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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311화 (311/325)

제311화. 윙드 후사르(Winged Hussar)

비상종 소리에 놀라 막사에서 달려 나온 폴란드군 병사들은 처음엔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사방을 돌아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비상종이 울리는 쪽을 바라봤던 병사들은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쏟아진 총탄에 비상종을 치고 있던 경비병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하늘로 시선을 주었던 병사들 사이에서 경악성이 튀어나왔다.

“비. 비행선이다! 조선군이다!”

지상의 폴란드군이 난리법석을 떠는 사이 최고속도로 돌입한 비행선들이 아직 폭격 개시선에 다다르지 못한 상태에서 적이 알아차리자 일제히 기01 사격을 퍼부었다.

빗발치는 기01 총탄세례에 도주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다수의 폴란드군이 우르르 쓰러졌다. 그러는 사이 폴란드군의 숙영지 상공으로 들어선 날틀043들이 차례차례 폭탄창을 열었다, 그리고······.

씨이이웅.

섬뜩한 소음을 이끈 채 차례차례 떨어져 내리는 공투탄들이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쾅! 콰과쾅!

사방에서 폭발하는 공투탄들의 폭발력이 튕겨 올라온 흙과 함께 폴란드 병사들의 육신을 찢어 공중으로 흩뿌렸다.

사방에서 흙더미와 섞인 피와 육편, 그리고 폭발화염이 충천했다. 미처 도주하지 못한 말들 위로 공투탄이 떨어지면서 사람과 말이 함께 죽어나갔다.

20대의 날틀043이 보유한 1천2백발의 공투탄이 마치 융단처럼 폴란드군 숙영지를 차례차례 깔아 짓뭉갰다.

103폭격비행선단의 비행선들은 보유한 공투탄을 모두 쏟아낸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선회하여 다시 폴란드군 숙영지 상공으로 진입한 날틀043들은 살아 움직이는 폴란드군을 향해 가차 없이 기01 사격을 퍼부었다.

한동안 머물며 보유한 기01 총탄의 8할을 소비한 날틀043들이 미련 없이 기수를 돌려 빠져나갔다.

그렇게 조선 육군 항공대 소속 제103폭격비행선단이 빠져나간 폴란드군 숙영지는 완전히 초토화 되어 있었다.

그렇게 엉망이 된 곳에서 살아남은 폴란드군 병사들이 폭발로 인한 화재로 여기저기 불길이 이는 가운데 멍하니 멀어져가는 조선의 비행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103폭격비행선단의 공중폭격을 받은 폴란드군은 이날 3만이 넘는 병력을 잃었다. 특히 기병대의 경우 1만 마리가 넘는 말들이 이 폭격의 와중에 죽거나 도망쳤다.

부상자도 2만 가까이 발생해서 거의 3분지 1에 해당하는 병력이 이 단 한차례의 공중폭격으로 전투 불능상태에 빠졌다.

너무 좁은 구역에, 너무 많은 병력이 몰려있었던 탓이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공중폭격의 목표로는 최상의 상태를 제공한 셈이었던 것이다.

폴란드군은 재빨리 루블린에서 벗어났다. 조선의 비행선들이 다시금 날아올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루블린을 벗어난 것도 모자라 폴란드군은 10만의 생존 병력을 5조각으로 쪼개서 2만씩 분산 시켜 흩어 놓았다.

루블린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곳에 몰려 있다가 다시금 통타를 당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렇게 분산 배치되는 폴란드군들을 3만척(약9km) 상공에 떠있던 기밀정찰대 소속 날틀055가 망원경으로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은 곧바로 무선전신을 통해 103폭격비행선단보다 12시간 늦게 노리치 비행장을 출격한 102폭격비행선단에 통보되었다.

102폭격비행단은 5개의 폴란드군 분산배치 지역 중 가장 비행거리가 짧은 키엘체를 목표로 선정했다. 그곳에 루블린에서 살아남은 기병대 2만이 집결해있다는 기밀 정찰대의 무선전신을 받은 까닭이었다.

102폭격비행선단의 결정을 대서양군 사령부가 동의하자 102폭격비행선단의 비행선들이 일제히 키엘체를 향해 기수를 돌렸다.

도주하듯 주둔지를 옮겨야 했던 폴란드 기병대는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며 고단한 몸을 새로 조성한 숙영지에 누였다.

그렇게 깊은 잠에 빠진 새벽, 폴란드 기병대는 조용히 숙영지 상공으로 진입한 102폭격비행선단이 퍼부은 공중폭격에 휘말렸다.

공투탄의 폭발화염 속에서 처절하게 터져 나오는 병사들의 비명과 말들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커다란 폭음에 뒤섞여 키엘체의 벌판을 가득 채웠다.

이 두 번째 공중폭격에서 폴란드 기병대는 사실상 전멸 당했다.

조선의 비행선들이 폭격을 끝내고 돌아갔을 때까지 살아남은 병력의 수는 겨우 3천 남짓, 살아있던 말들의 수는 2천 마리에 살짝 모자랐다.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 중 부상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설사 부상을 입지 않았더라도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사방에서 마구 터지는 공투탄의 폭발에 휘말린 사람과 말들은 너무나 쉽게 찢겨나가 비산한 흙과 함께 뒤섞여 마치 비처럼 쏟아졌다.

온 들판이 조금 전만 해도 온전한 사람과 말이었던 육편조각들로 뒤덮였다. 그렇게 피로 물든 땅에서 무차별적으로 터져 오르던 폭발의 와중에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제정신일 수는 없는 이유였다.

그렇게 폴란드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대규모 기병대는 완전히 전투력을 상실한 채 와해되어 버렸다.

기병대의 전멸 소식을 접한 다른 폴란드군들은 2만을 다시 5조각을 내서 4천씩 나누어 흩어졌다. 폴란드군의 지상목표가 마치 조선의 비행선에게 전멸당하지 않는 것에 있는 거 같을 지경이었다.

폴란드군 지휘부가 당황한 채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던 것이다.

루블린에 숨어있던 폴란드 주력군단 중 살아남은 보병이 여전히 8만에 달했지만 그들은 조선의 비행선에 당하지 않기 위해 숨어 있을만한 곳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

이당시 폴란드의 권력기관인 세임은 조선의 공중폭격으로 반쯤 무너진 바르샤바를 버리고 우쯔로 이동한 상태였다.

그런 그들에게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어디의, 어느 도시가 폭격을 받아 폐허가 되었고, 그곳에서 얼마의 폴란드인이 죽었으며, 얼마나 많은 물자가 파괴 되었나와 같은 것들뿐이었다.

종래엔 조선 육군의 상륙을 기다리던 폴란드의 주력군단군이 폭격 당해 분산되었다는 소식까지 들어왔다. 거기다 기병대의 전멸 소식까지.

세임의 의원들은 장군들의 무능을 질타하며 아직도 조선군을 지상전에서 격파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세임으로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조선군의 상륙 소식이 들려왔다.

11수송함대로 이동한 제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이 폴란드의 해변도시인 그드니아에 상륙했던 것이다.

세임은 곧바로 북부에 흩어져있던 생존 병력들의 집결을 명령하는 것과 동시에 그간 악착같이 숨겨두고 있던 폴란드 최강부대에 진격을 명령했다.

세임의 명령에 북부의 여러 지역에 남아있던 소규모의 생존 폴란드군들이 그드니아 인근의 도시인 비드고슈치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집결은 세임과 폴란드군에게는 불행하게도 3만척(약9km) 상공에 떠 있던 기밀 정찰대에 발각되었다. 곧바로 해당 정보가 무선전신을 타고 그드니아에 상륙한 11장갑병단으로 전달되었다.

정보를 전달받은 11장갑병단은 곧바로 시크 여단과 함께 비드고슈치로 달려갔고, 장갑마차를 앞세운 채 집중 사격을 가하며 머뭇거림 없이 집결해 있던 5천 가량의 폴란드군을 돌파했다.

폴란드군의 방어선은 자신들의 사거리 밖에서 쏟아지는 기01 총탄 세례를 버텨내지 못했다. 거기다 방어선을 돌파해 주둔지 안쪽까지 고속으로 파고들어 무차별로 쏘아대는 장갑마차의 공격에 형편없이 뭉개졌다.

패색이 짙어지자 도주하는 폴란드군 병사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마차의 고속추격이 가능한 벌판이 아니라 고드비슈치 시내로 도주했다.

그런 폴란드군 병사들을 외곽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크 여단이 투입되어 추적, 섬멸했다.

그렇게 조선군에게 일격을 가하기 위해 자국 최강부대를 기다리던 북부 생존병력은 힘없이 일소 되었다.

비드고슈치의 폴란드군을 격파한 11장갑병단과 시크 여단은 전투 와중에 사로잡은 폴란드군 포르들을 심문하여 정보를 취득했다. 그 와중에 폴란드의 실권기구인 세임이 바르샤바가 아니라 우쯔로 이동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11기동병단과 시크 여단에게 주어진 임무는 폴란드 국왕과 실권기구인 세임의 의원들을 추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폴란드의 왕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바르샤바로 계속 진군할 것인지, 아니면 세임의 의원들이 탈출해 있는 우쯔로 이동해서 급습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렇게 머뭇거리는 사이 일단의 폴란드 기병대가 조선군을 노리고 몰려왔다.

기밀 정찰대의 무선전신으로 그런 폴란드 기병대의 접근을 파악한 11장갑병단은 기동대응 대신 정차 전투를 벌이기로 작정하고, 비드고슈치 전방의 벌판에 장갑마차들을 선두로, 기동마차들을 안쪽으로 세운 반원진을 구성한 채 적을 기다렸다.

시크 여단은 도심 안에 흩어져 배치된 채 혹시 모를 돌파 후 시가전에 대비했다.

석양이 붉게 하늘을 물들이는 시간, 드디어 거센 먼지구름을 이끌고 폴란드 기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1만에 달하는 폴란드의 자랑, 윙드 후사르였다.

등에 날개 장식을 달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한 이 기병대는 병종 상 경무장 창기병대에 속한다. 위압감 있는 외형에 비해 전신 갑옷이 아닌 부분 갑옷을 착용하고 렌스도 속이 빈 경량 렌스를 사용하는데다 말도 엄심갑만 착용시켜서 기동성이 좋았다.

윙드 후사르는 이 기동성을 활용한 고속 거창 돌격을 주요 전술로 사용하는 부대였다.

유럽 최강의 기병대를 논할 때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거론 될 만큼 강군이었던 이 기병대는 다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쫓지 못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유럽군대가 소총으로 무장하는 시대에 윙드 후사르는 아직도 창과 칼을 주요 무장으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총을 휴대한 용기병의 형태로 운용되는 윙드 후사르가 있긴 했지만 그 수는 극히 미비했다. 이들은 여전히 불굴의 투지와 과감한 돌격을 신봉하는 전통적인 창기병이었던 것이다.

그 윙드 후사르의 고속 돌격이 조선군을 향해 펼쳐졌다.

지축을 울리며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 달려오는 윙드 후사르를 무심한 시선으로 지켜보던 11병단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발포.”

그 짧은 명령에 5백대의 장갑마차에 장착된 기01들이 일제히 총격을 가했다.

퉁투둥퉁퉁퉁퉁퉁.

묵지하면서도 요란한 기01 연발 사격음이 벌판을 가득 채웠다.

3분의 2치(약20mm) 총탄이 빗발치며 달려오는 윙드 후사르들을 말 그대로 갈아버렸다. 빗맞아도 신체 일부가 떨어져나갔고, 정통으로 맞으면 몸체가 완전히 뜯겨 나갔다.

사람이고 말이고 가리지 않고 총탄이 뜯고, 헤집고, 찢어 발겼다.

제압 포격을 위해 장갑마차 뒤편에 전개되어 있던 구포병들은 포격할 타이밍조차 잡지 못했을 만큼 윙드 후사르는 장갑마차의 기01 사격에 축차 소모되어 버렸다.

도주한 윙드 후사르는 단 한기도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끝가지 돌격해 들었고, 단 한 사람의 기병도, 단 한 필의 말도 비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자비한 돌진은 비드고슈치 코앞의 벌판을 온통 찢기고 뜯긴 채 죽은 사람과 말들의 주검으로 채웠을 뿐이었다.

폴란드가 아끼고 아껴두었던 주력군, 윙드 후사르가 그렇게 덧없이 사라졌다.

폴란드의 핵심 전력이었던 윙드 후사르까지 격파한 조선군은 중요 포로들 수십 명을 제외한 나머지 포로들은 모조리 사살했다.

포로에 대한 무분별한 학대행위나 살해 행위를 군법으로 엄격히 금지하는 조선군의 기존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행보였다.

그와 같은 무자비한 처결방식을 택한 것은 이들의 임무가 격멸작전이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태왕의 특명으로 입안되고, 결정될 수 있는 격멸작전은 전투 지역 내의 모든 적군과 적국 민간인에 대한 무자비한 살상과 약탈, 방화가 허락된다.

대표적으로 포르투갈 전쟁당시 북포르투갈을 휘저었던 무한 살상 및 파괴 작전이 그랬고, 초기 네덜란드 전쟁에서 남부 네덜란드에 행해진 초토화 작전도 그러했다.

상대국에 극한의 피해와 공포를 유발해 다시는 조선을 향해 적대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한 목적 하에 실시되는 고강도 작전이었다.

사실 이 작전의 취지에 비쳐보면 지금처럼 비드고슈치가 멀쩡할 수 없었다. 대량의 살상과 파괴가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비드고슈치가 무사했던 것은 조선군이 민간인 피해에 망설여서가 아니라 총포탄 등 보급물자의 부족을 염려한 까닭이었다.

목표가 바르샤바만이 아니라 우쯔까지 추가 되었지만 중간 보급은 예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비드고슈치가 완벽하게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 제압 전투시 시가지로 도주한 폴란드군을 추격해 들어간 시크 여단의 사격으로 시가지 여기저기에 총탄흔과 함께 죽어 널브러진 폴란드군의 시신들이 남겨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공기마저 핏빛으로 물든 비드고슈치를 조선군이 떠난 것은 다음 날 새벽이었다.

조선군이 멀어지는 말발굽소리를 들으면서도 비드고슈치의 시민들은 한동안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나온 자신들을 보고 조선군이 다시 돌아오기라도 할 것 같은 공포 때문이었다.

피와 공포로 물든 비드고슈치를 떠난 조선군은 방향을 바꿔 우쯔를 향해 고속 진군했다. 국왕보다 세임의 의원들을 추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결정한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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