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5화. 신일회의 비열한 공작
서남도 반란 사태 중 시모노세키 전투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그나마 태평양 함대 소속 대판 전대가 도착하면서 폭도들이 장악하고 있던 시모노세키 항구에 대한 상륙포격이 이루어지고, 곧이어 해상에서 대기 중이던 11수송함대 소속 탈해급 수송선이 항구에 접안해 병력을 상륙시킬 수 있었다.
51병단 예하 515단 병력이 투입된 것이다.
반란사태가 벌어진 이후 처음으로 단급 병력이 투입되는 시점이었다.
중무장을 갖춘 515단이 투입된 직후 항구 일대에 대한 탈환 작전이 전개되고, 곳곳에서 저항하는 폭도들을 격멸하기 시작했다.
항구 일대가 완벽히 장악되자 515단은 방어준비를 갖춰 시모노세키 항구 일대를 요새화했다. 다만 그 요새화가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한 것이 아니라 내부, 그러니까 내륙으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한 형태라는 것이 씁쓸하게 했다.
515단이 항구를 완벽히 요새화했을 때쯤 수송선들에 의한 추가 상륙이 진행되었다. 기타큐슈로 집결하고 있었던 51병단 예하 부대들이 그렇게 차례차례 시모노세키로 들어왔다.
51병단 지휘부는 곧바로 항구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곡물저장소로 1개 단을 파견하여 방어부대를 구원하고 곡물저장소의 방어로 공고히 했다.
감영으로도 1개 단을 보내 해당 지역을 방어하고 있던 부대를 구원하고 감영에 대한 폭도들의 공격을 분쇄하도록 조치했다.
51병단과 조선군 지휘부는 이 일련의 사태가 야마구치시와 시모노세키시의 백성들만이 참여한 반란이었기 때문에 이쯤에서 해결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예상치 못한 일들로 심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서남도 도처로 야마구치시와 시모노세키시에서 조선군이 서남도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소문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조선군에 의해 중상을 입었다는 이들이 미네시와 나가토시, 우베시로 몰려들었다. 개중에는 노인과 아녀자, 어린아이, 심지어 임신한 여성까지 섞여 있었다.
유언비어 단속 및 조사를 위해 나왔던 해당 시의 좌포분청과 우포분청 포교와 포졸들조차 놀라서 멍하니 서있을 정도로 참혹한 중상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반란을 벌였으니 당연한 결과라는 말도 돌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과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백성들의 의식이 개화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깨어난 의식과 교육받은 권리에 의하면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 벌어진 일은 결코 용납될 수는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일부에서 무자비한 조선군에 맞서 동족을 구해야 한다는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종래엔 시위대까지 등장했다. 야마구치시나 시모노세키시처럼 폭력적이지는 않았지만 조선 조정을 타도하자는 구호가 등장한 것이다.
세 시의 좌포분청들이 질서 유지에 나섰지만 시위를 진압하려 들지는 않았다. 우포분청 역시 유언비어 수사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않았다.
그들 역시 조사를 위해 병원으로 갔다가 참혹한 모습으로 실려 오는 이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백성들만이 아니라 관리들조차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미네시를 포함한 세 시에서 시작된 시위가 호후시와 하기시로까지 번졌고, 종래엔 아부조시와 슈난시까지 확대되어 서남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동요하는 백성들의 수가 많았고, 그만큼 많은 젊은이들이 동족을 구하기 위해 시모노세키로 달려갔다.
그 와중에 하기시에서 이주해 살던 조선 본토인이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단지 그가 조선 본토인이라는 것이 폭행의 이유였다.
하기시 좌포분청은 이 사건을 접수한 직후, 폭행범을 추포하였으나 몇 시간 만에 훈방조치 했다. 범인이 이제 15살의 소년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날 폭행을 당했던 조선 본토인이 살해당했다. 풀려난 소년이 찾아가 칼을 휘두른 탓이었다.
그와 같은 일을 벌인 소년이 ‘일본 열도 백성들이여 깨어나라. 일어나 조선의 간악한 손에 죽어가는 시모노세키의 동족들을 도와라’ 라고 소리친 후, 할복 자결했다.
어린 소년의 할복은 서남도 일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어린 소년도 동족을 위해 저리 떨쳐 일어났건만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는 자조 섞인 말들이 서남도 전역에 퍼졌다.
시모노세키로 향하는 이들의 수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막아야 하는 포청 관리들조차 그렇게 시모노세키로 향하는 백성들에 합류하는 실정에까지 이르렀다.
그늘로 가려진 하기시의 한 골목 어귀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스가 요시로오에게 삿갓을 깊게 눌러쓴 사내가 다가왔다.
“작전은 잘 수행되었습니다. 그 녀석의 가족들은 어떻게 할까요. 약속대로 풀어줍니까?”
“그랬다가 우리가 가족을 인질로 잡고 소년을 협박했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어쩌려고. 모두 죽지 않을 만큼 자상을 입혀 병원으로 보내세요. 물론 절대로 깨어날 수 없을 정도로 손을 써야 합니다. 아! 물론 손을 쓴 것은 조선군이어야지요. 지금 각지의 병원으로 실려 오고 있는 중상자들처럼 말이에요.”
스가 요시로오의 말에 고개를 숙여 보인 사내는 어두운 골목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자, 이제 어찌 할 텐가?”
누굴 향해 묻는 것인지 모를 말을 남겨놓은 스가 요시로오도 골목 안의 어둠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서남도 감영과 곡물저장소의 안전을 확보하고 시모노세키 일부에 대한 안정을 확보한 51병단 지휘부는 작전을 확대해 완전 진압을 시도했다.
처음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시민들이 폭도화 되었다고는 해도 그 수가 1만 남짓했고, 그것은 51병단 전체 병력과 비슷한 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한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연일 사살하거나 추포해 잡아들이는 수가 수천이었으니 폭도들의 수가 줄어들어야 하는데 거꾸로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비무장 폭도만이 아니라 무장 폭도들의 수도 자꾸 늘어났다. 더구나 무장병력의 수준도 연일 높아졌다. 나중엔 거의 현역 급에 해당하는 전투력을 보여주는 무장폭도 부대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서남도 각지에서 모여든 조선군 출신이거나 나고야도에서 넘어온 대한제국군 출신들로 이루어진 부대였던 것이다.
아베 노부스케의 지시를 받은 야마자키 슌지가 그들을 지휘해 조선군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해당 부대는 습격을 통해 조선군에 피해를 입히고 반격을 당하면 곧바로 폭도들 속으로 숨는 방법을 택했다.
한마디로 폭도라고는 해도 비무장인 동료들을 방패로 삼은 것이다.
조선군 입장에서는 그들을 추격하자면 앞을 가로막은 비무장 폭도들을 모두 추포하거나 사살 한 후에야 추적이 가능해 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일을 마무리 지은 다음엔 놈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조선군 야전부대들의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졌다.
아군 동료를 죽인 놈들이 폭도들 사이로 숨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손에 몽둥이를 든 폭도들이 앞을 가로막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장한 조선군이 겨우 몽둥이나 든 자신들을 향해 총을 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 행동했다.
그것에 분노하는 조선군 병사들이 많았다.
51병단 지휘부는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폭도들의 수가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폭도들을 향한 조선군 병사들의 악감정이 위험할 정도로 쌓여가고 있었던 까닭이다.
이러다간 자칫 소문대로 조선군이 겨우 몽둥이나 들고 소리나 지르는 이들을 향해 무차별적 사격을 가할 것만 같았던 것이다.
51병단장이 정훈군관들과 기찰 군교들을 동원해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병사들의 정신교육과 기강 확립에 최선을 다하고는 있었지만 칼날 위에 서 있는 듯한 상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상황이 그렇게 최악으로 치닫는 와중에 드디어 조선 본토에서 차출된 12, 13병단이 시모노세키 항구로 상륙했다.
51병단의 경우 조선군 현지화에 따라 구성 병사들의 8할 이상이 일본열도 출신들인 것에 반해 1전단 예하였던 12, 13병단의 경우엔 조선본토 출신들의 비율이 9할에 가까울 정도로 절대적으로 높았다.
원수부는 현지 사정을 잘 아는 51병단장에게 새로 확충된 12, 12병단을 포함한 진압군의 지휘를 맡겼다.
병력 확충에 안도하던 것도 잠시 51병단장은 조선본토 병력을 황급히 뒤로 빼내야 했다. 폭도들이 조선본토 병력을 마주하고는 폭주해 버렸기 때문이다.
‘조선 본토인들이 서남도인들을 죽이러 왔다’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몽둥이를 들고 소리나 지르던 대다수의 폭도들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조선본토 병력이었던 12, 13병단 병사들이 사격으로 맞서야 했고, 다수의 폭도들이 사살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전처럼 총기로 무장한 폭도들이 아니었다. 그저 몽둥이를 들거나 빈손인 이들에 불과했다. 구성도 다양해져서 사내들로만 이루어졌던 초기와 달리 지금은 아녀자나 아이들에 노인까지 섞여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사격이 퍼부어진 것이다.
대규모의 폭도들이 달려들었으니 12, 13병단 병사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실제로 조선본토 병력이 서남도 백성들을 무차별로 사살한 결과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결과를 확대 재생산해내는 신일회의 비밀조직까지 설쳐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조작된 증거와 유언비어에 실제 사건이 겹쳐지면서 신일회가 획책하던 서남도 전체 봉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남경(대판, 오사카)에서 출발해 전속으로 달려오고 있던 52병단 소속 3개 단 병력이 관서도에서 막혔다.
‘무장 진압 반대’라 쓰인 현수막을 든 일단의 시위대가 부대의 진격로를 가로막은 탓이었다. 그들은 서남도가 아니라 관서도 백성들로 이루어진 시위대였다.
더구나 이들은 신일회가 뒤에서 조종해서 모인 것도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이들이었던 것이다.
조작과 유언비어로 시작된 신일회의 움직임이 시민의식을 갖춘 서남도의 백성들을 자극해 벌어진 일이었던 것이다.
진실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섣부른 공명심이 부른 일이었지만 그 일로 인해 상황은 서남도를 넘어 관서도로 번지기 시작했다.
해당 지역 좌포분청 포교와 포졸들이 서둘러 나와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지만 몰려드는 백성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는 탓에 좀처럼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시위대 속의 누군가가 멈춰 서있던 조선군을 향해 돌을 던졌다.
눈두덩을 맞은 병사가 피를 흘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아이러니 하게도 시위대도 일본 열도 출신들이었고, 돌을 얻어맞은 병사를 포함한 52병단 병사들도 대부분 일본 열도 출신들이었다.
그들이 단순히 조선군이라는 이유로 적대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설프게 깨어난 시민의식이 가장 안 좋은 방향으로 터져 흐른 탓이었다.
부대 지휘관들이 험악해진 병사들의 분위기를 감안해 재빨리 부대를 뒤로 물려 다른 길을 찾아 움직였지만 시위대는 어떻게 알았는지 그런 병력의 진출로를 또 막아서며 시위를 벌였다.
아무리 도로가 잘 발달한 조선이긴 했어도 3천에 달하는 중무장 병력이 이동할 만한 길은 한정적이었던 까닭에 시위대가 미리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연일 벌어지는 시위대에 가로막혀 52병단 소속 3개 단 병력의 전개가 방해를 받고 있었다.
해당 상황들은 모두 조선군 원수부와 최고 사령부에도 보고되고 있었다.
물론 스가 요시로오가 지휘하는 신일회의 비밀조직이 뒤에서 유언비어와 사상자를 조작해 내고 있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조선의 입장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폭도들의 성향이었다.
초기 무장 폭동과 달리 지금에 이르러서는 폭도들의 다수가 시위대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비무장 상태의 백성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까지 초기 진압방식대로 무차별 폭격과 사격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 조선군의 고심이었다. 결국 해당 사안이 조선군 최고사령부 긴급 작전회의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광해가 참석한 이 회의에서 군 지휘관들은 백성들의 피해를 감안하고서라도 전격적인 무력투사를 통해 신속히 사태를 진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도상 훈련결과 지금과 같은 상황이 길어지면 외부에서 벌어질지도 모를 무력도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을 파악한 이순신도 그런 제장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의정부 대표로 참석한 문관들의 대부분이 반대를 피력했다. 특히 승정원 도제조 이항복의 반대가 격렬했다.
그는 백성이 아무리 잘못하고 있다하나 통치자가 겨우 쇠망치나 들어 단죄하려 들어서는 아니 되며 설득과 이해로 사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몇 원수부의 고위 무관이 그런 온건파에 힘을 실어 동의를 표했다. 군부에서도 이견이 나온 것이다.
강경파와 온건파의 의견충돌이 첨예하게 벌어졌다.
태왕의 총신들인 이순신과 이항복의 의견조차 갈라진 셈이었기 때문에 양쪽 모두 강력한 힘을 받은 까닭이었다.
그런 상황을 지그시 지켜보던 광해가 손을 들었다. 마치 도 떼기 시장 같았던 회의장에 삽시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조용해지자 광해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