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0화. 내금위 위사대
비행선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감영에서 버텨낸 550단 예하 5대와 달리 곡물저장소에 배치되어 있던 6대는 비행선들이 도착했을 때는 완전이 폭도들과 뒤엉켜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관리동 안까지 들어온 폭도들과 교전을 벌였고, 관리동 후면조차 참호가 돌파당해서 백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5분대를 비롯한 일부 병력은 동료들을 버려두고 전장에서 이탈하다가 폭도들의 매복에 걸려 만신창이가 되고 있기도 했다.
상공에서 그 상황을 확인한 12전투비행선대의 대장은 어찌해야할지를 선뜻 선택하지 못했다. 공투탄의 경우 폭발범위가 너무 넓고, 조준 폭격이 어렵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처럼 아군과 적군이 뒤엉켜 난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공투탄을 투하했다간 아군에서도 상당한 피해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기01을 동원한 공중사격으로 지원을 하기에도 어려운 것이 뒤엉킨 정도가 너무 심해서 선별 사격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12전투비행선대가 곡물저장소 상공에서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황궁에서 출발했던 날틀04들 중 5대가 곡물저장소 쪽으로 날아왔다.
날틀03에 비해 다소 늦기는 했어도 도착에 큰 시간차이가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날틀04의 비행대원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싣고 있는 내금위 위사들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일단 착륙을 해야 했는데 그렇게 지상으로 내려갔을 때 폭도들의 집중 공격을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 멀리서 내려놓으면 겨우 1개 대 병력에 불과한 내금위 위사대가 곡물저장소로 접근하면서 입을 피해가 너무 컸다.
그 탓에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내금위 위사대에 속한 한 젊은 준령이 강습작전을 제의했다.
상공에서 머뭇거리며 기다리다가 어차피 아군들이 다 죽는 것 보다는 날틀04가 착륙할 안전공간을 만들기 위해 날틀03들이 화력을 퍼붓는 가운데 일부 아군이 목숨을 잃는 상황이 낫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작전을 제시한 이는 태왕의 안전이 위협을 받았던 남경 사태 때 태왕을 마지막까지 지켜낸 공로로 임관한지 얼마 되지 않아 준령으로 승진했던 임경업이었다.
그의 제의를 내금위 위사대 두 개 중 하나를 이끌고 있던 상령이 받아들였다. 그런 내금위 위사대의 요청에 12전투비행선대의 대장도 동의하면서 곧바로 강습작전이 개시되었다.
나름대로 분전을 펼치고 있는 관리동 전면지역에 대한 날틀03의 막대한 화력 전개가 우선적으로 실시되었다.
기01 10정이 퍼붓는 공중사격에 일대가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
그렇게 공중사격을 퍼붓는 동안 나머지 10대의 날틀03이 폭도들이 관리동을 포격하기 위해 전진 배치해 둔 일포들이 전개되어 있는 지역으로 날아갔다.
폭도들의 일포가 배치된 지역위로 날아온 10대의 비행선들이 일제히 공투탄들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떨어진 공투탄이 폭발하면서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폭도들의 일포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며 나뒹굴었다.
투하된 공투탄의 숫자는 대당 5발씩 50발이었다. 일장함포로 치면 250발이 일제히 포격을 진행한 것과 같은 효과였다.
폭도들의 무기들 중 착륙할 비행선에 가장 위협적인 무기가 될 일포가 제거된 것을 확인한 날틀04의 조종사들이 곧바로 비행선의 하강을 시작했다.
그렇게 날틀04 비행선들이 착륙할 공간에서 1천보(1.8km)이내 구간의 적병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날틀03 10대에서 기01을 무차별로 쏘아댔다.
첫 번째로 내려앉은 비행선의 문이 열리고, 중무장한 내금위 위사들이 뛰어내렸다. 그 뒤로 차례차례 내려온 비행선들에서도 연속적으로 내금위 위사들이 뛰어내렸다.
그렇게 무리 없이 진행되던 강습작전에 파탄이 발생했다.
관리동 내부에 있었던 덕에 무차별로 쏟아지던 날틀03의 기01 기관포 사격에서 살아남은 몇몇 폭도들이 가총으로 막 착륙을 위해 내려오던 날틀04 한 대를 향해 여러 발의 사격을 가한 것이다.
탕타당탕!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내려오던 비행선의 기낭이 뚫렸다.
질긴 천으로 만들어진 기낭이었지만 가총의 사격에는 속절없이 뚫려버렸다. 그렇게 뚫려버린 곳으로 헬륨기체의 누출이 곧바로 시작되었고, 그로인한 부력의 차이로 비행선이 기우뚱 기울기 시작했다.
문제는 하강 중이었던 탓에 비행선과 지상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는 것이었다. 부력의 갑작스러운 감소는 조종사가 부력을 더할 기회도 없이 비스듬히 기우는 것과 동시에 훅하고 떨어져 지면으로 충돌하며 옆으로 전복되어 버린 것이다.
기낭의 길이만 170척(약51M)에 달하는 날틀04가 추락하면서 일어난 먼지가 관리동 일대를 뒤덮었다.
그 상황에서 다른 비행선에서 이미 내려있던 내금위 위사들의 사격이 가총이 날아온 관리동에 집중되었다. 개중에는 신속하게 관리동으로 달려가 제압작전에 들어가는 분대들도 있었다.
먼 곳에 있는 이들은 총으로 쏘고, 가까운 자들은 칼로 베어내는 내금위 위사들의 전투방식은 가히 무적에 가까웠다.
더구나 다총과 일권총, 거기에 수탄에 이어 칼과 활까지 자연스럽게 사용하여 전투를 이어가는 내금위 위사들의 움직임은 굉장히 부드러웠다.
남경 사태 이후, 내금위 위사들은 난전에 대한 강도 높은 훈련들을 다수 개발하여 미친 듯이 받았다.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다시는 동료들을 그렇게 덧없이 잃지 않기 위해, 자신들이 지켜야하는 태왕의 신변을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다총과 칼, 일권총에 수탄, 거기다 활까지 동원한 이 다대일 전투방식을 채용한 이 훈련들은 하나같이 사방에서 떼거리로 몰려오는 적과의 전투 상황을 상정한 것들이었다.
내금위에 있어서는 병사들의 인권 같은 기본적인 가치보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태왕을 지켜내야 한다는 맹목적 임무가 더 우선시 되는 집단이었다.
그렇기에 10명이 훈련에 들어가면 7, 8명은 부상을 입는 고난도의 훈련들을 군소리 없이, 그것도 자발적으로 참여해 왔던 것이다.
그렇게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온 결과가 곡물저장소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폭도들은 내금위 위사들의 입체적인 공격에 마치 인형 쓰러지듯 사방에서 쓰러졌다. 4개 분대 40명이 관리동 외곽을 장악하는 사이, 내부로 들어간 2개 분대 20명의 내금위 위사들에 의해 순식간에 단층짜리 관리동이 접수되었다.
나머지 2개 분대 20명의 위사들이 전복되어 옆으로 누운 채 추락해 있는 비행선에서 동료들과 비행대원들을 구조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런 내금위 위사들을 엄호하기 위해서 상공의 제12전투비행선대의 날틀03들이 사방으로 기01 사격을 퍼붓고 있었다.
하늘로부터 가해진 공격에 겁을 먹고 도주한 감영 쪽의 폭도들과 다르게 곡물저장소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오던 비행선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한 까닭인지 이 지역의 폭도들은 도주보다는 공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도심 안쪽에서부터 대규모의 폭도들이 진출하는 것을 확인한 12전투비행선대의 대장이 해당 지역에 대한 폭격을 지시했다.
일포를 날려버리고 외곽에서 대기 중이던 10대의 날틀03이 몰려오는 폭도들의 머리위로 날아가 공투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것도 10대의 비행선이 폭도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내 방향으로 날아가며 차례차례 공투탄을 투하했다.
융단폭격이었다.
자그마치 1백발의 공투탄이 차례차례 떨어져 내리며 일대를 완전히 화염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공투탄의 폭별 여력에 휘말린 사람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가고 형편없이 찢겨 육편이 되어 흩뿌려졌다.
그 참경에 놀라 발길을 돌려 도주하는 폭도들의 머리위로 기01에서 발사된 총탄세계가 쏟아졌다.
도주하던 폭도들이 사방에서 픽픽 쓰러졌다.
내금위 위사들을 내려놓은 날틀04 4대가 안전구역 상공으로 이동해 대기하며 지상에 처박힌 1대의 날틀04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조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에 동원된 날틀04는 장원에서 개발된 제품들을 신속하게 조선 각지로 실어 나르기 위해 개조된 화물수송용 비행선이었다.
그렇다보니 조금이라도 수송할 수 있는 무게를 늘이고자 탑승부 하부에 기본적으로 장착되는 자위무장인 기01 총좌도 부착되어 있지 않았다.
거기다 대형 화물의 원활한 수납을 위해 2층의 탑승부를 단층으로 만들고 대형 개폐문을 전방에 만들어 달았다.
탑승부 전면을 완전히 채우는 화물수납용 대형 개폐문의 존재로 인해 조종석은 조금 위로 높이고, 시야확보를 위해 앞으로 조금 돌출시키면서 조종석 부분은 마치 탑승부 위쪽, 그러니까 3층에 설치된 베란다처럼 탑승부 위로 올라앉는 형상이 되었다.
그 덕에 개폐문을 열고 탑승부 안에 타고 있던 위사들은 물론이고, 옆으로 누운 조종석의 유리를 깨고 비행대원들을 구해내는 작업도 수월했다.
다행히 추락사고로 죽은 위사나 비행대원은 없었다. 하지만 중상을 입은 위사와 비행대원이 나왔다. 의무병 임무를 맡은 위사가 그들의 응급 처치를 시행하는 가운데 지상의 위사들이 보낸 수신호를 확인한 날틀04들 중 1대가 급히 다시 내려오기 시작했다.
중상자들을 싣고 구주도의 기타큐슈에 위치한 병원으로 후송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관리동에 대한 내금위 위사들의 제압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어서였는지 비행선에 대한 폭도들의 추가적인 공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중상자들과 구출된 비행대원들을 실은 날틀04가 날아올라 기수를 서쪽으로 돌려 최고속도로 날아갔다. 날틀04의 최고속도는 시간당 250리(약98KM)에 달한다.
한두 대 정도의 날틀03을 호위로 딸려 보내고 싶어도 최고속도에서 날틀04와는 시간당 1백리(약39KM)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비행선 추락사태가 정리되자 곧바로 내금위 위사대가 관리동 일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날틀03의 공격에 막혀 폭도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가운데 아직도 간간히 남아 저항하는 폭도들에 대한 제압작전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6대장을 비롯해 살아남은 6대의 병사들을 구출했다.
내금위 위사대가 구출한 6대 병사들의 수는 35명, 그중 12명은 생명이 위급할 정도의 중상이어서 상공에 대기 중이던 날틀04들 중 한 대를 추가로 불러내려 서둘러 실어 보냈다.
그들도 시모노세키와는 직선거리로 30리(약12KM)정도 떨어진 구주도의 기타큐슈에 위치한 병원으로 보내질 터였다.
그렇게 긴급 투입된 내금위 위사대 10개 분대 1백 명이 서남도 제1곡물저장소를 폭도들의 손에서 탈환함과 동시에 6대를 구출하는 것에 성공했다.
문제는 폭장을 다 사용한 비행선들이 물러나는 시점부터 해당지역을 지켜내는 일이었다.
실제로 제12전투비행선대에 속한 날틀03들의 대부분이 기01 총탄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10대엔 아직 공투탄이 만재되어 있었지만 선두에서 일포를 날려 보내고 몰려오던 폭도들에게 융단폭격을 퍼부었던 10대의 비행선들은 공투탄조차 5발씩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로인해 이전과 같은 공중지원사격은 아예 불가능했고, 공투탄 투하도 몇 차례 나누어 실시하면 비행선들의 무장이 완전히 고갈된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아는 내금위 위사대가 관리동을 중심으로 서둘러 방어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