비아라든지.”

도혁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스칸디나비아라면 북유럽?”

“맞아. 실용 가구의 선두, 북유럽의 미니멀리즘 말이야.”

김영석을 설득할 비장의 카드는 첫 번째가 모델 섭외, 그리고 다른 하나가 바로 미니멀리즘이었다.

김영석은 심플한 걸 좋아하거든. 가구건 카피건 사람이건.

모델 섭외야 인턴 기획안이 정식으로 채택되고 나면 기획팀과 논의할 부분이었고, 광고 컨셉을 잡는 과정에서 바로 이 미니멀리즘을 강조할 생각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어렵게 살다가 잘살게 되면서 한동안 과시에 치중했었어.”

“그렇긴 하지.”

“점점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라이프 스타일로 진입하는 추세이고.”

도혁의 설명에 정진수가 말을 보탰다.

“하긴, 샴푸도 린스 기능을 추가해서 하나만 쓰는 게 인기잖아.”

“맞아. 그런 트렌드가 점점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지.”

모두 도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자세를 바로잡으며 팀원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광고주는 하고 많은 가구 중에 왜 하필 사무 가구를 선택했을까?”

“흠, 실용적이라서? 심플하고 대량으로 팔기도 간편하고.”

“맞아. 여기서 광고주의 성향을 알 수 있지. 론칭하고 싶어 하는 브랜드 역시 학생용 가구잖아. 실용주의.”

“어! 이거 묘하게 설득력 있는데?”

한수철이 무릎을 탁 치며 세차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최민아 역시 뭔가 떠오른 듯 다이어리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칸디나비아는 왜 나온 거야? 뜬금없이.”

“북유럽이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시초잖아. 그런 거도 모르냐?”

김민수가 카피 지망생 강시원의 질문을 무식하다고 뭉개며 말을 이어갔다.

“미니멀리즘 잘 활용해서 만들면 좋겠네. 그러게 내가 일본 별로라고 했잖아. 북유럽 이런 거 생각해 보자고.”

“뭐?”

김민수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이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눈짓을 나누었다.

‘이 자식 골고루 한다. 편할 대로 기억을 편집하는 재주가 있구만.’

환장할 노릇이지만 이런 사소한 일에 힘을 뺄 여유가 없어 무시해 버리고 회의를 이어갔다.

“뭐 그런 걸로 하고. 일단 방향은 미니멀리즘, 이제 세부 컨셉 잡고 진행해 볼까?”

세부 컨셉 진행이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탁기준이 소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벌써 세부 컨셉이 나왔다고? 뭐 광고 이십 년 한 선수들이 모였냐?”

“선배님 오셨습니까?”

“말해봐. 팀장. 세부 항목 뽑기 전에 일레라 가구 메인 컨셉이 뭐야.”

“미니멀리즘입니다.”

“뭐?”

탁기준의 눈살이 거칠게 말렸다.

“미니멀리즘? 이딴 거 생각해 낸 자식이 도대체 누구야?”

“명도혁인데요.”

김민수의 목소리가 소회의실을 울렸다.

탁기준의 표정이 일그러진 걸 보곤 도혁의 탓으로 돌리려는 거였다.

와, 조금 전까지 네 아이디어라면서요.

탁기준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나를 보곤 소리를 질렀다.

“미친놈, 명도혁 너 이 자식, 진짜 뭐 하는 놈이야. 너, 설마 천재냐?”

* * *

얼마 전 기획국 간부회의.

일레라 가구 담당 AE인 탁기준이 진행을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를 본 팀장들이 툭툭 말을 던졌다.

“어이! 탁기준이, 이번에 한 건 했다면서?”

“별말씀을요. 이제 시작인 걸요.”

“일레라 가구 한번 방문했는데 광고주가 직접 찾아왔다고 들었어. 젊은 친구가 대단해.”

“우리 탁 대리가 워낙 탁월하니까. 일상 아닙니까.”

탁기준을 데리고 있는 기획1팀 팀장 이정인이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넘겼다.

이정인을 견제하는 기획3팀 팀장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책상을 툭툭 쳤다.

“일레라 가구 이거 명, 어쩌고 인턴이 컨택한 거잖아요.”

“초반 컨택이야 명도혁이 했지만 기획안 밀어 넣은 건 탁 대리에요.”

“그렇게 은근슬쩍 발을 얹으시겠다. 너무 날로 먹는 거 같은데.”

민망해진 탁기준이 뭐라고 변명하려는데 이정인이 팔을 들어 막았다.

명도혁 덕분에 손 안 대고 코 푼 건 사실이니까.

“그런 공치사는 나중에 하시고 회의부터 진행하시죠. 명도혁 인턴 치켜세우는 건 그때 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일레라 가구라니. 간부회의까지 해서 컨셉 도출하고 할 사이즈는 아니지 않나? 탁기준이가 잘하잖아요.”

“대표님 지시 사항입니다. 대학생 인턴십 과제로도 나가서 주요 관심 현안이에요.

기획3팀 팀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인턴십 과제라서 불러 모았구만. 삽질할 거니까 메인 컨셉이라도 제대로 잡아서 던져줘라, 이건가요?”

“맞습니다. 그리고 대표님은 일레라 가구의 미래 비전을 높게 보시더라구요. 시장 확장을 통해 파트너십을 다질 기업이라고 판단하신 듯합니다.”

“하긴 일레라 가구라니. 생각지도 못한 광고주가 나타나서 돈 쓰겠다는데 내가 대표라도 솔깃하겠어요. 시장성도 있고.”

어수선했던 회의실이 정돈되고 이정인이 말을 이어갔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컨셉 회의 시작합시다. 탁 대리, 준비한 자료 좀 틀어봐.”

“네.”

자료에는 시장과 환경분석, 포지셔닝, 그리고 SWOT(기업의 강점과 약점, 환경적 기회와 위기를 열거하여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분석법) 등 기초 자료와 해외 캠페인의 사례들이 조목조목 제시되어 있었다.

유심히 분석 자료를 살펴보던 팀장들이 하나둘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사무용 가구만 하던 곳인데 시장을 확장하시겠다. 흠.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김영석 대표가 학생용 가구 쪽 론칭하고 싶다고 했었죠?”

“맞습니다. 영리한 사람이에요. 사무용에서 가정용 일반 가구로 갈아타는 건 부담이 있거든. 그래도 시장에 너무 일찍 뛰어드는 감이 없진 않아요.”

“시장 선점은 빠를수록 좋긴 합니다. 현재 학생용 가구 시장에 선두주자라고 할 만한 회사가 없어요. 이럴 때 조금 무리해서라도 자리 꽉 잡아두면 좋지.”

학생 가구 시장 포지셔닝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오가고 이정인이 몇 가지 방향성을 제시했다.

“인지도가 낮으니까 인지도를 각인하는 쪽, 학생 가구 시장의 시장성에 집중하는 방향, 그리고 실용성을 강조하는 실용주의 노선. 여러 방향이 있을 텐데 자유롭게 의견 주시죠.”

“아무래도 초점을 실용성에 맞추는 게 어떻겠습니까? 일레라 가구의 최대 강점이기도 하고 시장과도 잘 맞으니까요.”

“학생용 가구의 실용성이라. 아직 특별한 트렌드는 없죠?”

“유행이랄 것도 없습니다. 어린이 가구는 그래도 광고가 좀 나갔는데 학생용은 딱히…….”

“김영석 대표 성향은 어때요?”

“알아본 바로는 합리적이고 냉철한 성격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좀 많이 급하다고 하네요.”

“흠. 성격도 실용주의다 이거죠?”

광고주 성향, 사례분석 등 다각도에서 의견이 나오던 중이었다.

기획2팀 팀장이 선진국의 사례에 대해 물어왔다.

“해외 사례는 어떻습니까?”

제각각이던 기획국 간부들의 눈이 한곳에 쏠렸다.

“이거, 솔깃한데?”

“그쵸. 팍, 꽂히는 게 있는데 저만 그런 게 아닌가 봅니다.”

촉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기획팀 임원들이었다.

그들이 주목한 건 북유럽 스타일의 미니멀리즘. 실용적이면서도 세련된 감성. 젊고 개성 있는 세대에게 충분히 어필한 스타일이었다. 다만.

“한국에서 먹힐까? 한국 사람들 화려한 거 좋아하잖아요. 나 돈 많네, 과시하는 거.”

“최근은 그런 경향성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추세기는 합니다.”

“트렌드 속도의 문제인데. 지금으로서는 모호한 면도 있어요. 이거 판단 잘해야 돼.”

“미니멀이 먹힐까요? 너무 실험적인데.”

“안 먹혀도 먹히게 만들어야지. 그게 우리 일 아닙니까?”

“인턴들이 이 컨셉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문제입니다. 이해한다 하더라도 표현할 수 있을지.”

“어쩌면 대학생 인턴이라서 시도할 수 있는 컨셉 아니겠습니까? 대표님도 반짝반짝한 거 원하잖아요? 만날 젊은 피 찾으시는데.”

“들이밀어 버립시다.”

몇 시간 동안 이어진 간부회의였다.

지친 얼굴로 1팀으로 나온 이정인이 탁기준에게 지시했다.

“국장님 컨펌 방금 떨어졌어. 인턴 애들한테 내려가서 메인 컨셉 던져주고 와. 보나 마나 전부 삽질하고 있을 텐데.”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떠먹여 주는데 우리 대학생들이 얼마나 그림을 잘 만들어 올지 두고 보자고.”

그렇게 몇 시간 동안 간부급에서 쥐어짜서 나온 컨셉이 미니멀리즘이었다.

그 미니멀리즘이 도혁의 입에서 나오자 탁기준은 경악했다.

뭐라고? 이게 지금 인턴 회의 결과라고?

그러곤 이어지는 도혁의 말에 탁기준은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그의 컨셉 도출 과정이 간부 회의에서 들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한 것이다.

‘명도혁 이 자식 진짜 뭐 하는 놈이지? 이제 좀 무서워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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