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3화. 죄인의 땅
티베트가 다음 대 달라이라마의 계승으로 소란스럽던 시기, 동일본에서는 우에스기 카게토라의 할복식이 열렸다.
자결하라는 태자의 명에 할복을 택한 것이다.
동일본 주재 조선 사무국의 보고로 그 소식을 접한 태자가 명을 내려 보냈다.
태자의 명은 사납고 명확했다.
본디 할복은 일본 열도에 있어 명예로운 죽음 방식으로 여겨진다. 이때 고통을 끊어주기 위해 뒤에서 배를 가른 이의 목을 쳐 숨통을 끊어주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태자는 그것을 금지시켰다.
우에스기 카게토라는 명예롭게 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시는 군왕을 욕보인 죄인으로 죽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높게 쌓은 단위에서 죽길 원했던 우에스기 카게토라의 희망도 물거품이 되었다.
태자는 모든 영광을 허락지 않았다.
태자의 명을 받은 조선사무국장이 할복 행사에 개입했다. 조선 태자의 명이었기에 감히 누가 나서 그런 조선사무국장을 제지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개입한 조선사무국장의 지시로 높게 쌓은 단 위엔 의자가 하나 놓이고, 동일본 주재 조선 사무국에 걸려있던 광해의 진용(眞容:왕이나 황제의 초상화)이 놓였다.
광해의 진용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높게 쌓은 단 아래 거적이 깔리고 우에스기 카게토라가 올라앉았다.
애초엔 새하얀 면포를 깔아주길 원했으나 죄인이 깨끗함을 찾는 것도 불충이라 하여 태자가 허락하지 않았다.
더구나 변발마저 조선의 법도에 따라 풀어헤친 우에스기 카게토라는 죄인의 모습으로 할복을 진행했다.
고통에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그의 모습이 의무적으로 참여하게 된 동일본의 다이묘들 전원과 자발적으로 모여든 백성들의 앞에서 공개되었다.
그간 보아오던 할복과는 결이 다른 일이었다.
그것은 자결이었으되 처형이었고, 명예대신 치욕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가문이라도 살리기 위해 우에스기 카게토라는 할복하여 자결했다.
*****
우에스기 카게토라의 할복 과정에 대한 보고를 받은 광해는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이항복에게 물었다.
“도제조가 언질을 준 것이오?”
“아니옵니다. 모두가 태자 전하께오서 하신 결정이신 것으로 아옵니다.”
“다른 이들의 도움이 없이 태자가 홀로 내린 결정이다?”
“예. 폐하.”
어리게만 보았던 태자의 새로운 모습에 광해는 꽤나 놀라고 있었다. 단지 일처리가 사나워서 만이 아니었다.
광해, 자신과는 조금 결이 다른 일처리 방법이었지만 꽤나 효과적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하면 이 지긋지긋한 자리에서 서둘러 내려갈 수 있겠어.”
웃음을 매단 광해의 말에 이항복은 함께 웃을 수 없었다. 말속에 든 위험한 뜻 때문이었다.
“폐, 폐하!”
그 탓에 당황하는 이항복의 모습에도 광해는 그저 허허거리며 웃기만 했다.
동일본은 제국파의 수장으로 불려왔던 이자키 후지하루를 임시 지도자로 뽑아 다시 선거를 진행하기로 했다.
조선 주재 동일본 대사가 그것에 대한 태왕의 윤허를 청해오자 광해가 대소신료들 모두가 입조한 대전 조회에서 동일본에 대한 모든 것을 태자에게 일임하였다.
태자가 황망해 했으나 광해가 웃으며 ‘믿는다’ 말해 신임을 명확히 했다.
그런 광해의 일임에 따라 태자 호가 동일본의 청원을 허락했다. 아울러 과거에 그랬듯이 동일본의 선거 관리를 위해 사간원의 관리를 파견했다.
광해가 처음 사간원의 관리를 보냈을 때는 선거 경험이 없는 동일본을 돕기 위해서였지만 태자는 이와 같은 일을 동일본의 선거법에 명문화하여 정례화 하도록 했다.
그것으로 태자는 동일본의 선거를 철저하게 조선의 관리 하에 놓이도록 했다. 독립국이되 독립국이 아닌, 묘한 위치로 동일본을 자리 잡게 만든 것이다.
하긴 태자가 우에스기 카게토라에게 자결을 명한 순간부터 동일본은 독립국이라기보다는 조선의 장군이 다스리는 영지 비슷한 위치로 격하되었다.
이것은 대한제국의 제후국이라는 본래의 위치보다도 아래로 떨어진 셈이었다.
하지만 동일본의 그 어떠한 위정자도 감히 그것에 반발하지 못했다. 반란이 일어났던 땅에서 다시금 반란의 기운이 커가던 시기에 내려진 상국의 철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발하면,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조선의 행동에서 명확히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태자는 서남도와 관서도에서 철군해 구주도에 주둔하고 있던 52병단을 광해의 허락을 얻어 선거관리를 명분으로 동일본으로 이동시켰다.
공정하고 안전한 선거를 위한 상국의 배려라는 태자의 말에 이번에도 감히 반발할 수 있는 동일본의 위정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조선 사간원의 관리 하에 시작된 동일본의 선거는, 중무장한 조선군의 삼엄한 경비 속에 진행되었다.
조선의 관청과 조선군의 개입 하에 치러진 선거였지만 그 과정은 공정했다. 감시와 관리는 하되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지 말라는 태자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동일본 백성들도, 여러 다이묘들도 불안감은 있어도 불만은 없었다. 그렇게 치러진 선거 결과, 사람들의 예상대로 이자키 후지하루가 차기 동일본의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그렇게 선출된 이자키 후지하루가 곧바로 조선으로 향했다.
조선의 태왕에게 보국 장군, 그러니까 후오코쿠쇼군의 직위를 제수 받지 못하면 동일본의 적법한 지도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조선 황궁으로 입조한 이자키 후지하루는 태왕의 알현을 윤허 받지 못했다. 대신 동일본의 모든 일을 일임 받은 태자와의 알현이 허락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자신 앞에 바짝 엎드린 이자키 후지하루에게 태자가 말했다.
“죄인의 땅에서 온 자는 고개를 들라.”
동일본이 죄인의 땅으로 거명되었으나 감히 이자키 후지하루는 그것에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조심스럽게 들었다.
“이자키 후지하루가 태자 전하를 뵈옵니다.”
이자키 후지하루의 말에 태자가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죄인은 감히 이름을 고하지 말라! 나는 아직 네게 이름을 허락한 적이 없다.”
태자의 고압적인 음성에 이자키 후지하루의 고개가 다시 처박혔다.
쿵.
“용서하소서. 전하.”
그런 이자키 후지하루를 내려다보며 태자가 말했다.
“나는 어진 폐하와 다르다. 죄인을 두 번 용서하지 않으며, 죄인의 땅을 무조건 은혜로 다스리지도 않는다.”
13살 어린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갑게 내려앉은 태자의 음성에 이자키 후지하루의 몸은 더욱 낮아졌다.
그런 이자키 후지하루를 내려다보며 태자가 말을 이었다.
“죄인의 땅은 죄를 씻고, 그 노력이 인정을 받을 때까지 그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의 이름을 금한다. 너희는 덕을 패덕으로 갚고, 은혜를 원수로 갚았으니 사람의 형상을 갖췄으되 금수(禽獸)이다. 세상천지 금수가 이름을 갖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개가 되어라. 조선의 개가 되어 짖으라 할 때 짖고, 짖지 말라할 때 다물어야 할 것이다. 어기자면 어겨도 좋다. 은혜로 다스릴 때에도 원수로 갚았으니 기회를 차버리고 이를 드러내는 것 또한 새삼스러울 것이 없을 터이니. 다만 이번에 그리하면 씨를 말려 그 종자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너희 죄인의 땅에 숨을 쉬는 모든 것은, 하물며 미물이라 하여도 숨통을 끊어 아무것도 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배를 타고 조선으로 오며 예상했던 한도 이상으로 사나운 태자의 말에 이자키 후지하루는 놀란 숨을 들이 킨 채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이자키 후지하루를 향해 태자의 날카로운 음성이 던져졌다.
“역시 기회를 차버릴 것이더냐? 오냐 그리하면······.”
뒤로 갈수록 음성이 높아지는 태자의 말끝에 튀어나올 명이 두려웠던 이자키 후지하루가 황급히 답했다.
“추, 추상과 같은 태자 전하의 명을 받잡나이다.”
뒤늦게나마 황급히 튀어나온 이자키 후지하루의 답에 태자가 사납게 노려보며 말했다.
“어김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 순간이 너희 족속 모두의 죽음이 되는 날이니.”
“충! 목숨으로 따르겠나이다.”
바짝 엎드려 답하는 이자키 후지하루에게 태자가 말했다.
“그 말을 지켜보기 위해 조선군은 그대로 죄인의 땅에 남을 것이다.”
“어, 어느 명이라 거역하리까. 성심으로 따를 것이옵니다.”
그 답을 하고서야 ‘툭’ 소리와 함께 태자가 앉은 서탁 앞에 교지가 던져졌다.
테두리에 금박을 입힌 황제의 교지가 아니라 은박이 입혀진 태자의 교지였다.
“죄인들의 땅에 사는 죄인들이 뽑은 대표 죄인을 4품 호군의 직위인 보덕감죄장군(報德減罪上領)에 명한다.”
장군이되 영광이 아닌 죄로 덧칠해진 직위였다. 더구나 급수도 한참이나 떨어졌다.
그간 동일본 막부의 지도자에게 내려졌던 보국 장군은 조선의 직제에서 상장군이라 불리던 2품 상호군에 상응하는 직품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로 동일본 막부의 지도자는 장군의 칭호가 허락된 직품 중 가장 낮은 직위인 호군에 임명된 것이다.
보덕감죄. 일본말로 호오토쿠겐자이.
덕을 갚고, 죄를 덜라는 이 명칭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렇게 명칭마저 죄로 덮인 장군의 위를 내려준 태자의 교지를 감히 일어서지도 못한 채 기어와 주워 품에 갈무리한 이자키 후지하루는 돌아가라는 태자의 명에 그렇게 뒤로 기어서 방문 밖으로 물러났다.
이날부로 태자는 동일본을 대한제국의 제후국에서 제하는 주청을 광해에게 올렸다.
광해는 두말없이 태자의 청을 재가하여 동일본을 태자의 봉지로 하사했다. 구워먹든 삶아먹든 아니면 모든 것을 불태워 없애든 이제 동일본은 그 운명까지도 완벽하게 태자의 선택에 맡겨진 것이다.
동일본에 대한 조선의 처결을 제후국들이 숨죽여 지켜보았다.
이전처럼 칼을 꺼내 반란을 외친 것도, 행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제국의 품에서 벗어나자는 기치를 세우고 지들끼리 치고 박는 내전을 벌였을 뿐임에도 조선은 용서지 않았다.
동일본은 목을 움츠렸다.
태자의 차가운 음성이 허장성세가 아니라는 것을 이자키 후지하루, 아니 이제 그저 수많은 동일본의 죄인들 중 대표 죄인이라 불리게 된 그가 명확히 전달한 까닭이었다.
위기감이 동일본 전역을 휘감았다.
그 와중에 동일본에 공급되는 물량을 절반으로 줄이라는 태자의 명이 떨어졌다. 반대로 동일본에서 사들이는 재료의 양도 절반으로 줄이라는 명도 함께 떨어졌다.
경제가 위축되며 삶이 고단해졌다. 그로인한 백성들의 원망은 조선의 태자가 아니라 제국에서 탈피하자는 주장을 펼쳤던 자국의 위정자들에게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 그간 동일본 수군이 가지고 있던 함선들이 모조리 몰수되었다. 다만 육군이 가지고 있던 일총과 일포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렇게 동일본도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권리를 박탈 당했다. 서남도와 관서도, 아니 이제 주고쿠와 간사이라 불리는 지역과 달랐던 것은 해안가의 거주와 어부들의 고기잡이는 허락되었다는 점이었다.
외교권은 그대로 두었으나 조선의 허락 없이 동일본으로 가는 모든 외국의 접촉은 금지되었다. 그것을 조선의 해군이 감시했다.
사실상의 외교권 박탈이었다.
다만 조선주재 동일본 대사관을 통해 조선에 주재하는 다른 나라의 대사관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것으로 제한적인 외교활동은 가능했지만 그것도 조선의 관리와 감시 하에서만 가능함을 뜻했다.
조선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나 자체적인 경비와 치안은 동일본인들에게 맡겨졌다. 그로인해 여전히 동일본군이 활동하고, 동일본 포도청도 운용되었다.
조선군에 의한 탄압은 일어나지 않았다.
태자는 동일본 주둔 조선군에게 존재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하라고 명했다.
이 추상적인 명을 조선군은 제대로 이해했다. 강도 높은 훈련을 수행하며 최상의 전투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동일본 육군에 심각한 압박을 주었던 것이다.
막강한 화력에 연일 강도 높은 훈련으로 완성된 조선군의 전투력은 3만에 달하는 동일본군의 전력을 완전히 압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일본에서 벌어진 일련의 일을 지켜본 티베트는 급해졌다.
미적거리다가 태자의 명을 허술히 처리했다는 죄를 뒤집어쓰는 날엔 동일본 짝이 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 까닭이었다.
새로 달라이라마의 자리에 오른 이가 황급히 조선으로 달려온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